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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를 쓰다듬어 줄 용서

by 사색가 연두


1.

생애 많은 후회를 안고 살아갑니다.


어쩔 수 없이 우린 늘 선택의 기로에 서 있고

무언가를 택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당연하게도 수 없이 방황하게 되기 마련입니다.


어릴 적 어머니에게 해선 안 될 말들도 해 봤고,

친구에게 모질고 군 적도 있었으며,

동생에게 형답지 못한 행동을 수없이 저질렀죠.


무엇보다도 나 자신을

스스로 외면했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안아달라,

쓰다듬어달라,

외로우니까,

한 번만 따스한 눈길로 바라봐주라.


아무리 외쳐도 돌아봐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과거는 이미 멀리 흘러갔고

기억에 저장된 시간들은 다시 돌이킬 수 없습니다.


그러니 후회는 수정할 수 없다는 제약 때문에라도

도저히 피해 갈 수가 없는 노릇이지요.


하지만 도리어 말합니다.


그렇다면 오직

두 가지 선택지 밖에 놓여있지 않으니.


그런 나를 용서하고 사랑해 줄 것인가,

용서하지 못한 채 원망하고 미워할 것인가.




2.

용서는 인간의 영역이 아니라는

오은영 선생님의 말씀이 기억납니다.


그냥 묻어두고 살기엔

우린 너무나도 많은 상처를 안았고

초라한 결핍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당신은 만약

당신을 사랑해야만 한다면


정상이 없는 산 꼭대기까지

돌을 굴려야만 한다면


어떤 선택을 하시렵니까?


인간의 영역이 아닌 감성을

우리는 무슨 수로 극복을 해야 합니까?




3.

시간은 때론 독이 될 수도,

때론 약이 될 수도 있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어느새 당신을 만나지 못한 지

한 달째가 넘어가고 있습니다.


당신을 너무나도 보고 싶지만,

다행히도 시간은 그동안 내게

약이 되어준 듯합니다.


불안하지도,

공허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혼자 있는 고독의 시간 동안

내 나름 내로 내린 결론이 있습니다.


인간은 절대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것.

나를 용서를 해야만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

그렇게 나 자신부터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


우리는 이미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것들이 여럿 있습니다.


그중엔 어떠한 방법으로도 바꿀 수 없는 것들이 있고

우리의 선택을 벗어난 범위의 것들도 많습니다.


세상은 결코 평등하지 않습니다.


그런 세상에서 질투와 시기,

열등과 증오가 만연한 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다만 그런 나를 사랑할 줄 안다면

지나간 과거의 모자랐던 나를 용서할 줄 안다면


난 이 모든 것들을 안고 살아갈 수 있으리라

감히 말할 수 있겠습니다.




4.

이는 결코 이상적인 얘기가 아닙니다.

애초에 '극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세상이란 적을 절대 굴복시킬 수 없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세상을 아군으로 만드는 방법뿐입니다.


나는 이전에 사랑과 신을 결부 짓는 일을 부정했지만,

그렇다고 인간이 신을 믿게 되리라는 걸 부정할 수 없듯,

세상을 아군으로 바꾸는 일도 이와 맥락이 같습니다.


나는 신을 믿는 이들을

진심으로 존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들 또한 인간 그 자체이기 때문이죠.


인간이란,

쓰다듬고 또 쓰다듬어줄 수밖에 없고


인간이란,

매달리고 또 매달릴 수 밖에 없으며


인간이란,

사랑하고 또 사랑할 수 밖에 없습니다.




5.

데미안은 성장인가

아니면 구도인가?


그렇다면 성장의 측도는 무엇이며

구도와 다를 건 무엇인가?


싱클레어와 데미안의 관계는

무엇을 상징하는가?


아니 애초에 한 사람의 정신세계를

우리는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의 세계에서

감히 그 누가 당신의 선택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나의 정신세계에서

내가 나를 용서하지 못할 이유는 또 무엇이며,


내가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야 할

그 이유는 또 무엇인가?




6.

용서란,

손끝에 스치면 흩어지는 꽃잎 같다.


한순간 머물다가도

뒤돌아서면 미련도 없듯

바람과 함께 날아간다.


우린 늘 사소한 일에 상처를 주고,
또 원망과 미움을 산다.


그렇다면 우린,
살아가는 동안 얼마나 많은 용서를 감당해야 할까.


아니, 애초에

용서는 꼭 필요한 것일까?


인간의 합리성은 언제나 편협한 시각을 갖고
이익과 손해를 저울질하지만
관계는 절대 계산만으로 규정되지 않는다.


사랑이다.


피해를 보더라도,
아무런 보상이 없더라도,
결국 나 자신을 살리기 위해 나는 너를 용서한다.


용서는 용기와도 같다.


그저 버티며,
그저 살아 나가는 것.


삶의 한 이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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