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적하고 싶은 날 ⑨ - 모진 말로부터 나를 지키는 방법
그 말은 왜 했을까.
타인의 문장을 곱씹는 것은 버릇이 됐다. 회사에서 동료나 상사가 내뱉은 말도, 친구가 내게 건넨 말들도 모두 오랜 고민으로 이어졌다. 추리 소설 작가가 된 마냥 말투와 표정, 그날의 온도와 습도까지 연관 지어 문장을 해석하고자 했다.
친구를 만나 노는 것은 너무 즐겁고 좋았지만 집에 돌아오면 항상 그로기 상태였다. 친구의 모든 문장에 반응하고 리액션을 해주어야 관계를 잘 이어나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친구가 내뱉는 말부터 메신저로 주고받는 문장들까지 허투루 넘기지 않았다.
하나하나 다 반응하고 답변을 해주는 것은 나만의 인간관계 유지 팁이라고 자평했다. 이러다 보니 혼자 마음을 다쳤던 적도 많았다. 친구의 모든 문장에 일일이 반응을 하다 보니 그가 무심코 내뱉은 말들도 내겐 날카로운 바늘처럼 다가왔다.
왜 그 말을 한 걸까. 혹시 함축적인 다른 의미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들로 나 자신을 피곤하게 했다. 이후에 넌지시 내가 듣고 상처를 받았던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면 정작 당사자 친구는 기억조차 하지 못했던 적도 더러 있었다.
아직 어려서 그런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나의 예민한 성격의 본질은 쉽게 변하지 않았다. 사회생활을 하고 결혼을 하면서 좀 더 깊은 만남을 해야 하는 순간들이 늘어났고 인간관계에 대한 피로도는 더욱 높아졌다.
처음 남편의 가족들을 만났을 때는 그동안 축적돼 온 상상력이 정점을 찍는 순간이었다. 시어머니께서 하신 말씀들, 새언니가 건넨 대화들이 머릿속에서 떠나가지 않았다. 내가 혹시 무례했나 하는 지레짐작들로 한 편의 소설을 써도 될 것 같았다.
정작 아무 의미 없는 문장들이었는데 괜히 나 혼자 심각하게 생각하면서 남편과의 관계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모든 것의 원흉은 끝이 없는 '생각'이었다. 그때부터 타인의 문장에 과도하게 이입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구나!'라는 짧은 반응으로 생각의 고리로 이어지는 것을 막고자 했다.
물론 처음은 쉽지 않았다. 그동안 해왔던 것이 있으니. 하지만 모든 관계에 일희일비하지 않으려 노력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사람들의 마음은 나와 같지 않다. 내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관계들이 있어 왔고 나는 더 이상 그들을 이해하지 않기로 했다.
그저 그 상황에 너무 깊이 빠지지 않는 연습을 하면서 오히려 내 마음과 몸이 건강해진 느낌이다. 알 수 없는 인간관계로 너무 지친다면 나를 지키는 것이 우선이다. 나를 힘들게 하는 상황과 거리를 두자. 모든 문장에 감정을 쏟기보다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는 것도 때로는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