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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영강 Aug 22. 2024

고가도로에 오른 단원들

고가도로. 고가도로란 말 그대로 가더 전용 도로이다. 도로의 높이를 장벽에 빗대어 표현하자면, 대략 4층 정도. 1번지부터 58번지까지 끊이지 않는 도로는 F구역 시민들의 주택가 위로 넓게 연이어져 있다. 그는 마치 큼지막한 지네의 다리를 보는 것과 같다. 가더의 철수 이전과 이후 모두를 통틀어도 고가도로를 눈여겨본 사람은 없다. 아마 그는 긴 시간에 걸쳐 무의식에 새겨진 낙인과 비슷한 것이 아닐까 싶다. 고가도로에는 특유의 붉은빛을 띠는 볼라드가 솟아 있는데, 가더의 차량이 출입하는 때면 땅 밑으로 사라졌다가, 차량이 완전히 통과하고 나면 무서운 소리를 내며 다시 솟구쳤다. 마스는 그 길을 선택한 것이다. 감히 넘본 사람이 없는 그 길을. 또한, 터널에서는 여러 사람이 등을 보였다. 여전히 악단은 콰르텟이었다. 사람들이 등을 돌리는 가운데, 무용수가 마스와 눈이 마주쳤다. 마스는 묵묵히 무용수를 바라보았고, 머지않아 90도의 인사로써 작별을 건네오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아야 했다. 그리고 현재.


“예상 시간은 9시간!”


마스가 남은 단원들을 향해 소리쳤다.


“우리의 첫 번째 목표는 안전한 도착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협조가 필요합니다!”


말을 마친 마스는 손전등을 켰다. 그리고 불빛이 땅을 향하도록 하여 모두의 이목을 하얀 동그라미에 집중시켰다.


“아침 해가 뜰 때까지 들켜선 안 됩니다. 제가 맨 앞에서 길을 안내할 테니, 여러분께선 각자에게 주어진 물건들을 잘 지키시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어쩌면 오늘이 피리 부는 소년의 마지막 연주가 될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도로에 오르기에 앞서, 그동안의 노고를 기리며 감사의 인사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마스는 왼손을 오른쪽 가슴에 얹으며 살짝 고개를 숙였다. 단원들이 마스를 따라 고개를 숙였다. 마스는 입구에서 살짝 뒷걸음친 뒤, 손전등으로 볼라드 아래를 비추어 덩치가 작은 순으로 통과시켰다. 마지막은 덩치 큰 첼리스트였다. 그는 마스의 얼굴을 바라본 다음, 무기력과 투쟁심이 섞인 묘한 눈으로 조용히 볼라드를 통과했다. 마스는 모든 이들이 길에 접어드는 걸 보고서, 손전등을 끄고, 길에 또 다른 사람이 없는지 마지막으로 확인했다. 길은 가로수를 제외하고는 온통 어둠뿐이었다. 마스는 인접한 주택과 가게의 창문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걸 끝으로 고가도로에 발을 올렸다. 모두가 잠든 시간, 고가도로의 방음벽 안으로 새하얀 불빛이 희미하게 반짝거렸다. 마스는 달렸다. 모두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줄의 맨 앞으로 간 마스는 헐떡이는 숨을 힘주어 끌어내렸다. 그리고 뒤에 있는 안경잡이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제가 옳은 길을 선택한 걸까요.”


안경잡이가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이렇게나 많은 단원이 마스 씨의 등을 보고 있지 않습니까.”


“만약 제가 틀린 길로 이끈 게 된다면, 그때도 저 사람들이 저의 등을 봐줄지 걱정이 됩니다.”


그에 안경잡이가 말했다.


“마스 씨.”


“네.”


“옛날 서적을 보면 이런 글귀가 있습니다. 제아무리 뛰어난 지능을 가진 인간이라도 절대 자신의 앞날을 예견할 순 없다고요. 마스 씨를 포함한 저희 모두는 그때와 다를 게 없는 한낱 인간일 뿐입니다. 그리고 저희가 걷는 지금 이 길은, 옳다고도, 틀리다고도 말할 수 없죠.”


“이유가 무엇인가요.”


마스는 물었다. 안경잡이는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길의 갈래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무한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를 모두 순회할 만큼 길지 않으니까요. 그렇기에 조금 전 마스 씨가 하신 틀린 길에 대한 이야기는…”

     

안경잡이가 말을 매듭짓지 않자, 그의 말을 집중해서 듣고 있던 마스는 조용한 실소를 뱉어냈다.


“이거 한 방 먹었군요.”


안경잡이는 헛헛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도 선은 지켰습니다. 무례한 사람이 되긴 싫거든요.”


“고맙습니다.”


