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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영강 Aug 22. 2024

고가도로에서의 시간

합이 7시간. 단 한 번의 휴식 이후, 다음 세 시간은 아무 문제없이 지나갔다. 거기서 마스를 포함한 단원들은 깨달았을 것이다. 그럼 그렇지, 가더를 위한 도로가 어떻게 거울보다 아래에 있겠어, 라고. 그를 선두에서 가장 먼저 살피던 마스는 이제 더 이상 하늘 위로 손전등을 쳐들지 않았다. 마스의 뒤에는 커다란 폐와 심장이 달려 있는 것 같았다. 폐는 끊임없이 수축과 팽창을 반복했고, 심장은 당장이라도 터질 것처럼 폭주했다. 그들은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할 말들로 서로에게 응원을 불어넣었다. 응원은 열기가 되었고, 열기는 곧 단원들의 입 밖으로 뿜어져 나와 뜨거운 바람이 되었다. 마스의 손전등 앞으로 또 하나의 갈림길이 나타났다. 마스는 자신의 뒤에 있는 안경잡이가 한참 전부터 한계에 다다라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마스는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3시 39분. 손전등의 불빛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다시 휴식의 시간이다. 단원들은 이제 마스가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움직였다. 앓는 소리가 일었고, 무거운 가방과 짐이 벽 쪽으로 쌓여 갔다. 그리고 그들은 동그랗게 모여 앉았다. 마스는 부들거리는 다리를 질질 끌다시피 하며 손전등과 지휘봉을 그들 중 한 명에게 건넸다. 단원들은 말이 없었다. 마스도 힘이 바닥난 건 마찬가지였다. 심지어는 음식을 꺼내는 이도 보이지 않았다. 덩치 큰 첼리스트만이 바닥이 보이는 물병을 열고는 물을 들이켰다. 그리고 그는 다소 거칠게 빈 물병을 멀찍이 내던졌다. 만약 내가 이곳에 있었더라면 시간을 물었겠지만, 안경잡이의 첫마디는 달랐다.


“이젠 돌아갈 방법도 없군요.”


그를 들은 누군가가 피식하며 말했다.


“전 안 돌아가렵니다. 아예 1번지에서 노숙을 하지.”


그에 여러 단원이 찬동했다.

     

“그래, 까짓거 그냥 거기서 연주합시다. 다를 거 있습니까?”


“맞습니다. 돈도 없고, 음식도 없고. 그냥 1번지에 있죠?”


“1번지에 있으면 누가 돈과 음식을 공짜로 준답니까?”


“이게 현실이잖아요?”


“그래도 전 어떻게든 돌아갈 겁니다. 1번지의 더러운 놈들과는 같이 자기 싫어요.”


“맘대로 해요. 어차피 이번 일이 끝나면 각자도생이 될 테니까.”


“그런 거예요?”


“당연히 그런 거죠. 1번지까지 쫓아온 악단을 누가 반기겠습니까. 특히나 그들은 가더의 철수 후에 죽은 듯이 살고 있는걸요. 조심스럽겠죠, 아무래도. 장벽이 사는 곳 바로 앞에 있으니까요. 저였어도 장벽을 보면 절로 입이 다물어질 것 같습니다.”


“근데 궁금한 게, 왜 1번지 사람들까지 버리고 간 걸까요? 그들은 그래도 충성심을 보였잖아요.”


“그들은 그걸 충성심이라고 생각하지 않나 보죠. 그리고 단어가 좀 그렇습니다. 같은 인간끼리 충성심이라니…”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이게 현실이라고.”


남자는 쳇, 하며 침을 찍 뱉었다.


“다행이군요. 그래도 기운들이 남아 있으시니.”


마스가 말했다. 마스는 가방을 뒤적거리더니 빵을 꺼냈다. 생크림이 잔뜩 들어 있는 슈크림이었다.


“이놈만큼은 1번지에 도착하고 나서 먹으려고 했는데, 안 되겠습니다. 당이 너무 떨어졌어요.”


단원들은 웃었고, 마스는 슈크림을 둘러싸고 있는 포장을 하나씩 벗겨 나갔다. 손이 어찌나 떨리는지 빵에 구멍이 뻥뻥 뚫렸다. 모두가 그를 바라봤다. 떨리는 손이 아니라, 무사히 속살을 드러낼 슈크림을 말이다. 마지막 필름 한 겹, 마스의 손가락은 크림 범벅이었다. 얇게 발린 접착제가 떨어지지 않고 계속해 마스의 손가락에 미끄러졌다. 마스는 손가락을 빨며 고심했다. 그리고 그가 내린 결론은, 필름을 벗기지 않고 그대로 씹어 삼키는 것이었다. 마스는 코팅제가 있는 그대로 입을 벌려 슈크림을 한 입 베어 물었다. 온 얼굴에 퍼진 행복감, 마스의 몸이 순간 공중으로 붕 뜬 것처럼 보였다.

     

“필름은 뱉으세요. 그건 소화 안 돼요.”


첼리스트가 말했다. 그도 관심이 있었던 모양이다. 마스는 그의 말을 귀담아들었다. 우물우물하던 입에 손가락을 넣고는 잇자국이 찍혀 있는 필름을 잡아당겼다. 그리고 마스는 남은 슈크림을 한입에 욱여넣었다. 그렇게 잠시간의 쉼이 있고 난 뒤에, 폐와 심장이 정상 궤도에 올랐을 때, 마스는 다시 몸을 일으켰다.


“얼마나 남았습니까?”


첼리스트가 물었다. 마스는 시간을 확인했다. 정확히 4시였다.


“4시입니다. 정각이에요.”


“저희가 몇 시간 왔죠?”


“어디 보자…, 7시간을 걸었군요.”


“여기는 몇 번지쯤 됩니까?”


“제가 기억하는 갈림길의 수는 열 개입니다. 계산해 보면…”


마스는 지휘봉으로 방음벽을 탕탕 두드리며 말했다.


“7번지가 되겠군요. 지금 저희가 있는 곳이.”


그에 첼리스트가 말했다.


“꽤 빨리 왔네요. 처음 예상한 대로 2시간 안에 다섯 구역을 넘을 수도 있겠어요.”


마스는 지휘봉을 품에 넣으며 말했다.


“이제부턴 정말 각별히 조심하셔야 합니다. 10, 9, 8번지는 어떻게 조용히 넘어왔지만, 7부터는 사람들의 귀가 더욱 발달해 있을 거예요. 보통의 소음에도 불을 켜고 창밖을 바라볼 겁니다.”


그 말에 안경잡이가 물었다.


“그럼, 손전등을 꺼야 하나요?”


“아뇨. 곧 있으면 해가 떠오를 테고, 지금까지 아무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은 걸 보니, 아마도 방음벽 바깥으로는 불빛이 보이지 않는 모양입니다.”


“든든하네요. 이 방음벽이.”


“뭐, 지금 상황에선 그런 셈이죠.”


마스는 손전등의 머리를 뒤로 돌렸다.


“다들 준비되셨습니까?”

     

첼리스트가 기타리스트의 어깨를 주무르고 있었다.


“좋습니다. 다들 가십시다! 1번지로!”


그리고 마스는 슈크림을 두르고 있던 필름 종이를 방음벽과 콘크리트 사이에 깊숙이 밀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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