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난 시내. 쩡종파이구판(正忠排骨飯),Day 3(3)
이번 여행에서 기대되는 곳을 꼽으라면 바로 "타이난"이다.
많은 블로그나 가이드북에서는 까오슝에서 숙박을 하고 타이난은 하루 정도 코스로 들리기를 추천하고 있다. 그렇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타이베이 이전의 오랜 시간 수도였던 곳. 사진으로 본 고풍스러운 건물, 아기자기한 골목, 맛있는 과일, 따뜻한 이웃들(?). 이런 곳에 어떻게 하루만 머물 수 있지? 4일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알지도 못하면서 괜히 마음이 가서 타이난을 4일 일정으로 잡아버렸다.
그런데.
타이난 역에 내려서 본 타이난의 첫인상은? 그냥 ‘도시’.
차 많고 오토바이 많고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도시'.
심지어 한국의 우리 동네보다 번화하다.
역 근처니까 그렇겠지. 숙소로 가보자.
택시를 타고 주소 적은 종이를 보여드리니, 아무 말없이 출발한다.
"거기 아세요?"
"......."
친절한 타이완 사람들에게 익숙해져 있었는지 대답 없는 기사님께 어색하고 민망하다.
잠시 후, 여기가 맞다며 어느 골목 입구에 내려주고 떠나버렸다. 골목도 내가 생각했던 아기자기한 골목이 아니고 조금은 황량하다.
뭐.. 가보자. 골목에서 번지를 확인하며 더듬더듬 찾아가고 있으려니 자전거를 타고 가던 아주머니가 굳이 내려서 같이 집을 찾아 주신다. 어리바리한 엄마가 집 앞까지 가는 것을 지켜보고 나서야 다시 자전거에 올라탄다. 감동. 나도 나중에 외국 사람들 보면 이렇게 친절할 테다!
한 사람만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니 신기하게도 아담한 정원이 나온다.
타이난의 첫 숙소도 내가 가장 많이 기대했던 숙소였다. 에어비앤비 예약에서 발견한, 타이난의 옛 집을 리모델링한 멋스러운 집. 관광객들이 많이 가는 호텔에서는 조금 떨어져 있지만, 현지인들이 많이 사는 곳에 위치해 있고 관광지인 츠칸로우와도 가깝다고 한다. 저렴한 가격에 한 동을 다 쓸 수 있고, 아이가 좋아하는 복층 구조로 되어있는 집이다.
드디어.
문을 열고 들어가니 홈페이지 사진에 있던 것과 비슷한데 뭔가 다소 어둡다.
“이게 등을 다 켠 건가? 조금 더 밝았으면 좋겠다”
“엄마, 주인이 돈이 없었나 봐.”
복층이다 보니 짐을 어떻게 분리해서 놔야 할지 혼란스럽다. 캐리어를 저 계단 위로 올리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고. 캐리어는 1층에 두고 잘 때 필요한 짐만 챙겨서 올라가는 걸로 정한다.
눈치를 보면서 “어때?” 물었더니 “뭐.. 좋네. 근데 좀 어둡네”라고 한다. 평소에 대체로 “좋은데?” “괜찮은데?”의 반응인 아들 치고는 미지근한 반응이다. 쳇. 아이의 반응에 일희일비.
이제 동네를 둘러보자. 유명한 관광지인 츠칸로우와 가깝다고 하니 그곳을 기점으로 잡고 한번 돌아보면서 저녁을 먹기로 한다. 골목과 복잡한 시내가 공존하는 타이난. 좀 더 시간을 두고 봐야 나에게 다가올 것 같다.
저녁은 숙소에서 멀지 않은 도시락집 쩡종파이구판(正忠排骨飯)으로 정했다. 어느 블로거가 가족들과 함께 방문했는데 아이들까지 모두가 만족한 가성비 최고의 식당이라고 해서 한국에서부터 찜해둔 곳이다. 못 찾을까 걱정했는데 걸어가다 보면 멀리서도 찾지 못할 수가 없을 정도의 큰 간판을 뽐내는 건물이 보인다. 저기다, 가보자!
베스킨 아이스크림처럼 유리 장 안에 반찬이 진열되어 있어서, 손님이 고르면 도시락 그릇에 담아 준다.
“어머 저거 맛있겠다.”
“저것도 맛있겠다.”
계산대에서 메뉴판을 보니 음식 사진과 가격이 쓰여 있는데 반찬은 어떻게 시키는 거지? 아들과 함께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사람들을 구경한다. 배달하는 사람, 시키는 사람 바글바글 정신이 없다.
보자. 사람들이 와서 계산대에서 음식을 시키고 돈을 지불하면 영수증을 준다. 반찬 진열대로 가서 영수증을 제출하고 맘에 드는 반찬 3개를 고른다. 그럼 그 반찬을 담아주고, 아줌마가 영수증에 쓰여 있는 메인 메뉴를 확인하여 넓은 칸에 밥과 함께 담아준다. 가져갈 건지 먹을 건지 선택하면 끝! 파악 완료!
아들은 무언가를 고를 때 신중한 편이라서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미리 선택을 했다. 여행하면서 보통 엄마를 통해서 메뉴를 골랐는데 여기는 직접 ‘골라먹는 재미’가 있어 아들이 좋아했다.
메인으로 ‘치킨 볶음’ 선택 완료. 계산 완료. 영수증 제출. 오케이, 아까 골랐던 반찬 세 개를 찍어보자. 중국어 스터디를 하면서 열심히 외쳤던 “쩨거 这个”(이것)를 드디어 써보는구나.
"쩨거, 쩨거, 쩨거!"
둘이서 175위엔인데 푸짐하다. 오. 정말 가성비 최고!
도시락 집이지만 2층에 먹고 갈 수 있는 넓은 자리까지 있다. 먹고 가자. 위로 올라와 앉았는데 아들의 표정이 좋지 않다. 도시락 뚜껑을 열고 한입 먹더니 배가 고프지 않아서 집에 가서 먹고 싶다고 한다. 삐뽀 삐뽀! 위험신호! 아이가 아프면 여행이고 뭐고 끝이다. 도시락 성공적 주문에 신나 있던 엄마, 벌떡 일어나서 집으로 가기로 한다.
“집에 가서 먹고 싶어? 그래. 도시락이니까 그렇게 먹어도 돼”
그 와중에도 쏟아지면 안 된다고 아들은 도시락을 똑바로 머리에 이고 걸어간다.
아이의 기분을 더 좋게 하려면… 과일이다! 구글맵을 켜고 ‘과일’(水果)을 검색하니 주변에 몇몇 과일 가게가 뜨고 현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과일가게로 간다. 뭘 살지 고민하다가 결국 몇 개의 과일을 조금씩 모아서 파는 모둠 과일을 사서 숙소로 돌아온다. 여러 가지 맛보고 싶을 때, 고르기 귀찮을 때는 모둠 과일이지.
컨디션이 안 좋은가? 배가 아픈가?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도 집에 도착하자 웃으며 말한다.
“엄마 이제 먹자!”
“괜찮아?”
“응. 아까는 안 먹고 싶었는데 이제는 먹고 싶어 졌어.”
이 괴물 같은 회복력.
갑자기 쌩쌩해져서 오늘 새롭게 구입한 음료수를 마시며 시키지도 않은 후기 동영상을 남기고 있다. 내가 걸쭉한 음료수가 콧물 같다고 했더니 웃느라 정신없다. 도시락, 과일, 푸딩. 오늘 사 온 것 다 클리어하고 밝게 웃고 있는 아이. 아휴, 다행이다. 놀란 마음을 진정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