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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형훈 Aug 11. 2023

Departure

   -투둑 거리는 소리에 쪽잠에서 깨어났다. 그것은 열차의 천장에서 나는 소리였다. 웬일인지 주변은 흐렸고 비가 내리고 있었다. 3분도 되지 않는 짧은 비였다. 열차에 타서는 처음 겪어 보는 일이었다. 하긴, 지금까지 비구름을 요리조리 피하고 다닌 게 더 신기한 일이지 않을까.

   광합성 열차는 아주 빠르게 비구름의 영역에서 벗어났고, 다시 본래의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열차에 묻은 빗방울들은 열차의 빠른 속도에 떨어져 나갔고, 그나마 남은 물기도 직각으로 내리쬐는 햇볕에 금세 말라 버렸다.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며 오늘 식사를 어떻게 해결할까 고민하는데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살며시 문이 열렸고, 반짝거리는 포니테일을 찰랑거리며 야오린 씨가 들어왔다.

   무슨 일이지?

   “기분은 좀 어떠세요?”

   야오린 씨는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물었고, 나는 적당히 대답했다.

   “그렇군요···, 일찍이 저를 찾아오셨을 때 표정이 너무 좋지 않아서 걱정했어요. 그녀와 관련된 일은 해결이 되었나요?”

   ‘그녀’란 캐서린을 말하는 것이리라. 캐서린은 자기 발로, 정상적인 수속을 마치고 이곳을 떠났다. 그렇다면 걱정 없다.

   “그렇다면 저도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겠네요. 다행이에요.”

   나는 야오린 씨에게 무슨 일로 여기에 왔는지 물어봤다.

   “내일 하차하시잖아요. 첫날과 같이 건강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왔어요. 이 검사 결과도 병원으로 보내져서 앞으로의 진료에 참고할 수 있도록 하는 거죠.”

   나는 내일 이곳을 떠나는 것이었다. 그 시간이 다가오는 것은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지만, 시간이 이렇게나 빠르게 흘러가 있었을 줄이야.

   “분명, 요 며칠간 ‘도파민’ 분비가 잘 되어서 그런 거예요.”

   라이언 씨로부터 ‘그 사건’에 대해 듣지 않았더라면, 나는 야오린 씨에게 ‘이틀간, 캐서린과 만나면서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어요!’라며,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을 복습하고 온 소년과 같이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도파민’이라는 단어가 몹시 슬플 것임을 알기에 그녀의 눈을 피해 입을 다물고 있었다.

   내가 침묵하는 동안 야오린 씨는 같이 들고 온 가방에서 익숙한 치료 키트를 꺼내어 내 팔에 가져갔다. 키트의 버튼을 누르자 -띠롱 하는 소리와 함께 기계가 작동하여 내 피를 쪽쪽 빨아들였다.

   야오린 씨는 키트를 잠시 들여다보더니 만족스럽다는 듯 그것을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그녀는 자세를 고쳐 앉아 나를 바라보았다. 까만 눈동자가 정확히 나를 향하고 있다.

   “인사를 미리 해 두려고요. 아마, 내일 당신이 내릴 때쯤에는 제가 자고 한창 자는 시간이거든요.”

   이렇게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도 오늘로 마지막이구나.

   “그리고···, 어제 라이언 씨를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어요.”

   한동안 잊고 있었던 기분이 올라온다. 미안함, 분노, 짜증, 동정, 슬픔 등이 뒤섞인 기분 나쁜 것이다.

   야오린 씨는 이런 내 기분을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방긋 웃어 주었다.

   “괜찮아요. 당신이 그렇게 괴로워할 일이 아니에요. 당신은 어쩌다 상황이 그렇게 되어 들었을 뿐이에요. 오히려, 제가 미안해요.”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간호사님이 미안할 것은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아니에요. 제 애매한 태도 때문에 당신도, 라이언 씨도 마음 쓰게 만들어 버렸어요. 그날···, 당신이 내게 상담하러 온 그날, 제 입으로 이야기를 꺼냈다면 아무 문제 없었을 거예요. 그때, 제 이야기가 당신에게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에 말을 시작했지만, 이걸 어디까지 이야기하는 게 좋을지 판단이 서질 않았어요. 라이언 씨는 분명, 그 판단이 섰기에 제 이야기를 꺼내신 거겠지만 결과적으로, 부작용만 남아 버렸네요. -후후”

   야오린 씨는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일이 이렇게 된 것은 아쉽지만, 제 동생의 이야기로 불편해진 당신이, 그 불편함 속에서 무엇이든 간에 고뇌하고, 되짚어 보고, 새로운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다면 저는 그걸로 감사하답니다. 제가 어떻게든 도움이 됐다면 말이죠.”

