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그거 나도 잘 알아
몇 달 동안 일을 쉬다 보니 집에 있는 엄마가 당연스레 느껴졌던 아이들. 그러다 본격 다시 출근을 하고 심지어 전에 직장보다 더욱 퇴근시간이 늦어지다 보니 나도, 아이들도 쉽게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여전히
특히 엄마인 내가 올 때까지 저녁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있어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어쩔 수 없이 숙제의 지령만 내린 채 매번 확인은 말로만 하고 피곤에 쩌들어했어도 믿고 안 했을지라도 믿는 상황이 이어졌다
거기다 딸아이는 지난주부터 엄마랑 카페에 가고 싶다고 노래노래를 불렀지만 평일엔 노동에 찌들어 감당하기 어려운 소원이라는 것도 그래서 쉬는 날이 되어야 한다는 것도 잘 아는 딸아이는 그렇게 나의 쉬는 날만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쉬는 날 며칠 전부터 카운터를 세며 아침에 눈을 뜨면서도 저녁에 눈을 감기 전에도 엄마 알지? 엄마 그날 알지? 하며 몇 번의 확인을 마치고 잠이 들었다
하루전이되니 얼굴엔 웃음꽃이 활짝 피었고 잠들기 전엔 어디 카페를 가고 무엇을 먹을 거라고 계획을 이야기하는 딸아이의 얼굴 속 행복이 박혀있는 모습이 전달되어 나까지도 그 순간을 상상하며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엄마와 함께하는 순간을 이토록 애타고 설레하며 기다렸을까? 생각 속 정답은 그렇다였다.
지워지지 않는 기억 속 엄마와 나는 버스 안 제일 위쪽에 앉아 있다. 우리 아이들도 그러는데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들은 꼭 가운데 앉기를 좋아하는데 그곳을 차가 갑자기 급정거하면 구를 수도 있는 안전한 자리가 아니기에 고집부리는 나를 제일 안쪽으로 밀어 앉힌 엄마가 보인다
우리는 어디를 가고 있다.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평소 같으면 절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랬기에 나는 엄마와 어딘가를 간다는 그 설렘의 감정과 그 상황이 잊히지 않는 것일 테니까
한 번은 엄마가 정말 없는 돈이지만 피아노 학원을 보내준다며 나를 데리고 갔고 배우고 오라며 엄마는 먼저 집으로 갔는데 그 후부턴 내 마음속엔 온통 빨리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뿐이라 학원 수업에 집중하지 못했던 게 아직도 생각나고 그 후 학원이 끝나자마자 빠르게 뛰어 언덕길을 올라가고 있는 나의 모습이 선에 선하다.
그렇게 나도 일하느라 항상 매일 늦게 집에 돌아오는 엄마를 어쩌다 한번 집에 빠르게 오는 날만을 기다리며 지냈던 감정이 사라지지 않는데..
이 아이도 그런 거겠지?
엄마와 함께 있는 그 시간이 소중하고 기뻐서 계속해서 기다려지겠지. 그래서 내가 쉬는 날이면 오후 5시 되어야 끝나는 피아노 학원도 가기 싫어하는 거겠지.
이 아이의 마음 또한 나의 마음과 다를 바 없겠지?!
그렇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먹먹해지며 뭔가 이상한 감정이 피어오른다. 내가 느꼈던 그 서글픔을 이 아이가 느끼고 있을 거라는 생각과 내가 누군가에게 이렇게 기다리지고 함께하고 싶은 그런 존재가 되었다는 것에 말이다.
마침내 학원이 끝난 아이를 데리고 콕 집어서 원하던 카페에 갔다. 얼굴엔 기분 좋음이라고 쓰여있듯 활짝 피어있고 주관은 뚜렷해 변함없이 먹고자 했던 것을 선택했다
음료가 나오기까지 기다리며 설레하던 딸아이의 모습
늦지 않게 음료가 나오고 달콤한 초코 마들렌도 함께 먹으며
묻지 않아도 조잘조잘 있었던 이야기를 쭉 펼쳐내려 가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저절로 핸드폰을 손에 쥐고 사진을 마구 찍어댔다
그런 나를 보며 왜 자꾸 핸드폰을 하냐며 서운해하길래
그렇게 찍다가 핸드폰을 내려놓고 눈으로 딸아이를 담기 시작했다. 요밀조밀 모든 것이 다 있는 저 아이가 참으로 신비롭게 느껴진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