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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See you again!!

[ 나탈리의 일기 ]

by 수성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면 어김없이 지난 시간이 생각나 미소가 지어지다가도, 돌아가서의 밀려있는 일들을 생각하며 숨이 턱턱 막히기도 한다.


여행과 현실의 중간쯤 걸쳐있는 날..

하지만 늘 그랬던 것처럼 집에 도착하면 현관문을 열면서 중얼거리겠지..


‘역시 집이 최고네!!’



그렇게 또,,

삶은 다시, 조용히 흐를 것이다.









버뱅크(Burbank) – LAX International Airport


30 miles (49km) / 예상소요시간 : 30분





나는 기내 화장실을 거의 이용하지 않기 때문에 비행 중 이머전시가 발생할 일을 아예 만들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어제 마지막 밤을 불사르지 않은건, 정말 다행이다.




[07:00 am]


“오빠! 커피 한잔 타줄까?”

“고마워!”



거실에 분리해 깔아논 짐들을 보며 나탈리가 내려준 커피를 한모금 했다. 집으로 돌아갈땐 캐리어 공간이 널널해질꺼라 생각했는데, 왠걸?


짐이 더 늘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12:30분 비행기.

늦어도 10시반까지는 공항에 도착해야하는데, 그전에 차도 반납해야하고, 반납하기 전 주유도 해야한다. 우린 오늘 할 일이 많다.


(아니.. 내가 할 일이 많다.. )



구름이가 자기 짐만 싸주면 1시간은 세이브 할 수 있겠는데...


“구름아! 니껀 니가 좀 싸면 안되겠니..?”


말없이 돌아서는 구름이..



빠듯하게 움직이는 것보다, 늘 여유를 두고 출발하는 게 여러모로 낫다. 네비게이션상 숙소에서 공항까지 거리는 37분이라고 뜨지만, 그건 안막혔을 때의 얘기다.


우리가 이동하는 시간은 출근 트래픽이 딱 겹친다.







[09:10 am]


짐을 차에 모두 싣고는 숙소를 올려다 봤다.

“잘 있어. 다음에 또 보자!”


손 흔드는 나를 보던 나탈리도 주변에 인사를 건넨다.


“잘 있어! 버뱅크야! 다음에 또올께!”


(다음에..? 진짜..??)







[10:10 am]


고속도로는 막히면 빼박이기 때문에 중간중간 빠져나와 일반도로를 이용했는데, 막힐때를 대비해 전날 맵을 보며 공부를 해둔 게 큰 도움이 됐다.


출국장 도로에 차를 세우고 짐을 내리는 사이 나탈리는 카트를 가지러 가고, 구름이는 엄마가 사라진 곳을 보며 삐약댔다.


“그니까,, 있을 때 잘하라고요, 병아리 아가씨야.. ”



카트에 짐을 모두 옮겨 싣고, 차 트렁크를 닫았다.


“잘 끌고 갈 수 있겠어?”

“응. 잘 가볼께! 오빠도 조심히 갔다와!”


구름이를 메고, 카트를 밀고 가는 나탈리를 바라보다 차량 반납을 위해 운전석에 올랐다. 렌트카 회사는 근처 7분거리에 있었고, 무료셔틀이 10분 간격으로 다니니 올땐 그걸 타고 돌아오면 되었다.


24/7 함께 붙어있었던 탓일까? 혼자 이동하는 차 안은 썰렁하고 허전했다.


(있을 때의 소중함은 없어봐야 안다.. )


저멀리 신호등이 초록에서 주황으로 바뀌고 다시 빨갛게 변하는걸 보면서 차를 천천히 세우고, 옆자리와 뒷좌석을 바라봤다. 웃고있는 나탈리, 해맑은 구름이가 자리에 앉아있는 모습이 오버랩되며 13일의 여정이 스쳐지났다.


온전치 않은 컨디션이 만들어낸 예민함, 그때문에 별거아닌 표현에도 날이서며 하루에도 몇번씩 오르락내리락했던 기분, 상황에 따라 기쁘기도 했고, 걱정이 되기도 했던 시간들, 간사해지고 나약해지고, 기분이 좋아져 관대해지고를 반복하며 내가 나를 사는건지, 감정이 나를 사는건지, 허우적 댔던 여행..


시간은 참 빠르다. 우주의 시간으로 보면 인생은 찰나의 순간이다. 딱 한번 찰나를 살다가 죽는 인생이 허우적대며 끌려가는 것 대신에 화려하게 꽃 피우는 삶이었으면 한다.


