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베이토우(北投) 온천 지구. 노천온천. Day 2(1)
"이번에 빛 축제는 안 가요?"
대만 여행을 며칠 앞두고 있던 날, 지인이 여행사의 빛축제 연계 패키지 상품 링크를 보내주었다. 빛축제가 뭐지? 타이베이 전역에서 대규모의 빛 축제(Lantern festival)가 열린다고 한다. 어머어머, 마침 타이베이에 있는 기간이잖아! 일부러도 보러 가는데 당연히 가야지.
원래 두 번째 날 일정은 '베이토우 온천- 단수이-스린야시장'이었지만 슬쩍 '베이토우 온천- 단수이-빛 축제' 일정으로 변경한다.
아침에 6시 30분부터 일어나서 부스럭 거리는 우리 아침형 어린이.
나도 주섬주섬 일어나 전날 호텔 카운터에서 알려준 곳으로 아침을 먹으러 간다. 분명 식당이 많다고 했는데 동네를 한 바퀴 돌아도 제대로 된 식당을 찾을 수가 없다. 조식의 천국 대만에서 이게 무슨 일이야? 계속 돌아다니던 중에 눈앞에 나타난 맥도날드.
“대만의 맥도날드는 어떤 맛일까? 대만 모닝세트 궁금하지 않니? 아. 진짜 궁금했는데.”
뻔뻔한 엄마는 고개를 갸웃거리는 아들을 데리고 맥도날드에서 팬케익과 베이컨치즈 버거로 아침식사를 한다. 대만 첫 조식이 맥도날드라니.
"어때?"
"비슷한데?"
모양… 비슷하고, 시럽… 비슷하고, 맛... 비슷하고. 음. 아침 메뉴는 한국과 큰 차이는 없다는 것을 발견한 의미 있는 조식이었어.
베이토우(北投) 온천으로 출발. 하늘이 파랗고 날씨가 맑아서 여행하기 딱 좋은 날씨다.
베이토우 온천은 유황온천으로 유명한 관광지다. 시내(시먼역 기준)에서 지하철로 1시간 정도면 갈 수 있다. 많은 관광객들은 고급 리조트 온천의 개인탕에서 1~2시간을 보내거나, 대중 온천탕에서 수영복을 입고 온천을 즐긴다. 우리는 추후에 다른 지역의 온천에서 하루 숙박을 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베이토우에서는 현지인들이 자주 가는 온천탕 체험만 가볍게.
신베이토우 역에서 내려 공원을 따라 오르막길로 가다 보면 베이토우친수이 노천온천(北投親水露天溫泉)이 나온다. 베이토우 온천을 대표하는 노천온천이다. 입장료가 40위엔으로 굉장히 저렴한 데다 대만 어르신들은 반 값 할인까지 된다고 하니 사람이 많지 않을 수가 있겠나? 나에게는 ‘꽃보다 할배’ 대만편에서 신구 할아버지가 정말 여유 있고 느긋하게 즐기던 모습으로 기억되는 온천이다. 나도 그렇게 하늘을 보며 온천을 즐기리라.
새벽 5시 반부터 2시간 운영하고 30분 쉬는 시간이 있다. 세 번째 타임인 10시 30분 정도에 맞춰서 갔는데 오픈 20분 전부터 이미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서로 아는 사이인지, 여기서 알게 된 사이 인지는 모르겠지만 목욕탕 용품이 들어있는 가방을 챙겨 들고 대화를 나누며 즐기면서 차례를 기다리는 풍경이 참 정겹다.
"현금이 안된다고?"
기다리다 겨우 들어가는데 입구 컷 당했다. 여기는 또 특이하게 요요우 카드로만 지불이 가능하다. 어제 100위엔씩 충전했던 우리 카드는 잔액 부족. 17일 일정인데 왜 100위엔 밖에 충전을 안 했을까. 편의점에서 충전을 하고 오라고 한다. 편의점이 하필이면 또 오르막이네. 햇빛이 쨍한 날씨에 아들은 얼굴이 벌겋게 익었다.
