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탈리! 잘잤어?”
“응! 잘잤어. 구름이랑 노는 꿈꿨어!”
여행도 체력이 받쳐줘야 한다. 체력이 안되면 아무리 좋은 여행도 힘이 들기 때문이다.
꿈속에서까지 만나 놀다니, 체력도 좋은 나탈리와 구름이..
인생도 긴 여행과 같다.
체력을 잘 관리해야 즐거운 여행이 될 것이다.
건강이 늘 우선이 되어야 한다.
몸도, 정신도...
[08:50 am]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안보는 듯 쳐다보고 있는 구름이. 먼가 원하는게 있을 때, 하는 짓이다.
구름이는 평일과 주말을 구분할 줄 안다. 평일에는 옴마, 압빠가 출근하는걸 알고 배변패드에 볼 일을 보지만, 주말엔 밖을 데리고 나갈 걸 알기 때문에 끝까지 참는다.
여행기간내내 구름이에겐 매일매일이 주말이었나보다. 캠핑카에도, 호텔에도, 샌디에고 숙소에도, 배변패드를 깔아놨지만, 단 한번도 실내에서 볼 일을 보지 않았다.
저 곁눈질은 빨리 나가자는 눈빛일텐데, 인내심이 강한 아이라 쳐다만 볼 뿐, 징징대진 않는다.
“쫌만 이따 산책하자! 알았지?”
스트레칭을 하려고 거실 바닥에 앉았다. 평소 집에서 나탈리가 요가를 할 때, 구름이는 옆으로 다가가 엄마를 따라한다. 익숙한 광경인지, 내 옆으로 다가와 다리를 쭉쭉 펴며 스트레칭을 하는 구름이..
(나가자고 온몸으로 표현하는 거 같닼ㅋㅋㅋㅋ)
“오구오구... 오구구구... ”
나탈리와 내가 평소에 멀 하느냐가 애한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이걸 보면 알 수 있다. 말 못하는 동물도 이럴진데, 사람 아이는 오죽할까..
엉덩이를 들어올리고 고양이 자세를 취하는데, 내 건강상태가 궁금했던걸까? 내 뒤에서 구름이가 x꼬 냄새를 맡고 있다.
“아! 모야? 너 일루와. 너도 x꼬 이리대!!”
나는 아래로 말린 구름이 꼬리를 활짝 들어올리고 킁킁댔다.
킁킁킁킁 킁킁킁
“으하하하하! 복수닷!!”
친구들이 그러면 주저앉지만, 아빠라고 봐주는 것 같다. 쩝쩝대며 가만히 있는 구름이를 보며 웃는 나탈리.
“오빠! 우리 점심 머먹지?”
우린 LA에서 어딜가자고 정해논 곳이 없었고, LA 하면 떠오르는 상징적인 몇몇 곳만 둘러볼 생각이었다.
“나탈리! 우리 구름이 산책하는김에 먹을거 테잌아웃해서 거기서 밥 먹을까?”
“오~~~~ 굿아이디어!! 근데 머먹어?”
“소풍하면 김밥이지!”
“..................”
집에서 차로 10분거리에 있는 [Lake Hollywood park]
(이런 점까지 감안해서 숙소를 골랐다.. 큼..)
집 근처엔 서브웨이도 있었지만, 캠핑카 여행내내 신나게 먹었던 탓에 나탈리는 치폴레를 선택했다.
(서브웨이는 인정!! 김밥은요..??)
“옴마는 언제 나와요..?”
옴마만 사라지면 삐약삐약대는 구름이.. 너무 많이 붙어있었나보다..
(먼 병아리도 아니고.. )
탁 트인 하늘에 해는 짱짱하게 떠있고, 차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은 시원하다. 나탈리가 핸드폰을 만지작만지작 하니 곧이어 음악이 흘러 나왔다.
나는 창문을 활짝열고 볼륨을 높였다. 나탈리도 창문을 열고, 손가락 사이로 지나는 바람을 느끼듯 팔을 꺼내 손을 활짝 폈다.
“이건 누구 노래야?”
“해리 스타일스!”
“노래 좋으네.. ”
“이 사람 노래 좋은거 많아!”
“그래? 그럼 하나만 더 틀어죠!”
핸드폰을 만지작거리자 한 곡이 금새 튀어나오는 마법의 손, 나탈리!!
