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국, 대만 여행 준비 완료. Day 1(1)
여행 날짜가 다가올수록 주변의 걱정이 극에 달한다.
“괜찮냐?” “짐 들고 다닐 수 있겠냐?” “조심해라.” “꼭 잡고 다녀라.” “끈으로 묶어 놓고 다녀라(?)”.
아들 친구들은 여행 가는 아들을 부러워하고, 내 친구들은 나를 걱정스러워한다. 주변 반응에 오히려 더 바짝 긴장되지만, 남편에게는 괜히 큰소리 뻥뻥 쳤다.
“걱정하지 마! 잘 다녀올게! 와이프랑 아이가 떠나는 순간 남편들은 파티 시작이잖아.”
드디어 출발이다! 이 출발을 위해서 전 2~3일 동안은 뭔 정신으로 지냈나 싶다. ‘그 날씨에는 뭘 입어야 하나.’ ‘뭘 가져가야 하나.’ 다 챙긴 것 같아도 뒤돌아서면 잊은 것이 생각나고, 뭐 또 잊은 것이 없는지 여행카페를 하루에도 몇 번씩 들어가 본다.
이틀 전에 1차로 짐 싸기를 해보고 줄일 것은 줄이고, 부족한 것들은 구입한다. 캐리어가 크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1.5 인의 옷과 자잘한 짐이 많았다. 캐리어를 두 개 가지고 갈까 고민하다 아이 캐리어도 결국은 내가 챙겨야 할 것 같은 예감에, ‘정신없음 vs 무거움’ 이 둘 중에서 무거움을 선택했다. 최대한 미니멀하게 가자.
낮 1시 45분 비행기이고 김포공항에서 출발하는 일정이라 다행히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공항까지 태워준다는 남편의 제안을 호기롭게 거절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철로 내려가는데 드디어 캐리어의 무게가 오롯이 느껴지고 다리가 후들거린다. 내가 왜 이런 일을 벌였을까? 짧은 자기반성을 한다.
숨을 고르고 둘이 나란히 앉았는데, 아들이 자기 가방을 여는 순간. 흥분 게이지 다시 상승.
평소에도 지인들이 도라에몽 주머니냐고 할 정도로 아들은 가방에 이것저것 넣고 다니기를 좋아한다. 아침에 집에서 검열하고 많이 뺐는데 내가 나가는 순간 다시 넣은 거지.
아... 탁구채를 빼면서 탁구공을 못 뺐어. 마술용 작은 잔 3개, 박스 째 들어있는 마술 반지, 여행 내내 짐쌀 때마다 부글부글 끓게 했던 큐브 두 개(심지어 하나는 피라미드 모양이다). 마음 같아서는 다 버리고 가고 싶은데 시작부터 큰 소리 내기 싫어서 한숨을 크게 한번 내쉬고 차라리 눈을 감아버린다.
때마침 지인의 문자가 도착했다.
“조심히 귀요미 시우와 행복한 추억 많이 만들고 오세요~ 성내지 마세요”
순간 빵 터짐! 어떻게 알았지? 성내지 않도록 노력은 해보겠습니다만, 가능할지 모르겠네요.
김포공항 역에서 내려서 공항으로 가는데 관계자분이 다가온다.
“노약자를 동반한 가족에게는 공항까지 카트 서비스를 해주고 있어요. 타고 가세요.”
짐까지 직접 실어 주신다. 오모모! 살짝 민망할 정도로 짧은 거리이긴 하지만 잔뜩 긴장하고 있던 나에게 정말 감동적인 배려다.
“엄마 시우 덕분에 이런 것도 처음 타보네.”
짐 때문에 엄마 눈치 보던 아들이 헤헤헷 웃는다. 니 짐은 니가 들고 다니는 걸로 하자.
창가 쪽 자리는 맞는데 창문이… 없다?
이번에는 엄마가 아들 눈치를 볼 일이 생긴다. 비행기에 타자마자 뜨악. 아이에게 창가 쪽 자리를 주겠다고 창가 자리로 자리지정 예약을 했는데.
