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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티카 Stica Dec 26. 2023

쟤는 왜 저기서 울고 있을까

성탄절 한낮의 히베이라 부두 (Cais da Riberia)

포르투에 온 지 열흘째 되는 날, 오늘은 성탄절이다. 유럽에도 우기가 있는지 처음 알게 해주었다던 포르투갈의 12월. 줄창 비내리는 날씨에 대한 각오를 단단히 하고 왔는데 웬걸, 아직까지 하루도 비가 내린 날이 없다. 비가 내리기는 커녕, 구름조차 좀처럼 보이지 않는 화창한 날의 연속이다.




남편이 29일에 와서 연말을 함께 보내기로 했으니, 혼자 보내는 성탄절이 두렵거나 걱정되지는 않았다. 다만 매일, 하루도 빼놓지 않고 싸고 맛좋은 와인을 들이켜느라 몸이 축이 나 그런지, 차츰 우울감이 찾아들고 있었다.


정점은 이틀 전. 그날도 해가 지기 무섭게 집에 돌아와 씻고 와인을 한두잔 마시다보니 어느새 반 병을 마셔버렸다. 좀 알딸딸한데 자기에는 무척 이른 시각(7시)이라 침대에 잠깐 누워만 있을까, 했던 것이 눈을 떠보니 새벽 1시. 포트 와인은 모두 20도 내외로 알콜도수가 높아, 단 맛에 호로록 마셨다가는 이렇듯 정신을 쉬 잃게 된다.


퉁퉁 부어 잘 떠지지 않는 눈으로, 습관적으로 유튜브와 브런치를 확인했다. 유튜브 구독자가 40명이었는데 39명이 되어 있었다. 치앙마이 한달살기의 첫 영상을 올린지 얼마 안되서다. 동남아는 보기 싫었을까, 아니면 이제 내 영상 스타일이 지겨운걸까, 아니면 내 얼굴을 보기 불편했을까. 다시 잠을 청해야 한다는 핑계로 와인을 더 따라 마셨다. 속이 불편한데 뜨거운 국물을 먹고 싶어 오밤중에 수프를 끓였다. 국적도 없고 레시피도 없는 수프. 대충 이렇게 끓이면 이런 맛이 나겠거니, 하고 만들어봤는데 정말 생각한 맛이 나서 그 후 계속 끓여먹고 있는 토마토수프다. 한 솥을 끓인 수프를 다 먹고, 와인을 더 마셨다. 또 잠깐 눕고 싶어져, 누웠다 일어났을때는 새벽 6시. 유튜브를 또 확인했다. 구독자가 38명이 되어 있었다.


어엿한 직장인 시절,누군가 내게, 유튜브 구독자가 40명이었다가 38명이 되어 상심한 이야기를 했다면, 표정은 공감하는 척 지어보일지언정 머리가 깨나 복잡했을 것이다. 어느 지점 어떻게 이해하고 반응해야할지 알 수 없었을테니. 고작 그런 일에 속상하다는 것이 농담일지도 모르니, 크게 안타까워하는 반응을 보이면 되려 실례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겠지. 


그러나 다행히, 내 마음이 어두울수록 포르투의 태양은 환했다. 그래서 가능하면 밖으로 나가 계속 걸었다. 보통은 트램을 타고 다녀온다는 바닷가를 무턱대고 걸어서 다녀왔다. 아름다운 장면마다 코끝이 찡해왔다. 이건 무슨 감정일까, 곰곰 생각해보니 분에 넘쳐 황송하고 감사한 기분이다. 곰팡이가 축축하게 피어 있던 마음이 햇볕에 마르는 듯, 보송해진다.

왼쪽은 강, 오른쪽은 바다.


하찮고 한심한 인간 하나 정도는 티도 안나게 품어줄 수 있는, 거대하고 자비로운 우주다. 세월의 물을 곱게 들이면서도 섬세함을 보존한 건물의 양각과 음각, 바닷가에 찬란하게 부서지는 파도, 입(부리)매가 인(조)망이 두터워 보이는 갈매기의 눈빛이 말해준다.




성탄절인 오늘, 어차피 문 연 가게가 거의 없다시피 할 테고, 특별히 해야할 일이 있는것도 아닌데 나가야하나, 고민을 했지만 실내에 있으면 우울해질 것이 틀림없다. 씻고 화장을 하는 데 힘을 내야했다. 집 문을 나서려는데 언니에게 카톡이 왔다. 네 유튜브 영상 몇개 봤는데 조언을 해도 되겠느냔다. 이어지는 조언에서는 틀린 말이 하나도 없다. 알찬 정보를 주는 것도 아니고, 영상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사람이 예쁜 것도 유명한 것도 아니더라(마지막은 언니가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숨겨진 뜻이라고 생각했다). 어디를 계속 가고 뭐라 지껄이는데 그래서 요점이 뭔지 모르겠다. "어 맞아 ㅎㅎㅎ 재미없으면 억지로 안 봐도 돼" 라고 대답했다.


