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으로서 어린이에게 질문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하는 유진
유진의 분위기를 한 단어로 말하자면 '안온'이었다. 조용하고 편안한 느낌.
유진과 함께하는 두 시간 남짓한 시간은 그야말로 안온한 시간이었다.
차분하고 유연한 사고를 하는 유진의 말을 들으며 나 또한 많은 것을 배운다.
유진과의 대화에서는 너무 많은 영감이 샘솟아, 카메라를 들 타이밍을 종종 놓치기도 했을 정도다.
포터뷰를 통해 나는 세계라는 알을 깨고, 세계라는 알에서 깨어지며, 또 다른 세계를 정립한다.
나는 유진의 말을 듣고, 나의 마지막 꿈이 선생님이었다고 말했다. 유진은 그 말을 듣고는 어울린다고 답했다. 그 이유를 묻자, '소마님은 좋은 질문을 가져오는 사람이잖아요'라던 유진의 말을 몇 번이고 곱씹었다.
나는 매번 새로운 표현의 사람이 된다.
좋은 질문으로, 끊임없이 사유하고 고민하는 사람이고 싶다. 포터뷰를 통해 그 기회를 많은 이들과 함께할 수 있음에 매번 영광을 느낀다.
오늘의 주제인 '우울'은 어때요? 마음에 드시나요? 어떤 주제가 좋을지 고민을 했어요. 제가 인스타그램을 시작한 지가 3년이 되었는데, 그 기간 동안 많이 담아내고자 했던 건 사랑과 편지라는 키워드였어요. 그런데 그 3년만이 제 삶은 아니잖아요. 그보다 이전에 제가 살아왔던 세계는, 우울에 많이 천착해온 시기였는데 정작 그 우울에 대해서 제대로 이야기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았어요. 쉽게 드러내지 못하는 주제인데 좋은 분을 만나면 이야기가 술술 나오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고 왔답니다. (웃음)
영광이에요. 그럼 유진 씨에게 우울은 현재진행형의 느낌보다는 과거형의 느낌에 가까운 걸까요? 지금의 제게는 과거인데요. 그 과거의 것을 제대로 살피지 못해서 지금에서야 다시 돌보는 느낌이에요.
그렇게 과거의 우울을 끌어와서 생각하는 것은 약간의 시간과 힘, 그리고 스스로에게 있어서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끔씩 해요. 유진 씨는 어떠신가요? 많이 공감이 되어요. 과거의 기억 속으로 다시 돌아가려면,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고 또 누군가의 지지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또 그 시기의 나로 다시 돌아가지 않을 수 있다는 어떤 믿음이 필요한 것도 같고요.
그 시기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은 것에 가까운 걸까요?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데, 만약 돌아간다면 그때보다는 조금 더 허둥대지 않고 우울이라는 것을 잘 알아가고 싶어요.
그럼 그 시기에 유진 씨는 스스로 허둥댔다고 느끼시나요? 우울하면 가장 큰 게 고립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고립되는 일들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거든요. 그러니까, 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른 우울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걸 알고 나서야 조금 거기서 벗어났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나만 이렇게 힘든가?'라는 생각을 했을 때, 스스로 허둥댔다고 느껴요.
네이버 국어사전에 의하면 허둥대다,의 정의는 '어찌할 줄을 몰라 갈팡질팡하며 다급하게 서두르다'라는 뜻이라고 하네요. 이 정의에 부합하는 것 같나요? 맞는 것 같아요. 제 우울은, 한껏 제가 돌봐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아서 거기에 치여 있다가, 나중에 닥쳐오는 감정들이었어요. 무기력의 패턴이 반복되었달까요. 그래서 저에게는 그 감정까지 다다르는 데에 허둥대다가 너무 많은 것을 잃었던 것 같아요. 다른 삶을 책임져야 했을 때, 오히려 그것이 내 삶이 아니기 때문에 함부로 저버리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그게 나중에는 너무 힘들게 다가오고, 공허해질 때가 있었던 것 같아요. 바쁘니까, 잘 살아온 줄 알았는데. 그때 저는 가장 우울하고 무기력했던 것 같아요.
