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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렁이 판다 '치짜이'를 아시나요?

시안 근교 여행 찾는다면 추천해요

by 건전남 Mar 12. 2025

시안에서는 진시황 병마용만 후다닥 볼 계획이었다. 병마용 만나서 인사 나누고, 뱡뱡면 후루룩 냠냠 먹고 나면 사실 시안에서 더 할 것도 없지 않겠냐는 생각이었다. 중국에서 가장 큰 시내 성벽이라고 하지만, 여행 계획 단계에서는 특별한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그래 봐야 성벽이겠거니 했고, 양귀비의 목욕탕 '화청지'도 딱히 관심을 끌지 못했다. 스케일 크다는 공연 '장한가'는 살짝 끌렸지만, 언어 장벽을 넘어설 용기가 나지 않았다. 대학생 때 멋모르고 본 서울월드컵경기장 '투란도트'나, 베이징에서 잔뜩 기대를 안고 본 '금면왕조'조차 큰 감흥을 느끼지 못했지 않은가.


하지만 항공권 예매를 하면서 큰 실수를 하고 말았다. 시안에서 베이징으로 이동하는 항공편이 하루에 여러 차례 있는데, 무슨 귀신이 씌었는지 오전 비행기 대신 늦은 오후 비행기를 예매한 거다. 나중에 이를 깨닫고 변경을 하려 하니, 수수료가 어마무시하다. 베이징에서 계획한 고북수진 관광을 포기하는 건 좋은데, 당장 시안에서 무얼 할지 눈앞이 캄캄했다. 그냥 일단 떠나서 생각해보자 싶었고, 시안에 도착해서도 특별한 계획을 찾지 못한 채 뱡뱡면이나 한 그릇 더 먹을 생각만 잔뜩이었다. 밤에 매력을 뿜어내는 '대당불야성(大唐不夜城)도 이미 다녀왔다는 말씀되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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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당불야성(大唐不夜城)


그런데 아이들이 무언가 더 갈구한다. 여행 고수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미 어느 정도 여행 맛 좀 본 환브로에게 여유 있는 여행은 사치였나 보다. 특히 시안 성벽 위에서 자전거를 못 탔다며 아쉬움을 토로하는 려환이에게 그저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겠다는 말이 위안이 될 리가 없다. 뭐라도 찾아내야지 하며 이것저것 뒤적거리는데, 요 녀석들은 언젠가부터 벌써 꿈나라다. 피곤할 만도 하지. 그렇게 걷고 먹고 또 먹었으니, 잠이 안 쏟아질 수가 없지. 귀여운 녀석들 얼굴을 보다가 문득 판다가 떠올랐다. 


'쿵푸팬더' 덕분에 판다에 대해 공부(?)를 한 기억이 있다. 쓰촨 성에 대왕판다 연구기지도 있는데, 쓰촨 이외 지역에도 대왕판다가 있다는 내용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친링 산 판다!  그래, 산시성에도 판다가 있다고 했다. 검색창을 빠르게 뒤졌는데, 얼씨구 멀지 않은(불과 70km 떨어진) 곳에 판다는 물론 산시성 희귀 동물 4종류를 보호하고 있는 '진령사보과학공원(秦岭四宝科学公园)'이 있는 것 아닌가. 심지어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야생이 아닌 곳에서 만날 수 있는 '갈색 대왕판다'도 있다고 한다.


아침 일찍 서둘러 짐을 챙기고 택시를 대절해 '과학공원'으로 향했다. 사실상 일반 동물원 같은 느낌이었지만,  동물원이 아닌 '과학공원'이라는 용어가 환브로에게 안도감을 준 듯했다. 아프리카 대자연에서 뛰노는 동물들을 보고 난 뒤, 환브로는 동물원에 대한 죄의식 비슷한 걸 갖고 있다. 특히나 기후 조건에 맞지 않은 동물을 억지로 데려와 구경거리로 만드는 데 환멸을 느낀다. 그래도 이 지역에 사는 희귀 동물을 구조, 보호한다는 의미라니, 동물친구들이 괴롭지는 않을 듯하다. 한 시간 넘는 길을 부탁받은 택시기사님이 W여사의 중국어 실력을 인정해 주니, 뭔가 기대 이상 기분 좋은 발견도 기대된다.



