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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영강 Aug 22. 2024

마스와 택시기사

마스의 움직임은 한 마리의 바퀴벌레 같았다. 품위 있게 지휘봉을 휘두르며 모두를 통제하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보이는 그 모습 그대로 배포까지 변한 듯 보였다. 가게 바닥에 흩어져 있는 유리 조각이 작은 소리를 내는 때면, 그의 턱시도가 크게 흔들거렸다. 마스는 흰 장갑을 입에 꽉 문 채 수시로 뒤를 돌아봤다. 간혹 자동차의 클랙슨이 가까이에서 울릴 때면 그의 그러한 행동은 더욱 강해졌다. 잡화점의 조명이라고는 작은 매입등이 전부였다. 곡류를 담는 용도로 쓰일 법한 상아색의 보따리엔 이미 먹을 것들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보따리의 용량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 보통 체격을 가진 마스의 등판을 가까스로 가릴 정도의 크기였다. 마스는 이 일을 자진해서 도맡았다. 남을 못 믿는 성격과 완벽주의 성향을 지닌 마스에게 도둑질은 너무도 쉬운 일이었다. 그리고, 악단 내 사람들 중에서 마스처럼 빈 가게를 잘 찾는 사람이 없었다. 아마 축제를 처음 벌였던 무렵, 골목 구석구석까지 침범하여 사람들을 포섭했던 기억의 기여가 클 것이다. 마스는 보따리를 앞으로 끌어안았다. 입에 문 장갑이 정확히 보따리의 입구에 얹혔다. 그리고 마스는 가게를 빠져나왔다. 그때쯤 길가에 있는 가게들의 조명이 켜지기 시작했다. 그를 지나는 마스의 표정은 가히 압권이었다. 본인은 여전히 화폐에 대한 믿음이 있고, 지금 내 앞에 있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라고 말을 하는 것 같달까. 마스는 도로 가까운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저 멀리서 택시 한 대가 다가오고 있었다. 마스를 본 택시는 곧장 핸들을 틀었다. 마스는 인상을 찌푸렸다. 마스 앞에 선 택시는 그 자리에서 조수석 창문을 내렸다. 검은 선글라스에 그을린 얼굴. 낯이 익다. 마스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허리를 굽혔다.


“목적지.”


기사가 말했다. 그를 들은 마스의 인상이 더욱 안 좋아졌다.

     

“택시 맞습니까?”


마스가 장갑을 뱉으며 물었다.


“왜, 어디 파시스트라도 돼 보이나?”


“저는 단지 택시가 맞는지를 물었습니다만.”


기사는 대답 대신 손으로 미터기를 가리켰다. 마스는 힐끔 보고는 말없이 조수석의 문을 열었다. 기사는 마스의 품에 있는 보따리엔 관심이 없어 보였다. 역시나 그는 손님의 옷차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었다.


“연주자인가?”


마스가 문을 닫자, 기사가 질문했다.


“비슷합니다.”

그리고 마스는 뒷좌석으로 고개를 넘기며 말했다.


“내부는 멀쩡하군요.”


기사는 코웃음 쳤다.


“당연한 소릴. 제아무리 대단한 장난질이라도 잠긴 문을 뚫지는 못해. 게다가 이건 장난 축에도 못 껴. 알잖아?”


“저를 안 좋은 사람으로 보고 계시겠군요.”


“아니, 자네 같은 사람은 양반이야. 보아하니 악단과 관련 있는 사람인 것 같은데, 맞나?”


마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말하고 싶지 않으면 그만두게. 기껏 태운 손님을 잃으면 나만 손해니.”


“17번지.”


“17번지?”


“예. 17번지로 부탁합니다.”


기사는 미터기를 켰다. 그리고 양손을 핸들 위에 올리며 말했다.


“가까워도 너무 가깝군. 이야기를 듣고 싶었는데 말이야.”


“천천히 가셔도 됩니다. 저도 이 택시에 흥미가 생겨서요.”


“오, 그래? 그거 아주 잘됐군. 반가운 소리야.”


그러던 중, 마스가 무언갈 발견하고는 말했다.

     

“그런데, 지도는 보지 않으십니까?”


기사는 사이드미러를 주시하며 대답했다.


“다 불필요한 것들이야. 오히려 차만 무거워질 뿐이지. 내 택시는 그래야만 해. 난 가벼운 인생을 추구하거든.”


마스는 장갑과 보따리를 다리 사이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러시군요. 사실 기사님의 얼굴을 봤을 때 느꼈습니다. 회사의 차량을 손수 저렇게 만들 인물은 아닐 것 같다고요.”


“그렇고말고. 밤사이였을 거야. 나는 평소처럼 암막커튼을 치고 있던 터라 바깥에서 무슨 소동이 일어난 줄도 모르고 있었지.”


“그게 첫날이었습니까?”


“그래, 빌어먹을 날이었지. 야단도 그런 야단이 없었어. 모두가 깨지고, 부서지고, 제자리에 온전히 붙어 있는 게 없었으니까.”


