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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티카 Stica Jan 04. 2024

포르투에서 버스 타고 다녀온 군산

포르투현 마토지뉴스 (Matosinhos)

2024년의 새로운 날들이 조용히 지나가고 있다. 1월 1일은 뭘 했더라? 1월 2일은?

기억을 되짚으려 사진첩을 열어보니, 1월 1일은 나타(Pastel de Nata, 에그타르트) 가게 Castro에서 사먹은 나타와 에스프레소, 책갈피와 자석을 산 가게 Prometeu 사진이 나온다. 집에서 수프와 감자 새우 그라탕을 해먹었고, 저녁엔 Ideal Clube De Fado에서 파두 공연(인당 19 EUR)을 봤다. 온전히 공연에만 집중할 수 있어 만족스러웠다.


1월 2일 사진은 렐루 서점(Livraria Lello)볼량 시장(Mercado do Bolhão), 나타 가게 Fábrica da Nata가 있다. 그날은 아침부터 종일 비가 내려 집 근처만 간신히 오다녔었다. 렐루 서점에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즈의 <백년동안의 고독> (21.5 EUR)과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서> (20.40 EUR)를 샀다. 1인당 입장권을 8유로 주고 구매할 수 있는데, 책을 사면 티켓으로 8유로씩 할인해주므로 두 권을 고른 것이다. 책이 왜 이리 비싸, 한낱 소비자에 불과한 나는 생각했다.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서>는 여행 오기 전 읽고 오려 했었지만 다짐 뿐이었던 책. 실물의 압박감을 느끼면 한국에 돌아가서 어쩔 수 없이 읽게 되지 않을까? 렐루 서점은 명성만큼 아름다운 곳이었고, 마법사가 튀어나올 것처럼 신비로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러나 그런 한편으로, 너무 많은 관광객들의 소란에 놀라 갖고 있던 마법마저 힘을 발휘하지 못할 만큼 정신이 없었다. 서점을 나오자마자 비가 쏟아졌다. 책 두 권을 외투 안에 품고서 종종걸음으로 집에 돌아오는 길, Fábrica da Nata에 들렀다. 남편과 나타와 에스프레소를 하나씩 먹었다. 집에선 소시지를 넣은 파스타를 해먹고 Cruz Colheita(Single Vintage Port) 2010 와인을 마셨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 남편의 컨디션이 많이 좋아졌다. 워낙 건강체질인 나는 감기기운이 언제 왔다간지도 알 수 없도록 개운하게 일어났다. 근교 마토지뉴스(Matosinhos)에 가서 가성비 해물밥을 먹는다, 가 부부의 계획이었다. 위장에 공간이 남으면 프란세지냐(Francesinha)도 도전한다.


오늘은 예보에 비 소식이 없다. 메트로 볼량 역에 가서 안단테(Andante) 카드를 구입했다. 구역(Zone)에 구애받지 않고 관광명소 입장 할인도 받을 수 있다는 포르투 카드와 달리, 안단테 카드는 목적지의 지역(Zone)을 선택해 구매해야 한다. 범구역 이용권이 없는 관계로, 24시간 이용권을 산다고 해도 한 개의 구역을 벗어나 사용할 수 없다. 카드 보증금 0.60유로가 구매금액에 포함된다. 여기까지는 숙지했는데... 반드시 일인당 일매의 카드를 소지해야한다는 안내문구는 2회권 카드 한 개를 구입한 후에야 확인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어쩔 수 없이 Z3로 가는 2회권 카드 1매와 1회권 카드 1매를 구입하게 되었다.