   나는 실제로 요 며칠간 무엇이 옳은 것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깊이 고민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라이언 씨를 피해 여러 사람을 만났다고 말했다.

   “-후후 다행이네요. 도움이 되어서 기뻐요. 언젠가 말씀드렸죠? 이곳은 모든 일들이 아주 빠르게 진행되는 곳이란 걸. 당신은 그중에서 불편함을 빨리 만난 것뿐이에요. 누구나 언젠가는 마주하는 ‘그것들’이요. 이제는 내일 이곳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다가오는 변화를 진지하게 마주하고, 그걸 천천히 음미하시는 일만 남은 거예요.”

   다가오는 변화. 과연, 내게도 변화의 바람이 불 것인가. 희색에 가까운 삶을 살았던 내게, 새로운 색이 덧칠해진 세상이 찾아올 것인가. 내일이 되면 알 수 있는 것인가.

   야오린 씨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곧 그녀는 이 방을 떠나는 것이다.

   “이제 작별이에요. 다시 만날 수도 있겠지만, 그러지 않는 게 좋겠죠? -후후. 하지만 이곳은 병원이에요. 아프면 언제든 올 수 있는 곳이죠. 어떤 환자는 별다른 효과를 느끼지 못하고 떠나지만, 또 어떤 환자는 삶의 방향이 좋은 쪽으로 바뀌어 떠난답니다. 그러니 항상 본인의 마음을 잘 들여다보고, 아프면 주저하지 말고 병원으로 오세요.”

   나는 고마움을 가득 담아 그녀와 악수를 했다. 따뜻하고 보드라운 감촉은 앞으로의 나를 위로해 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오늘은 꼭 ‘그’를 만나 주세요. 새로운 모험을 앞두고, 본래 머무르던 자리는 깨끗이 정리하고 가는 게 좋은 법이에요. 저는 그러지 못했지만···, 그래서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어요.”

   나는 오늘 꼭 ‘그’를 만나겠다고 약속했다.

   “그럼, 안녕히.”

   야오린 씨는 왼손을 내게 흔들어 보이며, 그리고 샴푸 향이 가득한 포니테일을 찰랑거리며 내 방을 떠났다.


   야오린 씨와 대화하면서 마음 한편에 있던 불편함이 싹 사라졌다. 이에 개운함을 온몸으로 느끼는 와중에 혹시, 샤워를 하면 더욱더 개운해지지 않을까 하여 따뜻한 물로 샤워를 했다.

   나는 몸이 가벼워졌다는 것을 느끼고 곧바로 광합성 식당 옆, 푸드코트를 향해 나섰다.

   (내 기준) 저녁 7시가 조금 넘은 시각, 광합성 식당에는 사람이 붐비는데, 푸드코트 쪽은 한산했다. 오늘 광합성 식당 메뉴가 꽤 괜찮나 보다.

   그가 있는 스테이크 하우스는 금발의 까까머리 사내가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내가 자리에 앉자 고개를 한 번 끄덕이며 나를 맞이해 주었다.

   “무엇으로 하겠는가?”

   이곳에 처음 왔을 때와 같이, 찹스테이크를 주문했다. 나카무라 씨와 함께했던 그 메뉴다.

   라이언 씨는 내 주문을 듣고, 곧바로 팬을 달구기 시작했다.

   “···만나지 못하고 헤어지는 게 아닌가 싶었어.”

   라이언 씨는 네모나게 조각난 고기를 팬에 올리기 시작하며 내게 말을 걸었다.

   “다시 보니 반갑구먼. 야오린과 만났나?”

