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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영강 Aug 22. 2024

헷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내

헷의 집에는 흰색 모자로 가득했다. 어디에든 모자가 있었다. 현관, 창가, 침대, 욕실, 심지어 냉장고까지. 헷은 으레 짐작하고 있었다. 동생이 대신 가겠다고 한 순간부터, 동생이 상황을 보고하겠다는 등의 핑계로, 추락한 가더의 드론 한 대를 분해할 때까지. 헷은 피범벅이 된 몸을 내려다보며 가지런한 호흡을 유지했다. 그리고 다시금 수신함으로 날아온 메시지를 처음부터 천천히 읽었다.


내일.


헷은 소리 내 말했다.


“내일.”


그리고 한 번 더 말했다.


“내일.”


세 번은 없었다. 헷은 한 손의 악력만으로 아귀에 쥐인 통신기를 산산조각 냈다. 그리고 그는 곧장 부엌으로 갔다. 헷은 입으로 위스키를 열며, 아직 물기가 남아 있는 잔에 얼음 없이 반을 채웠다. 그리고 한 손을 싱크대에 내밀고 그 위로 남은 위스키를 모조리 흘려보냈다. 큼지막한 파편 하나와 손으로 뽑을 수 있을 듯 말 듯 한 파편 두 개가 손바닥에 박혀 있었다. 헷은 빈 병의 주둥이와 엄지를 집게 삼아 큰 것부터 뽑아냈다. 시간이 걸리는 건 작은 놈이었는데, 그 역시 결국은 헷의 손바닥에 오래 머물지는 못했다. 그리고 헷은 남겨 둔 잔을 한 번에 들이켰다. 이제 헷은 앞으로의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확실히 인지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헷은 눈을 내려 손목에 걸린 시계를 바라봤다. 오후 5시. 헷은 방으로 가, 외투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무늬가 없는 브라운 계열의 뿔테를 가볍게 코에 얹었다. 헷은 이제 새벽이 되기만을 기다릴 것이다. 헷은 신발 끈을 단단히 죄었다. 신발장 바로 옆에 냉장고가 있었다. 헷은 손을 뻗어, 먼지 쌓인 흰색 모자를 그대로 푹 눌러썼다. 문이 쾅 소리를 내며 닫혔다. 내부의 불은 하나도 꺼지지 않았다. 커튼 역시 몽땅 열려 있는 상태였다. 빌라 출입문으로 나온 헷은 스무 개는 넘어 보이는 열쇠 꾸러미에서 차량 열쇠를 촉감만으로 골라냈다. 차에 오른 헷은 전속력으로 달렸다. 결코 한산하지만은 않은 저녁 도로가 헷을 반겼다. 뒤에선 시끄러운 클랙슨이, 앞에선 더 이상의 양보는 없다는 듯 비상등이. 그들은 약속한 것처럼 헷의 차량을 둘러싸려 했다.


“아직도 교통 가더가 있는 줄 아나, 머저리 새끼들.”


헷은 액셀을 밟았다. 그리고 핸들을 급격히 틀어 그들의 모서리를 공략했다. 범퍼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헷은 가운뎃손가락으로 비상등을 누르며 창밖으로 팔을 내밀어 그를 흔들었다. 그리고 헷이 도착한 곳은 1번지라고 하기엔 다소 외딴 장소로 보이는 건물이었다. 황토색 벽돌이 양옆으로 길게 붙어 있었다. 창문이 많았다. 크기는 벽돌 하나와 맞먹을 정도로 매우 작았다. 1번지의 누군가에게 묻는다면, 백이면 백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그냥 좀 오래된 주택 아니에요?’


차에서 내린 헷은 두리번거리며 미행이 없나 확인했다. 그리고 다시 열쇠를 꺼내, 가 쪽에 자리한 녹색 철문을 열었다. 길쭉하게 뻗은 복도, 다닥다닥 매달려 있는 알전구들. 헷은 복도로 들어와서 철문을 안쪽에서 잠갔다. 뚜벅뚜벅 구두 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사위는 고요했다. 일전에 퓨티가 워블을 찾아 나섰을 때처럼 어느 한 사람도 소리 내지 않았다. 헷은 열쇠를 뒤로 넘겨 뒷짐을 진 자세로 걸음을 내밟았다. 찰랑이는 소리가 긴 복도를 따라 번져 나갔다. 그리고 그 메아리는 퓨티와 워블이 있는 곳에서 멈추었다. 눈을 뜬 건, 워블이었다. 워블은 퓨티를 발견하자마자 그녀의 얼굴에 손을 올렸다.


