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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영강 Aug 22. 2024

차고의 사람들

하루가 남았다. 시일이 가까워지자, 차고엔 서늘함만이 짙게 감돌았다. 누가 누구와 맞닿든 퓨티와 워블의 이야기뿐이었다. 그리고 거기엔, 제리가 장벽 앞에서 만났던 앞치마 청년이 항상 끼어들었다. 어제는 딘과 쟝이 짝을 이뤄 퓨티를 수배했지만, 누구도 어린 소녀를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를 들은 몇몇 남자들은 발정 난 개새끼 마냥 반문했다. ‘F구역 에 소녀가 있어?’ 라고. 쟝은 퓨티가 어려우면 워블이라도 찾아보자고 딘에게 말했지만, 딘은 거절했다. 이미 퓨티라는 소녀를 수배한 것도 위험한 일인데, 거기에 워블까지 낀다는 건 리스크가 크다는 게 딘이 말하는 이유였다. 그리고 오늘 아침. 모두가 차고 2층에 모였다.


“이제 그만 포기하도록 하죠.”


모두의 표정이 굳어 있는 그때, 제리가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포기라고요?! 우리가 책임져야죠! 애초에 그녀들은 시티에 들어오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사람들이었다고요! 제가 사라졌어도 이런 식으로 나올 거였어요?”


카리브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파의 팔걸이를 발로 강하게 걷어차며 소리쳤다.


“카리브 씨…”


페퍼의 만류는 소용없었다.


“정말이지 너무들 하시네요. 어제는 딘 씨와 쟝 씨가 나섰었죠.”


그리고 카리브는 제리를 응시하며 말했다.


“당신은요? 당신은 왜 아무것도 하지 않죠?”


제리가 처진 눈으로 대답했다.


“저는 애당초 그들을 들이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그게 끝인가요?”

     

“네.”


카리브는 어이없다는 듯 한숨을 뱉어냈다.


“다른 의견은 없어요? 다들 이 사람 말에 찬성하는 거예요?”


그때, 누군가가 손을 번쩍 들었다.


“어이.”


쟝이 튀어 나가려는 소년을 팔로 가로막으며 말했다. 그러나 소년은 굴복하지 않았고, 그의 굵은 팔을 온몸으로 들어 올리며 카리브 옆으로 갔다.


“저는 반대예요!”


소년의 한마디에 딘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누나와 할머니는 우릴 도우러 온 사람들이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구해야 해요! 책에서 읽었는데, 이런 상황을 두고 감탄고토라고 하던데요? 음식이 자기 입에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고. 그 누나와 할머니가 음식은 아니잖아요?”


제리를 제외한 나머지 세 사람이 그를 듣고는 딘과 마찬가지로 탄식에 가까운 자세를 취했다. 제리는 무표정한 얼굴로 소년의 키에 맞추어 눈을 내렸다. 별거 아니라는 얼굴임에도 시선이 갔다는 건, 타격이 있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자리로 와.”


딘이 소년을 불렀다.


“왜요?”


“네가 낄 자리가 아니야.”


“저도 장벽에 오르지 않나요?”


“그건 별개의 문제야.”


“별개? 별개가 뭔데요?”


딘은 이마에 붙이고 있던 손을 떼며 대답했다.


“어른들의 대화라는 뜻이지.”


그리고 쟝이 소년을 향해 손짓하며 소파를 두드렸다.


“싫어요! 저도 제 권리가 있어요! 제가 틀린 말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소년의 고집은 갈수록 완강해져 갔다. 거기다 카리브의 팔까지 붙들었으니 말은 다 한 것이다.

     

“아이 보기 부끄럽지 않아요? 애도 아는 사실을 어른들이 외면하는 건 쪽팔린 짓인 것 같은데.”


편이 된 사람이 나이 어린 소년이라도 힘을 얻은 것일까, 카리브의 목소리가 커졌다.


“부끄러운 짓이든, 아니든, 저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카리브 씨.”


제리가 말했다.


“이 모습이었군요? 어둡고, 진지하고, 솔직하다고 했던 게.”


제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른 분들요? 같은 생각이신가요?”


차례차례 대답이 들려왔다.


“어쩔 수 없습니다.”


“못 찾아요, 못 찾아. 말마따나 작정하고 데려간 사람을 어떻게 찾겠습니까?”


딘과 쟝이 말했고, 이제 페퍼의 차례였다.


“……”


“페퍼 씨는요?”


