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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영강 Aug 22. 2024

납치2

퓨티는 물속에 잠겨 있던 사람처럼 크게 몸부림치며 눈을 떴다. 깨어난 퓨티는 머리의 피를 닦을 새도 없이 고개를 좌우로 돌렸고, 문이 열려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곧장 문을 향해 질주했다. 복도는 일직선이었다. 퓨티는 자신이 갇혀 있던 방, 바로 앞에서 남자 둘의 말소리가 들린 것을 까먹지 않았다. 그렇기에 금방 결론을 지을 수 있었다. 자신의 방에서 멀지 않은 방에 워블이 갇혀 있다고. 길게 뻗은 복도에는 방이 아주 많았다. 퓨티는 우선 맞은편 문의 손잡이를 세게 흔들었다. 문은 열리지 않았다. 퓨티는 좌우를 번갈아 살폈다가, 다시 양손으로 문을 세게 두드렸다. 그리곤 귀를 가져다 댔지만, 들려오는 소리는 없었다. 퓨티는 수많은 방을 보며 생각했다. 대체 그 두 사람은 무엇을 잘못이라고 판단하기에 사람들을 가두는 건지, 그를 행함으로써 보상받을 성취감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그러나 그와 같은 상상은 잠시였다. 퓨티는 금방 되돌아왔다.


‘워블 씨부터.’


퓨티는 다른 방을 차례차례 두드려 나갔다. 문을 열 개째 두드렸을 무렵, 어느 방에서 기침 소리가 울렸다. 퓨티는 잽싸게 그쪽으로 가, 다시 한번 문을 두드리며 워블의 목소리가 맞는지 확인했다. 문이 두꺼운 탓에 소리가 선명히 들리진 않았지만, 퓨티는 워블의 목소리가 저렇게 굵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협소한 복도의 무게감에 퓨티는 당장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았지만, 입술을 꽉 깨물며 마음을 다잡았다. 나는 나갈 수 있어. 반드시 워블 씨와 함께 여길 빠져나갈 거야. 절대 이런 곳에서 죽을 순 없어. 발걸음이 삐끗할 때면, 복도 천장에 있는 알전구가 퓨티의 정수리를 스치듯 지나갔다. 쉬지 않고 문을 두드리던 퓨티의 손은 금방 한계에 이르렀다. 손날은 첫 번째 문을 두드릴 때부터 검게 변하고 있었다. 퓨티가 멍든 손의 아픔을 인지할 때쯤, 그리고 그녀가 이제는 손바닥으로 문을 두드려야겠다고 생각할 때쯤, 불행의 그림자가 성큼성큼 퓨티를 향해 걸어왔다. 퓨티는 문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림자는 소리 없이 접근했고, 박쥐처럼 날아올라 퓨티의 뒤를 순식간에 점령했다. 그리고 진한 악취를 풍기며 퓨티의 귀에 속삭였다.


“피 닦아 줄까?”


“꺼져요.”


“입이 험하네. 그러면 너 영영 못 볼 수도 있다?”


“대화만 했다면서요.”


“대화에는 종류가 많아. 입으로 하는 대화, 마음으로 하는 대화, 눈으로 하는 대화, 몸으로 하는 대화. 내가 말한 대화는 어느 쪽일 것 같아?”


퓨티는 대답했다.


“…마지막 대화겠죠.”


“맞아! 정답이야!”


그리고 남자는 퓨티의 머리를 천연덕스럽게 쓰다듬었다. 퓨티는 침을 맞았던 그때처럼 가만히 침묵을 유지했다. 그를 본 남자는 웃으며 어디 계속해 보란 듯이 퓨티의 머리를 이리저리 마구 휘저었다. 헝클릴 대로 헝클린 머리에도 퓨티는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독하네.”


남자가 말했다.


“겨우 이 정도로 우릴 무너뜨릴 수 있을 거라 착각하지 마세요. 더한 것도 참을 수 있으니까.”


퓨티는 붉게 변한 눈으로 말했다.


“어디까지 참을 수 있을지는 내가 정해. 너는 이제 자유인이 아니야. 지금 네 모습이 의리로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곧 그게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될 거야. 그들은 이미 너를 버렸거든. 어딘가에 뻗어 있을 노인네도 마찬가지고. 너흰 선택을 잘못했어. 한마디로, 길을 잘못 든 거지.”


“길? 당신은 이게 길이라고 생각해서 걷고 있는 건가요?”


남자는 움찔거렸다.


“부끄럽지 않아요? 제가 짐작건대 당신은 하수인이에요. 모자를 쓴 사람의 시종이라는 이야기죠. 소설엔 당신 같은 사람을 두고 이렇게 묘사하더라고요. 시다바리.”


