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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형훈 Aug 11. 2023

잘 자요, 캐서린.

   "슬슬 자자“

   캐서린이 소파에서 일어나 내게 손 내밀었다. 나는 그 가녀린 손을 잡고 일어났고 우리는 침대로 구석의 침대로 갔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그녀와 몸을 섞거나 그러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소중한 행위니깐. 하지만 이성과 같은 침대를 사용한다는 것은 정말 긴장되는 일이다.

   캐서린은 긴장한 내 표정을 보며 빙긋 웃으며 말했다.

   “당신이 안쪽으로 누워. 내가 바깥쪽에 누울게.”

   캐서린의 안내에 따라 벽을 끼고 있는 안쪽으로 누웠다. 긴장이 더욱 심해져 내 모든 동작이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캐서린이 보기에 지금 내 모습은 마치, 바람에 쓰러진 마네킹과 같으리라 생각이 들었다.

   내가 먼저 들어가서 눕자, 캐서린이 따라 들어와 내 옆에 누웠다. 내가 사용하고 있는 베개는 그녀가 평소 사용하던 것인지, 그녀의 냄새가 듬뿍 담겨 있다. 이 신선한 상황은 나를 더욱 안절부절못하게 만든다.

   캐서린도 이 상황이 재미있는지 계속 -쿡쿡 웃는다. 그녀는 오른팔로 머리를 괴고 내 쪽을 향했다.

   “아니, 우리 반응이 서로 바뀐 거 아냐? 왜 이렇게 수줍어하는 거야?”

   나는 그녀의 시선을 피하며, 이런 건 당연히 긴장될 수밖에 없다고 대답했다.

   “연애도 해 봤던 사람이 너무 숫총각 같으니까 너무 웃겨. -쿡쿡 성교육 처음 받는 남동생을 보는 것 같아. 형제는 없지만. 하하하! ···그래서 어쩔 거야? 나를 안을 거야?”

   그러지 않을 것이다.

   “-흠, 그러면 왜 내 부탁을 들어준 거야? 어쩌니저쩌니해도, 남자들은 결국, 내심 이런 걸 바라는 게 아니었어? ···아니면, 내가 이성으로서 매력이 없는 거야?”

   나는 그저 당신의 부탁을 받아서 온 거고,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당신은 많은 사람의 이목이 쏠릴 정도로 매력적인 사람이다.

   “그래?”

   그녀는 궁금증이 전부 해결됐는지 더는 물어보지 않았다.

   “그러면 내가 부탁해서 온 것이니깐, 끝까지 최선을 다해 줘. -쿡쿡”

   역시, 제멋대로인 여자다. 캐서린은 저 말을 하고 내게 등 돌려 누웠다.

   그렇게 한 시간쯤 지났을까. 서서히 긴장이 풀어지고, 오랜만에 어둑한 환경에 들어와서인지 졸림이 올라올 때, 캐서린의 어깨너머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신, 자고 있어?”

   캐서린의 뒷덜미에선 깨어 있다는 기척이 없어서 틀림없이 잠들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녀는 깨어 있었나 보다.

   나는 그녀의 말에 대답했다.

   “잠이 오지 않아. 마지막으로 제대로 자 본 게 언제인지 그 감각이 기억나질 않아. 되찾고 싶은데 말이야. ···이번이 정말 내 마지막 이야기야. 미안하지만, 오늘 하루 그래 주었던 것처럼 들어 줘. 그리고 손을 내밀어 내 어깨에 올려 줘.”

   나는 그녀의 부탁을 따라서 오른손을 머뭇머뭇 그녀의 어깨에 올려놓았다. 따뜻하다.

   “···그리고 손으로 어깨를 위아래로 부드럽게 쓰다듬어 줘.”

   나는 그녀의 반소매와 어깨에 드러난 피부를 넘나들며 쓰다듬었다. 부드럽다.

   “당신, 내 헤어스타일이 어떻다고 생각해?”

   붉은빛 갈색을 띠고, 귀엽게 정돈된 단발은 그녀와 잘 어울린다고 말했다.

   “고마워. 이 머리카락 색은 원래 내 것이 아니야. 나는 정말 짙은 검은색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거든. 근데, 하나코 할머니에게 소리 질렀다가 반강제로 휴가를 보냈던 기간에 기다랗고 수수한 검은 머리를 잘라 버리고, 색을 칠했지. 귀도 그때 같이 뚫었어.”

