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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영강 Sep 23. 2024

납치

“성공했죠. 그것도 아주 완벽하게. 지금도 그때 생각하면 참 혀가 내돌리긴 해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하고.”


“집에 그 막내 직원 아직 있어요?”


기성은 대꾸와 동시에 고개를 돌린 그때 알았다. 가현이 진심으로 감탄하고 있구나, 하는 사실을. 어떤 사람일까. 기성은 궁금해졌다.


“네. 있어요. 슬쩍 봤는데, 집사가 그 친구를 잘 보듬어 주는 것 같더라고요. 또래도 없지, 질 나쁜 어른들이 또, 한 핍박하잖아요? 뭐, 어디까지나 내 추측이에요. 내가 직접 일해 본 것도 아니고.”


“소원은요? 소원은 뭐였어요? 그만한 아이의 소원은 크기도 남달랐을 거 같은데.”


가현이 눈썹을 치켜세우며 운전석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관심이 꽤 많이 가나 봐요? 그 아이 썩 예쁜 얼굴형은 아닌데, 아니면 그냥 어려서 그런 건가?”


“소원이라는 게 말이에요. 제한선을 두지 않으면 무서운 놈이라서요. 그 애가 집이라도 내놓으라고 말하면, 그땐 어떡할 건데요?”


“아, 아무리 소원이라도 그건 들어주지 못하겠는데요. 집은 아직 제 쪽으로 넘어온 것이 아니라서.”


기성은 실실 웃으며 말했다.


“본인 집이었으면 넘겨줄 거라는 듯이 말하네요.”


“그럼요. 어련히 넘겨주죠.”


“아쉽다. 내가 거기 막내로 취직할걸.”


“지금도 늦지 않았어요.”


“방법이 있어요?”


“성별을 갈아엎어요.”


고속도로를 그대로 따라 한참을 달린 둘. 한산하던 고속도로 위로 차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한 것은 톨게이트를 넘어, 다리와 광장 교차로를 지나갈 무렵이었다. 한쪽은 빽빽하고, 다른 한쪽은 여유가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이 오래 이어졌다. 그날 하루 동안만 해도 여유 있는 다리는 얼마나 더 무게에 무뎌졌을까. 나란히 붙어 있지만, 정반대의 신세를 오랜 시간 지샌 반대편 다리가 한 번쯤은 한탄하지 않았을까. 왜 우리는 똑같은 모습으로 지어져 다른 시간을 보내야 하느냐고. 왜 나만 이렇게 무거운 시간을 지새워야 하는 거냐고. 그때부터였다. 가벼운 기성과 가현의 차량 뒤로 어두운 승합차 한 대가 뒤따르기 시작한 것은. 모든 창에 코팅이 짙게 되어 있는 차였다. 두 사람이 그들의 존재를 눈치챈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프로, 그들은 프로였다.


“저녁 먹죠. 이번엔 편의점 말고.”


기성은 말했다.


“음…, 밖에서 먹고 싶어요?”


가현의 대꾸는 대충 그 말뜻이 무엇인지 알겠다는 말투였다.


“아무래도요. 말마따나 여기까지 오긴 왔는데, 그, 뭐랄까, 집에까지 따라 들어가는 건 선 넘는 행위가 아닌가 싶어서.”


“무서워요?”


가현이 땅을 보며 말하는 기성을 아래에서 올려다보며 말했다.


“네. 막상 가까워지니 무섭네요. 두렵고요.”


“어젯밤 바다 앞에서 했던 말 기억해요? 지옥 어쩌고 했던 말.”


기성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미안해요. 이곳이 오랜만이라 낯가림이 도졌었나 봐요.”


“과거형으로 말하네? 그새 낯가림을 떨쳐 내기라도 했나 봐요?”


“네. 역시 오늘 저녁은 그쪽 집에 빌붙어야겠어요. 값비싼 음식들을 차마 놓아줄 수가 없네요.”