밤은 길었다. 빛이라고는 마스가 쥔 손전등과 밤하늘에 떠 있는 달이 유일했다. 수다쟁이였던 무용수가 빠진 지금, 말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둠 속에서 그들의 발걸음은 안전하지 못했다. 누군가는 넘어졌고, 누군가는 공포에 휩싸이기도 했다. 공포는 무서운 것이었다. 하늘거리는 바람처럼 안락함을 안겨다 주며, 동시에 그들의 마음을 잠식해 나갔다. 마치 독과 같았다. 줄의 끝에 있는 첼리스트는 그를 본능적으로 감지한 것인지 일정한 간격을 두고 계속해 물을 들이켰다. 문제는 앞서 말한 연약한 단원들이었다. 그들은 여렸다. 독은 지능이 높다. 그래서 굳이 애를 먹을 만한 상대를 건드리려 하지 않는다. 두 시간이 지나갈 즘, 기어코 한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일전에 무용수 뒤에서 기타를 치던 남자였다. 남자는 두려움에 찬 눈으로 연신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았다. 마스까지의 전달은 등을 두드리는 것으로 이루어졌다. 마스는 손전등을 뒤로 비추어 상황을 파악했다. 누가 봐도 문제가 있어 보였다. 남자의 증상은 강박과 비슷했다. 입으로는 숫자를 외우고 있었으며, 고개는 반복적으로 앞뒤를 오갔다. 마스는 반대 손의 주먹을 비추어 단원들에게 멈춤을 지시했다. 그리고 안경잡이의 어깨를 시작으로 단원들의 수를 세며 남자가 있는 곳을 향해 뛰어갔다. 그의 증세는 하얀 불빛이 가까워져도 사그라지지 않았다. 마스는 첼리스트에게 손전등을 건넨 다음, 남자의 머리를 흔들며 소리쳤다.


“괜찮아요!! 괜찮습니다!!”


“제 눈을 보세요!! 어서!!!”


남자의 눈은 좀체 멈추지 않았다.


“괜찮아요…, 괜찮아…, 내가 미안합니다. 내가 사과하겠습니다.”


모든 단원이 어느새 마스의 곁으로 다가와 있었다. 모두 똑같은 눈빛이었다. 독에 집어삼켜진 남자를 응원하는 눈빛. 그리고, 자신도 저와 같이 되진 않을까, 두려워하는 눈빛. 남자가 경련을 멈춘 건, 모두의 응원도, 마스의 다그침도 아니었다. 시간이었다. 15분. 정신을 차린 남자는 마스와 단원들의 눈을 바라보다, 자의로써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기를 반복했다.


“죄송합니다.”


독에서 풀려난 남자가 말했다. 그리고 마스가 숨을 길게 내뱉으며 말했다.


“…천만다행입니다.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마스의 물음에 남자는 그제야 깨달았다. 자신의 턱시도가 침 얼룩으로 가득하고, 입가에는 실신한 사람처럼 거품이 쌓여 있단 걸. 남자는 충격을 받은 듯했지만, 애써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하하, 이것 참. 나이 마흔이 넘어서 이게 무슨 꼴값인지.”


그리고 그는 짐을 주섬주섬 챙기며 마스에게 말했다.


“저 때문에 많은 시간을 잃었군요. 죄송합니다.”


마스는 말없이 남자의 오른쪽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그리고 모여 있는 단원들을 재정렬했다.


“자, 다시 나아가겠습니다. 모두 준비하세요.”


마스는 말했다.


“앞으로도 이런 경우가 없으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저 역시도 방심해선 안 되겠지요. 그러니 모두 지금처럼만 해 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절대 동료를 버리지 마십시오. 또, 조금이라도 비슷한 느낌을 느끼시거든 곧장 저를 부르세요. 제가 멈춤 지시를 내리겠습니다. 그럼, 모두 힘내 주시길 바랍니다.”


말을 마친 마스는 덩치 큰 첼리스트의 시선을 느껴, 그를 흘깃 보는 척하다가 이내 앞으로 걸음을 내밟았다. 그도 거기서 시선을 내렸다. 그리고 첼리스트는 좀 전 마스의 손전등에 비친 기타리스트의 턱시도를 손으로 털어 주며 짐을 멨다. 그 모습을 본 단원들은 역시나 한껏 긴장해 있었는지, 저마다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 사이로 작은 속삭임이 있었는데, 기타리스트가 듣지 못할 정도의 소리였다. 맨 앞으로 간 마스의 손전등 빛이 뒤를 향했다. 단원들은 빛을 보며 다시금 줄을 맞췄다. 그리고 마스가 활짝 편 손바닥을 손전등으로 비추자, 줄줄이 꿴 사탕처럼 그들의 발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둠은 길었다. 마스의 뒤에서 본 풍경은 끝이 안 보이는 광산 터널과도 같았다. 단원들은 생각할지도 모른다. 이젠 내릴 시간이 지났고, 지금처럼 걸음을 앞으로 내딛는 것만이 본인의 목숨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다시 시간이 흘러, 네 시간쯤에 접어들었을 때, 우측으로 급격히 꺾이는 갈림길이 등장했다. 마스는 주먹을 올렸다. 그리고, 손전등의 머리를 바닥으로 내리며 단원들에게 집합 명령을 내렸다. 단원들이 하나둘 마스의 곁으로 모였다. 모두들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이제 절반인 건가요?”