카리브가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제리는 덤덤히 눈을 감았고, 그 외 나머지의 시선들이 그녀를 향했다. 페퍼는 고고하게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 모습이 꼭 고대 그리스의 여신 같았지만, 제리의 말대로 그녀는 정말 말이 없었다.


“어떻게 하는 게 좋겠어?”


기다리다 지친 제리가 입을 열었다. 페퍼는 고개를 살짝 돌려 제리를 흘깃 보고는 다시 카리브와 눈을 맞췄다.


“편하게 말씀하세요, 페퍼 씨. 눈치 보지 않으셔도 됩니다.”


딘이 말했다.


“……”


“뭐?”


참을 만큼 참았다는 목소리였다.

     

“…시티의 대도가 될 사내잖아요. 소년의 말이 틀렸다고 생각되지 않아요.”


“…하.”


그리고 제리의 한숨이 그친 뒤, 쟝이 입을 열었다.


“아뇨, 아뇨, 아뇨. 페퍼 씨, 지금은 그런 쉬운 상황이 아닙니다. 길이 없어요. 정말로 우리를 미행한 누군가가 있었고, 그들이 그녀들을 인질로 데려갔다면, 우리는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겁니다. 단순히 인질로 삼고자 한다면 다행이지만, 지금 우리가 있는 거처, 우리가 목표로 하는 것, 그것들이 그들의 귀에 들어가기라도 하는 날엔 모두가 끝장나는 거라고요. 다년간의 준비가 물거품이 된다, 이 말입니다.”


“그만해, 쟝. 아직 확실한 건 없어.”


딘이 말했다.


“아니, 외면하려 들지 마. 고작 하루가 남았어. 이제 시작이라고. 내 직감으로는 그녀들은 붙잡힌 것 같아. 확실해. 그렇지 않고선 이렇게 모습을 비추지 않는 게 말이 안 돼. 적어도 거절을 표하기 위해 한 번은 방문했겠지. 둘의 성격을 알잖아? 이렇게 나올 사람들이 아니야. 절대로.”


“알겠으니, 그만하라고.”


그리고 딘은 손가락으로 은밀히 소년을 가리켰다.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만약 네 말대로라면 우린 위기에 처한 게 맞아. 하지만, 그녀들이 지금까지 고민 중일 수도 있으니까. 나와 약속한 시간은 일주일이야. 네 말대로 아직 하루가 남았고.”


“내일 새벽에도 오지 않으면?”


쟝이 물었다.


“그럼, 약속이 깨질 뿐이야.”


“딘!!!”


딘 역시 자리를 박차며 소리쳤다.


“제발 좀 그만해!!! 그들은 그들이야! 계획에 없던 사람들이라고! 이젠 우리 손을 떠났어. 그리고 계속 말했지…, 소년이 있다고.”


“이기적인 새끼. 야, 쟤는 장벽을 안 올라? 쟤만 왜 별도 취급인 건데? 그들은 그들이라고? 네 말대로면 소년을 뺀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란 뜻이야? 어???”

     

그리고 쟝은 쥐고 있던 맥주를 딘의 얼굴 옆으로 힘껏 던졌다. 병이 박살 나는 소리가 2층을 크게 울렸고, 다음으로 쟝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변명해 봐.”


딘은 순간 숨이 콱 막히는 것을 느꼈다. 쟝의 말이 맞았으니까. 이젠 모두의 시선이 딘을 향해 쏠렸다. 딘은 조금의 긴장도 드러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 자신이 내뱉을 단어 하나하나가 작금의 분위기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지도 딘은 알고 있었다.


“틀려.”


“뭐가 틀린데?”


“제리 씨의 말대로야. 그들을 들이는 건 계획에 없었어. 나를 포함한 여기 여섯이 딱 적당한 수야. 여덟은 많지.”


그에 카리브가 물었다.


“어머, 저도 계획에 있었다는 말씀이신가요? 처음 듣는 이야기 같은데.”


딘은 카리브를 똑바로 바라보며 힘주어 대답했다.


“네. 카리브 씨는 꼭 필요한 사람이었습니다. 없어서는 안 될.”


제리와 페퍼, 그리고 쟝은 소리 내지 않았다. 딘의 말이 음흉한 거짓부렁이고, 분위기를 잠식시킬 속삭임일 뿐이라는 것을. 그들 역시 알고 있는 것이다. 저 말을 걸고넘어지는 건 분열의 시작과 같다는 것을.


“선택해.”


“그 두 사람을 살리고 우리의 계획을 접을 건지, 그 두 사람을 배제하고 우리의 계획을 실행에 옮길 건지. 이제 20시간 남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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