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적하고 싶은날 Epilogue -나는 초콜릿을 좋아했고 음악을 즐겼다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일까.
돌이켜보면 몇몇 순간들이 떠오르지만 과연 내가 그때 진정으로 행복했는지 되묻는다면 단번에 대답하기는 어렵다. 생각이 많은 나는 언제나 '주입식 행복'에 익숙해져 있었다. 모든 것이 완벽했던 그 순간에도 나의 걱정과 불안은 현재 진행형이었을 것이다. 마음을 현재에 두는 것은 언제나 어려웠기 때문이다.
정말 온전히 행복을 느꼈던 때가 있다면 바로 꽤 오랜만에 아무 걱정 없이, 두 발 뻗고 잠드는 순간이었다. 눈만 감으면 스르륵 잠들던 어린 시절과 달리, 성인이 되면서 숙면을 취한다는 것이 새삼 쉬운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고민이 있는 날에는 자다가도 수없이 깨고, 잠들기도 어려운 밤을 보냈다.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하는 것만큼 힘든 일은 없다는 것을 느낀 이후부터 마음 편하게 잠드는 것이 인생의 행복이라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현실은 녹록지 않았고 어른이 된다는 것은 꽤 고단했다. 그러다 문득 내가 무엇을 위해 아득바득 살아가는지 돌이켜 보았고, 결과론적으로 남은 건 내 몸만 축난다는 사실이었다.
그때부터 마음가짐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아무도 책임져 주지 않는 내 몸은 내가 잘 다스리기로 했다. 언제까지고 불안과 걱정의 노예가 될 수는 없었다.
생각해 보면 마음이 힘들어서 몸까지 아픈 경우가 더 많았다. 마음이 건강한 것이 참 중요하다고 느꼈다. 건강한 마음을 위해 삶의 속도를 조금 늦추기로 했다. 경쟁과 과시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 힘을 좀 빼고 살기로 했다. 특히 사회에서의 나와 개인적 삶에서의 나를 철저히 분리하기로 했다.
변화는 서서히 다가왔다. 불안한 감정이 이성을 잃고 폭주 기관차처럼 다가오려 할 때 생각의 스위치를 끄는 연습을 했다. 이는 곧 내 개인적 삶에 대한 집중으로 이어졌다.
그동안 소홀히 했던 내 개인적 시간들을 소중히 여기게 되면서 내가 이전에 무얼 좋아했고 즐겨했는지 새삼 다시 알게 되었다. 생각의 전환을 이끌어 내자 내 몸과 마음도 뭔가 정화된 느낌이었다.
예민한 기질을 갖고 있는 만큼 이러한 변화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특정할 수 없는 고민으로 내 인생까지 아프게 할 수는 없다. 새해가 밝았다. 올 한 해는 보다 온전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한 해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