과학공원이 자랑하는 4가지 보물은 '문방사우'가 아닌 대왕판다, 링뉴, 따오기, 금빛머리원숭이 이렇게 친링산맥에 사는 희귀 동물들을 말한다. 추적추적 살살 내리는 비 때문일까, 과학공원 전체에 우리 가족을 포함해 관람객이 10여 명에 불과한 느낌이다. 맛집이라고 소개해서 갔는데, 손님 없이 파리만 날리는 그런 느낌이랄까. 알고 보니 아직 유명세를 덜 탄 모양이다. 시설은 오래돼 보이는데, 2021년 개관했다고 한다. 그러니 시안 관광 후기에서도 잘 찾아보기 어려웠나 보다. 관람객이 적으니 어쩌면 우리에게는 꽤 좋은 기회다. 개관 당시에는 예약제로 하루 3천 명만 입장객을 받았다고 하더라. 


걸어 올라갈 수도 있지만 괜히 힘 빼지 말고 전동카트 타고 올라갔다가 내려오면서 둘러보라는 안내를 받고 전동차에 올랐다.  가장 먼저 우리를 맞이한 건 평범한(?) 대왕판다들이다. 커다란 인형처럼 멀뚱멀뚱 앉아만 있는 녀석도 있고, 우걱우걱 끝없이 대나무 잎을 씹어대는 아이도 있다. 성큼성큼 운동이라도 하는 것처럼 집 앞마당을 산책하는 친구도 있다. 동물을 유독 좋아라 하는 환브로는 신이 났다. 판다가 뭔가 색다른 자세만 취해도, 서로 불러대며 빨리 와서 보라고 난리난리다. 귀엽기는 귀엽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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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드디어 만난 갈색 판다, 연한 갈색의 누렁이 판다는 '치짜이(七仔)'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과거 길을 잃고 길에 버려진(?) 새끼 치짜이는 마을 사람들에게 발견돼 구조됐다고 한다. 당시 생후 2개월로 거의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상태였는데, 희귀 동물보호센터에서 보호해 사육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전 세계적으로 발견된 갈색 판다는 7마리가 있는데, 치짜이를 제외하면 모두 친링산맥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가족 친지들을 만나고 싶을 수도 있겠지만, 당장은 과학공원에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으며 살고 있다. 


돌연변이라면 돌연변이일 텐데, 흰색과 검은색 털을 지닌 일반적인 대왕판다가 뚜렷한 명도 대비로 어필한다면, 치짜이는 약간 흐리멍덩한 색감이 뭔가 새침해 보이는 매력이 있다. 어쨌든 대왕판다로 대나무는 우걱우걱 잘도 먹는다. 찾아보니 치짜이가 푸바오의 이모부라는 이야기도 있더라. 꽤 복잡한 관계인데, 그대로 옮겨보자면 치짜이는 푸바오의 엄마 아이바오의 이복 자매 정정의 남편이라고 한다. 아무튼 치짜이와 정정 사이에 아이도 있다고 한다. 이 아이는 털색이 흰색과 검은색이라고 해서, 환브로에게 우열의 법칙에 대해 한바탕 읊어줬더니, 곧장 다른 동물 친구들을 만나러 떠난다. 이런.


판다 친구들을 만나느라, 다른 친구들과 시간을 오래 보내기 어려웠다. 난생처음 보는 '링뉴'라는 아이는 커다란 소에 가까웠는데 역시 세상은 넓고도 넓다. 따오기는 그냥 따오기다. 보일 듯이 보일 듯이 보이지 않는다. 금빛머리원숭이는 비에 젖어 꼼짝도 하지 않는다. 4대 보물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래서판다'가 오히려 귀여운 매력을 뿜어낸다. 슈퍼마리오가 떠올랐는데, 주변에 버섯은 당연히 따로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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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에 사육사가 판다를 운동시키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냥 먹이를 던져주면 될 텐데, 다리 힘을 기르려는 건지 긴 장대에 과일을 꽂아서 판다를 움직이게 만들기를 반복했다. 덕분에 판다들이 열심히 움직이는 모습을 챙겨볼 수 있었다. 서로 먹이를 먹겠다고 아웅다웅하는 판다 2마리는 의도치 않게 관람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귀여운 녀석들, 언젠가 야생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돌아갈 수 있는 야생의 환경이 아마 점점 줄어들고 있을 텐데, 괜찮을까. 허름한 공원 내 식당 밥이 의외로 꽤 맛있다. 덕분에 계획되지 않은 한나절이 알차게 흘러갔다. 그냥 줄줄줄 여행기도 슬슬 중반을 넘어간다. 이제 베이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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