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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영강 Oct 29. 2024

결국엔

추운 길 복판, 가현이 생각에 잠긴 지 10분이 넘어갈 때쯤. 조용하던 사내가 처음으로 가현에게 말을 붙여 왔다.


“저…”


“날이 찹니다. 감기 걸리세요.”


가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사내가 한 번 더 가현에게 말했다.


“저를 원망하신다는 걸 잘 알지만, 진심입니다. 정말로 걱정이 되어서요.”


가현은 조명 밖으로 벗어나 있었다. 그래서 사내는 가현의 얼굴이 찌그러져 있는 걸 알지 못했다. 또한, 가현은 사내를 조금도 원망하고 있지 않았다. 가현은 뒤돌아 있던 몸을 돌려, 조명 안에 있는 사내를 향해 말했다.


“원망 안 해요.”


“…네?”


“원망 안 한다고요, 그쪽.”


가현의 말을 들은 사내가 영문 모르겠단 얼굴을 지어 보였다.


“그냥, 그때의 일을 직접 본 사람에게 듣고 싶었어요. 듣고도 왜 가만히 있었냐, 왜 따라가서 막지 않았냐는 둥, 책임 떠넘기는 말을 하려던 게 아니라.”


사내는 말귀가 밝았다. 떨림 없이 다가오는 가현의 목소리에 사내는 그 이상 물고 늘어지지 않았다. 사내의 그런 모습을 본 가현은 생각했다. 말을 들은 것이 기성이었어도 지금 저 사내처럼 아무 말을 내밀지 않았겠지, 라고. 가현은 기성이 보고 싶었다. 뼈저리게. 가현은 다시 몸을 돌리지 않았다.


“이제 됐어요. 돌아가도 돼요.”


가현은 말했다.


“혼자 가시려고요?”


사내가 가현의 의중을 안다는 듯 대꾸했다.


“빌어먹을 할망구. 그쪽한테 쓸데없는 말을 했군요.”


“음…, 그 말이 아니었더라도 저는 돌아가지 않았을 거예요. 남한테 무책임하게 보이는 걸 싫어하거든요. 나쁘게 말하면 참견이겠지만.”


“돌아가요.”


“안 됩니다. 이렇게 꼬인 성격에 그런 말까지 들었으니 더더욱 안 되지요. 그냥 동행만 하겠습니다. 조용히.”


사내의 고집에 가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 뒤로 한 명분의 한숨 소리가 뒤따랐다. 가현은 사내를 노려봤다. 사내가 어깨를 으쓱이며 옅게 미소를 보였다.


“생긴 거랑 다르네요.”


사내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요. 그거 하나로 여기까지 버텨 왔는데요.”


하나로써 버티었다는 사내의 말. 그를 들은 가현의 얼굴이 처음으로 드리우고 있던 경직을 벗어 던졌다. 가현은 차로 가, 열쇠를 뺐다. 어둡던 도로가 더 어두워졌다. 그리고 가현이 바이크의 좁은 조명 안으로 들어와 사내에게 말했다.


“반대쪽 핸들 잡아요.”


가현의 말에 사내는 잠시 서 있다, 급히 반대쪽 핸들로 갔다. 얼굴에 웃음기가 맺혀 있었다. 둘은 조용히 도로를 걸었다. 버섯의 입구까지는 시간이 많이 소요되지 않았다. 두 사람이 바이크를 맞잡은 장소에서 얼마 가지 않아 옆으로 꺾인 길이 나타났고, 그곳에는 불빛이 보였다. 불빛이 나타나자, 사내는 조용히 등의 밝기를 줄였다. 갑자기 어두워진 시야에 가현은 고개를 돌려 놀란 눈빛으로 사내를 바라봤다. 어둠에 가려 사내는 그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사내는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가현은 사내에게 잠시만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망설임 없이 의연한 사내의 걸음에 그를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였다. 그리고, 두 사람은 버섯에 입성했다.


“이곳에 들어와 보신 적 있으세요?”


사내가 물었다.


“오늘 내도록 생각했는데, 없더라고요. 단 한 번이.”