   나는 야오린 씨가 내 퇴원을 알리기 위해 내 방을 찾아왔고, 그녀와 몇 가지 마음의 정리를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잘됐구먼. 사실, 자네에게 괜한 이야기를 한 게 아닌지 후회하고 있었어. 하지만 야오린이 그렇게 말해 주었다면 내 마음도 편해지는구먼. 그녀는 정말 괜찮은 사람이야.”

   라이언 씨는 형형색색의 파프리카를 크게 깍둑깍둑 썰며 말했다. 그의 표정을 보니, 진심으로 안도했다는 느낌을 풍긴다.

   라이언 씨는 나쁘지 않다. 그의 의도는 아주 선했다. 오롯이 나를 생각해 주어 말해준 것일 뿐이다. 내가 야오린 씨에게 듣고 온 이야기가 결코, 가벼운 이야기가 아님을 내게 상기시켜 준 것일 뿐이다.

   하지만 나는 전부터 느끼던 의문을 해소하고자 그에게 물었다. 나는 고작 며칠간 이곳에 머물렀을 뿐인 환자다. 당신은 지금까지 많은 사람을 만나왔겠지만, 유독 이렇게 나에게 관심을 두는 이유가 무엇인가.

   “흠···, 그래.”

   라이언 씨는 알겠다는 듯 말을 뱉고, 한동안 찹스테이크를 조리하는 데 집중했다. 조금 지나니, 시큼한 케첩 소스 향이 느껴졌고, 요리가 완성되었다.

   그는 모든 대충하는 법이 없어서, 눈앞에 있는 나를 위해 찹스테이크를 나무 트레이에 조심스레 담고, 식기를 가지런히 배열해서 나에게 건네주었다.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네모난 고기 조각을 입에 하나 넣으니 라이언 씨는 양손을 깍지 끼고 주방에 기대어 말하기 시작했다.

   “아까, 내가 왜 자네에게 관심을 보이는지 물어봤지? 자네를 보고 있으면 지금껏 나를 스쳐 지나간 안타까운 사람들이 떠올라서 그래. ‘시기’를 놓쳐버린 사람들 말이야.”

   ‘시기’를 놓쳐 버린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내가 이곳에서 수십 년간 일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어. 이곳은 애매한 사람들이 올 곳이 아니라는 것이야,”

   그는 투명한 유리잔에 시원한 물을 따라 내게 건네주며 말을 계속했다.

   “이곳은 정신질환의 증상이 심각한 사람이 와야 하는 곳이야. 그 심각했던 사람도 적절한 치료를 받아 ‘애매한’ 인간이 되면, 이곳을 나가는 게 좋지. 의사들은 그걸 몰라. 어찌 보면 당연해. 그들이 이곳에 있어 봤어야 알지. 난 이곳에서 정말 많은 사람을 관찰했어. 어정쩡한 사람은 몇 가지를 잃고서 이곳을 떠나지. 애초에 오지 않았으면 잃지 않았을 것들을 말이야.”

   그럼, 지금까지 내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주고, 내게 관심을 두었던 이유가 내가 그 ‘애매한’ 사람이어서 그런 것인가.

   “그래. 그리고 나는 자네에게 진실을 보여 주고 싶었을 뿐이라네. 자네가 치료를 받으러 온 이곳의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말이야. 이곳에 사람들, 특히, 직원들은 각자 사정이 있어서 마음이 텅 비어 버린 사람들이 대부분이야. 자네가 이런 사람들로부터 무언가를 얻겠다고? 그건 정말 어려운 일이지. 물론, 무언가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몰라. 이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이들의 과거를 짚어 보면서 무언가 영감이 떠오를지도 몰라. 하지만 단언컨대, 자네가 어두운 예술을 하는 사람이 아닌 이상, 그것들이 그렇게 쓸모 있지는 않을 걸세.

   자네는 나카무라와 비슷해. 나카무라도 애매한 부류로 이 열차에 올라타 버렸어. 그래서 나는 그가 빨리 이곳에서 내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 와타나베는 오히려 잘 왔다고 생각하는 부류야. 물고기처럼, 사람도 눈을 보면 그 신선도를 확인할 수 있는데, 와타나베의 상태는 매우 좋지 못했지.

