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티카 Stica Dec 21. 2023

일몰이야 혼자서도 볼 수 있지

포르투 모후정원 (Jardim do Morro)의 일몰

인터넷시대의 강림 이후, 항공권과 숙소 외의 여행정보는 여행지에 도착해서 알아보는 편이다. 십여년 전 처음 유럽여행을 왔을 때야 종이지도가 누더기가 되도록 들고 다녔지만, 이제는 구글맵 덕분에 그마저도 필요하지 않다. 특히 회원들의 활동이 활발한 인터넷 카페에 가면 실시간으로 주요 도시 현황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치앙마이에서는 태사랑 카페를 자주 찾았고, 포르투갈에 와서는 유랑이라는 카페를 자주 간다. 궁금한 게 있을때마다 카페에서 검색해보기도 하고, 궁금한 게 없어도, 뭔가 여행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특별한 일이 없을까, 기웃거리고는 한다.


유럽여행 인터넷 카페를 가면, 최신 글의 대부분은 항상 동행찾기다. 몇월 몇일 점심/저녁을 함께 하자거나, 어떤 특정한 투어를 함께 하자거나 펍이나 바를 같이 갈 사람이 있는지 찾으면서, 관심 있으면 여기로 연락 달라며 오픈 카톡방 주소를 함께 올려둔다. 그러고보니 나도 2010년 초에 똑같은 카페에서 동행을 만났다. 나랑 학번이 같은 남자애였는데, 베를린 일정이 맞아 하루를 꼬박 같이 보냈었다.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체크포인트 찰리, 베를린 장벽 같은 명소에서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포츠담 광장 근처에서 저녁밥을 먹고 맥주까지 마신 후 헤어졌다. 이름은 기억이 안 나지만, 대략적인 생김새는 인상에 남아 있다. 키 큰 말상이라, 고등학교때 남자친구와 닮았었다.


‘포르투’로 검색하면 나오는 게시글도 동행찾기 글이 태반.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동행을 찾나, 궁금해서 열 개에 가까운 글을 보다 보니 눈에 띄는 패턴이 있었다. 이십대의 여행자들은 대부분 동행이 또래였으면 좋겠다는 희망사항을 분명히 밝힌다. 2010년의 내 베를린 동행도, 비슷한 연령에 한정해서 동행을 구했었나? 기억이 잘 나지 않아 정확히 확인해보고 싶지만, 당시 사용했던 아이디는 미성년자가 포털 아이디를 못 만들때 아빠 주민번호로 만들었던 것이라, 확인할 길이 없다. 그래도 나 정도면 부담스런 삼십대가 아니지 않을까, 근거 없이 솟아난 자신감도 잠시. 세상에 ‘나 정도면' 만큼 심각한 착각도 없지.


‘포르투 동행찾기'의 또 다른 패턴은 바로 '모후정원(Jardim do Morro) 일몰보기'다. 모후정원에서 보는 일몰이 예쁜가보지? 한낮에도 충분히 아름답던데. 일몰 사진을 찾아보니, 과연 멋지긴 멋지다. 일몰이야 혼자서도 호젓하게 볼 수 있지 않을까? 근처 슈퍼에 들러 레드와인 작은 병을 사 가서, 지는 해가 물들이는 하늘과 강을 바라보며 마시면 세상 꿀맛이겠지.




원대한 계획을 품고, 동루이스 다리를 건너 모후정원에 도착했을때는 세시가 조금 넘었다. 일몰까지는 아직 두 시간이 남았다. 우선은 가까운 슈퍼 minipreco부터 다녀오자. 와인 섹션을 구경하는데, 내가 예상치 못한 문제가 있었다. 작은 병이라도 모두 오프너가 필요한 것. 작고 네모진 테트라팩에 담긴 0.6유로짜리 와인도 있었지만, 맛 없어보이거니와 과일쥬스처럼 빨대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편리하지도 않을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지. Sagres 맥주 500ml를 한 캔(1.33 EUR) 샀다. *후일 같은 슈퍼에서 Gazela라는 브랜드의 캔 와인(1.79 EUR)을 발견해 화이트를 마셔봤는데 달지 않고 산뜻하니 괜찮았다.  

사그레스 (Sagres) 맥주와 도오로(Duoro) 강

강가를 바라보는 언덕(Morro, 모후가 언덕이란 뜻)을 따라, 단차를 둔 석재 벤치가 길고 둥글게 늘어서 있다. 막상 앉으려고 보니, 군데 군데 하얗게 점이 찍힌 새똥이 거슬린다. 왜 나는 하필 오늘 흰 바지를 입고 나온거냐. 아! 늘 휴대하고 있는 (치앙마이 Rimping 슈퍼) 장바구니를 깔면 되겠구나. 사이즈도 빅 사이즈라, 바닥에 깔고 앉으니 푸짐한 내 엉덩이가 여유롭게 올라간다.


오른쪽 하단, 술 달린 치마를 입은 버스커. 주로 포르투갈어 노래를 부르신다. 다음날은 체크무늬 스커트를 두르셨다.

그저께도 저 분이 버스킹을 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노래도 그때 부른 것과 같은 노래다. 달리는 듯 한쪽 다리를 구부리는 동작, 숨을 헐떡이는 듯한 추임새가 워낙 특이해서 기억이 난다. 옷차림도 특이하다. 바지 위에 스커트를 한장 걸치고 계신다.