가현의 대답을 들은 사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게 이런 걸 두고 말하는 거겠죠.”


“여기가 등잔이라면요?”


그리고 가현은 바이크의 손잡이에 올려 있는 손을 사내 쪽으로 밀치듯 내려놓았다. 체구가 작은 사내의 다리가 크게 휘청였다. 사내가 중심을 잡을 동안 가현은 빠르게 안으로 걸어갔다. 가현의 모습이 조명에서 사라졌다. 가현은 뒤돌아보지 않았다. 가현은 사내가 자신의 뒤를 잡지 못했다는 것을 우왕좌왕 움직이는 바이크의 헤드라이트로 알 수 있었다.


“…헉, …헉.”


가현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벽에 손을 짚고서 숨을 골랐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집을 확인했다. 그 집이 유일한 곳이었다. 유일하게 거실 불이 켜져 있는 집, 유일하게 그림자가 존재하는 집. 가현은 입으로 역류한 뜨거운 액체를 바닥에 퉤, 하고 뱉고서 길을 되돌아봤다. 사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가현은 한 번 더 바닥을 향해 침을 뱉은 다음, 벽에 바짝 몸을 밀착시켰다. 그리고 손으로 벽을 짚으며 발을 앞으로 옮겨 나갔다. 주변은 조용했다. 가현은 머뭇거리지 않았다. 짚고 있던 벽이 끊기고, 가현의 몸이 불 켜진 집과 가까워졌다. 가현은 손에 흥건히 차오른 땀을 바지에 닦으며 다시금 들어온 길로 눈을 돌렸다. 달라진 것은 없었다. 가현은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그리고 작게 속삭였다.


“어떡한담. 얼굴만 확인한다기엔 너무 깊숙이 들어와 버렸어.”


“하지만 나는 알고 있지. 이것이 기회라는 걸.”


가현은 창가로 조심스럽게 고개를 밀어 넣었다. 사람 형상의 실루엣이 보였다. 아니, 움직이고 있었다. 실루엣을 확인한 가현은 밀어 넣은 고개를 천천히 빼냈다. 그리고 집의 벽에 몸을 완전히 기대며 말했다.


“기회가 맞길 빌자.”


가현은 문으로 갔다. 잠시간의 망설임, 그리고 가현은 문을 두드렸다. 문에서 강한 소리가 피어났다. 아마도 밤의 고요 때문이리라. 집의 안쪽에서 구시렁대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이내 집 안에서 사람이 나왔다. 밝지 않은 불빛에도 돋보이는 피부. 나이에 걸맞지 않은 뽀얀 낯빛. 노인이 눈을 끔뻑이며 가현을 내려다봤다. 그리고 그는 역시나 상황 파악이 빨랐다. 또한, 빨랐던 만큼, 노인은 전혀 침착한 모습을 비추지 못했다. 가현의 얼굴을 확인함과 동시에 노인은 마치 죽은 부인을 본 것처럼이나 황급히 문을 닫았다. 가현은 다시 눈 앞에 펼쳐진 어둠에 감사해했다. 그리고 작게 중얼거렸다.


“시작이 좋은데.”


가현은 몇 초가량을 기다린 뒤, 다시 문을 두드리며 얼굴을 가까이 대고서 말했다.


“열어요. 아버지에게 전화하기 전에.”


가현의 말이 끝남과 거의 동시에 문이 벌컥 열렸다. 문이 열리고, 가현은 모습을 드러낸 노인의 행색 하나하나를 빠짐없이 입력하듯이 위아래로 눈을 굴렸다. 가현 앞의 노인은 완전히 쪼그라들어 있었다. 가현은 말했다.


“비키죠? 좀 들어가게.”


노인은 숨도 쉬지 않고서 문 옆으로 몸을 치웠다. 가현은 신발을 벗지 않은 채로 노인의 집에 발을 내렸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섬과 동시에 노인에게로 말을 덧붙였다.


“전화, 한마디에 죽어 버리네요. 우리 아버지가 무섭긴 무서운가 봐요?”