   하지만 자네는 괜찮아. 의사의 판단 실수로 들어온 게 아닌가 싶을 정도야. 조금 선명하지 못하지만, 알맞은 물에 풀어 놓으면 금방 싱싱해질 녀석이야. 지금은 잠시 누군가의 실수로 연못에 빠진 고등어가 되어 버렸지만, 내일 바다로 돌아가지 않는가. 자네에게 더 좋은 바다는 일단 바다에서 찾으면 되는 거야. 이곳은 연못이야. 연못에서는 바다를 찾을 수 없지. 나는 그저, 이런 것들을 자네에게 알려 주고 싶었을 뿐일세.”

   라이언 씨의 진심 어린 이야기가 내 가슴을 뜨겁게 만들었다. 그의 선심이 정말 감사했다. 그는 수십 년간 이 ‘라이언 스테이크 하우스’에 서서, 길 잃은 ‘애매한’ 사람들을 위한 안내자 역할을 도맡아 하고 있었던 것이리라.

   오늘 나는 모든 것을 정리한다. 내일부터 시작될 새로운 모험을 위해. 이제 정리의 막바지에 올라탔다.

   내가 이 가게에 처음 왔을 때, 라이언 씨는 내게 ‘나는 당신과 같은 눈을 아주 잘 알고 있어.’ 말한 적이 있다. ‘그 눈’이란, 아까 말했던 ‘애매한’ 환자들의 그것이 아닌 분명, 자신의 눈을 말하는 것이리라. 그의 가슴도 이곳의 사람들처럼 텅 비어 있으리라.

   그렇다면 라이언 씨, 당신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요?


   내 이야기는 별거 없어. 아주 오래전에 일어난 일이고, 아주 짧은 시간에 일어난 일이지. 뭐, 이곳의 사람들이 다 그랬듯이.


   [나는 강과 바다를 끼고 있는 어느 추운 나라의 수도에서 자랐어.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의 요리를 어깨너머 배웠고, 그녀에게 내 깜짝 요리를 선사해 주는 게 즐거워서 요리를 업(業)으로 살아가기를 꿈꾸고 있었지. 시간이 흘러 내가 중학교로 진학할 시기가 찾아왔어. 그리고 나는 수도의 한 요리학교에 다니기 시작했고, 고등부를 마쳐 졸업했지.

   문제는 여기서부터야. 나는 요리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유명 호텔의 주방 직원으로 들어갔는데, 그 호텔 주방의 구석에는 ‘요리수련실’이라 적혀 있는 방이 하나 있었지. 그곳에는 최신의 주방 시설이 갖춰진 곳이었지만, 이상한 냄새가 가득한 기분 나쁜 곳이었어.

   내가 호텔에 출근한 지 일주일이 지났을 무렵이야. 사람 좋아 보이는 총괄 셰프가 나를 그 방에 데려다 놓고 말을 하더군.

   “라이언, 이것은 우리 호텔의 전통이야. 너를 훌륭한 셰프로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지. 우리가 모두 이걸 거쳐 왔고 말이야. 룰은 아주 간단해! 너는 내가 ‘맛있다!’라는 말이 나오는 요리를 만들 때까지 이곳에서 나올 수 없어. 응? 아, 화장실도 안 돼. 똥오줌은 저기 구석에 있는 양동이에 해결하라고. 뭣하면 그것들을 요리에 재료로 써도 좋아. 그저 맛있으면 되는 거야. 쉽지?”

   그렇게 내 주방 생활이 시작됐지. 과정은 말할 것도 없어. 토 나오는 생활에 연속이었어. 시간이 진짜 흐르고 있는지 의심이 되었어. 매일 무언가를 만들어 철문 넘어 셰프에게 가져다 바쳤지만, 번번이 퇴짜를 맞았어. 내 음식의 맛을 보긴 하는지조차 의심이 들었어.

   이상하게 그곳 생활의 중간부터는 기억이 나질 않아. 내 마지막 기억은 갑자기 그 두꺼운 철문이 열리더니 어머니가 들어온 거였어. 어머니? 왜 어머니가 들어올까?