“…퓨티.”


그리고 워블은 신음했다. 채찍에 찢겨나간 등의 고통이 엄청난 모양이었다. 워블은 다시금 퓨티를 부르며 그녀의 뺨을 문질렀다. 퓨티는 미동하지 않았다. 워블은 퓨티의 목에 손을 얹어 맥박을 확인했다. 그리고 워블이 퓨티의 숨을 확인하고는 손을 떼려는 찰나, 감옥의 문이 덜컹 열렸다. 헷은 워블을 뚫어지게 쳐다보다, 주먹으로 문을 힘껏 쳤다.


“지금부터 말을 하는 사람은 혓바닥을 자를 거야. 지금부터. 당장 시작이라는 뜻이지. 배운 사람들이니까 내 말을 잘 이해했을 거라 믿어. 자, 시작.”

     

헷이 문고리에 열쇠를 걸며 말했다. 그와 동시에 워블은 빠르게 행동했다. 워블은 속으로 되뇌었다. 이건 게임이야. 재수가 없어서 걸려 버린 게임. 내가 주인공이야. 주인공은 악당에게 당하는 수밖에 없어. 시키는 대로 하자. 그리고 워블은 창 아래, 벽면에 세워져 있는 퓨티의 백팩을 발견했다. 한 번의 움직임에 큰 심호흡 한 번이 뒤따랐다. 헷은 제자리에 쪼그려 앉아 문고리에 걸린 열쇠를 손가락으로 튕기며 구경했다. 워블이 꺼낸 건 얇은 옷과 그를 동여맬 수 있는 밧줄 같은 것들이었다. 정확히는 속옷에 들어 있는 고무밴드가 그녀의 목표였다. 워블은 온몸을 부들거리며 퓨티의 옷을 찢었다. 그리곤 얇은 가지처럼 길게 엮은 그것을 퓨티의 입에 집어넣었다. 그때, 퓨티가 머리를 흔들었다. 그에 워블은 그녀가 깨는 게 아닌가 싶어 움직임을 잠시 멈추었다가, 퓨티의 의식이 돌아오지 않을 걸 확신하고는 하던 작업을 마저 이어 나갔다. 워블은 퓨티의 뒷머리를 빼내어 매듭을 마무리 지었다. 이제 퓨티는 의식이 돌아온다고 하더라도 말을 할 수 없다. 이제 자신의 차례였다. 워 블은 쓰고 남은 옷의 조각을 여러 겹 포개어 대충 입 안을 채웠다. 그리곤 확인했다.


“……?”


헷은 인정한다는 눈빛을 워블에게 전달했다.


“그래, 의성어까진 허락해 줄게. 정말이지 가상한 노력이야.”


워블은 두 차례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 둘은 내일까지만 그렇게 하고 있어. 내일은 아주 중요한 날이거든. 나에게도, 너희에게도.”


그리고 헷은 열쇠 꾸러미를 챙기며 계속해 말했다.


“오늘 하루 정도 굶는다고 죽지는 않을 거야. 정신력을 조금 더 발휘해 봐. 그 정도는 할 수 있잖아, 안 그래?”


헷은 문을 닫았다. 철창 사이로 들어오던 빛줄기가 어느새 약해져 있었다. 헷은 발걸음을 떼려다, 잊은 게 떠올랐다는 듯이 몸을 돌렸다. 워블은 퓨티를 쓰다듬고 있었다.


“12시간 뒤에 보자고.”


