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샨쓰(용산사龍山寺), 보피랴오 거리(剝皮寮歷史街), Day 3(1)
"여기요!"
"우리 데리고 가!"
오늘은 오전에 2층버스를 타고 타이베이 시티투어를 하고 오후에 타이난으로 이동하는 일정.
신당동 할머니네 집 근처에서는 종종 시티투어 2층 버스가 다니는 걸 볼 수 있다. 2층버스만 보면 타보고 싶다고 했던 아들. 이번에 대만에서 타보자고 약속했었는데 그게 바로 오늘이다! 어제 2만보를 넘게 걸었으니 버스 타고 여유 있게 타이베이를 둘러보자꾸나.
어제의 여파로 비몽사몽인 아이를 깨워서 밖으로 나간다. 코로나 이전에는 시티투어 버스 운영 시간이 다양했다고 하던데, 코로나 이후에 하루에 세 번으로 줄어들었다. 원래 시티투어 버스의 묘미는 내려서 구경하고 다시 탑승해서 다른 관광지로 이동하는 건데 시내를 한 바퀴 둘러보는 것으로 만족해야겠다.
버스는 타이베이 메인 역에서 출발을 하고 다음으로 여기 시먼에서 정차한다.
카페, 블로그에서 탑승 위치를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시먼역 앞에 넓은 도로 중간의 버스 정류장. 그 앞에서 시티투어 버스 마크가 발견하고 버스가 오기를 기다린다. 시간표 상으로는 시먼역에 12분쯤 도착해야 맞는데 오지 않는다. 불안하지만 좀 늦게 올 수도 있겠지.
“엄마! 저거 아니야?”
중간 도로가 아닌 우리 뒤쪽으로 오고 있는 버스.
"에이 설마 아니겠지."
하는 사이에 휙 지나가 버리는 빨간 이층 버스다. 버스 뒤 꽁무니에 대고 “저기요!” “여기요!” "우리 데리고 가요!" 소리를 지르며 손을 흔드는 엄마와 아들. ‘뭐지? 왜지? 이거 어떻게 하지?’ 화가 나서 눈물이 나려고 한다. 이런 엄마를 보며 어색한 웃음을 짓고 있는 아들을 보고 정신을 다잡고 말한다. 나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괜찮아. 나중에 타면 돼. 우리 아직 시간 많아.”
계획한 것과 일정이 달라지면 많이 당황하는 편이라서, 잠시 시먼역 앞의 빨간 벽돌 건물 시먼 홍로우(西門紅樓) 앞에서 방황한다. 체크아웃 시간인 12시 전까지 뭘 하면 좋을까? 플랜 B... 같은 게 있을 리 없잖아!
그래. 시먼역 주변 명소인 롱샨쓰(龍山寺)를 보고 오자. 걸어서 약 15분. 롱샨쓰는 시간이 남으면 가보려 했던 곳인데 이렇게도 인연이 닿게 되는구나.
터덜 터덜 걸어가는데 어제 그렇게 애타게 찾았던 조식 맛집 식당들이 눈앞에 짠! 하고 나타난다. 이럴 수가. 우리가 갔던 방향과 완전 반대방향이었다. 아침부터 문을 연 식당에서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아침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그중에서 호텔 직원이 강력 추천했던 시먼국수집(西門麵店)으로 간다.
아침부터 험한 일 겪었는데 맛있는 거 많~이 먹자. 국수, 루로우판, 완탕, 야채말이 튀김. 오! 맛있어. 친절하기까지 하다. 억울했던 마음이 단순하게도 조금은 풀리는 기분. 이렇게 시켰는데 120위엔.
“버스를 탔으면 이거 못 먹었겠다. 그렇지?”
엄마의 억지에 억지로 끄덕끄덕해 주는 착한 아들.
해가 쨍하니 하늘이 파랗고, 걷다 보면 더울 정도의 걸어 다니기 딱 좋은 날씨다. 역시 배가 차니 사람이 한결 너그러워진다.
자, 출발해 볼까? 어? 가는 길이 바로 어제 아침에 우리가 헤맸었던 곳이다.
신나게 걸어가다 아들이 화장실이 가고 싶다고 해서 우연히 타이베이시 향토교육센터(台北市鄉土教育中心)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름만 보면 상당히 재미없을 것 같은데 대만의 옛 교실을 재현해 놓고,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그림과 체험관, 놀이거리를 갖추어 놓았다. 시간만 넉넉하다면 아이와 하나하나 체험해 보면서 한참 재미있게 놀 수 있을 것 같다.
향토교육센터 바로 옆에는 보피라오 역사거리(剝皮寮歷史街)라는 귀여운 이름의 거리가 있다. 한자로 읽으면 박피료인데(피부과에서 많이 들어봤던 그 박피-우리에게 익숙한 그 박피), ‘나무껍질 깎는 집’이라는 뜻이다. 청나라 말기에 수입해 온 나무껍질을 깎는 곳이 많았던 동네라서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하는데 그 당시의 거리를 생생하게 복원해 놓았다.