꾸역꾸역, 발을 운동화에 욱여넣고 밖으로 나왔다. 지난번에 갔던 바닷가에 또 갈까. 가다가 지치면 그냥 도중에 돌아오자. 강가로 나왔는데, 현지인들이 북적거리는 작은 가게가 있다. Ice Bar. 여기가 사랑방인가. 동네 아저씨들은 다 여기 모였는지, 좁디 좁은 가게 안팎에서 웅성이고 있다. Super Bock 맥주잔을 하나씩 들고 서서 담배를 피며 수다를 떤다. 언감생심, 나도 저기 끼고 싶다, 는 소속에 대한 욕구가 인다. 아저씨들 틈을 헤치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니, 안에서는 주민들이 에스프레소를 한 잔씩 앞에 두고 서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맥주를 시킬까 고민하다, 그래도 나는 와인파야, 하며 와인을 주문했다.


분명 레드 와인을 한 잔 달라고 했는데, 포트 와인 괜찮아? 라고 해서 고개를 끄덕였더니 화이트 포트 와인을 줬다. 한 잔 가득 채워준 화이트 와인이 2.3유로. 포르투에서는 드물게 현금결제만 가능하다. 포트와인답게 몹시 달짝지근한데, 높은 도수 때문인지 단 맛이 오래 머물지 않아 끝맛이 불쾌하지는 않았다. 달큰한 향이 아주 약간, 소테른 와인(숙성을 많이 해서 달콤하고 향이 몹시 풍부하며 호박색이다)의 첫 향을 연상시키는 구석이 있다. 잔술이니만큼 고급은 아니었겠지만, 포트 화이트도 이런 매력이 있구나, 좀 더 경험해보고 싶다, 생각하게끔 했다.

동네 주민들을 구경하며 포트 화이트 한잔. @Ice Bar

바깥 테이블에 앉아 잔을 거의 비워갈때쯤, 손님들이 갑작스레 빠지는가 싶더니 가게에서 흘러나오던 캐롤이 멈췄다. 그러고는 주인 아저씨가 밖으로 나왔다. 가게 닫으시나요? 하자 멋쩍게 웃어보이신다. 시간은 오후 1시 10분. 반 모금 정도를 훌떡 마시고 일어났다.


술기운 때문인지 이제 바닷가까지는 걸어가고 싶지 않다. 루이스 다리까지 강가를 따라 걸어가기로 한다. 히베이라 광장까지 걸어오니, 대략 바 두세군데가 문을 연 것 같다. 문을 연 가게의 야외테이블은 성탄절의 햇살을 즐기는 사람들로 만석이다.


광장을 지나 강가로 내려갔다. 히베이라 부두 (Cais da Ribeira)를 그냥 지나갈 생각이었는데, 어제 다른 장소에서 본 버스커가 버스킹을 하고 있어 걸음을 멈췄다. 키 큰 흑인 여성인데, 긴 레게머리에, 검은색 자켓, 검은색 조거팬츠 차림에다 운동화만 흰 색이다. 어제는 Castro라는 나타(Pastel de Nata, 에그타르트)샵을 찾아갈때 지나친 삼각형의 언덕 (Largo São Domingos와 R. das Flores가 만나는 지점)에서 봤다. 마침 그때와 똑같은 서정적인 캐롤을 부르고 있어 기억이 더욱 선명하다.

전날에도 본 흑인 여성 버스커.

맥주라도 한잔 사 마실까, 하다 관뒀다. 대신 강가를 바라보는 벤치를 하나 골라 앉았다. 버스커와 가까운 쪽은 혼잡했으므로, 왼편으로 다소 멀찌감치 떨어져 텅 비어있는 벤치를 골랐다. 고개를 돌려 버스커를 바라보는데, 오른쪽 벤치에 앉아있는 노부부와 잠깐 눈이 마주친 듯 했다.


문득, 기억이 났다.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읽고 포르투갈에 오겠다는 결심을 했으면서도, 왜 리스본이 아닌 포르투에서 한달을 지내고 싶었는지. 비긴어게인2에서 김윤아가 도오로 강을 배경으로, 세월호 추모곡인 '강'을 부르는 장면이 각인되어서였다. 명치가 뜨거워졌다. 줄곧 알찬 여행을 해야겠다는 욕심만 부렸지, 꿈에 그리던 여행지를 찾아 올 수 있어 감사하다고는 생각을 잘 못했다. 뒤늦게, 지금 여기 앉아있을 수 있어 참 감사합니다, 되뇌었다.


