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울증 극복의 의미
완치의 관점이 아닌, 조절 관리 재발예방의 관점
조울증은 뇌의 병이다. 마음의 병이 아니다. 원론적으로 그렇기는 한데, 많은 경우 뇌의 병이 마음의 병과 스트레스로 인하여 온다. 그렇기 때문에, 조울증은 뇌의 병이지만, 조울이들은 여전히 마음의 병 또한 가지고 살아갈 것이다. 뇌의 병은 뇌의 병대로, 마음의 병은 마음의 병대로, 별개의 접근 방법으로 치료와 치유가 필요하다. 정신과에서 약물치료를 하는 것은 뇌의 병을 다루는 것이다. 마음의 문제 때문에 감정 기복으로 조울증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뇌의 기분조절을 담당하는 부분의 이상이 생겨 약으로 호르몬 조절을 해주지 않으면 정상적인 기분이 유지가 되지 않는다. 고혈압 환자들이 혈압약을 먹으며 혈압을 조절하듯이, 조울이들이 매일 약을 먹으면서 호르몬을 조절하면 정상 기분을 유지할 수 있다. 그렇다 하여 약물치료가 조울증 치료의 전부는 아니다. 약물치료는 조울증 치료의 시작일 뿐이다. 조울증 극복이 단순히 약물로 조증을 재워서 조증 증상만 나타나지 않으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조울증 상태에서 황폐해진 몸과 마음과 영혼을 회복하고, 인간답게 아름답게 행복하게 살아가도록 회복되는 게 목표이기 때문이다. 그 부분은 정신과에서는 다루지 않는 다룰 수 없는 그 밖의 영역이다.
조울증은 양극성 기분장애이다. 기분이 들뜨는 조증과 기분이 가라앉는 우울증이 나타난다는 의미에서이다. 그러나 조울증이라고 진단할 때 조증과 우울증이 반복되는 것을 기준으로 삼지는 않다. 조증과 우울증이 왔다 갔다 하는 게 조울증의 한 모습이기는 한데, 모든 조울증이 그렇지는 않다. 조증 없이 우울증만 있으면 우울증이다. 기분이 정상 이상으로 붕 뜨는 조증을 평생에 단 한 번이라도 경험하였다면 조울증이다. 조울증의 판단기준은 조울증과 우울증이 어느 정도의 빈도로 왔다 갔다 하느냐가 아니라, 조증의 여부에 있다. 조증 증세만 있고 우울증적인 증세는 보이지 않거나, 반대로 조증이 평생에 단 한 번 또는 몇 번 나타나지 않고 대부분 우울증일 경우에, 둘 모두 조울증이다. 한 번이라도 조증을 경험한 적이 있으면 조울증, 우울증만 나타났더라면 우울증이다.
조울이가 매일 약을 먹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실제적인 문제이다. 조울이가 약을 먹으면 별 일 없이 살 수 있다. 그런데 조울이가 약을 안 먹고 기분조절이 안 되면, 잠을 안 자고 말을 많이 한다. 조증 상태에서 하는 말은 평소에 하는 말과 다르다. 생각 양이 많아지고, 생각의 속도가 빠르고, 생각의 비약이 심하다. 평소에 안 하던 짓을 한다. 평소에 착실했던 사람이, 며칠 만에 수천만 원을 쓰고 다니기도 한다. 사업을 벌여 말아먹기도 한다. 착하던 사람이 짜증을 내고 폭력적으로 돌변하기도 한다.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완전히 타락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 내가 경험했던 조울증의 구체적인 사례를 어떤 부분은 이야기할 수 있고, 어떤 부분은 굳이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부분도 있다. 나 혼자라면 다 까도 되겠지만, 아내와 아들이 있는 나의 흑역사의 모든 것을 다 오픈하는 것 또한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군대에서 처음 조울증이 시작되었을 때, 나는 세상에 평화를 가져오는 방법을 개발했다고 생각했다. 이 방법을 위에 보고하면, 내일 우리 모두 총을 버리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으니, 이 평화를 보고하면 내일 청와대에서 나를 부르러 올 것이고, 우리 모두가 총을 버리고 집으로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게 조증 상태에서 나타나는 사고의 비약이다.
가진 돈이 한 푼도 없는데, 내가 대단히 많은 돈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여, 정장을 입고 춘천의 금싸라기 땅의 신규상가 분양사무소에 찾아가서, 상가 분양 상담을 받았다. 10억 정도 가지고 있는 사람 행세하며 분양 상담을 받았다. 내가 그때 주머니에 돈 만 원 한 장이 없어서 다행이지, 만약에 10억 원 이상이 있었더라면, 그 돈 다 털어먹었을 것이다. 이게 조울증이다.
집 나가서 강남역에 고시원을 잡고, 며칠 만에 내 통장에 있는 내가 가진 모든 돈을 다 썼다. 내 돈도 모자라서, 어머니께서 내 명의로 들어 놓으신 주택 청약통장이 있는 것을 귀신 같이 알아서 그걸 깨서 그 돈을 다 써 버렸다. 액수 자체가 많다기보다, 주택청약을 깨 버려서 회복할 수 없다는 게 치명적인 리스크였다. 나는 정치적인 일을 하며, 비즈니스를 하며, 그 돈을 썼다고 생각했지만, 상당한 돈을 술집에서 다 써 버렸다. 착실한 사람이 조증 상태가 되면 이렇게 되기도 한다. 이게 조울증이다.
나는 이런 조증 에피소드를 수없이 경험했다. 지금은 정상 기분에서 정상으로 산다. 2주에 한 번씩 정신과 병원에 찾아가 주치의 선생님과 상담을 하고, 매일 약을 먹고, 낮에는 회사에 다니고, 밤과 주말에는 아내 에미마와 아들 요한이와 시간을 함께 보내고, 틈틈이 글을 쓴다. 약을 꾸준히 먹음으로 나를 조절하면서 나는 별 일 없이 산다. 그런 면에서 나는 조울증을 극복했다.
조울증은 우울증과는 완전히 다른 질환이다. 약을 끊고 무탈하게 사는 완치의 개념은 없지만, 약 잘 먹고 자신의 삶에 충실하면 별 일 없이 일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조절이 가능한 질환이다. 그게 조울증의 극복이다. 약을 먹으면서 조울증이 걸리기 이전처럼 조울증에 안 걸린 보통 건강한 사람들처럼 살아간다는 점에서 나는 조울증을 극복했다. 그리고 이게 모든 정신과 선생님들이 하나 같이 이야기하는 조울증의 극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