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가족과 일본의 나라공원에 간 적이 있다. 관광객이 들고 있는 먹을 것을 눈앞에서 훔쳐 가는 사슴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렇지만 동물원에서 볼 수 있던 사슴을 가까이 볼 수 있었기에 신기했다. 그 이후 사슴에 대해서는 잊고 살았다. 동물원에 갈 일도 없고, 사슴을 보러 갈 일은 더더욱 없었다. 아일랜드에서 사슴을 보게 될 줄 생각도 못했다.
리버바에서 술을 마시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한인 단체 카카오톡방에서 누군가가 사슴을 보러 피닉스파크에 가자며 사람을 모았다. 아일랜드에 온 지 한 달도 채 안 되었을 때라서 사귄 친구가 많지 않아 심심했기에, 친구를 사귀기 위해 재빨리 연락을 했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스파이어에서 만났다. 어색한 인사를 나누며 일행이 모두 올 때까지 기다렸고, 고민을 하다가 피닉스파크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아일랜드 날씨치고 유난히 더운 날이었다. 땀도 흘리며 열심히 걸었지만, 처음 보는 사람들 앞이라 마냥 투덜거릴 수도 없었다. 스파이어에서 피닉스파크까지는 걸어서 약 40분 정도였다.
공원에 도착해서는 당연히 사슴부터 찾았다. 나라공원처럼 곳곳에 사슴이 있을 줄 알았더니만, 특정 구역에 주로 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다 같이 열심히 공원을 찾아보려 했지만, 걸어오는 동안 체력은 모두 바닥났다. 피크닉을 할 수 없을(아니, 하기 싫을)만큼 바닥에 사슴똥은 그렇게 많은데… 정작 사슴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공원 관리인 덕분에 사슴을 찾을 수 있었다. 알려준 곳으로 가니, 사슴이 족히 스무 마리 정도 있었다. 더위에 지친 건지, 아니면 낮잠을 잘 시간이었던 건지, 사슴들이 모두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용기 내어 가까이 다가간 사슴은 생각보다 얌전했다. 가만히 눈동자만 굴려 나를 쳐다보더라.
일행 중 한 분이 갑자기 주섬주섬 바나나를 꺼낸다. 그 덕에 우리는 사슴에게 인기 만점이었다. 사슴들은 정말 미친 듯이 우리에게(바나나에게) 달려들었다. 덕분에 사슴과 셀카도 찍고 돌아가며 서로를 찍어주기도 하였다. 얼굴과 카메라를 가까이 가져가니 메롱하던 사슴도 있었다. 가려는데도 계속 쫓아오는 사슴이 있었다. 끝까지 따라오더니 이제 더 이상 바나나가 없는 것을 눈치채고는 고개를 홱 돌리며 사라졌다.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사슴을 같이 보고 얘기하며 밥도 먹다 보니 어느새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그 이후 아일랜드에 머무는 동안 피닉스파크에 또 가지는 않았다. 사슴을 본 건 재밌었지만, 그게 전부였다. 그때 만났던 사람들도 더 이상 만나지 않았다. 아일랜드에 살다 보니 오며 가며 만난 사람도 있지만, 나중에 일하게 된 곳에서 만난 친구와만 지금까지 만나고 연락한다. 지금은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사람들과의 아일랜드 생활 속 작은 추억으로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