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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함 May 28. 2024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2024년 5월 14일 향년 98세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98세를 사셨으니 장수하셨다. 고향 논산에서 농사를 지으시며 평생을 사시다가, 노년을 막내아들이 한의원을 하는 당진의 요양원에서 보내셨다. 연세에 비하여 건강하게 지내시다가, 폐렴 증세로 병원에 2주 입원하시고, 다시 요양원으로 돌아오셔서 1주간 자녀들과 손주들을 보시고 천국에 가셨다. 병원에 입원하셨을 때는 이미 마지막 시간이 오셨음을 모두가 깨닫는 시간이었다. 임종 순간에는 가족 누구도 곁에 지켜드리지 못했지만, 마지막 1주간 자녀들 손주들 다 만나고 가셨다.


구구팔팔이삼사라는 말이 있다.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2 ~ 3일 아프고 죽자는 말이다. 우리 할아버지께서는 98세를 건강하게 사시다가, 2주간 병원 신세 지시고, 노년을 보내신 요양원에 돌아오셔서 1주간 자손들과 면회를 하시고 돌아가셨으니, 구구팔팔이삼사에 거의 근처까지 가셨다.


결혼식 손님은 부모님 손님이고 장례식 손님은 자녀들 손님이라고 한다. 할아버지 장례식에는 문상객이 줄을 섰고 조화도 늘어섰다. 할아버지 자녀 3남 4녀 7남매 중 다섯이 목사님 또는 목사님 사모님이라 주로 교회나 관련 기관에서 많이 왔다. 할아버지 소원이 아들 셋을 하나는 목사 하나는 선생 하나는 의사 만드는 것이었는데 모두 이루셨다. 둘째 아들은 목사, 막내아들은 한의사, 큰 아들은 교사가 되었다. 큰 아들인 우리 아버지는 선생님을 하시며 야간 신학대학원을 다니셔서 목사님도 같이 하셨다. 투잡은 아니고, 직업으로 교사를 하시며, 무보수로 목사로 봉사하셨다.


할아버지 장례식에 늘어선 조화들은 대개 교회 관련 기관들이었는데. 목사 사위 중 '나름' 큰 목사님들이 있어서. 외교부 장관 조화도 있었는데. 대개 손자 손녀들 손님이나 화환은 없는데. 할아버지 손녀이자 나에게는 친척 동생이 외무고시를 통과하여 외교관이라 외교부 장관 이름의 조화가 할아버지 장례식장에 섰다.


사실 할아버지 장례식에서 손주들의 역할은 크게 없다. 손님 오시면 음식을 나르는 역할을 손주들이 있기는 하지만. 다 눈치로 자발적으로 자기 역할을 찾아 하는데. 장손자인 나는 사실 할아버지 장례식장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내 에미마가 자발적으로 손발 걷고 나서서 일을 하느라 나는 아들 요한이를 보았다. 장례식장에서 소란 피지 않도록 따라다니고, 근처 공원에 데려가 놀고, 시골집에 데려가 재우고 그랬다.


다른 많은 장례식장에서는 술 먹고 싸우고 그런 게 다반사라는데 우리 할아버지 장례식은 은혜롭게 마쳤다. 정산을 하고 할아버지가 남기신 많지는 않지만 적지도 않은 돈을 할아버지 딸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딸들은 며느리들 수고했다고 많지도 적지도 않은 돈을 며느리들에게 주자고 했다. 할아버지 장례식을 마치고, 정산을 하고, 저녁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헤어졌다.


평생 가난한 농부셨던 할아버지. 7남매를 중산층으로 키우셨다. 자녀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사회의 역할을 하며 의 좋게 살아간다.


할아버지의 마지막 시간에 다른 사람들은 알아보지 못하셨는데. 증손자 우리 요한이가 다녀가신 것은 기억하셨다고. 요한이가 태어나고 처음 면회 갔을 때 할어버지께서는 그놈 참 잘 생겼네 하셨다. 우리 요한이는 증조할아버지를 닮았는지 잘 생겼다. 아들 요한이는 지금도 증조할아버지를 찾고 기억한다. 33개월 나이에 증조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것을 아나보다.


"증조할아버지 돌아가셨어요. 보고 싶어요. 볼 수 없어요."


말이 조금 늦나 싶었는데 방언처럼 말이 터져 말을 너무 잘하는 요한이는 증조할아버지를 기억하고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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