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이에 그의 모든 형제와 자매와 이전에 알던 이들이 와서 그의 집에서 그와 함께 음식을 먹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내리신 모든 재앙에 관하여 그를 위하여 슬퍼하며 위로하고 각각 케쉬타 하나씩과 금고리 하나씩을 주었더라
(욥기 42장 1-2절)
욥기 마지막 장이다. 고난을 받은 욥을 위로하기 위해 왔던 욥의 친구 세명과 긴 논쟁이 끝났다. 그동안 욥의 친구들은 옳은 말을 욥에게 쏟아부었다. 그러나 너무나 큰 고난 속에 있던 욥에게 그런 친구의 말은 먹히지 않았다. 슬픔을 당한 사람에게는 옳은 말 보다 한마디라도 그의 슬픔에 공감해 주는 말을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긴 논쟁을 보고 계시던 하나님이 드디어 입을 열어 말씀하신다. 그리고 욥에게 질문을 하신다. "내가 있는데 그렇게 낙심할 수가 있느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욥은 마치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낙심하고 불평했던 것을 회개한다.
오늘 말씀에서 욥이 그렇게 논쟁했던 세 친구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를 하는 모습을 본다. 하나님은 그때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욥에게 축복을 해 주신다. 이 축복의 자리에 그의 이웃과 친척들이 와서 욥의 재앙에 대해서 같이 슬퍼하며 위로하고 각각 케쉬타 하나씩과 금고리 하나씩을 욥에게 주었다.
이 욥에게 준 케쉬타 하나와 금고리가 배고픈 오천명(남자만 계산. 그러니 아이들과 여자들을 합치면 훨씬 많은 숫자임)의 군중을 먹인 소년의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 같은 것이었을까? 오늘 목사님 말씀은 축복의 자리에 하나님과 동역자로 쓰임 받은 축복의 통로가 된 사람에 대해서다.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율법이라면 십계명이다. 십계명은 1부터 4 계명 까지는 하나님에 대한 계명이고, 5부터 10 계명 까지는 사람에 대한 것이다. 예수님은 이 계명들을 지키는 열쇠를 주셨는데 그것이 사랑이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1-4 계명,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5-10 계명으로 말씀하셨다.
그러면 내 이웃은 누구인가?
예수님은 "누가 강도 만난 사람의 이웃이겠느냐?"라고 질문하시면서 강도 만난 사람을 도운 사마리아사람을 그 이웃이라고, 선한 사마리아 사람 이야기를 하셨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 예수님의 축복의 통로로 쓰임 받은 사람이다.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축복의 통로가 된 소년처럼.
지난주 브런치에 썼던 당카오 마을 아이들을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일에 에스겔 선교회의 수많은 후원자들은 축복의 통로로 쓰임 받았다. 몇 달 전 브런치에 썼던 우간다 소로티 난민 마을에 학교를 세워 아이들에게 희망을 준 한 장로님 가정도 축복의 통로로 쓰임 받은 것이라고 생각된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하여 사람을 축복하신다. 고난 받는 사람들에게 축복의 통로로 쓰임 받는 사람, 그가 가장 복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기만 잘 사는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까지 잘 살게 만드는 사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