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난근교 /녹색수도(绿色隧道).치구소금산(七股盐山).Day 4(2)
스마트폰 없을 때는 어떻게 여행했더라?
타이난의 복잡한 시내길을 지나니 버스 창밖으로 요트장, 바닷가, 시골길, 시장 등의 다채로운 풍경과 평화로운 타이난 사람들의 일상이 펼쳐진다. 여유 있는 시간도 잠시. 목적지에 다가갈수록 구글맵으로 우리의 위치를 계속 확인하게 된다.
아이를 데리고 있는 옆자리의 할머니가 나처럼 계속 핸드폰을 확인한다. 뭔가 우리는 비슷한 상황이라는 촉이 온다. 괜히 말을 걸며 나의 존재를 알린다.
“다음 역이 녹색터널인가요?”
“네, 맞아요.”
역시! 할머니 포함해서 세 팀 정도가 같은 곳에서 하차했고, 모두 같은 곳으로 걸어간다. 여기 왔으면 모두 같은 곳으로 가는 거겠지? 아들 손을 잡고 쫄래쫄래 쫓아간다.
티켓팅하는 곳에서 이제 곧 출발하는 배는 30분 코스이고, 1시간 정도 기다리면 1시간 30분 코스로 투어를 할 수 있다고 한다. 여기까지 왔는데 1시간 30분은 코스는 타줘야 하는 게 아닐까?
또다시 할머니에게 질척거리며 물어본다.
"뭐 타실 거예요?"
“저희는 30분 코스 투어를 할 거예요. 이다음에 소금산에 갔다가 새를 보러 가기로 했거든요”.
앗! 소금산! 치구(七股)지역에 위치한 소금산은 가보고 싶었는데 시내에서 멀기도 하고, 교통도 불편하고, 막상 가면 볼 게 없다는 소문을 듣고 가지 않으려고 하고 있었다. 그랬는데 할머니가 간다니 귀가 팔랑팔랑하잖아? 다시 그 ‘99번 버스’를 타고 30분 정도 더 외곽으로 나가야 한다. 버스 정류장에 붙어있는 시간표를 보니
소금산에 도착해서 1시간 30분 정도 구경하고, 안핑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을 것 같다. 가볼까? 동행도 있어서 마음이 든든하다.
“아들아, 소금산 보고 싶어? 그런데 여기서 30분 정도 나가야 한다네?”
“응! 보고 싶어! 재미있을 것 같아”(오우, 이런 태도 너무 좋아)
“별로 볼 게 없을 수도 있다네.”(너무 기대할까 봐 하는 수작)
“그래도 가지 뭐” (니가 가자고 한 거다?)
순식간에 다음 일정을 정하고, 우리도 30분 투어 티켓을 끊는다. 이런 게 자유여행의 묘미 아니겠어?
대기실로 들어가니 앉아서 기다릴 수 있게 대기줄에 의자가 죽 놓여있다. 아. 친절도 해라. 출발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인원이 어느 정도 차야 투어가 시작된다고 한다. 그럼 이 친절한 의자에 앉아서 하염없이 기다려야 할 수도 있겠네? 우리는 운이 좋게 잠시 대기하다 바로 출발할 수 있었다.
뭔가 부실해 보이는 구명조끼를 입고 배에 올라탄다. 일부 구간에는 머리 위의 나무가 가려주지만 그렇지 못한 구간에서는 해를 정면으로 받게 되니, 해가 쨍한 날이라면 구명조끼 옆에 놓여있는 챙이 넓은 모자를 쓰면 된다. 항상 앞만 보고 전진하는 나는 내릴 때서야 모자가 있는 것을 발견해서 정작 투어 내내 따스한 햇빛에 노출되어 있었다. 어쩐지 사람들이 비슷한 모자를 쓰고 있더라니.
배에 타면 가이드가 중국어로 설명을 시작한다. 수종과 야생 동물 등을 설명하는데 이해하지 못해도 내 눈으로, 내 느낌으로 주변을 감상하는 데는 무리가 없다. 초록색 레이저 포인터를 쏘면서 설명을 하시니 레이저 포인터가 가리키는 방향을 함께 쳐다보며 저것이 뭔가 특이한 것이구나. 생각하면 되겠다. 그리고 간혹 울창한 나무에 가려서 잘 안 보이는 새나 동물을 가리키기도 한다.
안 들려도 들으려는 노력을 해보면 좋으련만 아들은 배에 타자 마자 가이드가 뭐라고 하건, 귀 닫고 눈 닫고 배에 기대어 자기만의 투어를 한다.
유난히 나무줄기가 휘어진 곳에서는 머리를 부딪칠 수도 있고 셀카봉으로 사진을 찍다가 나무에 걸릴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가이드가 조심하라고 “오른쪽!” “왼쪽!” 이렇게 알려주는데, 머리 위에 아슬아슬 닿을 듯한 나무를 피하며 지나가는 것도 은근히 스릴 있고 재미있다.
다시 출발지로 되돌아가기 전에 잠깐 배를 멈추고 사진 찍을 시간을 준다. 그때는 조금 더 자유롭게 일어나서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멋진 자연경관 감상도 하고, 반대편으로 배가 지나가면 손도 흔들어주고, 머리 위의 나무를 피하며 사진 찍기도 하고 하다 보면 어느새 투어가 끝난다.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30분 정도의 투어가 적당한 듯하다.
아까 하차했던 인원들이 모두 함께 99번 버스를 기다린다.