저는 유진 씨 말씀을 들으면서 '모두가 허둥대면서 살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허둥대면 안 될까요?'라고 여쭤보려고 했었어요. 그러다가 유진 씨에게 허둥댄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조금 더 들어보고 싶어서 질문을 드린 거였고요. 허둥댄다는 게, 무언가 스스로를 챙기지 못하고, 공허와 회의를 느끼며 무기력해지는 것이라면 허둥대지 않는 게 조금 더 좋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사람마다 우울에 대한 정의가 다 다르잖아요, 어떤 식으로 우울함을 느끼는지 혹은 나에게 우울은 어떤 것인지요. 오늘 새로운 우울의 형태를 알아가는 기분이에요. 제게 우울은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칭하는 '우울'에 가까웠거든요. 저도 그래서 오랫동안 말을 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하는 보편적이고 정석적인 우울이 있는데, 저의 상태와 맞지 않는 것 같아서 스스로 우울한 지조차 몰랐던 시기가 있었어요. 그때의 저를 부정했던 시기가 있어서, 그래서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이런 사람도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어요. (잠시) 한편으로는 말을 하면 좀 지는 것 같은 기분도 들었던 것 같아요. 우울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우울을 구체적인 제 언어로 말할 수 있을 때까지는 그 의문이 제 삶의 목표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그런데 만약에, 정말 그걸 다 말하고 나면 그다음에는 어떻게 되는 걸까, 하는 걱정이 들 때가 있었어요. 그게 정말 삶의 목표라면, 그걸 세상에 다 내놓았을 때 그 이후의 내 삶은 어떻게 되는 거지, 하고 걱정했던 거죠. 그런 걱정에 지지 않겠다는 마음도 있는 것 같아요. 오늘 이러한 자리가 저에겐 용기가 필요했어요. 왜냐하면 저는 우선 초등교사를 지향하고, 그렇기에 이런 타투라든가, 얼굴을 드러내는 또 '우울'을 주제로 한 작업이 굉장히 조심스러웠어요. 하지만 그걸 감추려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만연하게 이야기가 되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여기 오게 되었어요. (웃음)
삶의 목표나 목적에 대한 이야기를 마침 해주셔서요, 제가 여기 오는 분들께 공통적으로 드리는 질문이 있어요. 바로 삶의 목적이거든요. 지금 유진 씨가 생각하는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이신지 궁금합니다. 온갖 고통과 힘듦이 있어도 왜 사람들은 계속해서 살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해왔는데요. 북토크에서 한 작가님을 만나 뵈었는데, 장례지도사를 직업으로 하시고 동시에 전시를 하시는 분이셨어요. 그 자리는 책을 매개로 하는 북토크라기보다는, '우리만의 죽음을 준비해보자'하는 취지로 만들어진 자리였거든요. 마지막에 제가 "저는 사는 게 너무 좋아요"라고 이야기를 했어요. (웃음) 그때, 좀 믿게 된 것 같아요. 살면서 바꿀 수 있는 게 있다, 고요. 장례식조차 법에 구멍이 많고, 거기서조차도 정형화되어 있는 것들이 있는데 그걸 깨 주었던 시간이었거든요. 내가 힘들고 우울했던 부분 대다수가, 세상에 나를 끼워 맞춰서 생기는 감정이라면, 이걸 바꾸려는 사람들이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연결되고 있는데. 스스로 살고 싶어지는 시점은 그 세상이 형태를 어느 정도 달리할 수 있을 때, 그걸 목격했을 때, 라는 생각이 들어요. 열심히 호흡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거듭되는 회한에 저를 묶어두지 않고, 계속 제 안위를 걱정해 주는 사람들을 생각해서라도 살고 싶어지는 것 같아요.
원래 삶의 목적을 여쭤보고 싶었다기보다 처음 갖게 된 질문은 이거였어요. 왜 사람은 죽으면 안 될까, 요. 저는 이게 너무 궁금했어요. 제가 뮤지컬 관극을 정말 좋아하는데, 정말 아끼는 극 중에 <실비아, 살다>라는 극이 있어요. 작가 실비아 플라스의 생애를 다룬 극인데요, 실비아 플라스는 서른 살의 나이에 자살을 하며 생을 마감하지만 극에서는 실비아를 살리는 내용으로 끝이 나요. 그래서 제목이 <실비아, 살다>이고요. 그 극에는 미래의 실비아, 그리고 과거의 실비아가 두 배우로 나누어 연기를 하는데요. 사실 미래의 실비아가 과거를 바꾸려고 애쓰지만 결국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죠. 사실 그렇죠. 미래의 나는 과거의 나를 도울 수도, 지킬 수도 없으니까요. 하지만 과거의 내가 묵묵히 걸어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 생각을 요새 많이 하며 살아요. 묵묵히 과거에서 내가 걷고 걸어 여기까지 왔다는 생각이요. 유진 씨는 지금 앞에 과거의 유진 씨가 있다면 뭐라고 해주고 싶나요? 처음에는 말을 해주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부담스러워할 것 같아요. (웃음) 그래서 그냥 안아줄 것 같아요.
과거의 유진 씨는 미래에게 무얼 물어볼까요? 삶은 계속 이렇게 힘든 거냐고 물어볼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제가 교사라는 직업을 선택한 이유와도 결부되어 있는데. 제가 어린아이에게 어떤 질문을 할 수 있는지 묻게 될 것 같아요. '세상이 계속 이렇게 힘든 거라고 너는 생각하니? 아니면 우리가 조금은, 좀 더 낫게 바뀔 수 있다고 생각을 해?'라고 물을 것 같고. 거기에 대한 답을, 어른으로서 조금은 더 알고. 또 어린아이에게도 물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이 들어요. 제가 교사를 선택하는 데에는 가르치는 사람에 대한 선망도 분명 있었겠지만, 과거에 우울로 점철된 시기를 반복하지 않고, 미리 산 사람으로서 조금은 더 어린이를 보호해주고 싶다는 생각에서 왔을 것도 같아요.
그럼 이 글을 나중에 읽어볼 미래의 유진 씨에게 한 마디 남겨볼까요? 그냥 사랑해, 라고 말할 것 같아요.
너무 좋네요. 이 기록을 나중에 다시 볼 수 있다는 게, 포터뷰의 장점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거든요. 왜냐하면 어쨌든 한 시점의 생각이나 사유를 기록하는 작업이고, 또 그 생각과 사유들은 언제든 변화할 수 있으니까요. 생 속 터닝포인트의 기록물이 되어줄 거라고 생각이 되어요. 너무 힘든 시기에, 편지를 꺼내 읽듯이. 흔들리는 순간이 있을 거예요 분명. 그런데 이렇게 소마님과 나눈 이야기는, 내가 앞으로 조금 더 살아가고 싶어서 꺼내놓는 이야기이고. 미래의 저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저는 호호 할머니가 된 제 모습이 너무 궁금하고, 그 사람과도 잘 지내고 싶어요.
이 자리에서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이 있으실까요? 마지막이라는 단어에, 무게를 두고 싶었어요. 뭐든 마지막이나 끝이라는 단어가 붙으면 의미가 달라지니까요. 그럼 너무 슬프니까, 우리 또 만나자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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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SOMMAR CHO
photographer SOMMAR 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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