누군가가 물었다.


“거의요. 속도가 꽤 빨랐네요.”


마스가 시계를 보며 대답했다.


“한 시간 이상은 여유가 생긴 것 같습니다. 그러니 잠시 쉬었다 가는 걸로 하죠. 제가 지휘봉 위에 손전등을 엎어 놓을 테니 물을 마실 사람은 물을, 배가 고픈 사람은 음식을, 잠이 필요한 사람은 잠을, 각자 알아서 취하시길 바랍니다. 조금만 더 가면 됩니다. 다들 조금만 더 힘내 주세요.”


마스의 말이 끝나자마자 단원들은 각자 메고 있던 악기 가방을 벽에 세웠다. 그리고 나눠서 들고 있던 식량을 자신과 옆 사람에게 조달하기 시작했다. 특히나 굶주려 보이는 단원이 있었는데, 그는 등의 악기를 내려놓을 새도 없이 허겁지겁 음식을 입에 밀어 넣었다. 그런 와중에 간혹, 어떻게 이곳에 있는지도 모를, 검고 흰 고양이들이 눈을 밝히며 단원들을 향해 다가왔지만, 이들은 냉혹했다. 개중에는 새끼 고양이도 있었다. 무용수였더라면 빵의 한 점을 떼서 줬을 법한 아주 귀여운 고양이였다. 녀석은 모두의 뿌리침에도 도망치지 않았다. 끈기 있는 녀석이었다. 그리고 끝내 제일 구석에 앉아 조용히 음식을 씹고 있는 첼리스트의 다리에 안겼다. 첼리스트는 남은 물의 양을 확인한 뒤, 손바닥에 덜어 고양이에게 내밀었다. 고양이는 바다를 보는 것 같았을 것이다. 큼지막한 손에 담긴 물은 태어나 몇 보지 못한 양이었을 테니까. 그리고 그 많은 물을 새끼 고양이는 순식간에 먹어 치웠다. 첼리스트는 가만히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제 엄마에게 가. 너를 먹이려고 왔을 거야.”


새끼 고양이는 야옹 하고 소리를 냈다. 그제야 단원들이 첼리스트를 바라봤다. 다들 비슷한 표정이었다. 흐뭇한 표정, 감상에 젖은 표정. 그리고 새끼 고양이는 덩치 큰 남자를 향해 한 번 더 울음소리를 내보이고는 손전등의 불빛이 닿지 않는 먼 어둠 속의 다른 고양이들과 함께 자취를 감췄다.


“이제 다들 마무리해 주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마스가 크게 말했다.


“쓰레기는 더러운 고가도로에 버리고 갑니다.”


그에 멍청한 얼굴로 쓰레기를 가방에 넣던 단원 한둘이 깊숙이 넣어 놓은 봉지를 도로에 쏟아 냈다.


“…근데, 마스 씨. 둘 중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고 계십니까?”


안경잡이가 물었다.


“물론입니다.”


마스는 대답을 함과 동시에 되물었다.


“애초에 갈림길이 왜 있을까요. 어차피 한 곳으로 통하는 곳인데 말입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마스는 손전등을 들어 앞을 비췄다.


“저기 우측으로 굽이진 곳은 아마 12나 13번지로 향하는 길일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지금까지 저런 갈림길을 몇 차례나 지나왔었습니다. 길이 줄곧 왼쪽에 있었을 뿐이에요.”


“그럼, 곧 있으면 광장의 거울이 보이겠군요.”


“글쎄요. 저 개인적으론 이 벽이 거울보다 높은 곳에 있었으면 좋겠습니다만…”


마스는 방음벽을 두드리며 말했다. 안경잡이는 아차, 싶은 표정을 보였다.


“그러네요. 만약 거울이 더 위에 있다면…”


마스는 손전등을 쳐듦과 동시에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거울에 우리 모습이 비치겠지요. 거기다 불빛이 흰색이니, 사람들이 우릴 보며 가더가 돌아온 게 아닌지 두려워하기도 할 거고요. 제가 이곳을 오르기로 결정했을 때 가장 염려했던 점입니다. 광장의 거울 높이가 어떤지 알지 못하기에.”


그의 말에 안경잡이는 어색한 웃음을 띠며 물었다.


“하하…, 그럴 리는 없겠죠?”


마스가 뒤에 길게 늘어선 단원들을 비추며 대답했다.


“그래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장벽으로 군단을 끌고 가는, 정말이지 미친 음악대가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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