버스커를 구경하고 있는데, 옆에서 한국어가 들려온다. 바로 옆에 한국인 모녀가 앉아있었다. 엄마는 사십 중반쯤 되어보이고, 아이는 초등학생 같다. 엄마가 아이 이름을 부르며 도오로(Douro) 강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기에, 모녀가 함께 사진을 찍고 싶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애기랑 같이 찍어드릴까요?’ 하고 나답지 않은 오지랖을 부렸다. 사진을 찍어주는 화면 속에서 배경과 두 모녀가 아름답게 어우러지니, 오지랖 부리길 참 잘했다 싶은 보람이 있었다.


그런데 알고보니 모녀 둘만 온 여행이 아니다. 어딘가로 혼자 구경을 다녀온 아빠가 자리로 돌아오셨다. 나는 그가 가족과 함께 앉을 자리를 좀 더 내어주고 옆으로 비켜 앉았다. 하지만 세 가족 모두 함께 사진 한장 찍어드릴까요? 라는 확장형 오지랖을 펼치지는 않았다. (생각이야 했지만.)  


그렇게 전경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잡념에 빠져 있는데, 아이엄마가 말을 걸어왔다. 포르투에서 공부를 하느냐고 묻기에, 아 저는 나이가 많아서… (나이가 많은 건 알아봤겠지만, 머리가 노란 탈색모인데다 팔자좋게 눌러앉아 있는 모양새를 보고 물은 것일테다) 7월에 퇴사했거든요, 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아이엄마는, 그들 가족은 프라하에 7년째 살고 있어 같은 유럽대륙인 포르투로 며칠 놀러왔다고 말해주었다. 프라하에 7년이나 살고 있다니! 민박이나 식당, 아니면 여행사 같은걸 하시려나, 궁금증이 일었다. 기회를 틈타, 어쩌다 프라하에서 정착하시게 되었느냐 물었다.


주재원으로 파견을 나와 오래 머물게 되었단다. 아홉살난 그들의 아이가 부러워서, 아이는 참 좋겠어요, 좋은 아빠 만났네, 라고 했다. 그러자 7년이나 있게 될 줄은 몰랐다며, 이제 곧 돌아갈거란다. 그래서 내년에 언제 돌아가시나요, 물었다. 그랬더니 돌아오는 답변이, 모른단다. (네???) 


아… 그랬지. 회사란 곳. 내가 다니던 회사에서도 연말마다 굵직한 임원 인사가 결정되고, 그 얼개에 맞춰 연초에 국내외 조직이 정비됐다. 또, 주재원을 처음 나갈때는 파견기간이 정해진 채로 나가지만, 파견인원의 의사와 현지상황에 따라 일년씩 연장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절대다수가 자녀교육 때문에 가능하면 연장을 하고 싶어했다. 괜한 걸 물었나 싶어, '하하, 원래 능력있는 분들은 법인에서 꼭 붙잡고 귀임 안시켜주시잖아요,' 라고 어울리지 않는 너스레를 떨었다.


주재원 가족은 마데이라, 나자레 등의 지역을 언급하며 내게 가보았는지를 물었다. 마데이라는 어디서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긴 한데… 포르투갈령 섬이고 축구선수 호날두의 고향이란다. 음식 이야기(프라하 음식은 맛이 없다)가 나와서, 5월말에 프라하-안탈리아-부다페스트를 다녀왔다고 하니, 안탈리아에서 '시데'(Side)를 갔느냔다. 시데? 그게 뭔가요? …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오가 만난 곳이란다. (금시초문입니다만.) 말을 하면 할 수록 뚝뚝, 고드름 녹아내리듯 떨어지는 나의 무식에 당황했을 법도 한데, 아이엄마는 당황한 기색 없이 계속해서 대화를 이끌어갔다. 이 식당 진짜 맛있어요, 라며 식당사진을 보여주고서 내가 구글맵에 그 식당 정보를 받아 적을 때까지 기다리는가 하면, 여기 맛있대요, 라며 다른 식당을 또 보여주곤, 배가 터질것 같지만 우린 또 먹으러 갈거예요, 라며 즐겁게 웃었다. 프라하 음식이 맛이 없긴 없더라고요...

모후정원에서 바라본, 내일로 넘어가는 해


해가 넘어갔다. 세가족과 서로 즐겁고 안전한 여행을 기원하며 헤어졌다.




숙소로 돌아오면서, 좋은 아빠 만났다고 한 말은 건방진 말이었을까, 그들은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았을 그 한 마디를 쓸데없이 곱씹었다. 무심코 내뱉는 말은 이토록 불완전하다.


주재원이 아니어도 좋은 아빠가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가. 해외에 데리고 나갈 수 있어야(주재기간 연장이 계속 되어야) 좋은 아빠가 될 수 있는 것처럼 들리지는 않았을까. 아빠 본인은 마음을 옴쭉달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무거운 압박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부양가족 없이 혼자 나가있던 나조차 가끔 그랬으니. 또, 좁디좁은 주재원 사회에서 엄마가 신경쓰는 일이 좀 많은가. 아이 학교생활이며 해외에서의 살림이며. 아빠만 고생하는 것처럼 말한 건 아니었을까.


이런저런 상념에 잠겨 걷는데, 이내 실소가 터져나왔다. 아유, 너나 좀 잘 하세요, 백수 아줌마야.


집에 가서 따끈한 수프나 끓여먹어야겠다.

집으로 가는 길에 핑구도스 (pingo doce) 슈퍼를 들렀다.


이전 02화 요가매트와 전기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