“그날의 출근길은 정말 비장했어. 통 큰 각오를 했거든.”


“각오라고 하시면?”


“내 퇴직금 전부를 회사에 투척할 각오.”


마스는 눈을 부풀리며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퇴직금을 반납할 각오를 하셨는데, 여전히 일을 하고 계시네요. 그 일이 있었던 지도 벌써 기간이 꽤 됐는데. 일이 잘 풀린 겁니까?”


거기서 기사는 공기 빠진 풍선 같은 소리를 내며 대답했다.


“그날 회사 주차장에서 뭘 본 줄 아나.”


“글쎄요. 다들 기사님과 비슷한 처지였을 것 같습니다만.”


“아니, 반대야.”


“모두가 멀쩡했어. 나 하나, 나 혼자만이 무참하게 짓밟혔더군. 연극과도 같은 비극이지. 한 명의 희생으로 모두에게 웃음을 줄 수 있으니. 그 광경에 난 공황이 왔다네. 왜일까. 왜 내 택시에만 이런 짓을 한 걸까. 이유가 없나? 단지 우연일 뿐인가? 별별 생각이 머릿속을 휘저었지. 그러던 중에 무리 사이에서 조용히 보스가 다가오더군. 모두의 이목이 나와 보스를 향해 집중되었어. 그때의 감정을 말로 표현하자면, 마치 수사자 한 마리가 내 살점을 물어뜯고 있는 하이에나들을 몰아내기 위해 나타난 것 같았달까.”


그리고 기사는 숨을 고르며 계기판을 힐끔 확인했다. 본인 이야기를 했으니, 마스의 이야기를 들을 시간을 얼추 계산하는 듯했다.


“재밌었나?”


기사가 속도를 줄이며 물었다.


“재밌었습니다.”


그리고 마스는 물었다.


“해답은 찾으셨습니까?”


“해답? 무슨 해답.”


“기사님의 차량만 더럽혀진 이유.”


“아니, 찾지 않았네.”


그리고 기사는 당시를 회상하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


“찾을 이유가 없었지.”


“왜죠?”


“회사가 좋아했거든.”


“책임자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래, 책임자. 내가 말했던 보스. 웃기지 않나?”


“둘 중 하나일 겁니다.”


“현명한 사람이거나, 겁에 질린 사람이거나.”


“겁이라, 겁이란 표현은 좀 섬찟하군. 마치 내가 태우지 말아야 할 손님을 태웠다는 말처럼 들려.”


“그럴 리가요. 그런 속뜻은 조금도 없었습니다. 그냥 제가 그 책임자였으면 마음이 어땠을까, 생각해 봤을 뿐입니다.”


“자네가 책임자였으면 겁에 질렸을 거란 이야기인가?”


“아무래도 그랬겠죠. 가더의 철수, 집단이 된 사람들, 어딜 보나 전쟁의 징조 아닙니까?”


기사는 혀를 내밀어 마른 입술을 적셨다. 마스는 말했다. 자신은 다수를 휩쓸 급류를 한 방향으로 조정하는 데 음악만 한 것이 없을 거라 확신했고, 그렇기에 누구보다 빨리 지휘봉을 차지한 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고.


“원래도 그쪽 일을 하던 사람이었나?”


라는 기사의 물음에 마스는 이렇게 대답했다.


“지휘봉이란 물건이 그다지도 가벼운 물건인 줄 몰랐습니다.”


“허, 그거 대단하군.”


“대단한 건 제가 아닙니다. 오른손에 들려 있는 지휘봉이죠.”


그리고 마스는 품 안에 있는 막대를 왼손으로 툭툭 건드렸다.


“사실은 말이야.”


기사가 말했다.


“말씀하십시오.”


“근래에 아주 재밌는 손님을 태웠었어.”


“재미라면, 어떤?”


“안개가 자욱했으니 아마 30이 조금 더 되는 번지였을 거야. 꺽다리 사내놈 하나와 키가 작은 꼬마 손님이었지.”


“특이한 게 있었나요?”


“특이하기보다는 희귀함에 가까워. 그런 요구를 하는 손님은 내 택시 인생에 처음 봤거든.”


마스는 대꾸 없이 기사를 흘겨봤다.


“1번지로 가자고 하더군. 아무런 부연도 없이 딱 그 말만 했어.”


“1번지요?”


“그래. 원래라면, 귀빈 대접을 해 줬을 거야. 거기까지 가는 운행료만 계산해 봐도 그렇지. 두 달 치 실적은 채우고도 남으니까. 그런데, 느낌이 좀 이상했어. 딱히 행색이 추레하거나 한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야. 어째선가 1번지에 사는 사람이 아닌 듯 보였지. 그래서 물어봤다네. 직업이 무엇이냐고.”


기사는 다시 생각해 봐도 우습다는 듯 홀로 웃었다.


“직감이 맞으셨군요.”


“정확해! 그들이 자신을 뭐라고 표현했는지 아나? 장사꾼이라고 하더군. 사실 그 뒤로의 말은 제대로 듣지도 않았어. 꼬마의 거짓말은 나름 그럴싸했지만, 사내놈의 연기는 빵점이었거든.”