“그래, 잘 생각했어요. 이래야 내가 좀 이끌린 사람답죠.”


“이끌려요?”


“눈을 보면 알 수 있어요. 이를테면 그쪽은 단단한 기둥이랄까. 단지, 땅이 없어 바닥에 박혀 있지 않다 뿐이지.”


“칭찬인가?”


기성이 되묻자, 가현이 대답했다.


“말이야 해석하는 사람 마음이니까.”


그리고 가현은 운전석 창가 옆으로 손짓하며 말을 이었다.


“일단은 저기에 차 좀 세웠다가 갈래요?”


가현의 손끝에는 휴게소가 있었다. 빽빽한 주차장엔 빈자리가 두 곳이었다. 기성은 출구와 가까운 곳을 택했다.


“입구에서 봐요!”


문이 닫히고, 차에 남겨진 기성은 인산인해의 입구로 멀어져 가는 가현을 벙어리처럼 바라봤다. 뭐 저런 년이 다 있냐는 눈으로. 딱 그 시점이었다. 비어 있는 다른 한 곳에 승합차가 차를 댄 것은. 운전석에 있는 남자가 고개를 뒤로 돌렸다. 그가 지휘자였다. 뒤에 앉은 장정 셋의 고개가 동시에 위아래로 움직였다. 그들은 시간 낭비를 싫어했다. 차에서 내리는 순서조차 미리 정해져 있었다. 그들 중 다리가 제일 홀쭉한 사내가 차에서 내렸다. 주위를 살피며 앞으로 나아가는 그. 그를 필두로 한 그들의 발놀림은 마치 바닥에 떨어지는 빗줄기와 같았다.


“뭡니까?!”


기성이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그리고 그는 사라졌다. 마치 그곳에 없었던 사람처럼. 노란색 차를 힐끔 뒤돌아본 홀쭉한 사내는 3초간 고민했다. 차를 가져갈 것인가, 아니면 내버려 둘 것인가. 승합차를 향해 가는 두 명의 장정 중 한 사람이 소리쳤다.


“형님! 뭐 해? 빨리 와! 우린 사람만 챙기면 된다고!!”


3초의 절반 무렵에 들린 소리였다. 그리고 그 절반. 사내는 결정을 내렸다. 차는 내버려 두기로. 홀쭉한 사내는 깔끔히 고개를 돌리고 다시 내달리기 시작했다. 자리가 한산했지만, 몇몇은 보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달라질 건 없었다. 어차피 누구도 감히 신고 전화를 걸진 못할 테니. 주둥아리를 놀리다가 복부를 가격당한 기성 역시 마찬가지였다. 축 늘어진 기성을 승합차에 태운 그들은 곧장 휴게소를 떠났다. 모든 과정이 3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차에 태워진 기성은 식도를 타고 넘어온 신물을 바닥에 퉤 하고 내뱉었다. 불같은 주먹이 다시금 그의 복부로 날아와 꽂혔다.


“이런 씨…”


기성이 신음하며 고꾸라지자, 주먹을 날린 사내가 그의 등을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형씨, 남의 차에서 매너가 아니지. 기본 소양이라고.”


“아서. 형님이 데려오랬지, 때리라고는 하지 않았어.”


덩치 두 명이 기성을 가운데 끼고서 대화를 나눴다. 몸이 앞으로 기운 기성은 속으로 한 인물을 떠올렸다. 6층의 가이드, 은평. 지휘자와 홀쭉이는 조용했다. 덩치들만이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공방에서 액자만 만지다 바깥바람 쐬러 나오니 좋잖아. 돌아가면 또다시 공방행이라고. 알아? 이 사람 깨고 나면 재고가 없어.”


그 말을 들은 기성은 복부를 움켜쥔 채로 생각했다.


‘액자? 혹시 그 건물의 5층에 있던 그 액자를 뜻하는 건가? 그게 뭐길래.’


