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 가는 길, 편의점 그리고 소소한 저녁 일상. Day 4(4)
오늘 아침이었나, 어제 아침이었나.
아침에 놓칠까 봐 두근두근 하며 99번 버스를 기다렸던 츠칸로우 앞에서 내리니 아침이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오늘은 정말 꽉 찬 하루를 보냈구나. 뿌듯하고 만족스러운 여행자.
버스에서 곤히 잠들었던 아들은 잠이 덜 깨어 내 팔에 매달려서 눈을 감고 질질 '끌려'온다.
아… 무겁고, 덥고, 피곤하군.
대만에는 곳곳에 크고 작은 사당이 있다. 숙소로 가는 길에도 작은 사당이 있는데, 그 앞에서 어느 아저씨가 화로에서 신들에게 바치는 돈을 태우고 있다.
“엄마, 저 안에 불이 났어! 아저씨 뭐 하는 거야?”
졸던 아들이 어느새, 눈이 초롱초롱해져서 쳐다보고 있다.
“하늘에 있는 신들에게 ‘저 좀 잘 봐주세요.’ 하고 돈을 태워서 보내는 거야.”
한국말을 하는 엄마와 아이가 자기를 빤히 쳐다보고 있으니 아저씨가 느낌이 이상했는지 고개를 돌리고 우리를 본다.
“아, 저희는 한국 사람인데, 아이가 돈을 태우는 것을 처음 봐서요.”
아저씨가 웃으시며 지붕 위를 가리킨다.
“저기 지붕 위에 있는 세분의 신이 보이나요? 저는 저분들에게 봉헌을 하는 거예요.”
오! 지붕 위에 할아버지들이 이제야 보인다!
“아! 진짜! 몰랐는데 지붕 위에 할아버지들이 있네요.”
“재물, 장수 그리고 건강을 지켜주는 신이에요.”
처음 만나는 우리에게 중국어, 영어를 섞어서 최선을 다해서 설명해 주신다. 종교에 대한 독실한 믿음과 몸에 밴 친절함이 느껴진다. 이런 친절이 얼마나 우리의 여행을 풍성하고 즐겁게 만드는지.
이후에도 사당에 가면 우리는 제일 먼저 할아버지 신들을 찾아보고 화로를 보면서 돈을 태우던 아저씨를 입에 올리곤 했다. 사람 좋은 웃음을 띠고 여행 잘하라고 말해주셨던 아저씨. 기도하셨던 일들이 원하는 대로 다 이루어졌기를.
이미 7시가 다 돼 가는 시간. 식당에 들어가기도 귀찮은데.
오늘은 ‘편의점 만찬의 날’로 정한다(제목 정하는 거 좋아함).
그래, 소문의 '만한대찬'을 먹어보자!
사발면 주제에 커다란 고기 덩어리가 들어 있다는 소문이 자자한 라면이다. 고기 때문에 검역을 통과할 수 없어서 한국에 사가지고 가면 안 된다지. 소고기맛, 돼지고기 맛을 사보자. 음료수도 사고 집 앞 과일가게에서 과일도 사서 신나게 숙소로 향한다.
"이게 뭔 소리여!?"
숙소에 도착해서 씻고 있는데 밖에서 신경에 거슬리는, 마치 칠판 긁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린다. 깜짝 놀라서 급히 나와보니 아들이 어두운 부엌에서 혼자 칼을 들고...! 메추리알의 얼룩을 긁어서 벗기고 있다. 그러다 나를 보더니 자랑스럽게 말한다.
“엄마! 메추리 알 무늬가 칼로 벗기니까 벗겨져!
유튜브에서는 물티슈로 닦았을 때 벗겨졌는데 내가 해보니까 물티슈보다는 칼이야!”
정말 너는 심심하지는 않겠다. 메추리알을 보고 먹어야겠다가 아니라 긁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다니. 순간 놀라고 긴장했던 엄마 입에서는 다정한 말이 나오지 않는다.
“이 소리 너무 듣기 싫어. 라면 먹을 준비나 좀 해주면 안 될까”
시무룩해져서 라면 비닐을 벗기는 아들. 아... 왜 뱉고 나면 1초 후에 후회할 말을 왜 이렇게 하는 걸까.
이번 여행의 컨셉은 시우랑 눈 많이 맞추기, 대화 많이 하기였는데. 다니면서 구글 맵이랑 눈을 더 많이 맞춘 것 같다. 짧은 반성을 하며 미안한 마음에 괜히 목소리 한결 더 업 시켜서 말을 한다.
“근데 엄마도 메추리알이 무늬가 벗겨지는 건 처음 본다. 신기하네.
왜 이렇게 쉽게 벗겨질 것을 만들었을까”
“누가 가져가지 못하게 하려고 한 거 아닐까. 보호색 같은 것 있잖아”
흔쾌히 대답해 주는 아들.
이렇게 넘어가 주는 것을 보면 너는 엄마보다 마음이 넓은 게 틀림없어.
“엄마 여섯 개, 나 여섯 개!”
내가 라면을 준비하는 동안, 아들은 메추리 알을 배분해 놓고 의리없이 자기 것만 까면서 바로 다 먹어버린다. 어느덧 내 몫의 메추리알만 남았다. 그 진지함에 피식 웃음이 나온다.
“이제 먹자. 와. 이거 라면에 넣어 먹으면 엄청 맛있겠네. 넣어볼까? 오! 진짜 맛있어.”
“그…래?…”
“너는 이미 다 먹었네. 이 맛을 못 보다니. 정말 아쉽겠다.”
이미 눈은 엄마 라면 속 메추리알에 고정이다. 아. 웃기는 녀석. 조금 있다가 선심 쓰듯 말한다.
“너도 좀 줄까?”
“(지체 없이) 응!!”
라면으로 때우는 조촐한 저녁식사지만 함께 나누어 먹으며 소소한 이야기를 하는 저녁시간. 하루의 긴장을 풀고 맥주 한잔 하면서 웃을 수 있는 여유 있는 이런 시간이 참 좋다. 어둡고 조용해서 처음에는 썰렁하게만 느껴졌던 이 공간마저도 따뜻하게 느껴지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