볼량 버스정류장 역에서 502번 버스를 타고 상 페드로(S. Pedro) 정류장에서 내렸다. 약 40분 정도 소요되었다. 창 밖으로 이렇다할 풍경이 펼쳐지지는 않았다. 중간에 탑승하신 할아버지가 동양인 남편을 보고 흠칫 놀라 그 옆에 앉은 동양인 아내까지 흘깃 보고는, 자퐁? 하고 물었다. 노노, 코리아. 그러자 그가 손을 위아래로 움직이며 포르투갈어로 뭐라 하는데, 북이냐 남이냐 묻는다 싶어 사우스 코리아 (남한입니다), 알려드렸다. 그러자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이신다. 또 뭐라뭐라 하시는데 '포르투'인지 '포르투갈'인지가 들린 것 같아 포르투에서 여행하고 있어요, 포르투갈은 처음이예요, 말했다. 그가 우리에게 빙긋 미소를 지어보였다. 남편은 방금 할아버지가 영어를 하신 것이냐고 내게 물었다. 당연히 아니지.




버스에서 내린 시각은 11시 35분. 리뷰 수(4,295)와 평점(4.7)이 모두 높은 식당 Restaurante Lage Senhor do Padrão까지, 걸어서 8분이면 도착한다. 예보와 다르게 한두방울 내리는 비를 피해 빠른걸음으로 걸었더니 11시 40분에 도착했다. 영업개시는 12시부터라고 구글맵에서 확인했던 탓에, 약 5분을 처마 밑에 서 있었다. 11시 45분. 영업하기 전이라도 우선 들어와 앉아있겠다는데 내쫓기야 할까, 싶어 문을 열어봤다. 들어가도 될까요...? 조심스레 묻자, 서버가 밝게 웃는 얼굴로 자리를 안내해주었다.


밖에 서 있는 동안 메뉴는 충분히 공부했다. 해물밥이 Monkfish Rice(아귀밥)과 Shellfish Rice(갑각류밥) 두 종류가 있어, Shellfish Rice(2인분, 24.5 EUR)을 주문했다. 애피타이저로는 정어리튀김(Small Fried Sardines, 3.5 EUR)과 대구 고로케(Ball Codfish, 0.75 EUR) 두 개. 와인은 많이 못 먹을 것 같은데 레드와인을 마시고 싶고, 드라이했으면 좋겠다고 하자, Esteva 375ml(5 EUR)를 추천해줘서 그것으로 하겠다 했다. 나는 해산물에 화이트 와인, 육고기 레드 와인이라는 공식을 안 따르고, 와인 맛을 느끼기 어려운 음식에는 고가 와인을 함께 마시지 않는다 뿐, 와인과 음식 페어링에 별로 신경을 안 쓰는 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편이 음식과 와인 주문을 마치고 나니 그제서야 "난 해산물에 레드와인 마시면 비리던데..."라고 뒤늦게 불평을 했다. 내가 이제까지 와인 페어링에 무심했던 것은 해산물 비린내를 개의치 않아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제일 먼저 나온 정어리 튀김은 튀김옷에 소금을 많이 입혀 그런지 조금 짰지만, 아주 신선하고 부드러우면서 살이 꽉 차 맛있었다. 순식간에 여러개를 먹어치웠다. 대구 고로케도 처음 먹어본 맛! 이라고는 할 수는 없지만 따끈하고 대구살이 쫄깃하니, 맛이 좋았다. 그리고 메인 메뉴 갑각류밥 (Shellfish Rice). 비스큐를 진하게 우려내 한솥 끓인 듯, 깊은 풍미가 매력적이다. 홍합과 조개살이 잔뜩 들어가 있고, 새우가 끝도 없이 나온다. 게딱지도 두세개 들어가 있다. 생파슬리가 마지막 향을 얹어 요리를 완성했다. 그런데 양이 너무 많다. 요리가 나오자마자 우리 둘이서는 다 못먹으리라, 직감했다. 남편은 많이 짜다고 했고, 내 입맛에도 짜기는 했지만 맛있었다. 결국은 삼분의 일 정도를 남겼고, 디저트를 주문하겠느냐는 서버의 말에, 아니오, 우린 이제 못 먹습니다... 항복했다.

신선하고 고소했던 정어리 튀김 @Restaurante Lage Senhor do Padrão
따끈한 대구 고로케 @Restaurante Lage Senhor do Padrão
갑각류밥 @Restaurante Lage Senhor do Padrão  (아니 이게 2인분이라니요.....!)

