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당신에게 문자를 보냅니다.
고향으로 내려가기 전,
같이 밥 한 끼 하자고.
당신은 좋다고 말합니다.
나는 우리가 함께
비오는 날의 장미를 보길 바랬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날 정말 비가 오더랍니다.
나는 결국 기대를 포기하지 않고
기대에 실망하는 법을 배우려 합니다.
우산을 펴고 밖을 나섭니다.
2.
거진 한달만에 만나는 자리입니다.
그 동안 당신은 나없이 어떻게 살았을지 궁금합니다.
하지만 괜히 묻지 않겠습니다.
나는 당신이 이 자리에 나와준다는 것만으로도
한 없이 잔뜩 기대를 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번엔 다릅니다.
나는 당신과 만나기 전
그 어떠한 상상의 동영상도 돌려보지 않았습니다.
힘주어 잘해보려는 마음도 없습니다.
그저 사랑하는 사람과 편안히 밥을 먹는 것
딱 그 뿐입니다.
3.
괴테는 숲을 걷다 예쁜 꽃 하나를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 꽃을 조심스레 자기 집 정원에다 옮겨 심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아무것도 찾지 않는 것이
자신의 뜻이었다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며 쓴 시에 담긴
소유와 존재를 의미하는 그의 발견입니다.
당신은 내게 그렇게 다가왔습니다.
발견입니다.
나는 그렇게 당신을 불러냅니다.
소유입니다.
당신이 내게 와 줍니다.
행복입니다.
4.
지금까지 나는
누군가를 소유한다는 것 자체를
하나의 두꺼운 알껍질로 보았습니다.
하지만 소유도 때론
사유로 이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무의식적인 악으로 자리 잡던 하나의 세계를
깨어 부수고 새가 되어 날아오르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당신을 갖고 싶습니다.
그리고 당신도 나를 가져주길 바랍니다.
무언가를 바라는 일은
정말 하찮고 부질없고 덧없는 일인걸 알면서도
인간은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살게 되나 봅니다.
널 사랑해
라는 단 하마디는
너한테 사랑 받고싶어
라는 말의 의미도 포함되어 있으니까요.
5.
비 내리는 거리에 서서
우산을 쓰고 당신을 기다립니다.
"안녕!"
항상 내가 먼저 보지 못하는 방향에서
당신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도 신기합니다.
당신은 모자를 썼습니다.
틈 사이로 보이는 머리색깔이 바뀌었습니다.
단번에 알아차린 나는 괜스레 뿌듯해집니다.
"염색했네?"
"응. 나 이제 검은 머리야. 나중엔 머리도 피려구."
당신의 핀 머리를 나중에 내가 보길 바랍니다.
"그동안 별일 없었고?"
"응. 뭐 그냥 똑같지. 공부하고 자격증따고."
나중에 내가 당신의 별을 만들어주길 바랍니다.
"저번에 사람많아서 포기했던 쌀국수 집에 갈까?"
"좋아!"
당신이 맛있게 먹어주길 바랍니다.
"근데 오빠는 뭐하고 지냈어? 그냥 또 책 읽고 글쓰고?"
"응."
당신도 나의 별을 만들어주길 바랍니다.
6.
발견은 뜻하지 않게 찾아옵니다.
우린 길을 걷다 꽃을 볼 수도
무언가를 닮은 구름을 볼 수도
누군가가 떨어트린 물건을 볼 수도
뜻하지 못한 인연을 볼 수도 있습니다.
아이들은 모든 것들이 발견입니다.
굴러가는 공을 보아도 웃고
뛰어다니는 고양이를 보아도 웃고
심지어 하늘에서 비가 내리는 걸 보아도 웃습니다.
늘 익숙함에 속아 권태를 느끼는 인간이란
참으로 미련하기 그지없지만서도
인간 기억의 저편엔
모두 아이가 갖고 있던 수많은 추억들이 있고
동심이 깃들어 있습니다.
나는 당신을 보면
아이처럼 웃게 됩니다.
늘 새롭고,
늘 설렙니다.
행복합니다.
7.
"요새 많이 바빠?"
"아니! 사실 바빠야 되는데 안 바빠."
"뭐야 그게."
다른 사람의 일상을 듣는 건 내 취미가 아니었지만
당신의 일상을 듣는 건 언제나 궁금하고 재밌습니다.
타인을 사랑하자 말하면서도
당신에게만 더 귀 기울이게 되고
당신만을 쳐다보게 되는 내 모순을
이젠 거리낌없이 받아들입니다.
보편적인 사랑인 인류애와
남녀간의 성애(性愛)는 역시 다릅니다.
이 또한 같은 사랑이라는 단어로 묶어내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나도 역시 어쩔 수 없는 남자인가 봅니다.
당신은 먼저 젓가락을 내려 놓습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또 갖가지 은유를 갖다 붙입니다.
맛이 없나?
배 부른가?
빨리 가고 싶은가?
이내 스스로 파는 함정에 빠지지 않기로 다짐하고
몸에 힘을 쭉 뺍니다.
"벌써 다 먹었어?"
"응. 나 다이어트 중."
확실히 오늘은 꽤나 대화가 자연스럽게 흘러 갑니다.
당신이 신나서 이야기하는 모든 걸 최대한 담아내려 노력합니다.
당신이 좋아하는 드라마는 시트콤이고
대만에 해외여행을 간 적이 있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걸 좋아하고
한화 팬이라 대전에 살고 싶답니다.
나는 한 가지 더 궁금한 것이 있어
많은 타이밍을 재지 않고,
힘 들이지 않은 채 물어봅니다.
"혹시... 다음 학기 모임은 아직 고민 중이야?"
"아~ 나 할 것 같애!"
아,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