자연의 아름다움은 긴장과 고난의 시간으로부터 더욱 풍요로워진다. 아무것도 알 수 없는, 계획대로 되지 않는, 삶이라는 여행은 편하지만은 않다. 하지만 안다. 성장은 고통과 고난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꽃은 저마다 다르지만, 1년에 고작 열흘 남짓 핀다고 한다. 찬란한 그 열흘(240시간)을 위해 나머지 삼백쉰닷새(8,520시간)를 묵묵히 견디며 이겨내는 것이다.


고통과 고난으로부터 성장한 나의 삶이 1년 중 240시간만이라도 화려하게 꽃 핀다면, 가장 화려하고 행복한 삶이 아닐까?



13일의 여행동안 자연의 위대함은 휘청대는 나의 마음을 너그럽게 품으며 고요히 말했다.


내가 있는 모든 곳이 안전하다고...

그러니 넘어져도 괜찮다고...


세상을 사는 일은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는 일이다.

쉽게 생각하면 쉽고, 어렵게 생각하면 어려울 뿐..


걷다보면, 뛰다보면, 넘어지기도, 부딪치며 깨지기도 하겠지만, 그 모든 것이 선물이다.




그리고,

그 선물같은 '오늘'이 늘 행운의 날일 것이다.


미국에서의 13일은 계획대로 되지 않았지만, 여행내내 행운의 날이었다.


(행운의 여신 나탈리와 구름이.. )








(첫 날 바스토우 중국음식점에서 내가 받은 포춘쿠키 글)




13일의 여행에서 삶이라는 긴 여행을 보았다.

인생이라는 찰나를 보았다.









[10:40 am]


티켓팅 부스에 줄서있는 나탈리와 구름이를 보니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나도 분리불안 생긴거임..?!)


“아빠 찬스로 안쓴 구름이 서류 여기 다 있다!”


한국 검역본부에서 서류를 줄 때, 두장 중 ‘Original’은 미국에 도착해서 제출하고, ‘Duplicate’는 한국으로 돌아올때 내야하니 잘 보관하라고 했었다.


(긍데,, 그 서류 두장이 여기 다 있닼ㅋㅋㅋㅋㅋㅋㅋ)



우리는 아무 이상없이 티켓을 발급 받았다. 나탈리가 세심하게 준비한 구름이 서류를 사용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안썼으면 어쩔 뻔 봤냐... )










구름이를 보며 걱정없이 사는 법을 배운다. 구름이의 그 단순함 속에 행복이 있고, 사랑이 있다.



내가 돌아간다. 다시 내 자리로!!

다음 모험을 기약하며...









<나탈리의 일기>




- 비행기에서

일하느라 스트레스를 받던 오빠가 병이 낫나보다. 잠든 모습이 안쓰럽다. 4시간 후면 LA에 도착한다. 여행 중 아프지 않아야 할텐데..


12시간을 가방 안에서 꼼짝 못하는 구름이가 그래도 잘 견뎌주어 기특하고 고맙다.



- LA공항, 오빠를 기다리며,,

구름이 입국심사를 받으러 간 오빠가 1시간이 넘어도 나오지 않는다. 무슨 일이 생긴걸까? 내가 서류를 다 안챙긴건가?


이메일과 그동안 서류를 준비하며 주고 받았던 문자까지 훑어봤지만, 뭘 안챙겼는지 잘 모르겠다. 불안하다.



- 캠핑카를 받고서,,

캠핑카를 타고 안을 둘러봤다. 8일을 어떻게 여기서 생활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선다.



- 바스토우의 아침

아침부터 커피와의 전쟁을 치르고, 구름이 산책중인 남편. 맛있는 커피를 사줘야겠다.


“구름아, 아빠한테 옴마 커피 마시고 싶다고 말해줄래?”



- 나의 마음

미국에 오면 꼭 사주고 싶은 구름이 간식이 있었는데, 그걸 오늘 찾았다. 야호~ 신난다~~


나도 신났고, 구름이도 신났다. 고생하는 오빠에게 머라도 사주고 싶어, 라스베가스에 있는 프리미엄 아울렛에 가자고 했다.


오빠는 다 괜찮다고 한다. 내 맘도 모르고...



- 나까지 아프면 큰일이다

전날 밤 먹은게 소화가 안되, 속이 더부룩했다. 오삼불고기를 거의 남기고, 오빠가 약국을 간 사이 가방에서 소화제를 꺼내 몰래 먹었다.