이어서 버스커가 부른 곡은 비욘세의 <Halo>. 매우 유명하고 오랫동안 인기가 많은 곡이지만, 나는 후렴구의 멜로디만 알고 있는 곡이었다. 가사가 잘 들리지도 않았고, 버스커가 특별히 노래를 잘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녀가 halo, halo, halo 하며 후렴구를 호소하듯 불렀을때, 세번째 halo에서 예기치 못한 눈물이 주륵, 흘렀다. 


이럴때 나의 대처법은 눈물을 닦지 않는 것이다. 눈물을 닦으려 손을 얼굴로 가져가면, 내게는 아무런 관심이 없던 주변인들의 시선이 자연스레 내 손동작을 향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사람 많은 데서 맥락없이, 감정을 주체못해 질질짜는 우스운 모습을 들키게 된다. 일단 흘려보내고,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는데서 자국을 닦아내면 된다. 그런데 맙소사. 눈물이 한 줄기로 끝나지를 않고 계속해서 흘러나온다. 고개를 정면으로 돌려 앞을 응시했다. 전방에는 끽해야 갈매기들 뿐, 내 얼굴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없다. 마음 깊이 어두운 곳에 고여있던 물이 자꾸만 흘러나온다.


부두에 정박해 있는 여객선이 가볍게 넘실거리고, 강물이 따사로운 햇살을 받아 윤슬을 피워낸다. 갈매기들이 때로는 안단테로, 때로는 알레그로로 날아오르며 (심심할 뻔한) 성탄절의 부둣가에 활력을 잣는다.

질질짜는 동양인 여자가 앉아있던 자리에서 바라본 풍경


다행히 버스커의 다음 곡들은 모두 위트있는 곡들이라, 듣고 있다보니 눈물이 자연스레 멎었다. 다시 (정상적인 얼굴이 되었다 생각하여) 고개를 돌려 버스커를 바라보았는데, 오른쪽 벤치의 노부부와 눈이 똑바로 마주쳤다. 할머니가 생긋, 웃어보이신다. 나도 밝은 미소로 화답했다. 그들은 이제 막 일어나려던 참이었는지, 곧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고개를 끄덕,하고 인사를 하니 할머니가 내게 다가오신다. 할머니보다 키가 15센치는 더 큰 듯한 할아버지가 뒤에서 주춤하고 따라오신다.


할머니는 머리가 새하얗게 세었지만, 커다란 눈망울이 또렷한 분이었다. 포르투갈어로 잔뜩, 서너마디를 천천히 그리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는데, 당연히 나는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뭐라고 말을 해야하지, 겸연쩍은 미소를 지어보이자, 옆에 서 있던 할아버지가 "We don't speak English"라고 하신다. 그러고선 핸드폰을 꺼내 이것저것 만져보신다. 번역을 해 보시려는 건가. 나는 짐짓 유쾌한 척, "아 그러시구나! 저는 포르투갈어를 못하고 영어만 할줄 아는데! 아, 한국어랑요. 한국에서 왔거든요."라고 떠벌떠벌 영어로 이야기했다. 그러자 할머니가 내 오른손을 따뜻한 두 손으로 붙잡고 또 한마디를 말씀하셨다. 발음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 포르투갈어였다.


할머니가 가만가만, 내 손등을 쓰다듬어주셨다. 포르투갈인의 말은 알아듣지 못하지만 손길은 알아들을 수 있다. 다시 또 왈칵, 터져나오는 눈물을 숨과 함께 삼키며, 오브리가다(obrigada,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녀의 커다란 두 눈망울에서도 눈물이 솟아나왔다. 또 뭐라고 한 마디를 하시는데 역시 알아들을 수는 없다. 내내 할머니 옆에 서서 핸드폰을 연신 만지작거리던 할아버지가 드디어 화면을 내게 보여주신다. "My wife wishes you all the best." (너 다 잘 되길 바란대.) 


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할머니에게 꼭 안겨버렸다. 오브리가다(obrigada, 감사합니다), 펠리츠 나탈(feliz natal, 좋은 성탄 되세요), 할 수 있는 포르투갈어 표현을 소진한 뒤, 영어로 가족분들 모두 건강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를 덧붙였다. 할아버지가 알아듣고 할머니에게 전해주시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아마 그녀가 본 것은, 관광지에서 질질짜고 있는, 청승맞고도 어딘가 좀 이상해보이는 동양인 여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면 딸이나 아들, 손녀나 손자, 앞집이나 옆집 이웃의 모습은 아니었을까. 아니면 준비되지 않은 눈물이 갑자기 쏟아지곤 했던(하는) 본인 자신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감사함이 창피함을 당연스레 압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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