그리고 헷은 손바닥 크기만 한 물병 두 개를 안으로 밀어 넣었다. 워블의 심호흡 소리가 다시금 작은 감옥을 채웠다. 워블은 문 앞에 주저앉은 채로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물 한 병이 순식간에 바닥을 보였다. 워블은 멍청한 여자가 아니다. 아마도 계획하에 벌인 일일 것이다. 워블은 오른쪽 팔로 남은 물병을 퓨티가 있는 곳으로 강하게 때렸다. 물병이 퓨티의 손에 정확히 안착했다. 그리고 워블은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퓨티는 꿈을 꾸고 있었다. 꿈은 달콤하고, 아름다웠다. 온갖 네온사인이 물에 비치며 하늘의 별을 흉내 냈고, 매혹의 자태를 뿜다가 물감의 색깔이 풀리듯 물속에서 사라졌다. 다음 장소는 계곡이었다. 힘찬 물줄기가 끝없이 흘러내리는 곳. 소리는 경쾌하게 이어졌다. 퓨티는 이제 자신이 마을에 있는지, 시티에 있는지, 분간이 가질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 포의 울음, 단락에서 퓨티는 눈을 떴다. 아주 길고 찡한 두통이 이어졌다. 퓨티는 자동으로 이마 위로 손이 갔다. 아직 그녀에겐 주변을 살필 만한 겨를이 없었다. 퓨티는 바닥을 손으로 쓸며 하얀 모래가 있는지 확인했다. 모래는 느껴지지 않았고, 차갑고 매끈한 촉감이 그녀의 손을 스치어 지나갔다. 방이 바뀌었구나. 그리고 퓨티가 입마개의 존재를 알아차린 건, 턱으로부터 찌릿한 통증이 올라오는 게 느껴질 즘이었다. 퓨티는 바닥에 누운 채로 더듬더듬 입 주위를 만져 나갔다. 퓨티는 그것이 속옷이라는 걸 금방 알아차렸다. 퓨티는 곧장 자신의 몸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때, 문 앞에 쓰러져 있는 워블을 발견했다.


“…!”


워블 씨!


퓨티는 한달음에 워블의 곁으로 갔다. 그리고 퓨티는 거의 알몸인 것과 다름없는 워블의 옷매무새를 다듬어 주었다. 다음으로 그녀가 발견한 것은 워블의 입을 가득 채우고 있는 천 쪼가리들이었다. 퓨티는 그를 손으로 빼려다 멈칫했다. 이유가 있을 거야. 협상을 한 거겠지. 그리고 퓨티는 빈 물병을 보며 생각했다. 물을 주는 대가로 입을 막기로 했나? 애초에 입을 왜 막으려는 거지? 언제는 입을 열라고 하더니, 입을 열지 못하게 했다…, 뜻을 모르겠어. 하지만 입을 열면 안 되는 상황이라는 건 알 것 같아. 퓨티는 고개를 돌리며 웅얼거렸다.


“……”


그래, 물은 두 병이겠지. 퓨티는 물병을 향해 사뿐히 걸음을 내밟았다. 그리고 확인했다. 열린 흔적이 있는 병인 지 아닌지를. 눈으로는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퓨티는 조심스럽게 뚜껑을 열었다. 물을 마시는 방법은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천을 적셔 물기를 빨아들이는 것. 퓨티는 그렇게 했다. 병의 입구를 손으로 막고서는 가는 물줄기를 입으로 떨어뜨렸다. 천은 서서히 젖어 갔다. 그리고 혀로 물기가 느껴질 때쯤 퓨티는 병을 바로 세웠다. 식도를 충분히 적시지는 못했지만, 그런대로 마른 입을 축축하게 만드는 데엔 충분했다. 입이 축축해지자 허기가 밀려왔다. 따뜻한 밥을 먹었던 게 언제였더라. 이제 배에서 꼬르륵 소리조차 나지가 않아. 지쳤어. 왜 하필 이 사람들을 만난 거지. 그리고 내일이면 정확히 일주일이 되는 날이야. 우리가 떠난 거라고 생각할 테지.


“…”


워블 씨.


“……”


좀 일어나 봐요.



