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부디
앞에서도 말한 적 있지만 두 살 즈음 우리 부모님은 이혼을 하셨다. 그로 인해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는 친아빠를 처음 만난 건 친오빠의 초등학교 졸업식이었다.
그다음으로 만난 건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우리 외할머니랑은 인연을 놓지 않고 지내던 아빠가 내 번호를 물어 나에게 직접 연락이 왔던 중학생 때였다.
그때부터 연락이 되었고, 많이 만날 순 없어도 꼭 나의 생일이나 기념일엔 문자라도 주고받으며 아빠와 관계를 이어갔고 그 시간을 보내며 항상 아빠 마음속엔 나란 존재가 크다는 것을 진심으로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어떤 때는 오빠랑 같이 셋이 만나기도 했고 어느 날은 나의 중학교 친구와, 또 어느 날은 사촌과 같이 만나기도 했었다.
아빠는 둘이 보는 걸 더 원했겠지만 그때는 불편하고 어색하다는 마음이 앞서 항상 누구든 같이 데리고 가야 했었다.
심지어 아빠 옆에 앉는 것도 어색해 항상 친구와 앉았고 마주 보며 밥 먹는 것도 어색해 아빠의 대각선에 앉았으니-
아빠가 서운해한다는 걸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그때 나의
반응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말은 아빠고 나를 항상 기억하며 노력하는 모습은 있었으나 사실 나는 아빠를 좋아하면서도 원망하는 마음이 컸다.
왜, 도박을 해서 잘살고 있던 집을 홀랑 말아먹었나.
왜, 아빠의 잘못된 행동 하나로 집에 빨간딱지가 붙어야 했고
그로 인해 왜 엄마가 받지 않아도 되는 모욕들과 상처들을 받게 했어야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으니 미운 마음이 가득했다.
그렇지만 나를 잊지 않고 만나기만 하면 미안하다고 하며
눈물을 흘리는 아빠를 미워만 할 순 없었다. 본능적으로
그래서 스스로 헷갈리는 나의 마음을 감당하고 조절하기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어디서 살고 있는지. 정확히 무엇을 하며 누구랑 살고 있는지 아무것도 몰랐지만 아빠가 내 곁에 가까이 자리하고 있다는 확신에 더 이상 아빠에게 자세히 묻지 않았고, 아빠도 나에게 세세히 말하길 꺼려한다고 느꼈었다.
그 이유에는 뭔가 딱 내세울 것이 없으니 그러지 않았을까
지금에서야 드는 생각이다.
나는 단지 그렇게 가끔 만나서 안부를 묻고 감정을 나누는 것만으로 만족했는데 아빠는 아니었나 보다.
무슨 일인지 그때도 몰랐지만 아빠는 성인이 된 오빠에게 돈을 요구했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는 더 이상 아빠와 함께하는 미래는 보고 싶지도 보이지도 않았다.
그 후 아빠는 나에게도 연락을 하지 않았고 그렇게 또 자연스레 우리는 서로 보지 않고 살아야 하는 사이가 되었다
아빠 없는 일상이 다시 당연하다고 느끼며 살아가던 그때
나는 고등학생이 되어있었다
정말 어느 날이라는 단어뿐이 맞지 않게 정말 어느 날,
학교에 있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모르는 번호는 거의 받지 않지만 뭔가 받아야 할 거 같은 느낌이 들어 받아보니 내 이름을 말하며 맞냐고 묻는 상대방에게 맞다고 하며 누구냐고 되물었다.
그 상대방은 보험회사 직원이라고 했고 아빠 이름을 말하며 아빠가 보험을 들었는데 수령인을 나로 했다며 확인차 연락을 했다고 하며 통화를 끝내려는 그 순간 나는 떨며 물었다. 아빠가 죽었냐고-
아니라는 대답에 안심하며 전화를 끊었던 그날의 기억이
계속해서 생각난다.
그 전화를 받고 그래도 아빠가 나를 딸이라고 생각하고 나를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구나 싶어 원망하던 마음이 약해지긴 했지만 언젠가 누군가에게 이렇게 뜬금없이 아빠의 죽음
소식을 들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두려워지기도 했다.