“그리곤 어떻게 됐습니까?”


“나야, 뭐, 계속해서 운전을 했다네. 거리가 길었지. 날이 어둑해지자, 꼬마는 잠이 들었고. 그때부터 제대로 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것 같아. 사내놈이 뭐랄까, 아무리 내려쳐도 여간내기로는 보이지 않았거든. 자네가 봐도 그렇게 느꼈을 거야. 초짜가 아니었어. 분야가 어느 쪽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말이야.”


그에 마스는 창문을 살짝 내렸다.


“저 또한 그런 사람을 좋아합니다. 한 방이 있죠. 악단을 꾸리기 전에는 잘못 내린 정의인가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저만의 악단이 생기고, 사람들을 취합하는 경험이 쌓이고 나니 확신이 생기더군요. 급변하는 상황에서 살아남는 사람은 속한 무리가 있거나, 조용히 무리를 주시하는 사람이라는 것을요. 아무래도 기사님이 보신 분은 후자이지 싶습니다.”


“그나저나 궁금하군요.”


“뭐가?”


“30번지에서 1번지까지의 운행료.”


“돈?”


“예. 꽤 나왔을 것 같아서요.”


그리고 마스는 그 뒤로 들으라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 돈이면.”


“돈은 받지 않았네.”

     

기사는 마스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재차 확인시켜 주었다.


“돈은 받지 않았어. 얘기했잖나. 여간내기로 보이지 않았다고.”


“그것과 운행료는 별개의 문제 아닌지요.”


“자네는 여전히 화폐의 가치를 믿나?”


“조폐를 뜻하시는 겁니까.”


“알아듣는군. 그래, 맞아.”


“저는 아직 믿습니다. 그래야만 한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죠.”


기사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선글라스를 살짝 내리며 음흉한 얼굴로 마스의 목덜미를 노려봤다.


“거기서 조금만 더 목소리를 깔았더라면 깜빡 속았을 거야.”


그 말을 들은 마스는 재치 있게 대꾸했다.


“제가 거짓말을 하였나 보군요?”


“하나 더 맞혀 볼까.”


“그러시죠.”


“자네 가랑이 사이에 있는 보따리, 돈을 내고 받은 것 같진 않군. 어떤가.”


어색한 웃음소리가 이어졌다.


“하하하…”


그리고 아마도 순수하게 그를 놀리기 위한 말이었을 것이다.


“이번엔 진실이군.”


“맞습니다. 제 단원들을 위한 음식이죠. 오늘 밤, 공연이 예정돼 있거든요. 트러블이 생겨서 하나 있던 트럼펫 연주자가 빠져 버리긴 했지만.”


“그렇지 않아도 그대들의 소문을 들었네. 듣자 하니, 자네 같은 무리가 총 세 개가 있다고 하더군. 자세한 사정을 알진 못하지만, 세 무리 모두 약속한 시각에 각기 다른 장르의 곡을 연주한다고.”


“세세하게 따지면 차이가 있을 순 있습니다만, 그렇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그를 알고 있다고 하시니 참고삼으시라고 말씀드리는 건데.”


말을 멈춘 마스는 내려놓은 창문을 올렸다. 그리고 좌우를 살피며 완전한 침묵의 상태라고 느껴질 때쯤, 입을 열었다.

     

“제가 첫 번째입니다. 나머지 두 악단은 저로부터 떨어져 나간 부산물들일 뿐이죠.”


“오호.”


기사의 무심한 듯한 대꾸에도 마스는 이어서 말을 했다.


“하나 같이 어찌 그리도 창의성이 없는지. 그리고 시각 같은 걸 약속한 적도 없습니다. 모두 저희 ‘피리 부는 소년’을 따라 하는 것일 테죠.”


“피리 부는 소년?”


“제가 이끄는 악단의 이름입니다.”


“작명 한번 좋군.”


“원작이 따로 있습니다. 세상이 살기 좋았을 때 그려진 그림이죠. 군악대의 소년을 세워 놓고 그린 유화입니다.”


“그림을 좋아하나?”


“예, 하지만 그것도 벌써 한참 전의 이야기군요. 구역에 알파벳조차 붙어 있지 않았던 때이니. 10년쯤 되었으려나요.”


“17번지라고 했었나?”


기사가 미터기를 보며 물었다.


“도착했습니까.”


“글쎄. 선글라스를 끼고 있으니 표지판의 숫자가 침침하게 보였어. 17이 지나간 게 맞나. 확신 못 하겠는데.”


마스는 기사의 말에 호응했다.


“저 역시 보지 못하였습니다. 대화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그래? 이를 어쩐다.”


“저는 이 차의 기사가 아니니 길을 정할 수 없습니다. 기사님께 달렸죠. 이대로 차를 세우시든지, 아니면 지금껏 하시던 대로 같은 길을 맴도시든지요.”


그리고 마스는 말을 끝맺었다.


“아무래도 이다음 공연 장소는 기사님께 달린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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