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까지도, 언제까지나 혼자가 아닙니다.
우리가 비슷한 어둠을 지나고 있는 것에 있어,
우리가 비슷한 아픔을 지니고 있는 것에 있어,
우리의 손을 꼭 부여잡고 싶다.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도, 언제까지나 혼자가 아니다.
류시화 작가의 산문집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우리의 삶은 자신의 세계를 넓혀 준 사람을 몇 번이나 만났는가에 따라 방향이 정해진다. 마음을 닫아 버리고 싶을 정도로 불안한 세상이지만, 그럼에도 인간이라는 존재의 의미는 관계에서 찾아간다. (...) 삶을 꽃피우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스스로 꽃을 피우는 일이고, 또 하나는 다른 사람의 삶이 꽃피어나도록 돕는 일이다. 당신도 나도 누군가를 꽃피어나게 할 수 있다. (45)
한 영혼이 슬퍼하는 다른 영혼을 돕기 위해 하는 작고 조용한 일은, 큰 의미를 갖는다. 누군가를 위로하는 일은,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가치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서로에게 위로가 되는 존재이길 감히 바라본다.
오늘의 주제인 우울, 어때요? 평생의 동반자가 될 것이라고 선고를 받기도 했었던, 하지만 저는 동반할 생각이 없는 존재예요.
왜 동반할 생각이 없어요? 우울한 건 나쁜 것이니까요.
나쁘다고 생각하시는 이유가 궁금해요. 제게는 깊은 우울이기 때문이에요. 우울이 결국에는 다 자살사고로 이어진다고 생각해서, 그래서 헤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함꼐 해서 좋을 친구는 아닌 것 같아요. 저는 우울과 손을 붙잡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도 그 우울이 제 목을 조르고 저를 끝없이 끌고 가는 것은 아닌 것 같고요. 하지만 그 우울이라는 친구의 힘이 좀 세서, 제가 마음대로 손을 놓지는 못하지만. 제가 손의 힘을 키우면 언제든지 그 손을 놓을 가능성도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깊은 우울은 자살사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말에 공감해요. 저 또 자주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시원 님께서는 어떤 생각을 품고 이 자리에 오시려나, 많이 생각해보기도 했고요. 이번 입원을 시작하게 되었을 때가, 처음으로 내밀한 저를 보여드렸을 때였어요. 의사 선생님께서 충격을 받으신 것 같았어요. '이런 사람이었어요?' 하는 느낌으로요. 그날 상담 시작 전에 공황 증세가 있어서 약을 먹으러 가야겠다고 말씀을 드렸어요. 그전 주에 친구 한 명과 가장 슬픈 마음을 이끌어내 보자는 1인 즉흥 연기를 연습실에서 연습했는데, 그때 자연스럽게 그 정신과 의사 선생님이 떠오르더라고요. 그래서 약을 먹으러 다녀오겠다고 말씀을 드리고는, 선생님을 대상으로 1인 즉흥 연기를 했다며 그 영상을 보여드리게 되었는데요. 선생님께서 보여주셔서 고맙다고, 처음 보는 시원 씨의 모습이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저는 매일 하던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제가 굉장히 정제된 이야기만을 했나 봐요. 그 때 선생님께서 저를 바라봐주시는 시선이 많이 달라졌던 것 같아요. 그다음 주 쯤 상태가 안 좋기도 했는데, 제가 느끼기에도 어딘가 가야 할 것 같은 거예요. 저는 스스로를 해하는 행동을 정말 하고 싶지 않았는데, 머리가 마치 저를 조종하는 느낌이 무서웠어요. (잠시) 사실 무섭지 않았어요. 그냥 다 내려놓고, 그렇게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러면 안 되는 이유들이 있으니까. 그렇게 입원을 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그 말이 공감이 많이 되네요. 스스로를 해하는 행동을 하고 싶지 않았다는 말이요. 사실 그 상황 속에서는 하고 싶다, 혹은 하고 싶지 않다,라는 개념을 떠나서 해야 한다, 는 생각에 가까워지는 것 같아요. 이게 왜 병인지 알 것 같아요. 사람들이 느끼는 게 이렇게 같다는 건, 이게 분명하게 존재하는 병이라는 건데. 사람들이 이게 병이라고 인정하는 것을 어려워하잖아요.
시원 씨는 살아가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요? 저는 큰 이유가 없어요. 엄마가 제가 죽지 않길 바라시기 때문에 죽지 않아요. 살아갈 이유라는 게, 제게는 아직 해당되지 않아요. 아직 없어요.
이 질문에는 사실 아주 긴 부연 설명이 있는데요, 저는 정말로 너무 궁금했어요. 사람들이 왜 이 고통스럽고 힘겨운 세상에서 죽지 않고 살아가는지, 본질적인 의문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래서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물어봤고 정말 다양한 답변을 들었어요. 어떤 사람은 '뭐 그냥 사는 거지'라고 말했고요, 또 어떤 사람은 '살아가는 데에는 이유가 없다'라고 말하기도 했어요. 저는 그런데 이 답변을 들으면서 너무 이상한 거예요. '살아가는 데에 이유가 없다면 죽으면 되지 않나?'라고 생각했어요. 제게는 '살아가는 데에는 이유가 없어'라는 말이 저를 이 세상에 계속해서 발붙이고 살게 할 충분한 핑계가 되지 못했어요. '그럴 거면 죽지, 왜 살지?'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래서 이 포터뷰를 기획하기도 했고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어요. (잠시) 그럼 시원 씨는 우울할 때 무얼 하시나요? (잠시) 없어요. 브레인 포그, 머리가 잘 안 돌아가서 글도 잘 안 읽히고요.
병원에서는 무얼 하며 보내셨는지도 궁금해요. 넋 놓고 누워있기도 했고요. 원래 우울하면 잠을 자는 편이었는데, 병동에 입원한 순간부터 잠을 못 자게 되었어요. 그게 안 되니까, 가진 게 없더라고요. 불안 때문에 갑자기 뛰쳐나가게 되고. 그 와중에 유튜브가 저를 재미있게 해 주었던 것 같아요. 사진 찍는 걸 좋아하니까, 영상도 재미있고. 모르겠어요. 그래서 견뎌요. 붙잡을 게 없어서 견디는 것 같아요.
견디면서 사는 건 너무 힘들잖아요. 고되죠.
저는 시원 씨가 계속해서 유튜브 영상을 많이 올려줬으면 좋겠어요. 어떤 형식으로든 기록을 남기는 것이 되게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사진도 그래서 좋아하고요. 어떤 누군가는 그걸 보고 힘을 얻을 수도 있고요. 정말 그랬으면 좋겠어요. 저 또한 우울할 때 비슷하게 위로를 많이 받았거든요. 저도 그런 채널이 되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이 자리에서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실까요? 위로가 되고 싶은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큰 위로를 전달하는 사람이 됐을 때,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을 느낄 것 같아요. 이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지금은 아직 그러지 못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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