노인은 가현의 몸이 모두 들어오는 것을 기다렸다. 그리고 대답 없이 문을 닫았다. 그때 가현은 생각했다. 지체 없이, 어느 때보다 빠르게 노인의 집에서 나가야 한다고. 가현은 눈에 보이는 자리에 대충 몸을 앉혔다.


“우리, 초면인가요?”


가현은 물었다.


“…예.”


노인이 대답했다.


“아, 아니겠네. 그쪽은 다른 눈이 많잖아요? 시안이라든가, 은평이라든가.”


노인은 두 사람 이름 모두에 몸을 들썩였지만, 특히 은평의 이름에 크게 들썩거렸다. 그를 본 가현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저한테 사심이 없는 걸 알아요. 그쪽은 단지 아버지의 말을 너무도 잘 이행했을 뿐이죠.”


그에 노인이 손을 앞으로 들어 올렸다.


“말해요.”


노인이 손을 내렸다. 그리고 노인이 바닥을 응시한 채로 가현에게 물었다.


“지금 제게 선택권을 주시는 건가요?”


“네-”


가현이 길게 대답했다.


“선택지가 뭐가 있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뭐, 새로울 게 있겠어요? 저에게 옮겨붙든지, 붙은 곳에 그대로 매달려 있든지, 두 가지뿐이죠. 근데 시간의 차이는 있을 거예요. 오늘 죽냐, 아니면 좀 나중에 죽냐.”


“저를 죽이시려고요?”


“저는 사람을 필요로 해요. 죽이는 건 제가 아니란 걸 알 텐데.”


말을 들은 노인은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그에 맞춰 가현은 밖으로 나와 있던 반대쪽 손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가현은 슬쩍 창문을 흘겨봤다. 아직은 태양이 솟아 있지 않았다. 가현은 노인을 바라봤다. 노인의 눈은 바닥을 향해 있었다. 자신의 양팔과 양다리 모두 헐겁게 던져 놓은 상태로 조금의 반항기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가현은 그런 노인의 모습에도 긴장을 풀지 않았다. 갑자기 몸을 일으켜 밖으로 도망간다거나, 혹은 자신에게로 달려들어 다른 안을 제시하며 목을 조른다거나, 하는 예기 불안들이 가현의 마음속에 가득 차 있었다. 그때, 노인이 몸을 움직였다. 가현은 주머니에 있는 손에 힘을 불어넣었다. 노인이 비틀거리며 주저앉혀 있던 몸을 일으켰다. 가현은 눈을 깜빡이지 않았다. 노인이 어떻게, 어떤 방향으로 튀어 올지, 가현은 계속해서 상상했다. 그리고 그는 몸을 일으킨 노인의 입에서 나온 한마디로 모두 의미가 없어졌다.


“지금부터 제가 들려 드릴 이야기에 충격을 받으실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한번 시작한 말을 멈추지 않을 예정이고요. 그래도 괜찮으시겠습니까.”


가현은 손의 힘을 풀며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부모가 사람을 죽여 온 살인마라는 사실보다 놀랄 일이 있으려고요.”


노인의 표정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노인은 어떠한 대꾸도 없이 뚜벅뚜벅 집의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가현은 그를 지켜보고만 있었지만, 본능적으로 다가오는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지나가는 섬찟함, 결이 다른 공기. 가현은 노인의 입술에 날카로운 꼬챙이가 물려 있음을 보았다. 뭐지, 뭐지, 가현은 속으로 머리를 굴렸다. 안으로 들어간 노인은 가현에게 등을 돌린 채 재떨이에 눌어붙어 있는 알약만 한 담배꽁초에 불을 붙여 입에 물었다. 노인의 등짝 위로 연기가 피어올랐다. 피어오르는 연기를 바라보며 가현은 계속해 머리를 쥐어짰다. 가현은 노인을 향해 재촉하고 싶었다. 방금 한 말이 뜻하는 바가 무엇이냐고. 그리고 그런 감정을 오래 품고 있을 새도 없이 노인의 담배 연기가 모두 흩어졌다. 노인의 손가락 사이가 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그리고 노인은 몸을 돌렸고, 자신의 그 그을림을 고스란히 가현의 가슴에 새겨 넣었다.


“아가씨의 어머님, 살아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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