“……”


할 얘기가 잔뜩이라고요. 이제 어떻게 하죠. 지켜 준다는 약속이 있었잖아요. 약속이 깨어졌어요. 이제는 입까지 막혀 버렸고요. 저흰 정말 시티에서 살아갈 수 있는 걸까요. 저는 살고 싶어요. 시티의 삶을 누리고 싶어요. 이렇게 끝날 거였으면 마을을 떠나지 않았을 거예요. 그냥 평생을 참으며 살면 되는 거였으니까. 근데 이젠 그 선택지마저 사라져 버렸네요. 어딜 가든 우린 도망자 취급을 받겠죠. 마을에서도, 시티에서도. 애초에 1번지로 오는 게 아니었어요. 저희는 차곡차곡 올랐어야 했어요. 58번지부터 하나씩, 하나씩. 너무 급하게 올라온 나머지, 벌을 받은 거예요. 방금은 아버지께서 저를 붙잡던 밤이 나오는 꿈을 꾸었어요. 꿈이 어찌나 생생한지 눈을 뜨기 전까지는 내가 아직 마을을 떠나지 않았구나, 라고 착각했지 뭐예요. 그래도 눈이 떠졌을 때, 후회가 밀려오진 않았어요. 제 선택이고, 제 욕망이었으니까요. 다만, 지금 상황이 안타깝게 느껴질 뿐이에요. 워블 씨는 그 아이를 오래도록 보고 싶으셨을 텐데…


퓨티의 마음속 소리는 워블에게 닿지 않았다. 워블은 지친 숨소리를 냈다. 퓨티는 빈 가방을 끌어안고 워블의 옆에 나란히 누웠다. 창살에 들던 구슬만 한 빛줄기는 차차 힘을 잃어 갔다. 언젠가 한 번 무지개가 보이는 시간이 있었는데, 비스듬히 누워 있는 두 여인의 눈꺼풀에 잠시 머물다가 사라졌다. 그리고 어둠이 빛을 완전히 밀어냈다. 복도의 알전구가 미약한 밤바람을 따라 차례대로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그들이 좌우로 흔들릴 때면 감옥 문이 낮과는 다른 빛깔을 냈다. 퓨티와 워블이 갇힌 곳의 문은 검은색이었다. 전구의 빛이 없었더라면 그곳은 아마 막다른 길처럼 보였을 것이다. 창살로 강한 바람이 불어왔다. 알전구들이 부딪치며 복도가 시끄러워졌다. 퓨티는 그 소리에 눈을 떴다. 깊은 잠이 아니었기에, 그 정도의 소음은 퓨티를 잠에서 깨우기에 충분했다. 눈을 뜬 퓨티는 크게 숨을 내쉬며 몸을 일으켰다. 여전히 머리로 두통과 어지러움이 있었지만, 그것 은 이제 큰 문제가 아니었다. 퓨티는 창살을 양손으로 잡으며 너머의 풍경을 바라봤다. 밖은 밝았다. 각양각색의 색을 머금은 건물들이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불을 밝히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퓨티의 발목으로 손길이 찾아왔다.


“퓨티.”


워블은 물고 있던 옷들을 빼내어 있었다. 퓨티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으며 워블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워블은 퓨티의 입을 만지며 말했다.


“미안해요, 퓨티.”


“이건 어쩔 수가 없었어요.”


퓨티는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눈가엔 이미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일종의 게임이라고 생각해요. 모자 쓴 사내가 변했더라고요. 원래는 조금이나마 신사적인 사람이었는데. 어느 부분에서 화가 난 건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우린 지금 이렇게 있어야 해요. 아무 말 없이, 어디로도 도망가지 않으며.”


퓨티는 다시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퓨티는 눈물을 떨어뜨리며 워블의 등을 조심스럽게 쓸어내렸다. 워블은 두 눈을 감으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괜찮아요. 죽지 않아요.”


“자식을 먼저 보낸 값이라고 생각하고 맞았어요.”


퓨티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꾸했다.


“……”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이쪽이 마음이 더 편안하답니다.”


