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영강 Sep 21. 2024

등대의 주인

생쥐가 웃고 있었다. 앞니를 보란 듯이 내밀어 놓은 채로. 공덕은 죽을 듯이 숨을 헐떡거리며 그의 얼굴을 노려보았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아비와 아들은 어디에 있는 것인지, 목젖까지 차오른 말을 공덕은 내뱉지 않았다. 생쥐가 너무도 환하게 웃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것도 묻지 않으시네요. 정말 한 끗 차인 순간이었는데.”


생쥐가 웃으며 공덕을 향해 말했다.


“…네 상판대기를 보니 최악은 면한 것 같아서 말이지.”


공덕이 숨을 깊게 들이쉬고 내쉬며 천천히 말했다. 그리고 공덕은 그제야 한쪽 구석에서 죽일 듯한 눈초리로 자신을 바라보는 연희를 발견했다. 묶이고 막힌 손, 발, 그리고 입. 보행은커녕 말조차 못 하는 불구의 상태로 던져져 있는 연희. 그녀는 뒤돌아서 확인을 해야 했던 오르페우스의 심정으로 테이핑이 된 입술을 달싹거리고 있었다. 공덕이 그녀의 앞으로 걸음을 옮기며 생쥐에게 물었다.


“두 사람은?”


“아슬아슬했습니다.”


생쥐가 어깨를 좁혀 몸을 움츠리며 말했다.


“일을 끝내고서 몸을 돌리는데 누군가 올라오는 발소리가 들렸습니다. 처음에는 당연히 실장님이 오신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기다렸죠. 그런데 가만히 들어 보니 소리가 하나가 아니더군요. 느낌이 이상해 가정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아, 실장님께서 아이의 아버지를 데리고 왔구나.”


“귀가 밝았고.”


공덕이 연희의 앞에 주저앉으며 말했다.


“맞습니다. 듣다 보니 계단을 오르는 발자국 한 개의 소리가 너무도 작더군요. 성인의 발소리가 아니었죠. 실장님이 부리나케 달려오셨듯이 저 역시 그랬습니다. 정말 미친놈처럼요.”


“머리가 좋았군.”


공덕이 연희의 입에 붙은 은색 테이프를 손톱으로 긁어내며 말을 이었다.


“아이의 아버지가 자넬 알아보던가?”


그를 들은 생쥐가 공덕의 가까이에서 말을 하고픈 듯 그가 앉은 곳으로 걸음을 옮겨 가며 말을 내뱉었다.


“묘했습니다. 당황한 기색 하나 보이지 않는 모습에 제가 다 당황했을 정도였으니까요. 뭘 했던 사람인지 혹 알고 계십니까?”


연희의 입에 겹겹이 발린 테이프 중 한 겹이 떨어져 나갔다. 연희가 고통스러운 듯 고개를 좌우로 세차게 뒤흔들었다. 공덕은 다시 다음 겹에 손톱을 밀어 넣으며 생쥐와의 대화를 이어나갔다.


“별 볼 일 없는 사람이야. 외국에 살 때도 하층민의 인생이었고. 그러니까 그런 기색 하나 내비치지 않았다는 것은, 말을 하지 못할 만큼 놀랐다는, 그 같은 해석 정도로 받아들이면 될 거야.”


“그렇습니까. 아! 그나저나 아이가 참 잘 자랐더군요. 혼혈이라 그런지 얼굴도 곱상한 게, 꼭 예쁜 인형 하나를 보는 듯했습니다.”


생쥐의 그 말에 공덕이 하던 짓을 그만두고 고개를 돌렸다. 놀람, 약간의 과장을 보태면 감격을 느낀 인간의 눈빛. 생쥐는 창을 보고 말하느라 지금의 그를 알아채지 못했다.


“참 다행인 일 아니겠습니까. 물론 아이에게 이 상황을 들키지 않아 그렇다는 것도 있지만, 솔직히 약간 뭉클하더라고요. 그날의 생경함도 떠오르고.”


공덕은 생쥐의 말이 들어오지 않았다. 공덕은 아이의 생김새를 상상하는 중이었다. 체형은 어떻고, 얼굴형은 어떻고, 성격의 닮음은 남편과 아내, 둘 중 이쪽이네 저쪽이네 하는 것들. 쓸모없는 행위였지만, 공덕은 즐거웠다. 자신이 가지지 못한 행복의 무게가 대략 이 정도겠구나, 하는 가늠, 그 자체만으로도 기쁨에 다다랐기에.


“통 묻지를 않으시니 먼저 말씀드리는 건데, 아이의 아버지가 다시 이곳으로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조용한 공덕을 보며 이제는 나름의 눈치를 챈 생쥐가 말을 이었다. 테이프의 다음 겹이 떨어져 나갔다. 두께로 보아, 남은 것이 겹의 마지막인 듯했다.


