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을 맞이하며.
그리고 아들의 생일을 축하하며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다.
계획할 수도 없고 계획하지도 않았지만 우리 아들은 기가 막히게 예정일을 하루 넘긴 다음날인 광복절인 8월 15일 날
태어난 것이다.
많은 의미를 가진 뜻깊은 날이고 원래 기쁜 날이지만 우리
부부에게 있어서도 더욱 축복이 넘치는 날로 다가온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들 스스로 본인 생일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나에게도 큰 기쁨으로 다가온다.
아들의 태명은 축복이었다.
내가 지은 것이었는데 보통 흔하게 많이들 붙이는 태명이기도 하지만 내가 붙여준 ‘축복이’라는 태명은 나에게 나름 깊은 이유가 있었다.
21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맞이하게 된 혼전임신.
처음엔 진정한 축하를 받지 못했다고 생각한 나와 그리고
내 마음을 누구보다 잘 느끼고 있을 아이를 위해 해주고 싶은 말, 듣고 싶은 말이었다.
‘너는 축복받은 아이야’
그래서 광복절에 아들이 태어나고 나서야 아, 태명을
광복이라고 할 수도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아들은 나에게 아주 특별한 존재이다.
누구에게나 자식은 특별한 존재이겠지만-
내 인생을 구해준 존재임에 나에게는 그 누구보다도 소중하고 감사함을 느끼게 해주는 존재이다.
아들을 낳고 단 한 번도 단 한순간도 삶이 싫어지지 않았으니
20살, 첫 사회생활 시작과 주변에 문제들이 겹쳐 살아가는 게 지옥 같던 시절이 있었다.
짧지 않았고 그로 인해 공황장애가 생기면서 심리적으로
안 좋았고 매일이 불안한 나날들이었다.
말 그래도 정말 죽지 못해 살아가던 지난날들.
그러면 안 되는 거 알면서도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를 건널 때면 ‘나는 왜 안 죽는 걸까’ 하며 나를 피해 가는 차들을 보면 원망스러운 마음까지 품던 정말 힘든 시기였다.
거기다 21살 결혼을 하면서 초반부터 쉽지 않았다.
모든 것이 말이다. 가뜩이나 갑작스레 바뀐 환경 속에서 두려움이 가득이었는데 남편마저 그땐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닌 거 같아 충격이 심했다.
또, 주변 어른들과 사람들.
해나가야 하는 관계 속에서 정말 많이 울기도 울었지만 그
또한 아들을 보며 버티고 지나갈 수 있었다.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면서도 온전히 아들만을 보며 살아가던 그 순간이 너무 소중했다.
그렇게 아들 덕분에 버티고 나니 내 인생에 최고의 순간들이 펼쳐졌다. 철없던 남편은 생각과 행동이 깊어졌다.
많은 우여곡절 겪은 고난 끝에 강해진 마음과 순간들이 모여 지금의 행복의 길을 마련해 줬다고 한치에 의심도 없이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번 아들의 생일은 친구들을 불러 처음으로 파티를 해준다.
꾸미는 거든 이벤트에는 아주 젬병인 엄마로서 특별히 해줄 건 없지만 즐길 수 있는 시간들을 많이 누리게 해주고 싶은 생각만큼은 철저히 준비되어 있다.
초등학교 저, 고학년 네 명을 데리고 먹는 파티 메뉴가 초밥이라는 것이 약간 맞나? 싶지만 일 년에 한 번 그것도 특별하고 의미 있는 날이기에 기꺼이 카드를 긁어보려 한다.
모두가 행복한 순간으로 느껴지고 기억되는 날로 남길 바라는 마음이지만 그보다 더 바라는 건 아들에게 엄마, 아빠의 마음이 전달되며 행복하고 따뜻한 순간으로 마음속 한쪽에 자리 잡혀 힘든 순간을 마주할 때면 조금씩 꺼내어 회복되고 굳건해지는 영양분이 될 수 있길 바라고 있다.
출산 당시, 힘을 주지 못하는 나에게 올라온 세명의 간호사들 이 팔꿈치로? 나의 배를 누르던 순간 속 그 겪어야 하는 고통을 이겨낸 나 자신에게도 큰 박수를 쳐주고 싶은 그런 날이기도 한광복절, 아들의 생일, 나의 출산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