“엄마!”
아이의 원망스러운 눈빛. 아니… 그게... 어째 이 자리만 창문이 없다니.
“창문이 없을 거면 말을 해줬어야지. 진짜 나빴네(누가?)"
앞자리의 창이 살짝 아들의 자리에 걸쳐있다.
“와 여기로 봐도 잘 보이는데?”
얼렁뚱땅 넘어가자. 어린이 승객용 색칠공부 종이와 색연필이 들어있는 필통을 선물로 받고서야 아드님 기분이 좀 풀린다.
코로나로 인해서 거의 4년 만에 비행기를 타니 아들이 참 많이 컸다는 게 실감 난다. 6세 때는 비행기에서 난동 부릴까 봐 챙겨 온 장난감, 간식거리로 짐이 한 보따리였는데 이제는 책도 보고, 그림도 그리고 혼자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졌다. 기압차이로 힘들까 봐 우유도 챙겼는데, 비행기가 출발하는 순간 다 마셔버리고 비행기가 올라갈 때는
“엄마 귀가 멍하지? 이럴 때는 ‘아’ 하고 입을 벌리면 괜찮아…(조잘조잘)”
기압 차이 따위 신경도 쓰지 않는다. 시끄러워서 귀가 멍하다.
남편으로부터 미맹이라는 말까지 듣는 우리 모자는 남들이 중국향이 강해서 잘 못 먹는다고 하는 중화항공의 기내식을 싹싹 비우고 "어? 맛있는데?" 그러면서 마주 보고 바보같이 웃는다.
"엄마, 우리 둘 다 싹싹 비운 거 인증샷 찍자!"
쏭샨(松山)공항은 우리나라의 김포공항과 비슷한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시내와 인접한 공항이다. 우리는 입국은 쏭샨공항, 출국은 타오위엔 공항이다. 아이와 함께 있다고 노약자 우대 줄로 안내받고, 입국 신고서도 온라인으로 미리 제출했고, 비행기 자체가 크지 않아서 사람도 별로 없고, 짐도 빨리 나오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수속이 끝났네? 현지시간으로 3시 30분 도착, 공항 밖으로 나온 것은 4시 좀 넘은 시간. 시차 덕분에 한 시간 더 놀 수 있는 시간까지 벌었다. 신난다!
우선 핸드폰부터 살려야지. 부스에 바우처를 들이밀었더니 바로 대만 전화번호가 적힌 종이와 유심칩을 준다. 선천적인 기계치인 나는 순간 움찔. 해주시는 건 아닌가… 봐요…? 여행에 필수인 강아지 표정 장착하고 최대한 불쌍한 표정으로 들이밀자 직원이 친절하게 도와준다. 감사해요.
다음은? 대만에서 돌아다니는데 필수인 교통카드 요요우 카드(悠游卡)를 구입하러 공항 내 편의점에 간다. 영어로는 이지 카드(easy card)라고 하는데, 일반인들은 이지 카드라고 하면 잘 모르는 것 같으니 그냥 귀엽게 “요요우카”라고 하자. 우리나라 티머니와 비슷한 카드로 버스, 지하철 등의 교통뿐만이 아니라 편의점, 일부 가게, 입장료 등으로도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다. 카드 형태 말고도 장난감 형, 열쇠고리 형 등 다양한 상품이 있지만 나는 가장 가지고 다니기 편한 카드 형태로 골랐다. 공항에서는 어린이 용 카드는 팔지 않는다고 해서 우선 내 것만 구입한다.
지하철역으로 가서 어린이용 요요우 카드를 물어봤더니 아이랑 어른이랑 가격 차이가 없다고 설명해 주신다. 차이가 없다고? 그럼 그냥 아이도 어른용을 써도 되겠네. 성격 급한 나는 여행 세팅을 빨리 끝내고 여행자 모드로 전환하고 싶어서 내가 좋을 대로 단순하게 생각한다. 판매하는 곳이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어린이용 카드를 샀어야 한다. 나는 여행내내 지하철만 타는 것이 아니었단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