   그다음 정신을 차렸을 땐 나는 이미 어느 병원에 입원해 있었지. 나중에 자초지종을 들어 보니, 부모님은 내가 호텔에 입사하고 30일 동안 연락이 되지 않자 걱정이 되어 내가 근무하는 주방으로 찾아왔고, 그곳에서 한 손에 식칼을 쥔 채 게거품을 물고 쓰러져 있는 나를 발견한 것이었어. 부모님이 내 모습을 보고 경찰에 신고했지만, 호텔 측에서는, 고객님에게 최고의 요리를 보여 드리기 위한 연수 과정일 뿐이라고 변명했지. 결국, 그들은 가벼운 징계를 받고 금방 복직했어. 나는 그러지 못했지.

   그 전통이라는 것도 순 거짓말이었어. 그저 신입으로 들어온 사람을 찍어 누르기 위한 장치였을 뿐이야. 그저 복종하는 인간을 만들기 위해···. 뭐,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세상 모든 곳이 다 그렇지 않은가?

   나는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비료로 갈려 버리는 수평아리처럼 그들에게 갈려 버렸어. 그게 벌써, 30년 전의 일이야.

   이후, 정신병동에서 몇 년을 지내다가 사회 재활을 목적으로 광합성 열차에서 일할 수 있게 되었지. 정신질환을 앓던 사람이 갈 수 있는 곳은 상당히 한정되어 있거든.]


   라이언 씨는 입을 다물었고, 우리는 대화의 방향을 잃어버린 듯 멍하니 있었다.

   나는 라이언 씨가 내게 해 주고 싶은 메시지가 어떤 것인지 비로소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와타나베 씨, 야오린 씨, 캐서린, 그리고 라이언 씨까지 모두 사람으로부터 상처를 받고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사람들이었다.

   모두 자의적으로 우울한 것이 아니었다. 모두 본인이 아닌 사람에게 영향을 받았다. 인간은 결국, 누군가와 엮이게 되어 상처받는 것이다.

   그리고 라이언 씨는 바로 이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타인으로부터 상처를 받고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애매한’ 내게 줄 수 있는 것은 상처밖에 없다는 것을.

   이곳은 누군가에 있어서는 선순환의 고리를 만들어 줄 훌륭한 의료시설일 수 있다. 하지만 내게는 아니었다. 적어도, 내가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나는 그 ‘요리 수련실’을 평생 잊지 못해. 영원히 잊히지 않겠지. 하지만 내가 여기서 일한 수십 년은 금방 잊어버릴 것 같다네. 그런 기분이 들어. 나는 30년 동안 그 ‘요리 수련실’로부터 단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했고, 그저 같은 곳을 빙글빙글 돌고 있어. 그 기억에 사로잡혀 어디로도 가지 못했지. 지금은 너무 늦어 버렸어. 힘없이 늙어 버렸어. 이 빛이 너무 싫어서 떠나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이젠 빛이 없는 곳은 너무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어. 암흑은 자꾸 그 지옥을 떠오르게 만든다네. ···어쩌면, 이렇게 같은 자리를 돌고 있는 것이 내 진정한 모습이 아닌가 싶어.”

   그는 감정이 북받치는지 크게 심호흡을 했다. 그의 파란 눈은 붉은빛을 띠며 지난날의 공포와 후회를 내게 보여 주고 있었다.

   “세상은 우울증으로 고통을 받고 있고, 광합성 열차는 그 고통의 집합체라네. 우리는 그 집합체에 수십 년을 묶여 있고, 이곳을 벗어나면 더는 기댈 곳이 없어. 우리는 이곳에 오는 사람들의 고통을 느껴야 살아갈 가치를 가질 수 있게 되어 버렸어···.

   그러니 자네는 우리와 같은 사람들과 멀어지는 게 좋아. 자네의 바다로 돌아가게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라이언 씨와 악수했다. 서로가 있었음을 남기듯이 힘을 가득 실어 세차게 악수했다.

   자리를 뒤로하며 음식값을 지불하려 하자 그는 내 퇴원을 기념한다고 돈은 됐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야오린 씨의 말을 떠올리며 내가 있던 자리를 깨끗이 정리하고 싶어 돈을 지불했다. 아마 그도 내 마음을 알아차린 듯했다.

   라이언 씨는 내 돈을 받으며 이가 보이게 환하게 웃어 보였다. 그리고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내게 말했다.