   언젠가 말해 주었던, 징계위원회가 소집되기까지의 그 ‘3주간’을 말하는 것이겠지.

   “나는 내 나쁜 상황을 이겨 내기 위해 항상 노력해 왔어. 지금 내 꼴을 보면 별로 믿음직스럽진 않겠지만.”

   캐서린은 괜히 헛기침하며 목을 정리했고, 기침할 때의 진동과 근육의 변화가 내 오른손에 확실히 전달됐다.

   “나는 내 수수한 외모 때문에 사람들이 쉽고 만만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서 이미지 변신을 시도했어. 그리고 그 변태 과장 자식 때문에 생긴 남성 공포증을 이겨내 보려고 밤의 거리를 돌아다니기 시작했지. 나는 시간을 헛되이 쓰는 것을 정말 싫어했거든. 항상 주어진 시간을 공부하던가, 생활을 개선하는 데 사용했어. 남자가 무섭다고 하더라도 언젠가 예쁜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해서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야 하잖아? 그래서 매일 밤 클럽과 바(Bar)를 가서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위 속에 들이붓고 아무 남자를 붙잡아 침대 위를 뒹굴기를 반복했어.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이를 인지행동치료, 노출 치료로 극복하려고 했지.

   초반에는 무서웠는데, 왜, 내가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잖아? 정말 그렇듯, 남자와 몸을 섞을수록 두려움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강한 쾌락이 자리 잡기 시작하더라고. 개선되는 게 느껴지니깐, 남들 놀 때 공부하느라 하지 못했던 것을 몰아서 한다는 생각으로 더 열심히 거리를 쏘다녔어. 놀 줄 아는 어린 남자애들이 네게 담배도 가르쳐 줬고, 더 독한 술도 알려 줬어. 더욱 자극적인 성행위도 말이야. 그 덕에 음부(陰部)에 상처가 생기는 줄도 모를 정도로 몸을 함부로 썼지. 그렇게 뜨거운 3주를 보내고 이곳에 올라탔어.”

   캐서린과 눈을 마주치면 찌릿하게 강한 자극을 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비로소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3주간 정말 즐거웠어. 문란한 생활을 하면 쾌락주의적인 사람이 되더라도 삶의 원동력이 생길 줄 알았거든··· 평생 이렇게 살아도 좋다고 생각할 정도였으니깐. 남자도 무섭지 않게 되었고 말이지. 하지만 그건 완벽하게 잘못된 방식이었지. 인간은 욕구에 의해 움직이는 동물이야. 영혼이다, 자유의지다 뭐다 사람들은 떠드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거든. 철저하게 여러 호르몬에 따른 뇌 자극에 의해 움직일 뿐이야. 그리고 인간은 기본적으로 욕심쟁이기 때문에 욕구가 충족되면 더 큰 욕구를 갈구하지. 나는 정신과 전문의로서 당연히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짧은 시간에 쾌락에 빠져 버렸고, 쾌락이 빠져나간 빈자리를 그 어떠한 것으로도 메울 수 없었어. 내겐 부작용만 남았을 뿐이야···.”

   캐서린의 흐느끼는 소리가 그녀의 어깨너머로 들려온다.

   “···이곳에 와서 의사가 된 것을 처음으로 후회했어. 성희롱을 당해도, 꽃뱀 소리를 들어도 후회한 적이 없었는데. 만약, 내가 지금과 다른 직업으로, 다른 직장에서, 다른 사람들을 만났다면 행복했을까? 지금이라도 의사를 그만두고 다른 길을 걷는다면, 예전의 수수했던 내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매일매일 했어.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예전의 내 모습이 어땠는지 점점 흐려져서 기억나지 않아. 그리고 그 모습을 찾는다 한들 그게 이제 와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캐서린은 추위에 떠는 작은 동물처럼 고개를 숙여 몸을 웅크렸다. 나는 그녀에게 무슨 말을 해 줘야 할지 고민했지만, 어떠한 말도 해 줄 수 없었다.

