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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숙 Nov 22. 2023

비둘기처럼 다정한

비둘기처럼 다정한           

 늘어진 몸을 이끌고 들어온 집 

간신히 문지방을 넘으려 할 때 집주인이 내게 방을 빼라고 했다 

서슴없이 난발하는 집주인의 횡포에 나는 나에 맞는 답을 드렸다 

     

도대체 이 동네에 무슨 일이 생긴 거죠?

방을 빼라니요 갑자기?

내겐 방을 뺄 수 있는 힘이 없습니다

그냥 방에서 내 몸을 빼겠습니다  

   

가끔 뺄셈은 이렇게 단순하면서도 깔끔하다     


말의 힘에 밀려 방에서 빠져나온 몸뚱이 하나 거리를 걷는다

뱀의 꼬리도 한번 되어보지 못한 나는 붕어빵을 먹을 때 꼬리부터 베어 물곤 했는데 거리에는 붕어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지금껏 그 무엇의 꼬리도 되어보지 못한 나는 꼬리부터 어른이 되었다 

    

추위가 물러갔다고 하지만 여전히 봄바람은 뼛속까지 파고든다

어디까지 냄새를 풍기며 흘러갔을 붕어들의 흔적을 찾아 양손을 주머니에 넣고 

터벅터벅      


대낮부터 허기진 바람이 날개를 달고 사방에서 출몰한다

공원 벤치에 앉아 좁쌀을 뿌리면 비둘기 떼가 마술처럼 동그랗게 원을 그리고 있다 저 많은 비둘기들의 방은 어디에 있을까?     

 

 나를 향한 나의 질문은 항상 난해하고 답은 생각보다 단순해서 곤란한 질문들을 쏟아내던 어떤 시간들과 어떤 공간들   

  

비둘기처럼 다정한* 당신     


이제 방을 좀 빼주시죠    

 


*조선 말 고종황제의 마지막 왕손 이석이 부른 ‘비둘기집’의 노래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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