(나탈리! 난 너 없으면 어떠케 사냐.. )
(저도요.. )
마치 짠것처럼 공원에 도착하자마자 노래는 끝이 났지만, 그 흥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Harry Styles - Late night talking
Harry Styles - Adore you
(나탈리가 선곡한 음악이다.. )
[11:20 am]
내가 포장음식과 짐들을 꺼내는 사이,
나탈리는 뒷자리에 앉아있는 구름이를 챙겼다.
“오빠! 얘 발이 왜 젖었지?”
“읭?? 발이 왜 젖어?”
여기 오는 그 새를 못 참고, 카시트에 시원하게 싸버리고는 표정이 밝은 구름이...
(아까 치폴레 앞에선 머했니.... )
처음 있는 일에 우리도 적잖이 놀랐다.
“아놔 증말.. 황당하네.. ”
“어떡하냐? 오빠.. ”
“일단 밥부터 먹고 생각하자.”
“구름이 너! 자꾸 아빠 힘들게 할꺼야?”
(아빠를 힘들게 하다뇨? 저 혼자 치우나요??)
나탈리 선빵에 맞았다...
하지만 일단 뒷일은 나중에 생각하자!
나도 먹고는 살아야하니까..
푸릇푸릇한 잔디와 초록초록한 나무들 너머 언덕 위에 헐리우드 사인이 보이고, 그 아래로 해를 받고 있는 구름이는 유난히 더 하얘 보이는데, 작은 원을 그리며 빙글빙글 몇바퀴 돌더니 자세를 잡고는 씨익 웃는다.
“오빠 먹어! 내가 할께!”
“아니야아니야. 내가 할께! 나탈리 먹어먹어.. ”
(넌 주거써... )
자기랑 장난치는줄 알고 도망가는 구름이... 너는 신이 나고, 나는 열불이 나고...
“아무리 생각해도, 니가 날 키우는 거 같아... ”
“놉!!”
(엄마한텐 병아린데, 아빠는 왜 NO 야???)
“오빠! 집에가서 카시트 두고, 산타모니카 가면 안될까?!”
“안될게 머있나.. 그래! 그러자!”
차에 탄 구름이는 수건에 돌돌감겨 엄마 품에 안겼다.
“너 일부러 엄마랑 앉고 싶어서 그런거지?”
구름이 발을 씻기러 나탈리는 집으로 들어가고, 나는 뒷문을 열었다. 배변패드처럼 흡수해버린 카시트 방석만 해결하면 되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내 손에 흐르는 건 구름이가 마신 물이지. 그치.. 물이지 물..... 아놔.. 많이도 쌋....ㄴ )
[02:10 pm]
산타모니카 비치 주차장은 요금이 비싸 인근 노상 주차장을 이용했는데, 예전의 코인주차기는 모두 카드형으로 바껴 있었다.
(그럴테지,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항구의 입구까지 걷는 내내 우린 청솔모의 환영을 받았다. 구름이는 신났고, 구름이가 신나니까 나탈리도 신났다.
산타모니카 피어(Santa Monica Pier)
해변은 애견 출입이 가능하지 않아, 우린 부두 길을 따라 걸었다.
하늘엔 갈매기들이 평화로워 보였고, 광대 옷을 입은 남자가 해변에서 춤을 추며 만들어낸 비누방울이 바람을 타고 날아 들었다. 그걸 잡으려는 신난 아이들과 그 모습을 사진으로 담으려는 부부, 손을 잡고 걸어가는 연인, 부모님과 가족단위로 온 사람들, 이곳엔 다양한 사람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저멀리 태평양을 바라보며 돌고 있는 관람차와 길 양 옆으로 줄지어 있는 상점, 그리고 카페, 영화나 미드에 종종 등장하는 빈티지한 놀이공원.. 과연 관광명소 다웠다.
“근데 근처에 사는 사람들은 여기 잘 안 오겠지?”
“오빤 남산타워 자주 가?”
“아주 적절하구만 적절해!”
부두 끝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몰려있는 곳.
<End of the Trail>
Route 66 표지판
66번 국도의 종착점을 알리는 표지판이다. 많은 관광객들이 기념 사진을 찍기 위해 몰려있었다.
나는 시선을 태평양 바다로 돌렸다. 넓은 바다는 캐년과는 다른 느낌이었지만, 나에게 주는 평화로움 만큼은 같았다.
그 때,,
허공에서 바람을 타고 날선 한국말이 날아들었다.