   “결국, 나는 이곳에서조차 정답을 찾지 못했네. 머리는 나름 좋다고 생각했는데. 큭큭. ··· 이젠 다 필요 없다고 생각해. 예전으로 돌아가 봤자 다시 사람들에게 우습게 보일 거고, 지금처럼 지내도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에 갈증에 고통받겠지. 그 사이의 외줄을 아슬아슬하게 탈 바에, 그냥 그 줄을 잘라 버리고 모든 걸 놓아 버리는 것도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아마, 나는 이대로 늘어만 가는 수명 속에서 어떠한 희망도 없이 살아가다가 죽어 버리겠지. 이후, 인간의 작은 뇌로는 차마 헤아릴 수 없는 압도적인 시간이 흘러 내 몸은 구더기의 밥이 되고, 가루가 되고, 가루에 먼지가 붙어 우주 속을 떠돌겠지. 하하하! 정말 낭만적이지 않아?”

   정말 내 생각을 듣고 싶어서 물어본 것은 아니리라. 그저 입 다물고, 계속해서 그녀의 어깨를 쓰다듬어 주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리라.

   지금 그녀의 얼굴은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되어 엉망진창일 것이다. 그녀의 마음 또한 여기저기가 찢겨 엉망진창이겠지.

   나는 그저, -음, -음 거리며 그녀의 이야기를 잘 듣고 있다는 신호만 보내며, 동정의 마음을 담아 오른손을 움직였다. 추위에 떠는 동물이, 내 자그마한 체온이라도 느낄 수 있도록 마음을 담았다.

   나는 캐서린의 어깨를 쓰다듬으며 생각했다. 이 가엽고 여린 사람의 미래를 생각했다. 그녀는 앞으로 3개월은 더 이곳에서 치료, 아니 갇혀 있어야 한다. 그녀는 과연, 다시 멋진 의사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내가 열차에서 내린 뒤, 오늘처럼 이야기를 나눌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나는 곧 이곳에서 내려야 한다.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그렇게 길게 느껴진 시간도 어쨌든 부지런히 흘러 주어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더는 캐서린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불안하고 안타깝다고 느껴졌을 때, 나는 이 화려한 미인에게 강한 호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분이 하루에 수백 번은 바뀌는 이 여자에게 말이다.

   사랑인지 뭔지는 모르겠다. 다만, 캐서린과 함께 있을 때면, 내가 가지고 있던 불안, 걱정 들을 잊어버릴 수 있었다. 그리고 캐서린이 나를 향해 웃어 줄 때마다,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것 같아서 정말 기뻤다. 어쩌면, 우리가 서로를 의지한다면, 우리는 지금의 굴레를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아직 발견하지 못한 행복의 고리를 찾아 모험을 떠날 수 있는 동력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캐서린은 잠이 들기 시작했는지, 불안정했던 호흡이 좋은 리듬을 갖기 시작했다. 그녀의 리듬이 내 오른손에 느껴진다. 나는 이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쓰다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광합성 열차에서 만난 나카무라 씨는 아무 인연도 없는 내게 웃으며 다가와 준 좋은 사람이었다. 이별의 선물로 라이언 씨에게 맛있는 요리를 부탁할 정도로 세심한 사람이었다. 그가 내게 다가와 준 덕분에 열차에서 여러 인연이 생겼다. 열차의 꼬리를 물 듯이 말이다. 그가 출발점에서 나를 이끌어 주어서 용기를 얻었고, 그 용기로 라이언 씨와 대화를 나누고, 프로그램에 참여도 해 보고, 야오린 씨와 상담을 나눌 수 있었다.

   이곳에서의 모든 일은 스테로이드를 맞은 신체처럼 빠르게 진행되었고, 그 과정에서 나를 힘들게 만든 것들이 튀어나오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것들을 마주하고 혹은, 피하면서 캐서린이라는 특별한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지금까지 내 선택이 옳은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선택의 막바지에서 가시가 돋친 보물상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굉장한 운명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나는 가시가 돋친 보물상자를 쓰다듬고 있다. 가시에 찔려 피가 나는지도 모른 채, 쓰다듬고 있다. 앞으로 이 상처가 더욱 깊어지고, 곪아 터져 버릴 수도 있다. 그래도 나는 이 보물상자를 끊임없이 쓰다듬어 보려고 한다. 그러고 싶다는 생각이 내 혈액 속에 듬뿍 녹아 있다. 자꾸 쓰다듬다 보면, 이 두꺼운 가시도 언젠가 무뎌질 것이다. 무뎌질 때쯤엔 이미 내 손은 넝마가 되어 상자를 열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가시를 부드럽게 만들어 놓는다면 내가 아닌 누군가가 와서 더 쉽게 아름다운 보물을 상자로부터 꺼내 줄 수 있지 않을까. 상자만 화려하고, 안은 텅 비어 있을 게 분명하지만, 가시만 없다면 언제든지 행복과 사랑으로 상자를 가득 채울 수 있지 않을까.

