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6시 도로연수 스케줄이 잡혀 있었다. 오래전 면허를 따고 그동안 운전을 하지 않다가, 아이가 생기니 자차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쉐보레 올란도를 중고차로 사서 주차장에 모셔 놓고 3회 차 도로연수를 앞두고 있었다.
도로연수 일정은 6시인데 5시에 지하주차장에 내려갔다. '초보운전' '아이가 타고 있어요' 스티커를 붙이고, 내비게이션을 위한 스마트폰 거치대를 설치하기 위해서였다.
차 후면에 스티커를 붙이려는데, 아내 에미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내가 울면서 전화했다.
"오빠, 요한이가... 빨리 와."
오전부터 열이 나기 시작한 요한이에게 무슨 큰일이 생긴 것이다. 최악의 상황까지 생각을 하며, 족구를 하다 다쳐 저는 무릎으로 지하주차장에서 집으로 뛰어올라갔다.
아내의 말을 들어보니 요한이 눈이 평소와는 다르게 이상하게 되었고, 기절한 사람처럼 늘어졌고, 불러도 대답을 안 했다는 것이다. 아내가 한국말을 잘 하지만, 그런 고급 의사소통은 쉽지 않다. 대충 들어보니 아들 요한이가 경기를 했구나라고 상황을 알게 되었다. 나도 아기가 경기하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은 없다. 다만 부모님으로부터 동생이 어렸을 때 아프면 경기를 했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어 경기가 뭔지는 대충 알고 있었다. 아내가 아기가 경기하자마자 나를 부른 것은 아니고, 5분 정도 자기가 어떻게 대처하다 안 되니 나에게 전화를 한 것이었다. 내가 왔을 때는 눈과 정신이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고, 몸만 축 늘어져 있었다.
"에미마. 아기들 경기하는 것인데. 크면서 한 번씩 그러는 거라니까 걱정하지 마."
가까운 큰 병원 응급실에 가기로 했다. 카카오 택시를 불러 수원의료원으로 갔다. 소아과 의사가 없다고 더 큰 종합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어느 병원 응급실에 소아과 의사가 있는지 알려주지는 않았다. 빈센트 병원 응급실에 갔다. 소아과 의사가 없다고 했다. 어디로 가야 하나 당황해하니 119에 소아과 의사가 있는 응급실을 물어 가라고 했다. 119에서는 아주대병원 분당 서울대병원 등 몇 군데를 말해주는데, 우리가 갈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곳은 아주대병원이었다.
이국종 교수가 있어서인지, 경기남부 응급센터와 외상센터가 있었다. 응급실에 바로 들어갈 수 있는 게 아니라, 응급실 외부 간이 대기실에서 접수하고 코로나 검사를 해야 들어갈 수 있었다. 보호자는 1명까지만 같이 들어갈 수 있고, 대기시간이 두세 시간 걸린다고 했다.
내가 들어가려고 했는데, 아기가 울면 엄마가 아니면 어렵다가 아내가 들어가기로 했다. 의료진과 의사소통이 안 되면 전화로 내가 해결하기로 했다. 저녁 7시 조금 못 되어 병원에 도착했는데, 병원에서 나와 집에 돌아오니 새벽 1시였다.
치료 시간이 길어진 것은 요한이 열이 떨어지지 않아서였다. 열이 떨어져 퇴원을 한 것도 아니었다. 해열제를 처방해 주고, 경기하고 경련이 일어나고 심각할 때는 응급실로 바로 오고, 열 나는 정도면 다니는 소아과에 가라고 했다.
아침에 오전 반차를 내고 아내랑 아들과 다니는 동네 소아과에 왔다. 수족구라고 했다. 열이 나서 경련이 났을 거라 했다. 수족구가 원래 열이 나는 병이라 했다. 열 나는 게 딱 48시간이라 했다. 수족구로 열이 나다가 그게 경련을 일으킨 것이다.
내가 도로연수 나가기 전이라, 연수를 취소하고 바로 요한이 데리고 병원에 갈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금요일 요한이 돌사진 찍기로 예정이 되어 있었다. 그날 전까지 빨리 낳았으면 싶었는데. 수족구가 전염성이 있어 돌사진 촬영을 두 주 미루기로 했다.
아내 에미마에게 나 없어도 혼자 카카오 택시를 불러 어디든 갈 수 있도록 가르쳐 주어야겠다 싶었다. 빨리 운전을 배워서 위급할 때 차로 빠르고 편안하게 필요한 곳을 가야겠다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