그 전화를 기점으로 지금까진 아빠에 관한 전화를 받지 못했다. 아빠를 만나지 못한 지 15년도 더 지난 시간을 보내가고 있다
아빠라는 존재를 생각하면 양면의 감정이 든다.
여느 아빠와 딸이 지내는 것처럼은 못해도 그냥 무슨 날들이 있을 땐 연락하며 지내고 살아가고 싶은 평범한 일상을 꿈꾸는 마음과 괜히 다시 연락하게 되어 나에게 부담이 되는 존재로 다 가아면 어쩌나 싶은 이기심도 생겨난다.
연락할 방도는 없지만 만약 그럴 수 있는 상황일지언정 쉽게 번호를 누를 수 없을 거 같은 현실사이에서 계속해서 갈등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부디 아빠가 어디서 있든 그 안에서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길 진심으로 원하는 바. 이젠 또 다른 누구에게도 절대 상처 주지 말고 착실히 살아가기만을 바란다.
아빠와 나는 살아가는 동안엔 다시 만나지 못할 가능성이 높고 각자 생의 끝을 달려가야 하겠지만 죽음 끝 어디 간에서는
아무 생각과 감정 없이 마냥 아빠를 반가워하며 함께하는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싶다.
오빠가 부럽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왜냐하면 이런들 저런들 오빠는 아빠와 8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었고 얼굴도 기억하며 같이 보낸 시간의 추억도 가지고 있을 테니-
또, 그 순간에는 꽤 살았던 집도 경험해 보고 멋쟁이 엄마의 예쁘고 싱그러웠던 모습도 봤으니 오빠는 나보다 낫지 않을까?! 그런 생각하며 부러워하며 불평하는 오빠에게 못마땅해하기도 했는데 달리 생각해 보면 오빠는 겪지 않아도 되는 일들을 다 보고 느끼고 받아들여야 했을 것이다
엄마, 아빠와 싸움뿐만 아니라 고모들이 엄마에게 했던 행동들 집 안에 붙은 빨간딱지와 어수선한 상황에서 엄마의 불행슬픔 고난함을 어렸던 오빠가 다 봐야 했으니-
그 기억이 사라지지도 않고 가슴속 응어리가 맺혀있으리라 알게 된 순간부터 오빠를 못마땅해하던 마음이 이해로 변해갔다.
혼자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물었다.
다 기억하는 오빠가 행복한 건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내가 불행한 건가 그 어느 것도
고르고 싶지 않았다. 아니, 차마 고를 수 없었다
아빠? 잘 살아가고 있나요?
하루하루가 왜 이렇게 빨리 지나가고 그 하루들이 모여 한 달일 년이 지나가버리니 점점 아빠에게 들려오는 나쁜 소식이 먼 일이 아닌 거 같아 사실 무섭고 두려워요.
훗날 아빠의 죽음 소식을 받으면 아무리 멀리 있어도 나에게 연락이 오겠지요? 그때 과연 한걸음에 달려갈 수 있을까요? 가서 아빠를 보면 어떤 말을 해주어야 할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아직도 모르겠어요.
또, 그 안에 내가 예상치 못한 상황들이 생겨난다면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눈물이 흐를지 원망하는 눈초리로 아빠를 째려보고 있을지요.
아빠? 아빠가 나에게 했던 말 기억하죠?
교회는 절대적으로 가야 한다고 했던 그 말이요. 이젠 제가
아빠에게 말해줄게요.
이젠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말고 교회 다니며 기도하고 또 기도하세요. 아빠? 아빠는 저에게 항상 그리움에 사무친 존재입니다. 함께 시간을 나누지 못해 아쉬울 뿐이네요.
그러니 다음생에 다시 한번 저의 아빠가 되어주세요
그땐 세상 누구보다 착실하게 살며 저를 지켜주시고 누구보다 저를 사랑을 가득 주세요.
저는 한평생 느껴보지 못한 사랑을,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아빠에게 받는 사랑이란 걸 알고 싶거든요.
진심으로 그런 날이 오길 바랍니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