“우리도 가려고요. 소금산이요”
“아! 그래요? 야생 새 서식지는 안 가요?”
"새... 도 보러 갈까?"
강하게 고개를 젓는 아들. 동물이랑 별로 안 친하답니다.
함께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으니 한결 더 즐겁다. 7살 손주를 데리고 타이난에 놀러 와서 자연 탐방을 하고 계시다는 열혈 할머니!
“방학 아니잖아요?”
내가 수없이 들었던 질문을 나도 하고 있네.
“유치원 안 가고 놀러 왔어요”
하며 호방하게 웃으신다. 아우. 존경합니다, 할머니.
이 동네가 과거에는 천일염 최대 생산지였다고 한다. 버스를 타고 가다 보면 작은 염전도 볼 수 있다.
버스에서 내리면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이 그 유명한 하얀 소금산이다. 이제 우리에게는 한 시간 삼십 분이라는 시간이 있다. 그 버스 놓치면 두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패키지를 싫어해서 자유여행을 하고 있는데 일정이 거의 패키지와 다를 바 없잖아. 쩝.
우선 하이라이트인 소금산부터 올라가 보자. 놀랍게도 입장료는 무료.
말이 소금'산'이지 '언덕' 정도 된다. 하지만 벌판에 우뚝 솟아있는 소금으로 이루어진 하얀 산은 보기 드문 장관이 아닐 수 없다. 바닷가에 물이 빠진 것처럼 하얀색의 소금들이 돌 위에 다양한 모습으로 건조되어 있고 바닥의 모래에는 소금 결정이 섞여 있다.
깨끗하지 않을 텐데 인간의 호기심이란. 분명히 우리가 아는 소금인데 맛을 보게 된다. 깔끔이 아들도 주저하 다 먹어보더니 예상했던 말을 한다.
“짜요. 소금 맛이에요.”
소금이니까.
소금산에 올라갔다 내려와서 뭐라도 먹이러 가고 싶은데, 아들의 발길이 향한 곳은 아무도 가지 않는 소금산 옆의 작은 개울. 개울물 속에서 아들은 소금 결정과 작은 돌멩이에 붙은 소금을 채취하느라 정신이 없다.
“엄마 이거 봐!”
꺼내서 보여주고 또다시 개울가로 간다. 신기하긴 하다. 한참 구경하더니 이번에는 개울가에 돌을 던진다. 알차게 노는 아들을 뿌듯하게 지켜보던 엄마도 이제 슬슬 조급해진다.
‘여기 소금 아이스크림이 맛있다던데… 소금 치약을 판다던데… 소금산 옆에 저 큰 컨테이너 건물은 뭘까?’
이제 가자. 엄마의 재촉에 아들은 “잠깐만!” 하더니 작은 돌멩이 하나를 주워온다.
“엄마 이거 기념품으로 가져갈 거야. 정말 하얀 돌이야.”
“이거 소금 붙어 있는데?”
“당연히 닦아야지. 화장실 가서 닦자.”
지금 있는 짐도 무거운데 돌까지 챙겨 가야 할까? 나중에 몰래 버려야지 생각하며, 밖으로 나오는 말을 삼킨다.
매점으로 가서 소금 아이스크림과 대만식 두부 디저트인 떠우화에 소금을 첨가한 소금 떠우화를 먹었다. 소금이 주제인 이곳에서는 소금으로 만든 것을 먹어봐야지. 다 그렇게 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시우의 소금 아이스크림 감상평은 이랬다.
“아이스크림이 소금 느낌이 나고, 약간 우둘투둘한 느낌이 나요. 그런데 짜지는 않아요.”
아이의 할머니는 아이에게 카레밥을 먹이고 계셨다. 이 짧은 시간을 이용해서 뭔가를 열심히 먹이는 보호자들이다.
옆쪽의 건물에는 어린이들이 모래놀이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있고, 소금으로 커다랗게 우주선, 우주인, 동물 등의 작품을 만들어 전시해 놓은 넓은 공간이 있었다. 볼 것이 많은 전시관은 아니었지만 공간이 넓어서 아들이 신나게 뛰어다녔다. 실외에도 소금으로 만든 작품이 있는데, 시간 관계상 거기까지 가보지는 못하고 멀리서 감상하는데 만족해야 했다.
어떤 소금 관련 제품들이 판매하고 있을지 내가 너무 궁금했던 기념품 가게. 10분 정도밖에 시간이 없다! 소금은 당연히 팔고 소금 치약, 소금 비누, 소금 커피, 염분이 함유된 물, 소금 샴프, 소금 초콜렛 등등 온갖 소금이 함유된 제품들이 있어서 둘러보는 재미가 있다. 하지만 급히 나오면서 우리가 결국 구입한 것은 가게 앞에서 파는 소금에 절인 메추리 알.
시간 맞춰 버스 타는 곳으로 갔더니 또 그 아침의 그 얼굴들이다. 시우는 몇 번 봤다고 말은 안 통해도 동생이랑 툭툭 치면서 장난을 한다.
“새 보러 안 가세요?”
“버스 시간이 애매해서 그냥 돌아가려고요.”
타이난 관광청에 건의하고 싶다. 관광객에게 이렇게 불친절한 버스라니.
다시 99번 버스를 타고 안핑으로 간다. 한참 장난치고 놀던 동생은 버스에서 잠이 들어버리는 바람에 할머니에게만 인사 하고 헤어졌다. 덕분에 예정에 없던 소금산 잘 다녀왔어요. 부디 남은 여행도 잘 하셨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