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칼디는 수피의 발작 증세를 파악하기 위해 바 안쪽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서리가 몸을 회복 해갈 때쯤 그 원인을 찾아낸 듯싶었다.
“역시.. 이거였나”
칼디는 원두가 들어있는 작은 틴케이스를 들고 있었다.
서리는 틴케이스를 만지작 거리며 혼자 중얼거리는 칼디에게 알아낸 게 무엇인지 물었다.
칼디는 지친 모습의 서리를 안쓰럽게 쳐다보며 대답했다.
“확실하다고는 못하지만 커피의 원두에 문제가 있거나 추출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아. 온전히 커피에만 의존하는 수피가 그 외 다른 것 때문에 저런 증세를 보이는 건 말이 안 되거든.”
결론을 낸 듯한 칼디의 말에 서리는 반문했다.
“나 사실 쓰러져 있는 동안 수피의 과거를 봤어. 꿈을 가진 아이가 동시에 꿈을 잃게 되는 과거였어. 현 세계의 카페가 그 아이에게 꿈을 키워줬고 휴업을 하게 되면서 아이의 꿈도 사그라들었던 것 같아”
서리는 자신이 본 수피의 과거를 회상하며 다시 슬픔이 밀려오는 듯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칼디는 자신이 자만하여 고정관념에 박혀 생각하고 있던 건 아니었는지 스스로를 의심했다.
“커피가 문제가 아니었다 그건가… 그렇다는 건 결국 육체와 합일하지 못한 채 버티고 있던 것이 한계에 도달한 것일 뿐이라는 결론에 도달하는군 “
칼디는 혼자 중얼거렸다. 자신뿐 아니라 서리도 수피와 교류가 가능한 사람이라는 것에 조금은 놀랐다. 그것도 단순히 어떤 꿈을 가지고 있는지가 아닌 그 수피의 육체가 지닌 과거를 모두 볼 수 있을 정도의 교류였다. 잠시 생각에 잠긴 칼디는 곧이어 입을 열었다.
“현 세계의 카페가 다시 열려야 수피들이 안정을 찾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 다른 수피들도 곧 발작증세를 일으킬 거고 사태는 심각해지겠지”
칼디와 서리는 이 문제의 해결방법을 찾은 듯했지만 그 해결방법을 실행할 방도가 떠오르지 않았다. 이 세계의 존재가 현 세계의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었다.
서리는 자신이 이 세계에 오게 된 이유를 생각해내려 했다. 그 안에 해답이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으로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깊은 고뇌의 시작은 사건을 반추해 보는 것이었다.
서리는 이 카페의 문을 열기 전 이상한 소리를 따라잡기 위해 숲 속을 달려왔다. 그리고 그 소리를 듣기 전에는 끈을 따라 올레길을 걷고 있었다. 올레길을 걷기 전에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이동명..
사건을 반추해 보니 서리가 이곳에 오게 된 가장 근본이 되는 원인에는 ‘이동명’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가 서리에게 올레길을 소개해줬으며 기이한 현상에 대해 일러주었다. 그렇다면 그는 왜 서리에게 이러한 행동을 했을까? 서리는 자연스럽게 질문이 이어졌고 그 끝의 해답은 하나였다.
‘잊어버린 것을 찾기 위해서’
서리는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할 겸 칼디를 불러 지금까지 반추해 오며 알아낸 것들을 설명했다.
“내가 이곳에 오게 된 이유는 ‘이동명’이라는 사람 때문이야. 그는 잊어버린 것을 찾기 위해 이 섬에 왔다고 했고 올레길을 걷는다고 했어. 그리고 자신이 경험한 기이한 경험 또한 설명했고 말이야. 이동명이 잊어버린 것을 찾기 위해 향했던 곳은 다름 아닌 지금 내가 있는 이 이 세계의 카페였어. 그렇다면 지금 이곳에서 ‘이동명’이 찾고 있는 건 무엇일까?”
칼디는 침 한번 삼키지 못하고 서리의 추리에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서리의 마지막 질문에 떠오른 하나의 답이 곧 칼디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수피”
서리와 칼디가 찾아낸 해답은 이러했다. 동명이 찾고자 했던 것은 다름 아닌 ‘수피’ 곧, 하고 싶은 일이었다. 그는 자신이 하고 싶던 일을 잊어버렸던 것이다. 동명이 이 세계의 카페를 두 눈으로 볼 수 있었다는 점과 하고 싶은 일을 찾으려고 하는 점들을 생각해 봤을 때 동명과 현 세계 카페의 어떤 연관성을 기대해 볼 수 있었다.
일단은 동명과 현 세계의 카페가 연관이 있다면 동명의 수피가 존재할 가능성 또한 배재할 수는 없는 근거 있는 합리적 의심이었다. 동명의 수피를 찾아 그의 과거를 들여다본다면 카페가 문을 닫게 된 이유와 다시 카페를 열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서리와 칼디가 현세계 카페의 문을 다시 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동안 몇몇의 수피들은 발작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서리는 처음 수피의 발작을 발견했을 때와는 달리 무언가 결심한 듯 비장한 표정으로 수피에게 다가갔다.
칼디는 그 모습을 덩그러니 지켜보고만 있었다.
서리는 본능적으로 수피의 몸에 손을 가져다 댔다. 뜨겁고 차가운 그런 온도는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오묘한 느낌만이 존재했다. 눈을 감고 수피가 가진 육체의 과거를 들여다보기 위해 정신을 집중했다. 눈을 감은 서리의 앞에는 어둠으로 가득했고 서서히 무언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것을 시작으로 서리는 수많은 수피들의 과거를 들여다보며 동명의 과거를 찾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