그리고 워블은 퓨티를 향해 문을 가리켰다. 퓨티는 손가락으로 문을 가리켰고, 워블은 네, 라고 대답했다. 퓨티는 살금살금 문으로 걸음을 옮겼다. 워블은 문고리를 손으로 돌려 보라는 시늉을 보였다. 퓨티는 시키는 대로 행동했다. 워블이 보였던 손짓과는 돌아가는 범위가 달랐다. 퓨티는 고개를 돌려, 여기서 더 이상 돌아가지 않는다는 제스처를 보였다. 워블은 한숨을 내쉬며 미소를 지었다. 퓨티는 자리로 돌아갔다.


“…?”


어떡하죠? 퓨티는 물었다.


“기다려야죠. 밖에서 문을 열어 주길.”


워블이 대답했다.


“……”


내일이면 일주일이에요.


“큰일이네요. 그 사내도 말했거든요. 내일 중요한 일이 있을 거라고. 어디서 정보가 샌 걸 수도 있겠어요.”


워블은 또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소년이 걱정이네요. 카리브 양도 그렇고요.”


“…?”


없을까요?


“방법이요? 없어요. 우린 걸려도 한참 잘못 걸린 거예요, 퓨티. 내 예상이 맞다면 우리를 인질로 삼으려는 걸지도 몰라요. 쉽게 설명하면 세력이 나뉘는 거랍니다. 장벽을 넘으려는 사람들과 그것을 막으려는 사람들로.”


퓨티는 물었다.


“……?”


싸움이 벌어지는 건가요?


“맞아요. 우리가 있던 쪽이 소수예요. 수적으로 많이 밀리는 상황이죠. 하지만 1번지에 산다고 해서 모두가 멍청하지는 않을 거예요. 비록 그들이 가더에 빌붙어 부유함을 가지긴 했다지만, 가더들이 떠난 지금으로선 상황이 위태로운 건 매한가지니까요.”


그때, 워블은 급히 말을 멈추고서 퓨티의 손을 잡았다.


“쉿. 아무 말 하지 말아요.”


워블이 천을 입에 쑤셔 넣는 순간, 문이 열렸다. 헷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뭐라 뭐라 하던데, 내가 잘못 들은 건가?”


헷의 손에는 쇠로 된 목줄이 쥐여 있었다. 그는 심각한 표정으로 목줄을 바닥에 쾅 찍고는 이어 말했다.


“아, 내가 그걸 설명 안 했구나. 내가 왜 이렇게 화가 났는지.”


워블은 일전의 길가에서와 마찬가지로 퓨티를 뒤로 보냈다.


“네년들을 꾄 친구들을 만나러 갔어. 내 동생이.”


“원래는 내가 가는 걸로 돼 있었는데, 걔가 나서더라고.”


헷은 퓨티와 워블 쪽으로 한 걸음 다가서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특히, 워블을 바라보며 말했다.


“통신기를 서로 나눠 가지고 있었는데, 연결이 끊겼어. 이게 뭘 의미하는 걸까. 동생이 죽었다는 거야. 네년들 친구 중 한 명이 내 동생을 죽였다는 뜻이지. 뭐, 사실 나는 어느 정도 예상했었어. 걔는 분명 신분을 드러냈을 거야. 원래 성미가 급한 친구거든. 위장에는 소질이 없는 애지.”

     

헷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지금쯤 눈에 불이 나도록 나를 찾고 있을걸? 왜냐면 내가 유일한 사람이거든. 너희가 내일 장벽에서 무언갈 실행하려는 걸 아는. 그러니까, 너희도 내 계획에 동참해 주었으면 해.”


그리고 워블이 턱을 까딱거리며 물음을 표시하자, 헷이 답했다.


“별로 어려운 거 아니야. 그냥 실험? 그 정도로 이해하면 돼.”


워블은 다시 턱을 까딱였다.

“아. 방식은 좀 야만적일 거야. 그리고 약간의 치욕스러움도 뒤따를 거고. 뒤에 아가씨는 알려나 모르겠는데, 이건 개 목줄이야. 언젠가 책에서 읽은 적이 있어. 이걸 사람에게도 걸 수 있다는 걸 말이야.”


헷은 소매를 걷어 시계를 봤다. 새벽 4시. 분침은 숫자 6을 천천히 지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헷은 쇠사슬을 둘에게로 던졌다.


“목에 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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