장장 몇 시간을 공들인 일들이 허사가 되었다. 하지만 기성은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 제일 걱정되는 쪽은 가현의 안위였다. 기성은 가현에게 연락처를 주지 않았다. 그는 명함을 받기만 했다. 그녀에겐 기성에게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불안증이 다시금 기성을 덮쳐 왔다. 숫자 세기, 지금 상황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숫자들이 기성의 머릿속을 헤집어 놓기 시작했다.


“형님들, 그래도 형씨 얼굴에 뭐라도 씌워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아무리 곧 죽을 인간이라지만, 우리 작업장 위치를 들켜서 좋을 건 없을 것 같은데요.”


기성의 오른쪽 팔을 붙잡고 있는 덩치였다. 홀쭉한 사내를 향해 건넨 말이었다. 사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를 제일 먼저 눈치챈 건 왼편에 있는 덩치였다. 그가 말했다.


“됐어. 어차피 벌써 볼 것 다 본 사람이니까. 액자의 용도는 지금 알았을 테지만. 안 그런가, 아가씨 전담 가이드 양반.”


목소리가 지나간 후, 한숨 소리가 차 안에 길게 일었다. 기성의 것이었다. 기성은 확신에 찬 상태로 왼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덩치의 얼굴을 확인한 기성은 속으로 탄식했다. 은평을 만나기 전 마주쳤던 5층의 키다리. 기성과 눈이 마주친 키다리는 더욱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이유가 뭡니까? 그녀를 여행에서 떼어 놓으려는 진짜 이유가 뭐냔 말입니다.”


기성은 눈을 감고 있는 사내를 보며 말했다. 기성의 말에 그의 눈썹이 한 번 더 꿈틀거렸다.


“형씨, 잔반인 우리가 남의 집안 사정을 어떻게 알겠어. 그것도 회장 집안의 일을 말이야. 사정이 있겠지.”


“그래, 지금 남 걱정할 때가 아니라고 가이드 양반. 그때 보았던 액자에 당첨됐어. 무서울 거라고. 그거 아주 높은 데서 떨어뜨리거든. 소리를 들으며 사지가 찢어지는 느낌이 인상적일 거야. 물론 난 느껴 보지 못하였지만.”



그에 기성은 낯빛 하나 변하지 않고 덩치를 향해 되물었다.


“그런 물건을 만든 이유는?”


키다리가 뱃심 가득한 웃음으로 기성의 말에 대답했다.


“말했잖아, 어른들만의 사정이 있겠지. 정 궁금하면 지금이라도 아가씨 차로 돌아가서 물어보든지.”


“헛소리 지껄이지 마. 그 사람은 이 일을 몰라. 회장과 너희 개새끼들이 합작해 만든 저렴한 작품이겠지.”


건너편에 다리를 벌리고 앉아 있던 홀쭉한 사내가 눈을 뜬 것은 기성이 저 말을 뱉어냄과 거의 동시였다. 보기 좋은 인상은 아니었다. 짝눈이 매우 심했다.


“보기보다 셈이 좋은 친구로군.”


성대 위로 나방 한 마리가 들붙어 있는 느낌. 생김에 어울리는 목소리였다.


“연 하나 없는 외지인이 전후 사정을 자세히도 알고 있군. 회장을 들먹이기까지. 보스의 자택에도 찾아갔었다지?”


“회장 딸이잖아요? 알아내고도 남죠.”


“그래, 그렇고말고.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 그런데, 그런데 말이야. 네가 말한 그 아가씨는 새거든. 어미 없인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아기 새.”


기성은 등줄기로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꼈다. 짝눈 사내의 말이 맞았다. 자신이 없어졌단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 그녀가 가장 먼저 무엇을 할까. 기성은 한 사람의 얼굴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노파.


눈앞에 있는 짝눈 사내가 냄새를 맡은 이 지금. 최악을 불러올 수도 있는 수. 이름을 떠올린 기성의 머릿속이 숫자로 가득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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