“엄마가 미안. 충전할 생각을 못했어”
땡볕에 걷고 있는 아들에 괜히 미안하다.
“괜찮아. 이게 다 추억이지.”
뭐야! 이런 감동 멘트도 날려 주시는 아드님.
이곳은 현지인들이 저렴하게 이용하는 곳이다 보니 시설에 대한 기대는 하지 말아야 한다. 욕탕 바로 앞쪽에 코인 라커가 있는데, 열어보면? 엥? 짐이 들어있다. 동전을 넣지 않고 그냥 선반처럼 이용하는 듯하다. 열었는데 뒤쪽이 뻥 뚫려 있는 칸도 있었다. 신발도 적당한 곳에 그냥 벗어 놓는다.
* 위쪽에는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 코인 라커도 있다.
아래부터 위쪽으로 미지근한, 따뜻한, 뜨거운 탕이 세 개 있고, 옆으로는 냉탕이 하나 있다. 먼저 아들을 수영복으로 갈아입히고, 나는 탈의실로 가서 옷을 갈아입고 온다. 땀을 뻘뻘 흘리며 수영복을 갈아입고 왔더니 아들은 이미 온천 탐방을 끝내고 나에게 설명을 해주기 시작한다.
제일 아래층의 가장 미지근한 탕부터. 어른들만 있는 온천에서 야광 수영복을 입은 아들로 시선이 쏠린다. 탕에 몸을 담그고 있으려니 할머니들이 말을 걸기 시작한다.
“애가 왜 학교에 안 갔어?”
“한국은 방학이에요”
“한국 사람이야?”, “아이가 이쁘네”
옆에 할머니가 말을 더하시고 거기에 할머니들끼리 이야기 꽃을 피운다. 어르신들은 한국이나 대만이나 비슷하구나.
중간 탕도 잠깐 갔다가 뜨거운 탕도 잠깐. 이제 본격적으로 욕탕에 누워 하늘 좀 볼까 하는데 아들이 뭔가 안절부절못하며 몸을 긁는다.
“뜨거워? 미지근한 데로 갈까?”
“엄마. 몸이 간지러워”
자세히 보니 피부가 약간 불긋불긋하다. 맑은 수돗물로 씻겨주었더니 좀 나아지기는 했는데 이제 온천 그만하고 싶다고 한다. 입장 후 한 20분 정도 지났으려나? 들어온 게 아까워서 조금만 더 있어 보자고 했는데(내 하늘! 내 여유!) 못 참고 또 금세 밖으로 나간다. 안 되겠다. 온천 생각만 하고 ‘유황’에 대한 생각은 안 했는데 유황이 아이에게는 너무 자극적인가 보다. 결국 나가기로 한다.
다시 씻고 옷을 갈아입어야 하는 지난한 과정이 기다리고 있다. 어휴. 한숨이 절로 나온다. 한 명씩 들어가는 좁은 샤워부스에 아들을 들여보내고 기다린다. 10위엔을 더 내면 온수로 씻을 수 있다는데 오늘은 그것조차 안된다고 붙어있다. 아들이 씻는 것을 기다렸다가 옷을 입히고 나도 샤워부스에서 씻고 옷까지 갈아입고 나오니 온몸이 땀범벅. 뭔가 하다 만 찜찜한 느낌으로 온천 체험을 마무리한다.
아까 카드 충전하러 갔었던 오르막길을 다시 올라 띠러구(지열곡, 地热谷)로 갔다. 가공되지 않은 온천을 직접 볼 수 있는 곳이다. 표지판을 따라서 들어가 보면 오. 느낌이 온다. 유황향이 나기 시작한다. 허연 연기가 가득해서 뭐가 나올 것 같은 신비로운 느낌이 들고, 후끈한 열기가 느껴진다. “우와! 우와!” 감탄하며 앞으로 나가는 엄마와 이미 감탄을 끝내고 바닥의 스프링클러 탐색에 여념이 없는 아들. 관광지 자체가 크지는 않지만 강렬하다.