   “행복하게.”


   H6-3호실을 문을 열자 짐을 바리바리 싸 들고나오는 카림과 마주쳤다. 우리는 서로 가볍게 눈인사를 했다. 그리고 카림은 나를 등지고 열차의 밖을 향해 걸어갔다.

   나는 허전해진 방 안을 한 바퀴 걷고 침대에 누웠다.

   카림이 내게 보여 준 행동들은 그다지 가치 있는 것들은 아니었다. 이러한 카림도 때가 되니 열차에서 내린다. 그리고 본래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나는 카림이 머지않아 다시 광합성 열차에 오르지 않을까 하는 확신이 들었다. 그 확신은 나에게 또한 공포감을 조성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목적지가 없는 이 열차는 빙글빙글 돈다. 내릴 시기를 놓치면, 다시 시간의 흐름에 떠밀려 다녀야 한다. 나는 우연히 좋은 사람들을 만나 그것을 빨리 깨닫게 된 행운의 사나이고, 내일이 그 시기다. 캐서린을 생각하며 이 열차에 다시 오르려고 했던 나에게, 사람들은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캐서린은 열차를 떠나 주었다.

   나는 안대를 쓰고 눈을 감는다. 두려움인지 희망인지 모를 기분이 몸을 감싼다. 캐서린이 나와 함께한 마지막 밤. 그녀는 이와 같은 것을 느끼며 잠들었을까 하는 궁금함을 탐구하며 광합성 열차에서 마지막 밤을 보냈다.

   그리고 눈을 떴다. 잠을 푹 자는 바람에 조식을 맛볼 여유는 없었다. 언젠가 야오린 씨가 준 캔버스 가방을 열어, 첫날 내가 입고 온 옷을 꺼내 입고, 흰옷들을 담았다.

   이곳에서 받은 모든 것들을 침대 위에 살포시 올려놓은 채 방을 나섰다. 이 텅 빈 방도 곧 다른 환자가 들어온다는 사실이 그다지 실감 나지 않는다.

   나는 들어왔을 때 입구였던 출구를 눈앞에 두고 안내원 마리와 이야기해 퇴원 수속을 마쳤다. 그리고 내가 속해 있는 나라의 정류장에 곧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온다. 나는 장미 향이 가득한 고등어 인형을 옆구리에 끼고 문이 열리기를 기다린다.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나는 광합성 열차에서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사람을 만났다. 제각각 다른 사연을 가진 사람들을 만났고, 나는 내가 이전보다는 특별해졌다고 느낀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자꾸 느껴지는 이 마음의 갈증은 무엇일까.

   이 열차는 똑같은 선로를 영원에 가깝도록 빙글빙글 도는 한, 나와 같은 사람들이 영원에 가깝도록 이 열차를 탈 것이고, 내가 느낀 특별함은 점점 무색해져 갈 것이다.

   모처럼 얻은 특별함을 조금이라도 더 간직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 잘 모르겠다. 아는 사람이 있다면 내게 알려 주길 바란다.

   내 주위에 사람이 조금 몰렸다. 나와 마찬가지로 모두 그들의 이야기로 돌아가기 위해 이곳에 서 있다.

   -윙 하는 소리가 들리며 열차가 천천히 정차했다. 이윽고 투명한 유리문이 열렸다. 내 맞은편에는 하나같이 어두운 표정을 하고 하늘과 땅을 바라보는 무리가 서 있었다. 언뜻 대조되어 보이는 광경이나, 나와 그들의 차이는 느낄 수 없었다. 오히려, 나는 그들로부터 강한 동질감과 가벼운 동정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 그들의 앞날에 행복이 가득하기를 진심으로 기도했다.

   -뚜벅뚜벅

   밖을 향하며 그들과 교차한다. 간만의 바깥 공기를 마셨다. 그리고 하나의 생각이 스쳤다.

   돌아가는 길에 딸기 잼 하나를 사고 가자.

   나는 광합성 열차의 노선을 이탈한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이야기를 뒤로하고, 새로운 이야기로 환승하기 위해 빛이 가득한 열차에서 하차했다.

이전 10화 잘 자요, 캐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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