남자는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벙찐 얼굴로 퓨티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의 두뇌는 느리기 그지없어서, 이해를 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그는 결국 이해했다. 남자는 숨을 크게 내쉰 뒤, 양손에서 물소리가 들릴 때까지 손을 비벼댔다. 달아오른 그의 몸은 손에 땀을 만들기에 짧은 시간만이 필요했다. 남자는 축축해진 손을 올려, 눈 아래에 있는 검은 칠을 손가락에 묻혔다. 남자의 양손이 시커멓게 변하는 걸 보며 퓨티는 아, 이제 저 검은 주먹이 나에게로 날아오겠구나, 짐작했다. 금세 남자의 손이 시커멓게 변하였다. 양손 전체를 검게 물들인 남자는 주저 없이 주먹을 내밀었다. 퓨티는 바닥을 짚었다. 신물이 올라와 목이 메었고, 온몸의 장기들이 똬리를 트는 듯한 고통이 배꼽을 시작으로 곳곳에 번져 나갔다. 남자가 말했다.


“쓰레기통에 있는 건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아. 설령 거기에 금덩이나 돈이 들었다고 한들, 두려움에 가져가지 못하지. 이해해? 지금 네가 있는 곳이 쓰레기통이야. 아무도 너를 찾지 않을 거라고. 그러니까 하루라도 빨리 말하는 게 좋을 거야. 맘 같아선 너의 그 탐스러운 입을 찢어 버리고 싶지만, 우리한테 필요한 게 네년 입에 담겨 있으니까, 그럴 수 없지. 너희를 무너뜨릴 수 있냐고 물었지. 내가 보여 줄게. 남자가 여자를 얼마나 추하게 만들 수 있는지.”


“그쯤 하고 데려와.”


모자 쓴 남자가 멀찍한 곳에서 말했다.


“이거 봐요. 당신은 그냥 시다바리라니까.”


퓨티는 바닥에 엎드린 채 키득키득 웃었다.


“이런 썅년이.”


남자는 발을 들어 올렸다. 그 사이, 그의 곁으로 온 남자가 낮게 깐 목소리로 말했다.


“데려오라고만 했잖아.”


“이 시발, 내가 시키는 대로만 움직이는 로봇이야?”


“뭘 들은 거야, 대체?”


모자 쓴 남자의 물음에 그는 침을 뱉고는 남자의 옆을 지나갔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네가 데려와. 네가 나보다 힘이 세니까.”

     

구시렁대며 퇴장하는 남자를 향해 모자 쓴 남자가 작게 말했다.


“미친놈이 또 시작이네.”


남자는 퓨티가 일어설 수 있도록 그녀의 팔을 어깨에 걸었다.


“일어설 수 있겠어요?”


퓨티는 대답 없이 킥킥거렸다. 남자가 물었다.


“우리 둘 사이를 분열이라도 해 보게요?”


퓨티는 대답했다.


“못 할 것도 없죠.”


그에 남자가 웃으며 말했다.


“어림도 없어요. 그런 시도를 해 본 게 아가씨만이 아니거든.”


“저는 좋아해요. 최초라는 단어.”


“그래, 어디 열심히 해 봐요. 응원할게요. 우선은 움직입시다. 어르신을 뵈러 가야죠?”


“다치셨나요?”


남자는 공손한 웃음을 띠며 대답했다.


“네, 많이 다치셨어요. 그쪽이라도 입을 열었으면, 그렇게까지는 다치지 않았을 텐데. 뭐…, 어쩔 수 없죠. 이미 다친 걸 어떡해.”


“항상 이런 식이에요?”


“어떤 게요?”


“마음에 안 드는 사람들을 이곳에 가두는 거요.”


남자는 다시 웃었다.


“하하, 아뇨. 틀렸어요.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을 고르는 것도 아니고, 가둔다는 표현까지 전부. 우리는 단지 시티에 숨어 있는 불순분자들을 가려내는 것뿐이에요. 왜? 가더가 철수했으니까.”


“삐뚤어져도 한참 삐뚤어지셨네요.”


“왜요?”


“당신들은 자기가 일반인들 위의 가더라도 된 양 생각하고 있겠지만, 제가 볼 땐 그냥 범죄자들이에요.”

     

“이야, 말재간이 여간 유려한 게 아니네요. 저놈하고 방을 바꿨어야 했나. 우리 둘은 말이 아주 잘 통했을 텐데. 어르신보다 훨씬 나은데요? 시티 밖에 있는 마을에도 선생님이 있어요?”


퓨티는 하마터면 그의 질문에 대답할 뻔했다.


“무슨 마을을 말하는지 모르겠는데요.”


