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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저는 야근을 혐오합니다만 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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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예니 Oct 02. 2024

좋은 학교, 안정적인 직장.. 그런 거 말고

남이 아닌 나의 기준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

"학벌도 좋고 유학도 다녀오셨는데 왜 필라테스 강사를 하려고 하시나요?" 내가 실제로 면접에서 들었던 질문이었다. 학벌도 나쁘지 않고 유학도 다녀왔고 안정적인 직장도 있는데 왜 굳이 필라테스 강사를 하려고 하느냐는 질문이었다. 살다 보면 인생에 정해진 길이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학교를 가고, 또 열심히 취업 준비를 해서 대기업에 가는 그런 길 말이다.

좋은 성적 > 좋은 학교 > 대기업

누가 정해 준 길일까?

아직 그리 긴 인생을 살진 않았지만, 지금까지의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를 고르라면 취업준비생이었던 시절이다. 남들이 그러하듯이 나도 대기업을 위주로 취업을 준비했었다. 그런데 '대기업'만이 내 목표는 아니었기에, '대기업'이면서 내가 원하는 산업군의 회사를 들어가고 싶었다. 나는 내가 원하던 결과를 얻지 못했고, 내 인생의 방향성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좌절했고 자존감은 바닥이었으며, 내 미래가 막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원하는 길이 아니면 현실에 타협할 수가 없었다. 인턴을 하던 회사에서 몇 차례 정규직 제의를 받았었지만 내가 원하던 길이 아니어서 기회를 포기했다. 그런 내 모습이 답답하기도 했다. 그러던 차에 어떠한 계기로 기업의 규모가 아닌 '직무'를 기준으로 아예 작은, 스타트업에 도전해 봐야겠다고 다짐했다.

누군가는 이런 나에게 왜 굳이 우리 학교 정도 나왔는데, 그런 중소기업에 가고 싶냐는 말을 하기도 했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친한 사이였음에도 나와는 정말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기분이 나빴다. 지금까지 내가 하는 선택에서의 우선순위는 남의 시선보다 나였다. 그래도 유학을 다녀왔으니 좋은 대학을 가야 하고, 좋은 대학을 나왔으니 대기업에 취업해야겠다는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그 길만이 정답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리고 애초에 '좋은'이라는 기준이 너무 상대적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에게는 하버드만이 좋은 대학일 수도 있고, 또 누군가에게는 인서울이 좋은 대학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생각하는 기준이 다 다른데 그럼 그 기준은 누구에게 맞춰야 하는 걸까? 그래서 나는 더더욱 내가 원하는 것에 집중해야 된다고 생각했고, 내 나름대로 어떤 계급장 같은 타이틀로부터 자유로운 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 남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울까?

자유롭다고 생각했던 내 모순

필라테스 강사로서 전업을 한다고 했을 때 왜 망설여지는지를 고민해 봤다. 당연히 경제적인 불안정성이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였지만 그것만이 걸림돌은 아니었다. 남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걱정됐다. 나를 오랫동안 지켜봐 온 나의 가족, 친구들은 사실 내가 걱정하는 대상이 아니다. 나를 잘 알기 때문에 내가 어떤 선택을 하든 응원해 주고 믿어줄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만약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면? 나의 직업의 불안정성이나 다른 선입견을 가지면 어떡하지라는 고민들이 들었다.

사실 나도 소위 말하는 좋은 학교, 안정적인 직장.. 이런 것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쌓아 온 어떤 타이틀을 버리고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볼지, 내가 아닌 남의 시선이 기준이 된 것이다. 나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던 어떤 타이틀들이 사라진다는 것이 두려웠던 것일지도 모른다.

타이틀은 나를 설명하기 위한 형용사일 뿐,

나라는 명사가 될 수는 없다

대학에도, 기업에도 평가를 위한 순위라는 것이 존재한다. 그런데 내가 그 타이틀을 가지고 거기에 속해있다고 해서 내 순위가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얻은 결과물은 성취감을 주고, 박수받을 만한 일이다. 다만 계속 그 영광에 살 수는 없다. 내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가. 또 그 경험을 통해 나라는 사람이 얼마나 더 단단해지고 있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결국 타이틀은 나를 더 단단해지게 만들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그리고 그 타이틀이 사라졌을 때에도, 아무런 형용사 없이도, 단단한 나라는 명사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기에 남의 시선에서의 형용사 말고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 줄 형용사를 찾자.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이라고 해서 겁먹을 필요도 없다. 꿋꿋하게 나만의 방식과 속도로 나를 더 단단한 명사로 만들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