   내일 캐서린이 눈을 뜨면 이 마음을 그녀에게 전해야겠다. 그리고 야오린 씨를 만나서 이 열차에서 치료를 더 받고 싶다고 말해야겠다. 당장 연장이 안 된다면, 한 번 내렸다가 회사와 병원에 부탁해서 다시 올라타도 좋다. 방법은 많다. 회사에서 잘려도 좋다. 일자리야 언제든 다시 구할 수 있다.

   나카무라 씨에게 배운 것들을 이용해 그녀가 몇 달간 찾지 못한 출발점을 같이 찾아봐 주고, 그녀를 끌어 주고 싶다. 그렇게···캐서린에게 다가가 좋은 인연이 되어 주고 싶다.

   나는 계속해서 뜨거운 무언가를 곱씹으며 백야(白夜, White night) 속을 유영하다 잠이 들었다.


   햇볕의 따사로움에 부드럽게 눈을 떴다. 그리고 캐서린은 탁자의 쪽지 하나를 남긴 채 사라지고 없었다.


   「당신은 아직 늦지 않았어. 이곳을 벗어나서 다신 오지 마. 이곳은 빙글빙글 돌아갈 뿐인 곳이야. 그리고 저 인형은 당신이 가져가. 나는 한 마리 더 가지고 있으니깐. 안녕.」


   나는 야오린 씨를 찾아가 캐서린이라는 환자가 보이지 않는다고 물어보았다. 그녀에 대한 껄끄러움은 캐서린을 찾는 데 문제 되지 않았다.

   “오랜만이네요. 네? ‘캐서린’이라는 환자요? 음···. 다른 환자에 대한 것은 가르쳐 줄 수 없어요.”

   그렇겠지.

   “···자세히 말씀드릴 수 없지만, 전산 기록을 보면, 그 ‘캐서린’이라는 분은 정상적으로 퇴원 수속을 밟고 열차에서 내렸어요. 그러니 걱정하지 말아요.”

   야오린 씨는 입 다물고 가만히 서 있는 내 표정이 좋지 않았는지, 상냥하게 나를 대해 주었다.

   나는 야오린 씨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고 내 객실로 돌아왔다. 카림은 없었다.

   침대에 누워 캐서린을 생각했다. 아마 그녀는 괜찮을 것이다. 그녀는 항상 자신의 처지가 개선되기를 바라며 끊임없이 발버둥 쳐 왔으니깐 말이다. 그녀의 쪽지를 읽었을 때는 꽤 불안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방금, 요 며칠간 감정의 변화가 가장 심했던 사람 중 하나가 ‘나’임을 알아차렸다. 이 주기가 점점 짧아지게 되면 캐서린과 같은 조울증 환자가 되는 것이리라.

   캐서린의 기분을 점점 알게 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 조울증 부분이 아니라, 마음의 공허함을 말하는 것이다. 그녀가 그렇게나 메우고 싶어 하던 그 구멍이, 내게 생겨 버렸다. 이 구멍은 ‘전염병’일지도 모른다.

   ‘내 마음속, 그녀가 사라진 부분은 어떻게 메워야 좋을까? 어젯밤 샘솟던 의지는 다시 어디로 가 버린 것일까?’

   하지만 어젯밤의 내 의지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나는 캐서린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어야 한다. 내가 그녀를 기억할수록, 그녀를 이 열차에 잡아 두는 것이니깐. 캐서린을 위한다면 잊어버려야 한다. 당장은 어렵겠지만 노력할 것이다. 그녀가 자유로워져 새로운 고리에 정착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잘 가요. 캐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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