식당을 나오니 한 시 정각. 가게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오픈런하기 잘했네. 그런데 모퉁이를 돌자 금세 거리가 한산해졌다. 연초라 며칠간 문을 닫은 가게도 꽤 있는 것 같다.


궁금했던 시장 Mercado Municipal de Matosinhos을 찾아가 봤다. 1층 수산물코너는 매대 위에 천이 덮어두고 장사를 하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시장에서 수산물을 사오면 즉석에서 요리해주는 가게 두 곳은 모두 영업중. 이래서야 식당 장사가 될까? 2층으로 올라가보니, 과채소를 판매하는 가게들은 전부 문을 닫았다. 닭장에 닭들이 들어있는 가게만 여주인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듯 보였다.


시장에서 나와 다시 골목 이곳 저곳을 걸었다. 철길을 따라 양쪽으로 상점들이 들어서 있는데, 구두 파는 가게가 꽤 많다. 그런데 구두들이 시즌에 맞춰 들여온 것이라기보다는 근 십년을 팔고 있는 것 아닐까 의심스러울만큼, 좋게 말하면 클래식하고 낮춰 말하면 촌스럽다. 상품들이 진열된 가게는 그나마 다행으로, 낡은 간판을 떼지도 않은 채 비어있는 가게자리가 더 많다. 띄엄띄엄, 오래된 카페&바의 실외 테이블에 앉아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더러 보인다. 먹는 장사만 오래가는 걸까. 그런데 그마저도 우리나라처럼 빠르게 피고 지는 요식업 트렌드였으면 어려웠을 것이다. 한산한 거리 위, 과거 번영의 흔적이 소란스레 비춰지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대체로 한적하면서도 레트로한 분위기가 전북 군산을 연상시켰다.


바닷가로 나가니 백사장이 펼쳐진다. 하루종일 날이 흐려 바다 위로 물안개가 자욱하게 피었다. 파도가 거세게 일어 하얀 물보라가 부서진다. 나는 솨아아 - 쏟아지는 물보라를 바라보는 것이 속이 뻥 뚫리는 듯 쾌감이 있었는데, 남편은 자꾸만 '파도가 심란하네'를 읊조렸다.

잔뜩 흐린 마토지뉴스 해변. 날이 따뜻할때는 여기서 서핑도 하는 모양이다.

Cafe Negra에서 남편은 플랫화이트(2.5 EUR)를, 나는 더블에스프레소(2 EUR)를 주문해 마셨다. 플랫화이트는 지극히 평범한 수준이었고, 에스프레소는 깔끔하게 마시기 좋았다. 노트북을 놓고 일을 하는 젊은이들이 꽤 보였다. 한 시간 가량 쉬다, 한 가지 음식을 더 도전하기로 했다. 포르투 시내 곳곳 사진이 붙어있어 도대체 어떤 맛이기에, 싶었던 프란세지냐 (Francesinha).


3시 40분. 배는 아직 꺼지지 않았지만 너무 늦지 않게 집으로 돌아가려면 지금 먹어야한다. 점심으로는 너무 늦은 시각이고 저녁으로는 너무 이른 시각. 우리가 간 곳은 Requinte Francesinha라는 가게다. 역시 리뷰 사천 개가 넘는데 평점이 4점대. 도착해서 보니 두세 개 테이블에 손님들이 앉아있다. 테이블마다 슈퍼복 (Super Bock) 맥주잔이 여러개 놓여있다. 나이가 지긋하고 체구가 큰 서버 분이 손가락 두개를 들어보이신다. 고개를 끄덕였더니, 2인용 테이블을 가리켜서 그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앉아 기다리자, 곧 젊은 서버가 메뉴판도 없이 자리에 찾아왔다. 프란세지냐(11 EUR)? 해서 고개를 끄덕이면서 근데 한 개만 주문할 수 있을까요, 묻자, 그는 두 개로 잘라줄까요, 확인한다. 네네, 대답했다. 그러자 계란후라이(0.5 EUR) 넣어줄까요? 라고 묻기에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감자튀김(2.7 EUR)은? 에도 우리의 대답은 예스. 그런데 음료를 무엇으로 하겠냐 물으니, 그건 즉답이 어려웠다. 에스프레소를 먹고 싶기도 했고 맥주를 먹고 싶기도 했기 때문. 메뉴를 좀 볼 수 있을까요, 했더니 가져다주셨다. 메뉴를 보고 난 후, 마음을 굳혀 슈퍼복(2.1 EUR) 두 잔을 주문했다.

