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mumi 여이진 유신디 Oct 13. 2023

우리나라의 학생증 같은

립카드 / 유신디


아일랜드에서 사용한 ‘leap’카드가 학생증의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다. 사람들은 이 카드를 ‘student leap card’ 혹은 ‘leap card’라고 불렀는데 사실 학생증이라기보다는 학생들이 쓰는 교통카드에 더 가깝다. 립 카드가 있다면 하루 5유로만으로 한도 끝도 없이 추가되고 비싸지는 아일랜드의 교통비를 절약할 수 있었고, 전시회나 박물관도 할인을 받거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또 패스트푸드점에서 ‘스튜던트 밀’이라는 이름으로 5유로에 저렴한 세트 메뉴를 먹을 수 있었다. 이런 여러 가지 혜택들 덕에 종종 한인 거래방에서는 한국으로 돌아가는 유학생들에게 유효기간이 남은 ‘립’카드를 사고 싶다고 연락을 하는 사람들도 종종 찾을 수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내 영어실력은 크게 변화가 없는데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바로 자신감이다. 이제 막 더블린에 도착한 22살의 나는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자주 사용해 보고 싶어했고 그럴 때마다 사용한 방법이 있다. 바로 립 카드 충전하기. 더블린에도 립 카드를 충전할 수 있는 기계들이 있지만 나는 슈퍼를 주로 이용했다. 립 카드를 처음 만든 당일에도 함께 카드를 만들러 갔던 친구에게 충전이라는 영어 단어를 배워 근처 슈퍼로 들어가 ‘I want to charge’를 외치며 20유로를 점원에게 건넸다. 정말 간단한 문장이었지만 내가 영어로 누군가에게 나의 의사를 전달했다는 사실에 뿌듯함을 느꼈다. 그래서 더블린 살이 초반에는 조금이라도 영어를 더 쓰고 싶어 거의 매일 충전을 하러 슈퍼에 갔다. 더 시간이 지나 생활에 익숙해졌을 무렵에는 ‘plz’ 한마디로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걸 알게 되었고 좀 더 나중에는 충전하는 것도 귀찮아져 한 번에 50유로 이상씩 충전을 했다.


어쩌면 립 카드는 나에게 그저 학생증이나 교통카드가 아니라 아일랜드 생활을 하며 조금씩 성장하고 있던 22,23살의 나를 상기시켜주는 하나의 추억이 아닐까 싶다. 다시 돌아가면 사진이 학생 비자가 아니라 얼굴이 박힌 스튜던트 립 카드를 쓸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안 아쉬워.

이전 26화 사슴으로 나눈 짧은 우정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