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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급 봉사 위원

의문의 1표

by 노미화 Mar 06. 2025


있잖아요, 작년 이맘때쯤 초등 3학년 첫째 아이가 해준 이야기예요. 학기 초에 학급봉사위원을 뽑거든요. 일종의 반장선거와 같은 거죠. 요즘은 봉사위원이라고 하더군요. 어쨌든, 그 봉사위원 선출한다는 걸 아이가 일주일 전부터 말했어요. 그래서 슬쩍 물어봤죠.


“율아, 너는 후보로 나갈 생각이야?”

“당연하지! 한번 나가보고 싶어!”

호기롭게 말하더군요.


“너 그거 어떤 자리인지, 뭘 하는 자리인지 알아?”

“응, 반을 위해서 봉사하는 거지?”

“봉사가 뭔 거 같아?”

“음.. 반을 위해서 도와주는 거? 일하는 거?”

“잘 알고 있네~. 그런데 떨어지면?”

“엄마! 괜찮아! 일단 나가는 게 중요하지! 그런데 뽑히고는 싶다. 애들이 나 뽑아 줄까?”

“해봐야 알지. 그거 투표하기 전에 발표 같은 거 하지 않아? 나를 뽑아주세요. 이런 거.”

“응, 그거 선생님이 나가고 싶은 사람들은 무엇을 봉사할 것인지 생각하고 오라 하셨어.”

“너는 무엇을 봉사할 생각인데?”

“생각해 봐야지.”



봉사위원선거 하루 전날, 아이에게 준비는 잘 되어가는지 물어봤어요. 아이는 재밌는 에피소드 하나를 전해줍니다. 그게 말이죠. 같이 나가기로 한 친구(A라고 지칭할게요)가 있는데  A가 이렇게 말했대요.


‘내가 너를 찍어줄 테니까 너는 나를 꼭 찍어줘야 해.’라고 말이죠.


그래서 그렇게 할 거냐고 물어보니 당연히 약속을 했으니 그렇게 한다고 말하더군요. ‘그럼’이라고 말하는 눈빛에서 그 아이와의 끈끈한 우정을 확신하는 그 어떤 기류가 느껴질 정도였죠. 사실 A는 제가 잘 모르는 아이였어요. 아마 3학년 올라가서 새로 사귄 친구였나 봐요.



선거 당일 아침, 떨린다고 하며 등원하기 전 현관문에서 안아달라길래 안아줬어요. 그러고는 비장하게 현관문을 열고 갔죠. 좋은 경험을 온몸의 감각으로 느끼고 있구나 싶어서 어찌나 귀엽고 사랑스럽던지.


그날 오후, 픽업을 하기 위해 후문에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저 멀리서 축 처진 어깨가 걸어오더라고요. 입은 시옷자가 되어있고요. 단박에 안된 걸 알았죠. 내심 ‘녀석 기대를 많이 했구나’ 싶었어요. 차문을 열고 옆자리에 앉은 아이가 갑자기 눈가가 빨개지는 거예요.


“엄마, 나 한표 나왔어!”


아, A가 약속을 잘 지켰구나, 서로가 잘 지켰구나 생각하고 괜찮다며 위로하는 차에 반전의 에피소드가 울먹이는 아이 입에서 쏟아졌어요. 이야기의 전말은 이랬어요.



5교시에 투표를 했는데, 점심시간에 A와 복도에서 약속을 한번 더 확인했대요. 서로가 서로를 찍어주기로.


반전 하나. “엄마, 후보가 13명이나 나왔어!!” (많이도 나왔네요. 학급 정원은 20명입니다)


반전 둘. “엄마, 나는 나를 찍었어!” (본인이 본인을 찍었답니다. 친구를 배신했구나 싶었죠.)


반전 셋. “엄마, A가 3표를 받고 봉사위원 됐어! ” (봉사위원은 2명 선출되었어요.)


반전 넷. “엄마 근데, A이가 oo이랑 xx 이한테도 서로 찍어주기로 약속을 했는데. 걔네들은 0표 나왔어.”



서로 찍어주기로 했던 A군과 제 아이는 각자 자신를 찍었고, oo 이와 xx 이는  A에게 표를 주고 각각 0표를 받았다는 거예요. 결과가 나오고 이상함을 감지한 셋이 A에게 조금 따졌나 보더라고요. A는 0표 받은 두 아이에게도 나는 너를 찍을 테니 너는 나를 찍어달라고, 서로가 서로를 찍자는 약속을 했었나 봐요.


첫째가 막 울면서 A는 정말 치사해!라고 하길래, 속으로 한마디 했어요.


‘너는 억울할게 있니? 너도 널 찍었잖아. 왜 우니, 흐흐흐흐 넌 따질 입장이 아닌디..흐흐흐’



그날 저는 아이에게 약속과 믿음, 우정 그 세가지를 자세히 이야기해 줄 수 있었습니다. 다음 선거때는 약속 그런거 없이 본인이 본인에게 한표를 주겠답니다. 자기애가 충만하거나 혹은 봉사정신이 투철한 아이를 제가 낳은거 같습니다.


배신은 좀 그렇다, 아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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