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침대옆버스 Oct 27. 2023

꼼지락

나에게 가장 필요하면서도 불편한 옷(2021)

 매번 예열이 필요한 큰집에서 얼추 사촌들과 놀기 시작하면 살포시 엄마에게 다가갔다. 귓속말로 "나 양말 벗어도 돼?"라고 묻기 위함이었다. 엄마의 대답은 때마다 달랐다. "그래 벗어~"라고 할 때도 있고 "조금 있으면 갈 건데 그냥 신고 있어."라 할 때도 있었다. 후자면 좀 칭얼거리다가, 그래도 양말 벗는 게 예의는 아닌가 보다 싶어 꾹 참고 아빠 차에 타자마자 양말을 벗었다. 발에 땀이 많은 편도, 양말 알레르기가 있는 것도 아닌데 하여간 어릴 적부터 그랬다. 


 양말을 얼른 벗고 싶어하는 이 어린이는 훗날 중학교에 올라가 새로운 난관에 봉착한다. 하계에는 흰색, 동계에는 검은색 양말을 신어야 한다는. 그런데 거기에 스타킹을 곁들인! 아니 실외에서는 운동화, 실내에서는 슬리퍼를 신을 건데 왜 스타킹에 양말까지 신는 거지? (참고로 이 친구는 유치원 등교 전 거실에 미니마우스가 그려진 하얀 스타킹과 치마가 펼쳐져 있는 날이면, 애당초 좌절했던 아픔이 있다. 손이 느려 스타킹을 겹겹이 양말처럼 모아 발을 넣은 뒤 다시 쭉쭉 피는 데 오래 걸렸기 때문. 절대 텔레비전 속 방귀대장 뿡뿡이, 만들기 교실 장면에 한눈 팔려 지각한 것이 아니다.) 아무튼 14살 '이 양말답답해' 씨는 집에 도착해 후다닥 자유를 누리기 위한 절차가 한 꺼풀 추가되었다. 


 복장 규정에 얽매이지 않는 고3을 지나, 월화수목금퇼 '오늘 뭐 입지?' 선택의 나날인 성인 이 모 씨는 여전히 양말을 신고 바깥에 나선다. 결국 관습에 굴복한 것일까. 목이 길어 슬픈 기린처럼, 발에 살이 없어 슬플 뿐이다. 초여름부터 한껏 들떠 슬리퍼, 샌들, 맨발구두로 활보하는데 어느새 발가락, 발등, 발목에 빨간 자국이 남고 집에 도착하면 피가 맺혀있다. (지나치게 많이 걸은 게 아니냐는 질문이 제기된다면, 원래 많이 걸으려고 외출하는 게 아니냐고 변명하고 싶다. 그리고 왕복 3시간 대학생활을 거친 이에게 걷기란 필연적이다.) 네 발로 걸어다닐 수 없기에, 내 발에 양말 두 짝을 덧대는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지금도 나는 양말이 답답하다. 그래서 가까운 이의 집에 방문했을 때는 조심스럽게 '탈양말' 허락을 구한다. 나와 달리, 엄마는 당신 집에서도 양말을 신으며, 감기든 뭐든 발이 따뜻하면 예방할 수 있다는 '발 보호주의자'다. 양말을 신고 청소기를 돌리는 엄마를 볼 때면, 내 발에게 미안하다. 나를 만나 너는 상처도 많고 홀대받는 기분이겠다. 안 씻어서는 아니지만, 왼발 티눈 한 개도 오래도록 안 없어지고 있고...... 그래도 너가 나의 일부니까 양말 벗을 때의 그 시원함, 짜릿함은 공유할 수 있겠지? 다 씻고 무드등만 켜고 침대에 누워 한껏 꼼지락거릴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사실도!

이전 11화 버리고 빌리는 것들에 대한 단상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