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효복 Nov 01. 2023

카유보트 따라 하기

카유보트 따라 하기



화가의 정원입니다

혼자서는 만들지 못하는 소리로 이루어졌죠    

 

그는 투명해진 채 기다립니다

지치지 않고 놓여 있지요 귤처럼요    


물방울이 닿는 곳에 소리가 있지요 그곳에서 모양과 색이 생겨납니다

껍질의 기분을 알고 싶은 알맹이처럼 그는 온몸으로 귤이 되기도 하지요

.

바깥의 소리를 몸에 새깁니다

물그림자 속에 빗줄기를 켜는 화가의 활이 보여요     


그곳엔 보이지 않는 물뱀과

아직 태양을 모르는 물이끼와  

몸을 흔들만한 적당한 리듬이 있죠  

   

눈을 감아요

우호적으로 배어듭니다

서로의 뒷모습까지 알 수 있어요    

 

바구니 속에서 귤이 물러집니다 포기하고 싶은 공간이지요

나빠지는 것은 아니에요

잘 섞여 갈릴 수도 있어요

몰려다니며 물드는 푸른 청귤의 시간이 구름 속에 있어요      


세계 바깥으로 흩어지는 과육이란

내리는 비와 같아요

    

빗방울의 살과 즙으로 정원이 풍성합니다

청량하게 짜낸 햇살이 물을 건너오며

맑은 시트러스 향을 흩뿌립니다

     

이곳은 비 내리는 예르*입니다  

        

*구스타브 카유보트의 작품          





<문장웹진> 2023.10 발표










오늘 당신의 정원에선 어떤 소리가 들리나요. 비를 앞둔 바람이 불어요. 방향없이 잎들이 날리고요. 들꽃이 되어 흔들리는 천일홍과 맨드라미의 손을 잡아요. 물들기 좋은 오후입니다.

 

나의 정원엔 새의 기척도 있지요. 나뭇가지 사이로 바람에 날아든 붉은 잎들이 수북이 쌓여있어요. 목 긴 홍학이 날개를 접고 있는 것 같아요. 찬 바람이 휘돌면 깃을 치며 사뿐 바닥으로 내려앉겠죠.


귀 기울여요. 사각사각 낙엽홍학의 작은 발소리를 기다립니다. 내게로 가까이 건너오기를 바라요. 점점 붉어져오는 마젠타빛 그리움처럼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