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살아봐야겠다

by 순례자

살아봐야겠다


천재는 요절한다, 하고

반백 년 살면 하늘의 뜻을 안다, 하고

귓가에 서리가 내릴 즈음엔 일가를

이룬 사람 얘기가 더러 들려오는데

열심히 살았건만,

내가 아는 것은 한 줌 먼지만도 못하다


빛과 웃음과 꽃을 사랑하지만

그늘과 눈물과 가난을 사랑하는 일에는

자주 길을 잃었다,

더 나답게 살기를 바라온 삶이,

기죽지 않을 것만 다짐하며

살아온 인생이

한없이 부끄러운 밤이다


강물은 흘러가고

억새는 흔들리고

꽃은 피었다 지고,

저렇게 아름다운 태양도

온몸 다 불사르고

산마루에 기막힌 노을빛 흩어놓고

아무 미련 없이 지는 것을 보자면,

나 같은 건 아무것도 아니지만,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살아간다고 하는데

내 목숨의 끝은 어찌할까,

한 사람에게라도 위안이 되기 위하여

싹 틔우고 꽃 피우며 살아봐야겠다,


keyword
금, 토 연재
이전 22화가을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