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리화 대관람차(美麗華百樂園摩天輪), 시먼(西門). Day 1(2)
우리 여행의 첫 목적지는 메이리화 대관람차(美麗華百樂園摩天輪).
도착하자마자 짐도 안 풀고 대관람차라고? 아들이 가고 싶다고 했던 몇 안 되는 관광지 중 하나였다. 동선을 체크해 보니 시내에서 다소 떨어진 위치에 있어서 이곳만 따로 가기가 애매했다. 어? 쏭샨 공항에서는 두 정거장밖에 안 되네? 그렇다면 공항에서 바로 가보자. 낮이라서 야경은 못 보겠지만 적응할 때까지는 밝을 때 다니는 것도 괜찮지. 캐리어는… 어떻게 하지? 가지고 타도 되지 않을까? 성인 세명도 탈 수 있는 것 같던데. 아. 몰라. 우선 그냥 가보자. 어떻게 되겠지.
“밑에 그냥 짐 놔두고 관람차에 탔는데 누가 가져가면 보면서도 소리만 지르고 잡으러 가지도 못하겠다.”
"도둑이야! 대만 경찰한테 전화해, 엄마."
"위에서?"
생각만 해도 너무 웃기다는 아들.
지엔난(劍南)역까지 두 정거장. 한국에서 단련된 우리는 지하철 정도는 능숙하게 탈 수 있지. 출구로 가면 저 멀리 "그" 관람차가 보이고 "그" 방향으로 가면 된다. 열심히 캐리어를 끌고 좀비처럼 관람차를 향해서 직진한다. 메이리후어 백화점 5층에 있다고 했지.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가 있네. 타자.
평일 낮이라서 사람이 많지 않다. 바로 탑승할 수 있지만, 전체 관람차에서 두 개밖에 없다는 투명바닥 관람차를 타려면 16분을 대기해야 한다. 아들은 잠시 고민하더니 기왕 타는 거 기다려서 투명바닥을 타겠다고 한다.
“짐은 들고 타도 될까요?”
“저기 두세요”
관람차 입구 쪽 부스를 가리킨다. 경찰에 전화 안 해도 되겠는데?
드디어 우리 차례가 오고, 아래가 훤하니 보이는 관람차를 타고 나서야 드는 생각. ‘아. 나 고소공포증 있었지.’ 첫날 관람차를 탈 수 있을지, 없을지 그것만 생각하다 정작 내가 이렇게 높이 올라가는 걸 별로 안 좋아한다는 사실이 그제야 떠올랐다. 특히 바닥이 보이는 관람차라니. 앞에 있는 손잡이를 꽉 쥐었는데 손에 식은땀이 난다.
난데없이 인터뷰 동영상을 찍으며, 바닥을 흔들며 아들은 웃겨 죽는다.
“엄마 무서워요? 지금 느낌이 어때요?”
“야! 너 혼자 버리고 간다!”
가장 높은 중간점을 지나고 나서야 안정이 되고 주변을 볼 여유가 생겼다. 생각했던 야경은 아니지만, 해가 저물고 있는 풍경이 너무 예쁘고 초록색이 가득한 대만의 전경이 보이고, 101타워도 보이고, 저 멀리 우리가 타고 온 귀여운 지하철도 보이고, 무엇보다도 앞에서 아들이 신나게 웃고 있다. 걱정했던 것이 무색하게 참, 너무나 좋다.
관람차는 약 20분 정도 운영한다. 내리고 나서야 영화관, 식당, 옷 가게 등이 눈에 들어온다.
미어켓처럼 두리번두리번 하는 모자. 대만에도 이 영화 개봉했네? 이런 날씨에 사람들이 패딩을 입었네? 털옷을 입은 사람들도 있네? 편의점 음료수 쇼핑조차도 설레는 모든 것이 마냥 신기한 첫날이다. 일정에 너무 만족한 나머지 나중에 한국 가면 이 일정을 사람들에게 공유해야겠다고 혼자 생각한다.
그러나. 여행이 뭐 내 맘만 같던가.
지하철을 타고 첫 번째 숙소인 시먼(西門)역으로 가는데. 딱! 퇴근시간이랑 맞물려 버렸다. 사람이 바글바글 해서 앉아서 가는 것은 기대도 할 수 없었다. 짐 때문에 지상으로 나가려면 엘리베이터를 타야 하는데 엘리베이터도 한참 기다렸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나오니 원래 나와야 했던 2번 출구가 아니네. 원래 출구로 나와야 숙소에 어떻게 가는지 아는데! 여기가 어디지? 저녁시간의 시먼역. 한국의 명동쯤 되는 이 동네는 번화하고 사람도 많고 복잡하다. 당황하지 말고 구글맵을 켜자. 원래 쓰던 앱이 아닌지라 손에 안 익어서 뭘 봐야 할지 모르겠고 정신없다. 아이 손도 잡아야 하고, 짐도 끌어야 하고, 사람은 많고, 구글 지도는 헷갈리고, 아이는 점점 지쳐가고.
빙빙 돌며 2번 출구를 겨우 찾는다. 거기서부터 블로그에 천사님이 사진까지 첨부해서 공유해 준 정보대로 숙소를 찾아갈 수 있지. 시먼역에서 5분 정도 걸리는 곳에 있는 첫 번째 숙소, Attic Hotel. 꽃집을 지나니 숙소의 표지판이 보였다. 이후에도 꽃향기를 맡으면서 지나가면 우리 숙소가 나와서 너무 기분이 좋았다. 다만 경비아저씨가 앞에서 담배를 피우실 때가 있다.