그냥 길을 가다 보면 붉은색 벽돌로 된 건물의 입구가 있다. 그 문으로 들어가면 공간 이동을 한 것처럼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골목이 나오는 신기한 체험을 하게 된다. 구글뷰로 위에서 보면 일반적인 거리와 달리 붉은색으로 된 구역을 볼 수 있다. 200 미터 채 안 되는 짧은 거리지만 옛날 감성이 뚝뚝 떨어지고 빨리 끝나서 아쉽고 계속 머물고 싶은 그런 곳이다.
표를 사지 않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티켓을 사면 왠지 이제부터 관광 시작, 구경하러 가자! 하는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되는데 그냥 쓱 들어갔는데 새로운 세계가 있으니 기쁨이 두 배가 된 달까? 공짜라서 그냥 좋은 건가?… 아닐 거다!
골목의 끝에서 다시 현실의 세계로 나오면 “어? 여기가 어디지?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었지?” 두리번거리게 된다.
타이베이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인 롱샨쓰로 간다. 불교, 도교, 유교, 민간신앙의 신까지 다양한 신들이 여기 롱샨쓰에 모여있다고 한다. 우리 생각으로는 한 분만 지극 정성으로 모셔야 ‘신빨’이 먹힐 것 같은데 대만에서는 여러 종교의 신을 모시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있어서 이렇게 여러 종류의 신을 한 곳에 모시기도 한다고 한다. 대만을 여행하다 보면 규모가 크던 작던 곳곳에 위치한 사원이 일반인들의 생활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롱샨쓰에 들어서면 사원 특유의 향 냄새와 자욱한 연기, 그리고 사원의 지붕과 기둥의 용들이 우리를 맞아준다. 다양한 불상들, 절의 화려함도 볼거리이지만 나는 이렇게 관광객들이 복작거리는 상황에도 이에 익숙한 듯 아랑곳하지 않고 정성을 다해서 신에게 절을 올리고 기도를 하는 현지인들에게 더 눈이 간다.
“시우야, 여기는 관광지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기도하는 곳이니까 조용히 하고 사진도 대놓고 막 찍으면 안 돼.”
“그러면 어떻게 찍어야 해?”
글쎄. 어느 정도가 딱 적당한 정도인지 말하기는 쉽지 않다. 사람들이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지 않을 정도, 기도에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물론 롱샨쓰 자체가 우리의 산사처럼 고요한 분위기는 아니다. 하지만 현지인들에게는 종교적인 소중한 공간일 텐데 마구 사진을 찍으면서 크게 웃고 떠드는 관광객들의 모습이 좋게 보이지는 않는다.
나의 한번 뿐인 여행도 중요하지만, 그곳에서 살고 있고 계속 살아가야 할 사람들의 생활에 피해를 주지 않고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거창하게 말하면 '공정여행'이라고도 하지만 나는 그저 이번 여행에서 시우가 ‘여행의 눈치’도 같이 배웠으면 좋겠다.
롱샨쓰의 또 다른 볼거리는 신도들이 봉양하는 제단이다. 제단 위에는 사과, 바나나 등의 과일과 다양한 과자, 사탕, 초콜릿 등이 올려져 있다. 격식을 갖추어야 하는 우리나라 절에 비해서 자유로워 보인다. 우리나라 신과 대만의 신이 만나면 음식에 대해서 어떤 이야기를 나눌지 상상하니 재미있다.
“엄마 이거 먹어도 돼?”
“당연히 안되지! 이건 기도하면서 신에게 올리는 선물 같은 거야.”
롱샨쓰 앞에는 바다 소금 커피로 유명한 '85°c 커피숍'이 있다. 한국에서부터 소금 커피 맛이 궁금하기도 했고 마침 딱 카페인이 떨어질 시간이었는데 잘 됐군. 한국인이 많은 것을 증명하듯 커다란 소금 커피 사진 옆에 ‘전 세계 유행, 대만에 와서 꼭 마셔야 한다.’고 어색한 한국어로 번역되어 있었다. 자기가 아는 글자에 아들은 신이 난서 전해준다.
“엄마! 대만에 와서 꼭 마셔야 한대.”
응, 저렇게 강력하게 말하면 마셔야지. 말도 잘 듣는다. 너는?
어린이는 커피 마시며 안된다고 강력히 말한다. 맛있지만 몸에 안 좋아서 탄산도 안 먹는, 지 몸 끔찍이 챙기는 아드님은 오늘도 버블티를 일 잔 한다. 버블티도 그렇게 몸에 좋을 것 같지는 않은데. 빨대를 입에 물고 나를 빤히 보더니 물어본다.
“커피가 짜? 무슨 맛이야?”
“음… 짠맛이 아주 약~~~ 간 뒷맛으로 나고, 의외로 고소한 맛이 나는데? 오묘하게 맛있는 맛?”
“응?”
고개를 갸웃하며 버블을 열심히 시끄럽게 빨아들인다.
슬슬 숙소로 돌아간다. 꽃 향기를 맡으며 들어갈 수 있었던 첫 숙소. 위치도 좋고, 시내 중심가이지만 앞에 공원도 있고, 친절하고 너무나 만족스러웠다.
초스피드로 짐을 챙겨서 정확히 12시에 체크 아웃을 하고 타이난(台南)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타이베이 역으로 출발! 바이바이 타이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