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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난초

모든 개는 천국에 간다

by 하난

장마가 시작됐다. 중요한 시험도 끝맺었겠다, 한동안 소홀했던 우리 강아지, 하난이와 추억을 만들고자 아침 일찍 근처 공원을 거닐 예정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 걸. 하난이는 산책을 할 운명이 아니었나보다.

나가서 5분은 걸었을까, 우수수 떨어지는 빗물에 하난이의 검은 털이 복슬복슬 젖기 시작했다. 1시간은 걸으며 주위를 구경하려 한 소망은 그렇게 순식간에 막을 내렸다.


평소처럼 집앞만 가볍게 돌고 곧장 집으로 들어왔다. 괜한 미안함과 머쓱함에 하난이를 바라봤다. 그리고 하난이는 웃고 있었다. 그 어느때보다 행복하다는 듯. 활짝 벌어진 입과 살짝 나온 혀, 초롱초롱하게 빛나는 눈과 살랑이는 꼬리가 하난이의 행복을 드러냈다. 울컥, 가슴 저 밑에서 무언가가 치솟았다.


너는 이렇게 쉽게 웃어주는구나. 시험을 핑계로, 일상을 핑계로 하난이에게 소홀했던 나날과 함께 처음 이 아이를 만났던 날이 떠올랐다.


그때는 내가 많이 아팠다. 학교를 그만두고,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외롭냐는 부모님의 물음에 저도 모르게 눈물을 떨구었던 날이기도 하다.


우는 날 보며 아빠는 펫샵으로 향했다. 동네의 작은 곳에 있어 강아지보다는 애견용품을 주로 취급하는, 사실상 키우는 강아지가 새끼를 너무 많이 낳아 분양을 하는 곳이었다.


마음에 드는 강아지가 있느냐는 부모님의 말에 옹기종기 모인 강아지들을 멀거니 바라봤다. 처음 눈에 든 건 기가 죽어 구석에 있는 갈색의 작은 강아지였다. 그 아이에게로 손을 뻗는 순간, 옆의 검정색 강아지가 맹렬하게 손을 잡았다. 온몸을 떨며 즐거움과 반가움을 표현했다. 다시 한번 갈색 강아지를 만지려 하자 검정색 아이가 몸을 던져 저를 만지라고 부비적거렸다.


그 아이, 하난이와 가족이 된 건 불가항력이었다. 사실상 하난이가 나를 택한 것이었으니까.


그리 활달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데, 격렬한 하난이를 데리고 왔던 건, 그런 적극적인 애정이 고팠던 것이었을 수도 있겠다. 꼬물꼬물한 애가 저 좀 봐 달라고 몸을 비트는 게 안쓰럽고 사랑스러웠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하난이를 데리고 온 후로도 우리는 한참을 내외했다. 내가 아프기도 했고, 썩 강아지와 친해지는 게 익숙하지 않기도 했다.


부모님과 오빠가 하난이와 놀아주며 내게 이름을 지어주라고 보챘다. 그러나 작명센스도 없는 데다 애가 어색했던 나는 한동안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다. 리모컨보다 작은 강아지를 그저 멀거니 지켜볼 뿐이었다.


몸이 조금 나아지고 제법 목소리가 나올 때가 되었을 무렵에서야 나는 아이를 '하난'이라 명명했다. '여름의 난초.' 7월 3일, 한여름에 태어난 꽃이라는 의미라고, 난초는 양심을 뜻하기에 부끄럼 없이 살고싶은 마음을 담아 지은 이름이라고 말하고 다니긴 했으나 사실은 그냥 그 당시 가장 좋아했던 웹툰 캐릭터의 이름이 하난이었기 때문에 하난이라 이름 지은 것일 뿐이었다.


하난이는 꾸준히 적극적이었다. 저를 바라봐주지도 않는 내 옆에서 잠을 청했고, 내가 어딜 가든 쫓아다녔다. 어느순간부터는 바닥에 있는 하난이를 들어올려 품에 안고 잤고, 어딜 가든 데리고 다녔다. 주위의 애견운동장을 알아보고 강아지 학습법과 카밍시그널을 공부했다.


앉아를 시키고, 훈련을 하며 성공할 때면 함께 기뻐했다. 집 앞의 커다란 공원을 뛰놀고 팔이 빠져라 공놀이를 했다. 더러운 입으로 뽀뽀를 하고, 히터가 고장나 추운 날에는 서로를 껴안고 잠에 들었다. 노래를 부르며 함께 춤췄고, 바닥을 기어다니며 잡기 놀이를 하기도 했다.


하난이를 보며 세상을 배웠다. 그 아이의 시선이 향하는 곳에 있는 꽃을 봤고, 당연한 음식이 충격과 환상이 되는 현장을 목도했다. 즐거웠다.


그 아이에게 새로웠던 것들이, 사실은 내게도 새로웠다.


날 택해준 너로 인해, 내 삶이 보다 다정하게 물들었다. 네 웃음이 삶의 근거가 되었고, 네 살랑임이 삶의 풍족이 되었다.


사랑하는 우리 강아지, 하난이에게.
내가 네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나는 널 내 세상의 전부로 만들 수는 없어.
그렇지만 그 어느때보다 널 사랑할게. 하루하루, 빠짐없이 널 기억할게.

사랑해, 하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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