“야!! 미안해!!”
서로를 노려보며 대치중인 커플..
분위기는 살벌했다.
“머가 미안한데?”
“내가 잘못했어!”
“그러니까 멀 잘못했냐고?”
“야! 이러지 말자. 미안하다고 하잖아. 여행까지 와서 꼭 이래야겠냐?”
“이래야겠냐니? 내가 잘못한거야? 내가 이상한거야?”
“에이 씨.. 진짜!!”
“지금 나한테 욕했어?”
“아!! 어쩌라고! 나보고!!?”
분위기는 점점 험악해졌고, 뒤돌아 가려는 여자의 팔을 붙들어 돌이켜 세우며 과거의 일까지 쏟아내는 남자..
“너 저번에 놀러갔을 때, (어쩌고 저쩌고...) 그때 기억안나? 내가 몇번을 말했어? 어?”
머땜에 싸우는지는 모르겠지만, 주제는 이미 사라졌고, 예전의 몹쓸 기억을 소환해가며 감정은 격해지고 있었다.
“화” 라는 건 순간의 감정이다. 그 찰나의 감정에 불을 붙이는 순간, 활활 타오르다 결국 남는거 없이, 다 타버리게 된다.
“나탈리! 사랑을 바탕으로 존중해야 하는걸까? 아니면 존중을 베이스로 사랑해야 하는걸까?”
“글쎄? 둘 다 아닐까?”
“그치! 둘 다면 좋지!”
커플은 더 자극적이고 거칠어지며 활활 타오르더니 자리를 떴다.
“내 생각엔 존중이 더 우선이어야 하는거 같아. 존중이 베이스에 있으면 다투더라도 선을 지키는거 같거든. 싸울순 있지. 근데 건강하게 싸우려면 감정이 빠져야되는데, 상대에 대한 존중이 있으면 감정을 내세우지 않게 되니까.“
“음.... ”
“화는 다 나잖아. 세상에 화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 말이 ‘아’ 다르고 ‘어’ 다른거겠지만, 사랑해서 존중한다는 것보다, 존중을 베이스로 사랑해야 하는게 맞는 거 같아!!“
“오~~ 말이 되는 얘기인거 같다. 긍데 듣다 보니까 생각났는데, 일 할때도 그런 사람들 있어!”
“마자! 회사에서도 막 지르는 사람들 있자나! 그게 상대에 대한 존중이 있으면 그러겠냐고!”
“음.. 맞네! 존중이 제일 앞에 와야 되는거네!”
“나는 그렇게 생각해!”
“근데, 이 얘길 하는건 오빠는 나를 존중한다는걸 말하는 중?”
“오~~~~~”
(똑똑한 나탈리.. )
우린 오늘 계획이 없는게 계획이지만, 다음 갈 곳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지도를 여기저기 확대해가며 찾아보던 중, 게티센터가 레이더에 걸렸다. 불과 10분 거리에 있는 게티센터.
멋진 건물과 정원이 있다는 곳!
그리고 미술관도 있단다. 나탈리와 나는 미술관에 가는걸 좋아한다. 그림을 보면서 그 시대를 떠올려보기도하고, 어떤 마음으로 그림을 그렸을까하는 작가의 마음도 상상해보면서 문화적 환기를 즐기기 때문이다. 구름이의 미술관 출입은 안될 수 있지만, 꼭 미술관이 아니어도 멋진 건물과 정원이 있다고 하니, 한 명씩 번갈아가며 구름이와 놀면 된다.
[03:20 pm]
게티센터는 입장료가 무료지만, 주차비를 받는다. 시간당 주차요금 같은건 없고, 1일 주차요금으로 20불. 건물과 정원, 미술관이 있는 정상까지 트램을 타고 이동해야 하는데, 이 모든게 20불이면 우린 돈을 버는 셈이다.
주차를 하고 트램을 타는 곳으로 이동을 하는데, 엘베 시설이 잘 되있어 개모차 이동에도 불편함이 없었고, 줄 서있는 사람도 많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하며 줄 뒤에 합류했다.
보안요원이 다가오는데,,
(왜 우릴 보면서 다가오는거 같지??)
친절해 보이는 보안요원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I'm sorry. no pet."
띠로리........
트램을 타고 올라가야 공원도 있고, 건물도 있고,,,
저기 위에 다 있는데, 거기를 올라가는 것 자체가 안된다니...
