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베이 빛 축제(Lantern Festival), Day 2(2)
rabbit
비상! 온천 일정으로 아이 체력이 방전되었다!
빛축제 보러 가야 하는데. 오늘이 아니면 못 가는데.
우선 망고빙수를 먹'이'자!
숙소 근처에 도착해서 '삼형제 망고 빙수집'으로 알려진 싼숑메이쉬에화삥(三兄妹雪花冰)으로 간다. 연유가 들어간 얼음을 갈아서 빙수를 만들고 신선한 과일이 듬뿍 나오는 것으로 유명한 곳이다. 사진으로 도배된 벽면에 한국 연예인들도 보인다. 한 무리의 한국인 단체여행팀이 우르르 나가고 또 새로운 팀이 들어오니 한국의 어느 휴게소에 있는 느낌이 든다. 2월 중순의 타이베이에는 한국 사람들이 정말 많구나.
망고 종합 과일 빙수를 주문했다. 12월~2월은 망고 철이 아니라서 냉동 망고를 쓴다고 하고, 빙수에 나온 망고와 딸기, 포도 과일이 듣던 만큼 신선해 보이지는 않아서 나는 살짝 실망했지만, 과일 마니아인 아들은 꽤나 만족스러워했다.
숙소에서 포장해 온 초밥을 먹으며 자유 시간을 갖는다.
'싫다면 가지 말자. 첫날부터 무리했다가 다음날 더 힘들 수도 있어.
오늘 안 보면 대만 빛 축제는 "영원히" 못 보겠지만 억지로 강요하지 말자. '
한 시간 정도 지나, 혼자 마음의 준비를 하고 어르신의 의향을 타진해 본다.
“여기서 지하철 타고 20분 정도'만' (강조) 가면 되는데 빛 축제 보러 갈 수 있겠어?”
“응, 가자”
"정말?(씨익) 힘들지 않겠어?(웃음)"
의외로 바로 나오는 긍정적인 대답. 사랑해 아들. 휴~
빛 축제는 타이베이 전역의 주요 관광지에서 진행되고 있다.
공항에서 받은 브로셔에 소개하는 전시물 중에 나의 픽은 국부기념관(国父纪念馆)의 ‘대형 로봇 토끼’였고, 시우의 픽은 쏭샨원창위엔취(松山文創園區 송산문창원구)의 ‘박스 토끼’였다. 서로 멀지 않으니 두 군데 다 가보자! 예~ 신난다!
이번 주가 폐막이라 그런지 지하철부터 축제의 분위기가 한껏 고조되어 있었다. 내리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빛 축제 포스터, 대형 배너. 기대감이 증폭된다.
"Follow the rabbit" 토끼를 따라가라고?
내가 앨리스가 된 느낌이다.
행복하게 웃으며 사진 찍는 사람들, 번쩍이는 불빛, 쿵쿵 거리는 음악, 라이트 봉, 라이트 머리띠… 우와. 심장떨려. 사진도 찍어야 하고, 아이랑 손도 잡아야 하고 내 눈으로 직접 구경도 해야 해서 정신없지만 이런 축제 현장에 아이와 함께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행복하다.
너도 라이트 머리띠라는 것을 하나 착용하자꾸나. 아이가 사달라는 말도 안 했는데 평소라면 눈길조차 두지 않았을 아이템을 한껏 신이 난 엄마가 알아서 질러 주신다.
사람들에 휩쓸려서 앞으로 나아가니 중화권스러운 용문이 나오고 그 뒤로 내가 보고 싶었던 거대 토끼가 보인다.
토끼가 30분마다 한 번씩 레이저를 뿜으며 음악에 맞춰서 돌아간다. 뒤에 보이는 101 타워에도 다양한 그림과 메시지가 나왔다 사라지며 흥을 돋운다. 각국의 언어로 나오는 인사말에서 “안녕하세요” 한글을 발견하고 더욱 신이 난 아들. 처음에는 구경하느라 정신을 못 차리더니, 나중에는 흥에 겨워 음악에 맞춰 덩실덩실 춤을 춘다.
거대 토끼 말고도 다양한 빛 전시물을 둘러보느라 시간이 훅 지나간다. 그냥 갈까... 했지만 박스 토끼는 꼭 보고 싶단다. 이제는 또 사람들과 함께 우르르 박스 토끼를 향해 직진한다.
안내하시는 분들에게 다짜고짜 “토끼 어디 있어요?” 했더니 그래도 찰떡같이 알아듣고 안내해 준다.
도착하는 순간 공연이 시작된다. 거대한 사각 박스형 조형물에 토끼가 택배상자를 들고 운반하는 영상이 나온다. 바닷속을 헤엄치고 지하철을 타고 열심히 달려서 토끼가 도착한 곳은 바로 타이베이, 이곳이다. 순간 조형물이 택배 박스로 변하더니 영상 속의 토끼가 위쪽으로 진짜 튀어나오는 실사와 영상의 결합. “우와~” 다들 함성을 지르며 자동으로 박수를 친다.
10시가 넘은 시간. 이제는 숙소로 가기만 하면 되니 한결 여유롭다. 빛 터널을 지나 여운을 곱씹으며 아름답게 지하철 타러 가고 있는데 아들이 내 얼굴을 보고 말한다.
“엄마. 화장실! 급해!”
“... 뛰어! 지하철 역에 있을 거야!”
그래.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지. 손을 잡고 지하철을 향해 뛰기 시작한다.
아! 여자 화장실뿐만 아니라 남자 화장실 앞에도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여기 있을 테니까 갔다 와!”
“엄마, 거기 말고 화장실에서 나오는 입구에 바로 있으면 안 돼요?”
오늘 엄마를 잃어버려서 그런지 내가 안 보이면 불안한가 보다.
“그… 그래. 빨리 가”
'앞으로 나는 남자 화장실 앞에 이렇게 지켜서 있게 되겠구나’하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지. 반짝반짝 아름다운 빛 축제는 이렇게 화장실로 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