숙소가 위치한 10층에서 내리니, 우드와 하얀 벽, 초록색이 어우러진 깔끔한 분위기의 숙소가 나온다. 영국 국기가 그려진 박스가 소품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아들이 투덜거린다.
“내가 대만 숙소에 와서 처음 본 게 대만 국기도 아니고 영국 국기 박스라니.”
이런 귀요미.
숙소는 군더더기 없는 세팅이다. 2인용 작은 방에 있어야 할 것만 딱 있다. 캐리어 하나를 놓기는 했는데 캐리어가 두 개라면 좀 난감할 듯싶다. 작지만 욕실에 욕조도 있다.
“시우야, 배고파?”
숙소에 대충 짐을 던져 놓고 후다닥 아들의 배를 채워주러 나간다.
여행 내내 내가 아들에게 가장 많이 한 말이 “시우야, 배고파?” 였던 것 같다. 조금 굶어도 되는데도 아이 밥이 항상 신경 쓰인다. 우선 속을 좀 채워 놓아야 안심이 되고 할 일이 끝난 것 같은 느낌.
첫 번째 식사로 시먼역의 유명한 노점 아쫑미엔셴(阿宗麵線 아종면선), 곱창국숫집을 찜해뒀다. 호불호가 갈리기는 하지만 대만식으로 빡세게 시작해 보자. 메뉴는 오직 두 개. 곱창국수 대, 소 두 가지 사이즈이다. 커다란 솥에서 끊임없이 국수와 곱창을 끓이고, 주문하면 바로 종이 그릇에 담아서 바로 준다. 식탁이 없고, 가게 앞에 플라스틱 의자만 놓여있어서, 누가 먹고 일어서면 그 의자를 쓰면 된다. 의자도 부족해서 길거리에 앉아서 혹은 서서 먹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여기야.”
당황한 기색으로 ‘이런 데서 먹자고?’하는 눈빛을 보내더니
“엄마. 우리 식당 같은 데로 가자”
라고 한마디 한다. 식당 같은 데라니. 너무 웃기잖아. 들어가서 주문하면 가져다주는 테이블과 식탁이 있는 곳을 말하는 거겠지?
“여기 엄청 맛있어서 유명한 곳 이래. 우선 먹어보고 맛없으면 다른 거 또 먹으러 가자. 엄마 진짜 먹어보고 싶었어.”
별로 흔쾌한 표정은 아니지만 알겠다고 한다.
후딱 가서 ‘소’자로 두 개를 주문해서 가져온다. 종이 그릇이 뜨거워서 들고 먹을 수지를 못한다. 이런. 의자 두 개를 확보하여 하나는 앉는 용도로, 하나는 국수를 놓는 용도로 쓰라 했는데 조금 해보다 불편한지 바닥에 털썩 앉아서 의자 위에 국수를 올려놓고 먹는다. 역시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군.
국수라는 느낌이 안 들정도로 국수가 부들부들, 뚝뚝 끊어지고 튼실한 곱창이 많이 들어있다. 대만 특유의 향이 나기는 하지만 배가 고팠는지 맛있게 잘 먹는다. 그제야 나도 안심하고 먹는다. 의외로 서늘한 대만 날씨에 속이 따뜻한 것을 먹으니 좋다. 양이 적은 것 같아 보였는데 배까지 부르다. 대자, 소자 각각 75, 60위엔의 착한 가격.
대만 길거리 음식은 가격이 저렴한 대신 양이 많지 않다. 그래서 나처럼 아이와 같이 여행하는 사람들이나 혼자 여행하는 사람들은 부담 없이 다양한 음식을 먹어볼 수 있어서 좋다. 또한 어디서나 저렴한 가격에 버블티나 바로 갈아서 주는 신선한 과일 주스를 먹을 수 있다.
버블티는 첫날부터 달려줘야지. 시먼의 중심에 있는 싱푸탕(幸福堂 행복당) 버블티. 대만의 버블티는 설탕의 양과 얼음의 양을 주문하는 사람의 기호에 따라 조절할 수 있다. 대만 오기 전에 버블티 먹어보겠다고 아들이랑 ABAB 열심히 연습했었지. 드디어 실전. 연습했던 대로 말했더니 열심히 듣고 있던 직원이 말하길
"싱푸탕은 한 가지 규격으로 통일되어 있어요"
머쓱. 중간에 말씀해 주셨어도 되는데 너무 친절한 분이었어. 가자, 가자.
버블티를 입에 물고 시먼을 누빈다. 배도 부르고 입도 행복하고, 평일인데 거리 공연도 한다. 고리를 하늘 높이 던졌다가 받고, 중국식 요요인 콩주(空竹)도 던졌다 받고, 축구공도 던지고 받고. 다소 단순해 보이는 이 공연을 아들은 고개를 들고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고, 나는 이런 아들을 구경하는 게 재미나고 뿌듯하다. 집에 있었으면 씻고 숙제하고 있을 시간인 8시 30분이 지나고 있다.
시원한 바람이 분다. 여행이로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