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방학 다 지나고 학기가 시작되는 날,
드디어 당신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렙니다.
문득 드는 당신 생각 때문에
여행 중에 골랐던 선물을 어떻게 줘야 할지 궁리하다
이내 생각을 멈추고 그냥 행동하기로 마음먹습니다.
서툴더라도,
많이 늦더라도,
그렇게 한 걸음씩 다가가렵니다.
2.
선물을 주는 사람과 선물을 받는 사람 사이에서
부담이 든다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님을 반증합니다.
차라리 아무것도 주고받지 않는 관계가
훨씬 더 건강할 지도 모릅니다.
나는 친한 친구들과 딱히 생일 선물을 주고받지 않습니다.
그냥 만나서 술 한 잔 하는 것만으로도 족하니까요.
그것만으로 내겐 선물이 되니까요.
하지만 내가 무언가를 줬으니
상대방도 무언가를 주길 바라는 건,
선물이 아닌
거래인 셈이죠.
꼭 무언가를 받기 위해서 주는 것도 아니고,
그냥 주고 싶어서 주는 선물엔
어떤 대단한 의미가 포함되어 있어야 만 하는 것도 아닙니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무언가를 줄 때에야
비로소 행복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3.
현재와 선물의 의미를 가진 단어 'present'의 어원은
'prae (앞에)+ esse(있다)'
즉, 눈앞에 존재하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또한 선물 'gift'의 어원은
'giftiz(주어진 것)'
즉, 누군가에게 주는 행위보다는
본래 신으로부터 주어진 상태, 또는 부여된 것을 뜻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누군가와 함께 나누며
주고받는 관계에서의 호의로 의미를 확장하게 되었죠.
present는 지금 여기 드러난 존재를,
gift는 존재가 자신을 증여함을,
존재가 나에게 주어진 것(present)이기에,
나는 타인에게 다시 건넬 수 있는 것입니다(gift).
그러니 당신은 나의 존재론적 선물(present)이고
내가 당신께 주려는 이 선물은
당신과 나의 연결 속에서 주어진 선물(gift)입니다.
4.
"방학 동안 잘 지내셨어요?"
오랫만에 모인 자리라 조금 어색한 기류가 흘러
나는 먼저 인삿말을 건넵니다.
신기한 점은 이제
당신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인원들의
그림자가 걷혔다는 사실입니다.
모두에게 시선을 주고
말을 선물해 줍니다.
그리고 난 대답을 받죠.
그저 이 자리에 존재하는 것만으로
행복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이번에 일본 가서 산 과자랑 푸딩인데 한 번 먹어보세요."
다른 공간, 다른 시간 대에 내가 누군가를 떠올린다는 것은
연결성이 깃든 사랑의 특징이자
"우와 감사해요~!"
"잘 먹겠습니다."
여행의 또 다른 묘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5.
모임 끝나고 가는 길목
달이 아주 깊게 차오른 밤이었습니다.
"오빠는 뭐하고 지냈어?"
"그냥 평소처럼 책 읽고, 글쓰고..."
"여행갔다며. 거기선 뭐 했어?"
"음... 뭐 구경하고, 쇼핑하고... 아, 스쿠버 다이빙도 해 봤어."
"우와! 그럼 막 물고기도 보이고 그래?"
"보이지. 바닷가 예쁘더라."
"재밌었겠다."
'너랑 함께라면 더 재밌었을텐데.'
"재밌더라."
"난 이번에 대전갔잖아. 가서 한화 경기 봤는데 웬걸 졌어."
"그래서 별로 재미없었어?"
"재미는 있었어 그래도."
'언젠가 같이 보러 가자.'
"시간 참 빠르지 않아?"
문득 쉬지 않고 흐르는 시간 속에서
나는 또 영원과 약속하고 싶어집니다.
"그러게 너무 빨라. 이상하게 갈 수록 더 그런 것 같아. 오빠, 벌써 다음 해가 코앞이야."
"우리가 만난 지 벌써 1년이 다 돼어가."
조금 많이 늦었네요.
제대로 마음을 표현하기까지.
6.
주고 싶은 마음엔
딱히 이유가 없더랍니다.
주고 싶어서 주는 거지
그리고 그걸 실천할 뿐이지
그것만으로도 기쁘기에.
무언가를 받지 않더라도
고맙다는 한 마디의 힘이 생각보다 크더랍니다.
부담 없이 받아주길 바라며
나는 숨겨 놓았던 선물을
꺼내어 듭니다.
7.
날아드는 꽃잎이
내 머리에 내려앉을 때
우리는 연(聯)을 생각하게 됩니다.
"내가 선물하나 줄까?"
"응? 선물?"
"자."
"이게 뭐야?"
비가 오는 날 장미를 볼 때면
나는 어느새 이름을 붙이곤 합니다.
"그... 뭐 고농축 비타민? 얼굴 팩 이래."
"우와!"
"3분 동안만 얼굴에 붙이고 있으면 된대."
나도 이젠 왠지
여름을 좋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마워!"
웃는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을 정도로 떨려 와
나는 가만히 시선을 앞으로만 둘 뿐
나도 기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