여기에 온지 9분도 안됐고,
주차비를 20불이나 냈다.
아무런 방법이 없고, 그냥 뒤돌아 떠나야 한다...
(20불만 아니어도 쿨하게 갈 수 있는데... )
“나탈리, 우리 화장실 갔다 가자!”
“또 가?”
“나탈리도 또 갔다와. 20불치는 하고 가야겠어. 구름이 너도 한번 더 해!”
“아 모얔ㅋㅋㅋㅋㅋㅋㅋㅋ”
“아깝다.. 20불... ”
“아까워말어. 지나간거 생각해봐야 머하겠어?”
역시 생각하는 통도 큰 여장부다!!
[04:10 pm]
(계획이 없는 게 계획인데, 계획이 자꾸 생긴닼ㅋㅋ)
그리피스 천문대에 도착한 우리. 내부는 구름이가 들어갈 수 없었다. 우리는 한번씩 번갈아 다녀와보기로 했고, 나탈리가 먼저 나섰다.
그리피스 천문대 앞마당을 무대로 꾸며 노래한 아델의 멋진 공연을 영상으로 본 적이 있다. 그 장면이 떠올라 핸드폰으로 아델의 ‘Easy on me’ 를 틀었다.
그때 그 공연장을 온 듯한 느낌..
갬동의 도가니탕을 한 숟깔 뜨려는 찰나, 또다시 등장한 갬동파괴자!!
(머.. 이 정도면 일부러 싸는 느낌인데... )
“구름아! 아껴뒀다 엄마한테 줘. 아빤 이제 갠차나.. ”
“놉!!”
엄마 옆에선 작은 병아리..
아빠 옆에선 무법자...
[07:30 pm]
버뱅크의 한 레스토랑을 예약없이 찾아왔다. 이놈의 저질 체력은 끊임없이 단백질을 요구했고, 그런 나의 마음을 아는 나탈리가 직접 검색해 찾아온 곳이다.
레스토랑이 있는 길은 2층을 넘지 않는 건물들 사이사이로 높은 가로수들이 길 자체를 풍성하게 꾸며주었다.
미국 여행의 마지막인 오늘.
지는 해 마저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아쉬운 마음은 길을 지나는 한 사람 한 사람, 보이는 모든 것들을 눈에 담아보지만, 그래도 아쉬움은 여전하다. 괜한 허전함에 지나온 여행 얘기를 꺼냈다.
“나탈리는 이번 여행에서 어디가 제일 기억나?”
“나는 홀스슈밴드가 진짜 좋았어!”
“그래? 의왼데?”
“홀스슈밴드가 진짜 먼가 신기하고 거대했어!”
“오오~~ 그랬어? 그랜드 캐년일 줄 알았는데!”
그래도 나탈리가 좋았던데가 있었다고 하니, 여행을 꼭 성공한 것만 같았다. 하늘엔 노을이 지고 있다. 그리고 채워지지 않던 아쉬움이 무언갈 이뤄낸 기분으로 전환되어 마음은 꽉꽉차 흘러 넘쳤다.
“오빠는? 어디가 젤 기억나?”
“나? 글쎄.... ”
내 입이 떨어지길 바라보며 기다리는 나탈리.
“난 게티센터에서 24,000원 내고 화장실 사용한게 젤 기억나!”
“아 뭐얔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아직도 억울..ㅎㅏ..... 다.. 내 20불…)
“날씨도 좋고, 음악도 좋고, 음식도 맛있고, 다 좋으네... ”
“고마워 남편!”
“함께해줘서 고마와 나탈리! 카시트에 시원하게 x줌 싼 구름이도 고맙고!!”
(뒤끝작렬ㅋㅋㅋㅋㅋㅋㅋㅋㅋ)
[09:30 pm]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
나탈리에게 부탁했다.
“해리스타일스 조용한 노래도 좋아?”
“응! 하나 틀어줄까?”
“응! 고마워!”
“Sign of the times 듣자!”
음악이 차에서 흘러 나왔고,
음악과 분위기에 취해 다시 창문을 열었다.
가는내내 말없이 분위기를 즐겼고, 근처에 도착해서도 못내 아쉬어 근처를 몇바퀴 더 돌았다. 주차 후에도 한참을 서서 동네를 눈으로 담았다. 보이는 모든 것들이 평화로웠다.
마지막 밤을 불사르고 싶었지만,
지난 화산 폭발의 기억이 나의 본능을 잠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