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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이라도

by 은조

드디어 길고 긴 추석 연휴가 끝이 났다.

언제나 연휴는 기다려지고 설레는 날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는데.. 이번엔 좀 달랐다.


물론, 첫 시작은 좋았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긴 시간을 보낼 수 있음에 말이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이 있음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도 뇌리에 박히게 되었다.


와, 정말 나 스스로에게 놀랐다.

아무리 연휴라지만 이렇게까지 게으름을 피울 수 있다는 것에- 분명 나는 아무리 오래 자려고 노력해도 아침 8시면

오래 잤다고 더 자고 싶어도 못 자는 사람이었는데 아니었다. 아침 10시는 기본 11시 넘어까지 자거나 깨어나도 침대에

비비적거리고 있다니 그렇게 늦게 일어나니 모든 것이 엉망이었다


그나마 애들이 이제 냉장고에서 먹을 거 찾아 먹을 수 있는 수준이 되었기에 다행이었지만,

내가 일어나지 않으니 아이들 손에선 핸드폰이 눈에는

티브이가 놓치지 않고 따라가고 있었다

어우, 너무 보기 싫은데 그러면서도 움직이지 않는 내가

더 보기 싫었다.


또, 그렇게 늦게 일어나니 하루가 너무 빨리 지나가는 것이다

무의미하다고 느껴지기도 하고 시간을 너무 허투루 쓰는 거 같기도 하면서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연휴가 끝나는 전날 밤 침대에 누워 계속 되새겼다

내일 아침은 무조건 꿈툴 거리지 말고 침대에 삐대지 말고

눈뜨면 바로 일어날 것.

아니, 눈을 늦게 뜨면 말짱 꽝이니 아들이 드림렌즈를 빼달라고 깨우면 빼주고 다시 잠들지 말 것


아침이 되었고 아들이 나를 깨웠고 드림렌즈를 빼주었다

그리고 자연스레 침대에 다시 눕히는 몸.

이렇게 침대는 위험한 것이었다

잠시 눕혔다가 번쩍 일어났다. 정말 번! 쩍!


역시나 습관처럼 다시 핸드폰을 하던 아이들

내려놓을 것을 말하고 아침밥을 챙겨주었다.

이번에 시댁에서 음식을 하지 않았기에 먹을 것이 없었는데 전날 저녁 엄마가 딱! 고기와 나물들을 가져다주어 그걸로 채워주었다. 밥을 다 먹고 정말 오랜만에 나서는 운동길


원래 많이 먹어대지만 연휴에는 얼마나 더 먹어댔는지 참.

나 말이다 -

줄넘기라도 뛰고 오늘도 김밥을 사들고 집으로 왔다.

아이들 뒷정리해주고 나는 바로 나가 아파트 계단 타기 운동을 시작. 정말 하기 싫었지만 아직까지는 조금의 양심은 남아있기에 나설 수 있던 것.


땀을 줄줄 흘리고 개운하게 씻고 집 정리한 뒤 간식 조금

먹여 아이들은 학원으로 출발

와! 드디어 갔다. 갔어-

아직까지도 방학이라 붙어있지만 그나마 학원이라도 가면서 떨어지는 시간이 있었는데 연휴 동안은.. 뭐.. 와.. 정말 내내 붙어있으니 죽을 맛이었다


나도 죽을 맛이었지만 아이들은 더욱 그랬을 거다

화가 많아졌으니 말이다.

오늘 아침에도 남편이 나에게 물었다. 당신 왜 화가 나있어?

화가 났다. 별거 아닌 거에도 화가 났고 그렇게 묻는 거에도 화가 났다


그 화가 거짓말처럼 아이들이 학원을 가고 나니 사라졌다

학원에서 돌아온 아이들이 그렇게 반갑고 예쁠 수가 없었다

저녁밥상을 정성껏 차려주었다. 갈비도 구워주고 각종 나물 반찬에다 후식은 칼질이 서툴러 별로 좋아하지 않는 두꺼운 배를 삭삭 깎아서 주었다.


그리고 더욱 마음이 신나는 건 내일, 바로 내일!

금요일, 아이들이 할머니네 집에 가서 잔다는 것이다

와우, 이게 무슨 행운일까

아이들이 강아지 보고 싶어 원해서 가는 거지만

이렇게 고마울 수가!


그렇지만 나는 남편이 올 때까지 심심하긴 하다

다만 아이들이 없는 고요함의 공기와 자유스러운 몸을

즐기는 거뿐. 하지만 역시나 좋지 않을 수가 없다


아들이 자기 전 나에게 물었다

-엄마, 요즘은 왜 이렇게 리액션을 안 해줘?

-무슨 리액션? (알면서도)

-아니, 전에는 우리가 이렇게 말하면 같이 웃고 그랬는데 요즘은 안 그러잖아.

-아, 엄마도 기분이 안 좋을 때가 있어서 그런 건데 이제

그런 부분 생각할게

-아~ 알겠어 괜찮아


반성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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