남자는 모자를 벗었다. 그리고 퓨티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하하하하. 이거 봐요. 우린 정말 말이 잘 통한다니까요. 방금도 눈치를 챈 거죠? 그런데, 걱정할 필요 없어요. 우리는 시티를 떠날 생각이 조금도 없으니까.”


“그거 아세요?”


퓨티는 물었다.


“뭐죠?”


남자는 다시 모자를 눌러썼다. 퓨티의 다음 말을 예상 못 한 채.


“시티 밖은 여기 못지않은 지옥이에요. 당신은 고작 우물 안 개구리일 뿐이죠. 가더한테 아무 말 못 하는 겁쟁이 소시민이랄까.”


남자는 어깨에 있는 퓨티의 팔을 거칠게 떨어뜨렸다. 손으로 뺨을 긁적이는 꼴을 보아하니, 화가 끝까지 차오른 듯했다. 남자는 뺨을 긁적이던 손을 이마로 옮겼고, 이마마저 살살 긁다가 그대로 퓨티의 머리채를 움켜쥐었다. 퓨티는 굴하지 않았다. 이들이 쓰레기라 는 걸 알았으니까.


“역시, 대화로는 힘들겠어요. 워낙에 강하게 자라신 분들이라.”


그리고 그는 휘청이는 퓨티를 붙잡고 성큼 걸이로 제일 구석에 있는 문까지 끌고 갔다. 남자는 오른손으로 열쇠를 꺼냈다. 녹이 잔뜩 낀 열쇠였다. 문이 열리자, 워블이 검은 칠 남자에게 걷어차이고 있는 모습이 드러났다.


“워블 씨!!!”


퓨티는 어떻게든 남자의 손을 뿌리치고 워블에게 달려가려 했으나, 남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다시 한번 퓨티는 소리쳤다. 그러나 워블은 이미 빈사에 가까운 상태였고, 고개를 움직일 힘조차 없어 보였다. 퓨티는 워블의 젖꼭지가 드러난 곳과 그 옆으로 보이는 핏자국에 눈물을 글썽였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잖아요!!!”

     

그에 검은 칠을 한 남자가 퓨티의 얼굴을 음흉하게 보며 더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보란 듯이 워블의 얼굴을 발로 지그시 눌렀다.


“그만해!! 개자식아!!”


모자 쓴 남자가 퓨티의 머리를 놓았다. 퓨티는 거의 엎어지다시피 한 걸음으로써 워블을 향해 뛰어갔다. 퓨티는 워블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만졌다. 눈물이 그칠 줄 몰랐다. 퓨티는 고개를 숙이며, 남자 둘의 귀에는 들리지 않을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그리고 퓨티는 남은 옷을 끌어모아 워블의 상반신을 가렸다.


“당신들에겐 천벌이 내려질 거야.”


검은 칠을 한 남자가 다리를 휘둘렀다. 발이 정확히 퓨티의 턱을 강타했고, 퓨티는 워블과 나란히 쓰러졌다.


“그만하라니까.”


모자 쓴 남자가 말했다.


“맞을 말을 했잖아.”


“둘 다 병신 되면 답은 누구한테서 들을래? 네가 말할 거야?”


“괜찮아- 이 정도로 턱이 나가지는 않아.”


그의 말에 남자가 시선을 옆으로 돌리며 말했다.


“옷은 왜 벗겼어?”


“궁금하잖아. 이년의 젖꼭지가 무슨 색일지.”


“그래, 여자 한 번 못 만나 본 네게 매너라는 게 있을 리 없지.”


그를 들은 남자는 대충 귀찮은 말을 들었다는 듯 허공에 손짓했다. 모자 쓴 남자는 시선을 돌려 있는 그 상태 그대로 퓨티와 워블을 향해 걸어왔다. 다가온 남자는 연신 고개를 좌우로 까딱였다.


“아무래도 차고에 가 봐야겠는데.”


“얘들 기지?”


“응. 가만히 있다간 때를 놓칠 것 같아.”

     

“선수를 치자? 난 찬성이야.”


“아니, 그거 말고.”


“그럼?”


“일단, 이들의 아지트가 정비소인 것 같으니, 위장 잠입을 좀 해 볼까 싶어.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들의 얼굴을 확인도 할 겸. 너는 밖에 있는 차에 구멍을 좀 뚫어 놔. 내가 다녀올게.”


검은 칠을 한 남자가 물었다.


“들킬 가능성이 없다는 보장은?”


“제로야.”


그리고 남자는 이어 말했다.


“껄렁거리는 너와 같이 들어간다면 말이지.”


“그럼, 차라리 나를 보내.”


“너를?”


“형이 잘못되면 난 헤매고 말 거야. 그러니 내가 가는 게 맞아. 형이 남아야 그 잘난 혓바닥으로 협상이라도 하지 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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