반으로 잘라 구워내 길다란 프란세지냐 @Requinte Francesinha
겉은 바삭, 속은 포슬한 질감이 기막히고 코막히는 감자튀김 @Requinte Francesinha

프란세지냐는 한 개를 구운 뒤 잘라서 가져다줄 줄 알았는데, 예상과 달리 샌드위치를 잘라 두쪽으로 만든 후 각자 치즈를 올려 구워주셨다. 그냥 한 개를 구워내는 것보다 치즈도 품도 더 많이 들텐데, 영수증에 계산된 가격은 프란세지냐 한 개 가격 뿐. 감자튀김도 양이 많다. 감자튀김이 더 맛있다던 남편은 프란세지냐 반 개를 다 못먹었고, 나는 소스까지 깔끔히 닦아 먹었다. 식빵 안에 고기패티와 소고기, 햄과 소시지가 들어있다. 고기를 큐민으로 양념했는지 큐민 향도 나고, 소스는 눈치채기 어려울 정도로 옅은 매콤함이 있다. 남은 감자튀김은 집으로 싸 왔다.


자, 이제 관건은 집으로 어떻게 돌아가느냐. 집으로 곧장 갈 것이냐, Foz do Douro를 들렀다 갈 것이냐를 망설이다, Foz do Douro까지 걸어가보기로 했다. 분홍빛 노을로 물든 바다를 바라보며 한 시간 정도를 걷다보니, 상 주앙 바티스타 요새 (Fortaleza de São João da Foz)에 도착했을 즈음에는 이미 날이 캄캄해져 바다도, 강도 잘 보이지 않게 되었다. 


걷는 동안, 부부간 다정다감한 대화를 나누었다. 남편은 거센 파도를 보고 속이 시원하다고 하는 나를 사이코패스나 되는 것처럼 이야기했고, 나는 그런 남편을 고리타분하고 고지식한 인간이라고 폄훼했다. 남편은 '나나 되니까 너와 사는 것'이라고 했고, 나는 '(당신이) 황송감사한 줄 알아야지!'라고 응수했다.

마토지뉴스에서 도오로 강 어귀로 가는 해변1
마토지뉴스에서 도오로 강 어귀로 가는 해변2
마토지뉴스에서 도오로 강 어귀로 가는 해변3

집까지 버스를 타고 돌아가려면 카드를 충전해야하는데 근처에 메트로역이 없다. 가장 가까운 메트로역까지는 걸어서 한 시간. 이때 귀가에 적절한 교통수단으로 볼트 (Bolt) 택시를 생각했어야 했는데. 우리는 눈 앞에 멈춰 서 있는 트램을 덜컥 타버렸다. 인당 5유로씩을 내고 기사분이 건네주는 티켓을 받았다. 강가를 따라 창 밖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기 위한 관광목적의 노면전차. 볼트 택시를 탔으면 집까지 얼마가 나왔을지를 검색해보니 예상가격은 7유로에 불과하다(에잇). 3유로 차액이 아까워, 억지로 창 밖 풍경과 트램 사진을 열심히 찍었다. 종착역인 Infante역에 내려 집까지 이십분가량을 걸어 돌아왔다.  


5유로짜리 관광 트램
트램 창 밖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풍경 (사진은 안 아름다운데? 라고 반문하기 없기)




나와 살아주는 남편의 하해와 같은 은덕으로, 포르투에서 처음 버스도 타고 트램도 탔다. 염원이던 해물밥도 먹고 프란세지냐도 먹었다. 여보,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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