입구에는 온천에 찐 달걀을 파는 곳이 있다. 온천과 달걀은 세트지.
“와. 여기 진짜 신기하다. 유황 냄새가 났지?”
“유황 냄새가 뭔지 모르는데?”
“그… 성냥…”
너는 성냥을 못 봤었나?
점심을 먹어야 하는 타이밍이다. 달걀은 간식이지. 원래 이 시간쯤 베이토우 관광을 끝내고 역 근처의 백종원 쌤이 추천한 국숫집을 가려고 했지만 이제 절반 밖에 못 돌아본 것 같다. 가이드 북에는 반나절이면 다 볼 수 있다고 했던 것 같은데 이렇게 매력적인 동네를 반나절만에? 아이와 함께 반나절? 불가능하다. 가까운 식당인 대만식 라면집, 만커우라몐(滿客屋拉麵)을 찾아간다. 이쯤에서 지하철로 20분만 더 가면 되는 단수이는 과감하게 포기한다. 다시 일정 수정. 베이토우온천 - 빛축제.
간판 글씨가 희미하게 잘 안 보이는 식당. 뭔가 고수의 향기가 난다. 차와 오토바이가 다니는 길이긴 하지만 날이 좋아서 밖에서 먹기로 한다. 계속 오르막으로 올라와서 우리가 지나온 푸르른 지역이 한눈에 펼쳐진다. 뷰 좋고! 라면집에 왔으니 라면이랑 뭘 먹을까? 고기! 두부, 채소 반찬도 시켜 먹는다. 아이가 엄지를 척! 깔끔하고 맛있고 착한 가격 150위엔.
이제 올라왔던 길로 내려가면서 둘러보면 되겠다. 배도 부르겠다 신나게 내려가는데 아들 눈이 반짝이며 나를 쳐다본다. 불길한 예감.
숲 속에 초록색 풀밭 언덕이 있고, 나무로 징검다리를 만들어 놓았을 뿐인 단순한 형태의 놀이터가 있다. 에너지 풀 충전된 아들은 너무 신난다. 경사진 언덕을 온몸으로 데굴데굴 굴러 내려가고(으악! 빨래~~~) 나무다리를 깡충깡충 뛰어다닌다. 혼자 놀아도 저렇게 놀이터가 좋을까? 기껏 충전시켜 놓은 힘을 여기서 다 쓰면 안 되는데… 보고 싶은 곳이 많은 엄마의 몸과 마음은 이미 놀이터 밖으로 나가 있다. 식당에서 10분이면 도착할 온천 박물관까지 가기가 이렇게 힘들다니!
“엄마 나 하는 거 봐봐!”
“응응~ 잘하네(영혼 없음). 이제 가자”
겨우겨우 베이토우온천박물관(北投溫泉博物館)에 입장. 딱히 볼 게 없다는 후기도 많았는데 생각보다 볼거리가 많고,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 놨고 사진 찍을 포인트도 많다. 게다가 무료이다! 아이와 함께라면 놓치지 말고 꼭 가보자.
입구의 신발장부터 목욕탕 신발장을 재현하는 발랄함을 보여준다. 슬리퍼로 갈아 신고 편하게 입장한다. 최초의 베이토우 온천 호텔, 과거의 사진을 전시해 두었고 실제 그 당시 욕장 모습, 대기실 풍경 등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즐겁게 박물관 관람을 하고 있는데, 바닥에 작은 유리창이 있어서 아래층 사람들이 보인다. 오호 재미있는데? 엄마가 입이 방정이다.
“너도 내려가 볼래? 엄마가 여기서 사진 찍어줄게.”
아들이 벌떡 일어나 계단으로 내려간다. 바로 아래층인데 아무리 기다려도 아들이 나타나지 않는다. 혼자 꿇어앉아서 바닥을 보고 있으니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뭔가 하고 본다. 갑자기 뭔가 쎄한 기운이. 후다닥 내려갔는데 아들이 안 보인다!