- 자이언 캐년에서,,

오빠가 먼저 잠들고, 구름이와 밖으로 나왔다. 하늘엔 수많은 별과 큰 달이 하나 떠 있었다.


“구름아, 내일 아빠 일어나면 다 낫게 해달라고, 저기 달 보면서 기도하자!”



- 들쑥날쑥한 이곳의 날씨

낮에는 반팔과 반바지를 입어야 했지만, 낮과 밤의 편차가 너무 크다. 저녁엔 추워서 경량패딩을 입어야 했다. 변화무쌍한 4월말의 날씨.



- Bird house

양념소스를 더 달라고 요청하니 추가요금을 내란다. 돈을 지불하고, 양념을 하나 더 샀다. 양념치킨 맛이 나야 할텐데...



- 시간은 참 빠르다

구름이 아기 때의 기억이 선명하지 않고, 점점 희미해지는 게 슬프다. 구름이가 아기때로 하루만 돌아갔으면 좋겠다.



- 남편을 위해

“오빠, 대패삼겹 오늘 먹을꺼야? 내일 먹을꺼야?”

“오늘 먹는게 낫지 않을까!?”

“그래? 그럼 체크인 하기전에 마트 좀 들르자. 내가 마트 찾아놨어!”

“머 살꺼 있어?”

“그럼! 있지!!”



-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패턴을 깨서 축하한다는 오빠 말에 데미안의 한 문장 생각났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 사랑하는 남편과 구름이

요 며칠 자연을 보며, 사람도 자연의 일부분이라는 말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다. 죽기전에 꼭 와봐야 할 곳이라며, 캐년을 데리고 와준 남편이 고맙다.


구름이는 뭘해도 귀엽고 사랑스럽다. 검정바지를 입어도 예쁘지만, 흙냄새나는 공주란 없는 법이니 내일은 목욕을 시켜야겠다.



- 다시 들른 베이커에서

서브웨이에 주문을 하러 들어왔는데, 구름이가 다소곳이 앉아 기다리는게 창 밖으로 보였다. 사람들은 사진을 찍으며 구름이가 귀엽다고 난리다. 성격이 좋아서 더 예뻐보이는게 아닐까? 사람도 성격이 좋으면 더 괜찮아 보이는 것처럼..



- 괜한 걱정

여행이 아직 며칠이나 남았는데, 일정의 절반이 넘어가니 돌아갈 걱정이 앞섰다.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걸 알면서도 이런다. 어쩔수가 없는걸까? 내일은 아무 생각하지 말고, 구름이와 잼나게 놀아야겠다.



- 내 옆에 있어줄꺼지?

나이를 한살한살 먹어갈수록 조금 지치는거 같다. 일도.. 사람도..


내가 돌로 태어나고 싶은건, 오빠가 싫어서가 아니다. 그냥 마음이 그렇다. 오빠가 돌로 태어나 옆에 있어준다니까 마음이 편안하다. 그게 말뿐일지라도..



- 여행을 마치고

캠핑카를 직접 맞이한 순간, 처음 드는 생각은 과연 여기서 어떻게 생활할 수 있을지 “의문투성”이었으나, 정작 여행일수가 늘어날수록 우리와 늘 함께한 붕붕이가 부엌도 되고, 침실도 되고, 거실도 되고, 욕실도 되는 이 공간에 나는 발 빠르게 적응했다. 하루가 멀다하고 바뀌는 캘리포니아 날씨에서 시도때도 없이 편하게 옷을 갈아 입을 수 있었고, 배고프거나 음료수가 마시고 싶을 때, 냉장고에 있는 식료품을 꺼낼 수 있었고, 여행 중에 피곤하면 누워서 쉴 공간도 되어 주었다.


더욱이 우리의 여정이 잘 마무리되고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아이러니하게 더 많이 기억에 남고 추억하는 것은 샌디에고나 로스앤젤레스의 맛있는 브런치 집이 아닌, 한 공간에서 구름이와 남편과 늘 함께하며, 끊이지 않는 긴장과 안도가 반복되는, 즐거움 가득했던 그 여행이 여운에 남는다.


여행이란 정해진 틀이 없고, 기준이라는 자체가 없는 카테고리인데, 그간 내가 정형화 되어있는 여행을 선호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예상되고 보장되는 여행의 즐거움을 추구하였던 것.


오랫동안 기억될 우리의 모험이 얼마나 값지고 소중하였는지 깨달으며, 구름아빠에게 감사하다.


아! 그리고 힘든 여정을 함께한 기특한 우리 구름이도!!


남편, 딸래미, 느므느므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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