“그 두 사람을 어떻게 돌려보냈는지 말해.”


멱살을 잡는 듯한 강한 어조였지만, 생쥐는 조금의 당황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차분했다. 책잡힐 것도 없다는 얼굴이었다. 그는 느리게 대답했다.


“급히 계단을 내려오는 저를 본 아이의 아버지가 상황을 종결지었습니다. 제가 한 것이라곤 그저 그것에 호응하는 일뿐이었죠.”


“아이의 아버지가 뭐라고 하던데?”


“저희 셋은 대화를 나누지 않았습니다. 아이를 막는 아버지, 그런 그와 눈이 마주친 저, 그리고 아이 아버지의 손짓에 고개를 끄덕이는 저. 이게 전부였죠. 손짓 역시 짤막했습니다. 동그라미 한 번, 자신을 가리키는 손가락 한 번, 그리고 그 손가락으로 아래를 가리키더군요. 그런 뒤, 그는 아이의 손을 잡고 되돌아갔습니다.”


말을 들은 공덕은 생쥐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묘하죠?”


생쥐가 공덕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공덕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일 뻔했지만, 이내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기며 대답했다.


“아니. 원래 그런 사람이었어.”


마지막 겹이 떨어졌고, 이어지는 상황은 전혀 정적이지 못했다. 연희는 할 수 있는 온갖 욕을 눈앞에 있는 둘에게로 지껄였으며, 성대가 다칠 정도의 괴성을 온몸을 뒤틀며 내질렀다. 공덕은 생쥐에게 손짓했다. 생쥐는 등대를 빠져나갔다. 그가 나간 뒤에도 연희는 멈추지 않았다. 공덕은 창밖 풍경을 보며 기다렸다.


“회장이 왜? 내가 뭘 잘못했는데? 어?! 말해 봐, 이 개새끼야.”


입술에 붙어 있던 테이프가 떨어진 후에 그녀 입에서 나온 처음으로 사람다운 말이었다. 그제야 공덕은 연희 쪽으로 몸을 돌리며 말문을 열었다.


“이미 아시잖습니까. 발뺌하는 건 집사님답지 않은 처사십니다.”


“뭐?”


“거기서 더 몸서리칠 만한 이야기를 들려 드릴까요. 집사님께서 보낸 그 아이가 저택의 새로운 집사가 될 겁니다. 어떻습니까. 본인이 왜 이곳으로 끌려오게 된 것인지 이제는 잘 아실 테죠.”


연희는 입을 벌린 채로 침묵했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지만, 그녀 자신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회장의 확실한 구실이었다. 벌어진 연희의 입술이 시간이 갈수록 떨려 갔다. 입으로는 신물을 토해내고, 눈으로는 핏물을 쏟아 낼 것 같은 모습이었다. 더한 잔인함은 연희를 죽일 것 같다고 생각한 공덕은 먼저 말을 붙이지 않았다.


“회장님을 봬야겠어. 아니, 회장님을 뵙게 해 줘. 부탁이야.”


연희가 창문 앞에 서 있는 공덕을 향해 말했다. 어젯밤까지만 해도 주인의 곁에 머물고 있던 충견이, 하루아침에 유기견이 되어 한참 아래인 자신의 발아래서 낑낑거리고 있다. 공덕은 차마 그것을 보고 있을 수 없었다. 그는 말과 동시에 고개를 돌려 버렸다.


“회장님을 뵌다고 해서 상황이 변할 것 같습니까? 늦어도 한참 늦은 거라고요.”


“그래도, 그래도 뵙고 싶어. 회장님을 직접 뵙고 오해도 직접 풀고 싶어. 부탁이야, 응?”


팔과 다리를 움직일 수 없는 연희는 머리로 공덕의 다리를 밀며 애원했다. 옛정. 정이라는 것이 공덕의 다리로 옮아 왔다.


“내일.”


연희로부터 멀찍이 떨어진 공덕이 입술을 꽉 깨물며 말했다.


“내일? 내일 회장님을 뵐 수 있는 거야?”


연희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후에 오실 겁니다. 절벽이 아닌, 이곳으로 장소를 잡은 것도 회장님의 지시였으니까요. 결과는 젖혀두고, 한 번은 대면하실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괜한 기대는…”


“아니, 그거면 돼. 공덕아, 나는 그거면 충분해. 그 뒤는 내가 감당할 수 있어. 고마워, 알려줘서.”


연희가 웃으며 말했다. 그녀의 웃음에 공덕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때 등대 입구에서 문소리가 났다. 밖이 어두웠다. 발소리가 들리자, 공덕은 옷매무새를 매만졌다. 계단을 오르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았기에 그의 대비는 더욱 단단했다.


“회장님이 보이지 않으시네요.”


등대의 계단을 올라온 사람의 첫마디는 물음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