찾으면서 입구까지 갔더니 거기에 울고 있는 아들이 있었다! 아들 주변에 사람들이 몰려 있고, 한 할아버지가 나에게 전화를 걸고 계셨다. 아침에 전화번호를 적은 쪽지를 줬었는데 그걸 기억하고 할아버지에게 보여줬나 보다.
“엄마!”
하고 소리치며 달려와서 안기는 아들. 아이고, 이게 첫날부터 뭔 일이니.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더불어 안도하며, 용감했다고 나에게 막 아들 칭찬을 해준다. 사실, 잃어버려봤자 이 작은 박물관 어딘 가에 있을 것이고, 금방 찾기도 했지만 순간적으로 많이 놀랐다. 꼭 안아주고 광장에 앉아서 마음을 안정시킨다. 정말 잘 대처했어. 대견해. 토닥토닥.
나중에 말하길, 내려가긴 했는데 위에서 봤던 곳을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손을 ‘꼭’ 잡고 같이 내려가봤더니 못 찾기가 힘든 위치다. 위에도 유리가 뚫려 있는데?
“아. 저기를 내가 왜 못 봤지?”
아이가 다 커서 혼자 잘 다니는 것 같다가도 어떨 때는 믿을 수 없는, 믿어서는 안 되는 어린아이라는 것을 다시 상기하게 된다. 아이와 여행은 2인 3각이다. 내가 빨리, 많이 보고 싶은 마음에 성큼성큼 나가면 아이가 넘어져 버리고, 멈춰서 버린 아이를 억지로 끌고 가려면 힘들기만 한. 여행을 하면서 서로 함께 속도를 맞춰야 하는 거겠지? 얼마나 지나야 한 몸처럼 성큼성큼 나갈 수 있을까. 그런 날이 있기는 할까? 아마 조금 더 있으면 아이가 줄을 끊고 걸어가 버리겠지. 묶여 있는 이 시간을 소중히 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아이는 다행히 금방 회복해서 온천박물관을 끝까지 재미있게 잘 봤다. 실내화를 갈아 신으러 가니, 아까 길 잃은 시우를 돌봐주셨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환하게 웃으며 아는 척을 해주신다. 잘 가라고. 감사함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아이의 머리를 꾸욱 누르며 말한다. “시우야. 빨리 ‘씨에씨에!’해. 빨리.”
따뜻한 마음으로 내려가다 보면 이 관광지에 뜬금없이 도서관이 있다. 앞에 개울이 흐르는 저 예쁜 목조건물이 도서관이라고? 거짓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으로 선정되었다는 그 도서관에 한번 들어가 보자. 책 넘어가는 소리만 들리는 고요한. 정말 진짜 도서관이다. 사진촬영은 금지라니 조용히 핸드폰을 가방 안에 넣는다. 창밖에 멋진 풍경을 보며 책을 읽는 사람들이 너무 부러워지는 곳이다. 야외의 발코니에 앉아서 책을 볼 수도 있다.
“(소곤소곤) 엄마 여기 한국어 책은 없어?”
“그림책이라도 봐.”
“치… 어! 엉덩이 탐정이다!”
대만 어린이들에게도 ‘엉덩이 탐정’ 책이 인기인가 보다. 한국에서도 봤던 책을 뽑아서 잠시 책장을 넘기다가 다시 나에게 소곤소곤 이야기한다.
“엄마, 엉덩이 탐정도 중국어로 되어 있으니까 재미가 없는 것 같아.”
이렇게 천천히 신베이토우역에 도착하니 이미 3시가 넘었다. 아들이 힘들어해서 마지막 회심의 코스였던 푸싱 공원(復興公園)도 포기하기로 했다. 신베이토우 역에서 5분 정도 거리로 족욕장도 있고 놀이터도 있어서 ‘나는 족욕하고 아들은 놀이터에서 놀면 되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내 팔에 매달린 아들을 끌고 5분, 아니 1분도 더 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푸싱공원이 한국보다도 더 멀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아쉽지만 우선 숙소에 가서 좀 쉬기로 하자. 2인3각. 넘어지면 안 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